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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화

2017.04.29~30. - 소백산 야생화 트레킹 (사진 다수: 45pics, 모바일 데이터 주의)

    이번 순례지는 소백산입니다. 주된 대상은 두말할 것도 없이 소백산의 깃대종인 모데미풀이며, 저지대에서는 이미 끝난 봄 꽃을 높은 산에서 다시 만나는 소소한 기쁨도 기대해 볼 수 있습니다. 일정은 늘 그래 왔듯 야간 열차편으로 출발하는 당일 산행을 생각하였으나 마침 이번 주가 노동절(1일)과 석가탄신일(3일), 그리고 어린이날(5일)로 이어지는 징검다리 휴일이고, 평일인 2일과 4일은 연/월차 등으로 거의 쉬는 것을 권장하는 분위기여서 평년과 다르게 꽤 여유가 있는 기간이지요. 그래서 평소 궁금했던, 호텔 수준이라는 소백산의 제2연화봉 대피소에서 하루 유숙하는 1박2일 일정을 계획해 보았습니다.


     국립공원 예약 사이트를 확인해 보니 마침 빈 자리가 있어 3석을 일단 예약해 두고, 늘 함께 다니던 꽃동무들에게 의사를 물어보았습니다. 그러나 예약 확정 마감날까지 응답이 없어 예약은 자동 무산되었고, 평소처럼 혼자 야간열차편으로 다녀 오는 것으로 생각이 굳어지는데 동참자가 나타납니다. 사무실의 현재 동료 K부장입니다. 나 홀로 소백산행 계획을 듣고 본인도 가능하면 함께하고 싶다는군요. 저로선 동행이 있어 나쁠 것은 없으므로 바로 의기 투합합니다. 산행 일정에 여유가 있으니 이번엔 동부인 하는게 어떠냐는 K부장의 제의를 수용하여 다시 대피소 4석을 확보합니다. 마눌님들도 이 계획에 흔쾌히 동의했음은 물론입니다. '별빛 찬연히 쏟아지는 소백산정, 그 고즈녁한 산장에서의 하룻밤'이라는 달콤한 사탕발림에 홀랑 넘어가지 않을 마눌님이 세상에 존재하기나 할까요? 하하~


(이번 동반인은 여기 자주 등장하는 K부장과는 다른 사람입니다. 그러고 보니 늘 함께 산행하는 사람들이 공교롭게도 모두 '이니셜 K'들이군요. KJH, KYA, KJY님, 그리고 이번에 동행하는 KSW님 등은 모두 전/현직 직장 동료들이고 KMB님만 직장이 다르지만 모두 김씨 성을 가진 분이네요.)


     교통편은 아침 일찍 승용차로 출발하여 풍기역에서 주차해 두고 택시로 죽령휴게소로 이동 후 산행 시작하여 제2연화봉 대피소에서 1박한 다음, 연화봉 - 제1연화봉 - 천동 삼거리 - 천동 계곡 - 다리안 루트로 하산하여 단양을 거쳐 풍기로 회귀하는 비교적 평이한 코스로 잡았습니다. 단양에서 풍기까지는 시외버스편을 이용할 계획이고요.


     동행하는 K부장은 참으로 오랜만의 소백산행이라 출발 며칠 전부터, 봄 소풍을 앞둔 초등생처럼 설레는 마음을 굳이 숨기지 않습니다. 마치 오래 전 헤어진 옛 연인을 만나러 가는 기분이라고나 할까요? 소백산은 이 지역에서 함께 청춘을 보낸 사람이라면 동료와, 친구와, 연인과 함께 한 번 정도는 눈보라와 칼바람 맞으며 걸었던 기억을 대부분 간직하고 있는 아련한 옛 추억의 산이라 해도 크게 틀린말은 아닐 것입니다.


PC에서는 사진 클릭하면 약간 커집니다.



