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해외여행'에 해당되는 글 33건

  1. 2015.08.15 2015.08. 북유럽을 다녀오다 - #01. Prologue
  2. 2014.12.11 미국 서부 자동차여행 10일차 (2014.02.12), 브라이스 캐니언, 자이언 국립공원
  3. 2014.11.06 미국 서부 자동차여행 9일차 (2014.02.11 - 2/2), 아치스 국립공원
  4. 2014.11.06 미국 서부 자동차여행 9일차 (2014.02.11 - 1/2), 모뉴먼트 밸리 17마일 드라이브 (5)
  5. 2014.08.29 미국 서부 자동차여행 8일차 (2014.02.10) - 그랜드캐니언(2/2), 앤털롭 캐니언, 모뉴먼트 밸리 (6)
  6. 2014.08.05 미국 서부 자동차여행 7일차 (2014.02.09) - 그랜드캐니언(1/2)
  7. 2014.07.21 미국 서부 자동차여행 6일차 (2014.02.08) - 로스엔절레스 시내 투어(2)
  8. 2014.07.10 미국 서부 자동차여행 5일차 (2014.02.07) - 로스엔젤레스 시내 투어(1)
  9. 2014.07.07 미국 서부 자동차여행 4일차 (2014.02.06) - 우중의 캘리포니아 1번 주도(PCH-1) 드라이브
  10. 2014.07.02 미국 서부 자동차여행 3일차 (2014.02.05) - 요세미티 국립공원을 둘러보다
  11. 2014.07.01 미국 서부 자동차여행 2일차 (2014.02.04) - 샌프란시스코 및 요세미티 외곽
  12. 2014.06.25 미국 서부 자동차여행 1일차 (2014.02.03) - 출발 및 샌프란시스코 도착
  13. 2014.03.13 그랜 캐니언
  14. 2014.02.26 미국 서부 기행 -【序】여행을 준비하며 (3)
  15. 2013.10.01 소피아(불가리아) 잠깐 둘러보기 (2/2)
  16. 2013.09.25 소피아(불가리아) 잠깐 둘러보기 (1/2)
  17. 2013.08.18 동유럽 둘러보기 - 《제5일 : 부다페스트 및 귀국》
  18. 2013.08.18 동유럽 둘러보기 - 《제4일 : 비엔나》
  19. 2013.08.18 동유럽 둘러보기 - 《제3일 : 잘츠캄머굿 및 잘츠부르크》
  20. 2013.08.18 동유럽 둘러보기 - 《제2일 : 프라하 및 체스키크룸로프》
  21. 2013.08.18 동유럽 둘러보기 -《제1일:부다페스트 밤거리》
  22. 2013.08.18 동유럽 둘러보기 -《출발》
  23. 2012.09.26 서안(西安) 역사기행 #9 - 에필로그, 그리고 낙수(落穗)
  24. 2012.09.18 서안(西安) 역사기행 #8 - 비단길, 그리고 回族거리
  25. 2012.08.29 서안(西安) 역사기행 #7 - 山外有山, 西岳華山
  26. 2012.08.22 서안(西安) 역사기행 #6 - 병마용갱과 진시황릉
  27. 2012.08.18 서안(西安) 역사기행 #5 - "중국 최고의 대형 실경 역사 무극 - 장한가"
  28. 2012.08.14 서안(西安) 역사기행 #4 - 당 현종과 양귀비의 로맨스의 현장, 화청지
  29. 2012.08.13 서안(西安) 역사기행 #3 - 진 2세황제릉 및 섬서성 역사박물관
  30. 2012.08.12 서안(西安) 역사기행 #2 - 삼장법사의 흔적이 서린 소안탑과 대안탑




여름 휴가를 맞아 약 열흘간 러시아가 포함된 북유럽 투어를 다녀오다.

북유럽은 남미, 아프리카, 히말랴야 트레킹과 함께

오랫동안 내 위시리스트에 들어 있던 터였다.