     어쨌거나 우린 그렇게 출발했고, 예정대로 11시 반쯤 풍기역에 도착했습니다. 역 주변 적절한 곳에 주차 후 가장 먼저 들른 곳은 '한결청국장 전문' 식당입니다. 인터넷에서 미리 검색하여 정한 집인데, 이 근방에서는 꽤 인지도가 있는 모양입니다. 점심시간이 약간 남았는데도 홀 내부에는 손님들로 거의 찼더군요.



     가격도 시골 식당 치고는 그리 저렴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음식의 질을 생각하면 비싸다고 할 수만도 없군요. 청국장 정식과 부석태 콩탕을 각각 2개씩 주문합니다. 애피타이저로 나온 3종 샐러드가 훌륭합니다. 리필도 가능하고요.



     반찬도 꽤 정갈하고 맛깔스럽습니다. 특히 가지 튀김과 볶은 열무김치가 특색있더군요. 이런 성찬에 막걸리가 빠져서야 말이 안되죠. 소백산막걸리 한 통을 청하여 사발에 따르니 비로소 식탁이 완성된 느낌이 듭니다.



     뚝배기에 방금 끓여 낸 청국장은 그 특유의 역한 냄새가 거의 나지 않고도 깊고 진한 맛이 느껴집니다. 역시 보글보글 끓는 채 서빙된 콩탕은 생전 처음 보는 메뉴라 과연 어떤 비주얼과 맛일지 몹시 궁금했는데, 고추 등 붉은 양념을 넣지 않고 심심하게 끓인 순두부같군요. 꽤 고소한 맛이 납니다. 이와는 별도로 꽁치조림 한 뚝배기도 반찬으로 나옵니다. 내 입맛의 관용도가 워낙 넓어서인지, 식사는 가격 대비 상당히 만족할 만한 수준입니다. 근데 저런! 막걸리가 금세 동이 나버렸네요.



     배를 채운 후 들른 곳은 길 건너편의 유명한 풍기인삼시장입니다. 그저 구경이나 할까 들어갔는데, 수삼의 가격이 의외로 저렴하여 조금 구입했습니다. (뿌리 등이 떨어져 상품 가치가 낮아진 6년근이 1kg당 25,000 ~ 35,000원). 구입한 인삼은 이 집 냉장고에 잠시 보관했다가 내일 다시 이 곳으로 와 찾아가기로 하고, 오늘 대피소에서 먹을 몇 뿌리만 따로 챙겼습니다.



     풍기역전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죽령휴게소까지 한 달음에 올라옵니다. 예전 새벽엔 25,000원이었는데, 낮이라 할증료가 붙지 않아 택시비는 20,000원을 지불했습니다. 여기에서부터 본격적인 등로가 시작됩니다. 사실 등로라기보다는 도로라 해야하겠군요. 연화봉의 소백산 천문대까지는 자동차가 운행해야 하므로 콘크리트 포장 자동차도로입니다. 



     아랫쪽엔 이미 다 져버린 진달래가 여긴 한창이군요. 게다가 색도 아주 진합니다.



     예쁘게 모여 핀 큰개별꽃도 아주 싱싱합니다.



     내가 더 예뻐! 미모를 과시하는 노랑제비꽃 부케도 만납니다.



     역광을 받아 빛나고 있는 큰개별꽃 무더기의 뒷태를 훔쳐봅니다.



   완만하긴 하지만 6.7km를 계속 올라가야 하는 오르막길이어서 지루하기도 하거니와 은근히 힘듭니다.  



     약 2시간 반 가량을 걸으니 제2연화봉 기상관측소가 눈앞에 나타납니다. 숲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저 건물 오른쪽에 대피소가 있습니다.  



     대피소로 향하는 마지막 오르막입니다.



     대피소 현관에서 본 죽령휴게소 방향입니다. 저 멀리 가장 높게 보이는 봉우리는 할미봉인데 보기와는 달리 꽤 험하다고 하는군요.  올 여름에 저 곳으로 솔나리를 만나러 가야 할텐데요.



     대피소 관리사무실에 신분증 제시하여 체크인 후 짐을 침상에 두고 부식거리만 챙겨 별도 건물에 마련된 주방으로 향합니다. 오늘의 메뉴는 풍기에서 사 온 '문경약돌삼겹살'입니다. 가끔 지리산이나 설악산의 대피소에 묵을 때면 무거운 불판과 고기를 어렵게 짊어지고 올라와 구워 게걸스럽게 먹는 사람들을 보면서 혀를 끌끌 차면서도 구운 삼겹살로 소주 마시는 것은 한편으로 부러웠는데 살다보니 나도 이럴 때가 다 있군요. 


     '약돌을 갈아넣은 사료를 먹여 키운 돼지'라서 그런지 정말로 잡내가 거의 나지 않고 쫄깃하니 맛이 아주 일품이네요. 통으로 가져온 6년근 풍기인삼 뿌리를 송송 썰어 프라이팬에 가득 투하하여 함께 구우니 인삼의 쌉쌀한 사포닌 향과 문경약돌삽겹의 고소한 풍미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모든 느끼함이 천리밖으로 달아납니다. 이보다 더 력셔리한 삼겹살은 단연코 이 세상엔 없습니다! 500ml 맥주 2캔과 600ml짜리 소주 2병이 눈 깜짝할 새 증발해버리는군요. 


     

    햇반 데워 밥까지 먹고 주방 정리하고 알딸딸 기분 좋게 취하여 밖으로 나오니 일몰이 시작됩니다. 쌀랑해진 외기 때문에 담요까지 둘둘 두르고 일몰을 구경하려는데, 미세먼지 많은 뿌연 대기 탓에 일몰경이 그리 아름답진 않습니다. 해가 서산너머로 완전히 넘어가고 나니 갑자기 추워지고 바람이 점점 거세져서 산장 바깥에 머물며 별이며 은하수며 밤하늘을 관찰하며 낭만을 즐기기는 말짱 글러버렸습니다. 미련 버리고 일찌감치 침상으로 가서 눈을 붙이기로 합니다.



     침상에 누워 참을 청하다가 그래도 아쉬워 카메라와 삼각대 챙겨 들고 밖으로 나와봅니다. 관측 타워를 배경으로 별의 일주를 찍어 볼 요량이었지만 삼각대가 흔들릴 정도로 바람이 너무 불어 포기해야만 했고, 그냥 스냅 사진 한 장만 찍고는 잠자리로 되돌아옵니다. 아까 마신 취기 때문인지 나도 모르는 새 깊은 잠에 빠져든 듯합니다.



     얼마나 잤을까, 문득 잠 깨어 시계를 보니 4시 반이 채 못됐군요. 바람이 좀 잦아들었다면 은하수 사진을 찍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다시 사진 장비 챙겨 바깥으로 나와봅니다. 그러나 휘몰아치는 소백풍은 조금도 누그러지지 않았군요. 처마 아래 삼각대 세워 남쪽을 향해 장노출 샷 한 방 찍어보았지만 바람에 의한 카메라의 흔들림과 무한대 초점 조절 실패로 별사진은 망했습니다.   



     일행을 깨워 라면으로 아침 식사를 때운 후 또다시 출발입니다.  오늘 일출마저 낮은 구름과 탁한 대기 때문에 그리 조건이 좋지 못하네요. 




     소백산 천문대로 가는 포장길에 아침 금빛 햇살 마구 쏟아집니다.



     아침 햇살에 잠을 깨는 처녀치마 . . . 이 루트엔 처녀치마가 지천입니다.



     홀아비바람꽃도 시작입니다. 올해 늦은 꽃시계때문에 이번 산행에서는 이 아이들을 보지 못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뜻밖에도 몇 송이일지언정 이리 일찍 피어주니 참으로 고마을 따름입니다.



홀아비바람꽃



     규모가 그리 풍성하진 않지만, 이 정도면 만족 그 이상입니다.



    앞에 보이는 봉우리는 제1연화봉(1,304m)이고 그 뒤로 멀리 보이는 것은 소백의 정상인 비로봉(1,439m)입니다. 



     진달래가 한창 피고 있습니다. 만개까진 아직 많이 남은 것 같군요.



     어느 새 제1연화봉이 눈 앞에 성큼 다가 와 서 있습니다.



     제1연화봉에서 천동삼거리 사이 구간에 특히 진달래(아마도 털진달래?)가 많은 것 같습니다.



     간간이 눈에 띄던 모데미풀은 천동삼거리를 지나니 완전 밭떼기로 변합니다.



     등로를 따라 좍 깔렸기에, 굳이 금줄을 넘어 금지구역까지 침범하면서까지 모데미를 찾아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길섶의 모데미풀 중에 쓸 만한 모델이 더 많습니다.



     절정의 미모를 과시하고 있군요.






     등로를 따라 핀 모데미풀



    함초롬이 부케를 형성한 아이들도 있고,



     박새 사이에 숨어 수줍게 핀 모데미도 있습니다.



     동의나물도 피기 시작합니다. 한 일주일 후엔 엄청난 군락으로 변해 있을 듯합니다.



     금괭이눈도 있어요.



큰개별꽃



     뫼제비 종류 같은데 ... 민둥~일까요?



    애기괭이눈과 물의 반영으로 어줍잖케 잔재주(?) 좀 부려 봤습니다.



     연령초의 꽃봉오리가 바야흐로 터지기 직전입니다.



큰구슬붕이는 여기라고 예외는 아니겠죠?



     매화말발도리도 지금이 한창입니다.



     오월의 신록 충만한 이 길은 걸으면서 행복해지지 않는 자가 있다면, 이 세상 어느 것으로도 행복해지지 않을 것입니다.



     매화말발도리도 참 예쁜 꽃이지요?



     천동 대궐터를 지나면서부터는 볼 만한 꽃도 없고 다소 지루하게 먼 길이지만, 대신 시원한 물이 철철 흘러넘치는 계곡이 있어 청량감이 충만합니다. 이 곳 다리안 폭포 위의 협곡을 연결한 다리를 지나면 거의 하산이 끝납니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해 보니 1~2시간에 한 대꼴로 운행하는 단양행 버스를 아슬아슬하게 잡아 탈 수 있었네요. 단양 터미널 도착하니 때마침 마악 출발하려는 풍기, 영주 경유 대구행 우등버스가 있어 급히 올라탔는데 버스 환승 타이밍이 기막히게 잘 맞아떨어집니다. 

 


     풍기역으로 복귀하여 맡겼던 인삼을 찾고 여유가 있어 인근 커피 전문점에서 시원한 아이스커피 한 잔씩으로 땀을 식힙니다. 내려가는 길은 안동을 들러 찜닭을 맛보는 먹방 투어리스트로서의 본분에도 충실하기로 했습니다. 오늘도 사무실 안동 토배기 권모양이 권유한 안동 구시장 '유진찜닭'을 찾았습니다. 



     속이 매우 허했고, 예전 남자 4명이 한 마리를 주문하여 양이 부족해 못내 서운했던 아픈 기억도 떠오르고 하여, 이번엔 넉넉하게 1마리 반을 주문했습니다. 배를 두드리고 먹어야 할 정도로 벅찬 양이었지만,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 마약과도 같은 맛이라, 꾸역꾸역 결국 깨끗이 쟁반을 비웠네요. 


     이로서 모든 일정이 끝납니다. 야생화 트레킹인지 산행인지 먹방 투어인지 성격이 모호한 일정이었지만, 모든 것이 다 좋았습니다. 가끔 마눌님 모시고 이런 방식으로 다녀야겠습니다. 


     모든 순간을 함께 해 주었던 K부장 부부와 마눌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