원래 자유여행을 생각하였으나, 여름철 극 성수기를 맞아

내 휴가 일정에 맞는 저렴한 비행기 표 구하기가 어려웠고

호텔 예약 사이트를 통해 북유럽의 살인적인 숙박비를 확인해 보고는

주저없이 자유여행을 포기하고 패키지 투어에 합류하기로 결정하였다.


각종 여행사 패키지를 검토한 결과

휴가 일정에 가장 부합하고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ㅇ"사의 프로그램을 선택했는데,

여행은 일정에 따라 무리없이 진행되었고,

조금 걱정했던 쇼핑 이나, 옵션 강요 등의 행위가 거의 없어

전반적으로 는 내내 편안한 여정이 되었다.


이번 여행의 특징은 크루즈 선박에서의 2박이 포함되어 있어서

항해 도중 갑판에서 일출과 일몰을 감상할 수 있고,

선내 식당에 편안히 앉아

꽤 괜찮은 뷔페식과 함께 무한정 제공되는맥주와 와인을 마시면서,

백야 끝 어스름에 물든, 선창 밖으로 미끄러지듯 멀어지는

그림같은 경치를 감상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비좁아 터진 선실에서의 불편한 취침 정도야 애교로 봐 주자.


다만 단체 일정에 쫓기다 보니

개인적으로 관심 가는 대상에 오래 집중하기가 어렵고

이동 도중, 탄성이 절로 나오는 특별한 경관이 나타나도

차를 세울 수 없어 그냥 눈에만 담아갸야 하는 것이 가장 아쉬운 대목이다.

이는 패키지 투어가 가지는 어쩔 수 없는 한계이니 그냥 감수 할 일이다.


일정은 다음과 같다.



《제 1 일》

인천 - (러시아) 모스크바


《제 2 일》

모스크바 - 상뜨 뻬쩨르부르크


《제 3 일》

상뜨 뻬쩨르부르크


《제 4 일》

상뜨 뻬쩨르부르크 - (핀란드) 헬싱키 - 투르쿠


《제 5 일》

투르크 - (스웨덴) 스톡홀름 - 옌셰핑 - 함스타드


《제 6 일》

함스타드 - 헬싱보리 - (덴마크) 헬싱괴르 - 코펜하겐


《제 7 일》

코펜하겐 - (노르웨이) 오슬로


《제 8 일》

오슬로 - 오따 - 예이랑에르 - 피얼란드 - 뵈이야 - 래르달


《제 9 일》

래르달 - 보스 - 베르겐 - 헴세달


《제 10 일》

헴세달 - 오슬로 - (러시아) 모스크바


《제 11 일》

모스크바 - 인천



앞으로 시간 나는대로, 그 날의 일정을 사진과 함께 정리해 보기로 한다.







전체 루트








성 바실리 성당, 모스크바 @ 러시아. 2015.08.03.







운하, 상뜨 뻬쩨르부르크 @ 러시아, 2015.08.04.







템펠리아우키오 암반 교회, 헬싱키 @ 핀란드, 2015.08.05.






크론보르 고성, 헬싱괴르 @ 덴마크, 2015.08.07.







인어像, 코펜하겐 @ 덴마크, 2015.08.07.







비겔랑 조각공원, 오슬로 @ 노르웨이, 2015.08.08.







요빅(Gvik) 가는 길가의 빙하호수 @ 노르웨이, 2015.08.09.







예이랑에르 피오르, 예이랑에르 @ 노르웨이, 2015.08.09.







예이랑에르 피오르, 예이랑에르 @ 노르웨이, 2015.08.09.






예이랑에르 피오르, 예이랑에르 @ 노르웨이, 2015.08.09.






호텔, 래르달 @ 노르웨이, 2015.08.09.






브뤼겐 거리, 베르겐 @ 노르웨이, 2015.08.10.





(프롤로그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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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일 2014.02.12(수) 오전 흐림, 오후 맑음.    

  

      오늘의 일정:

 

      ① 브라이스 캐니언(Bryce Canyon) 투어

      ② US-89S, UT-9을 따라 자이언 국립공원 방향 이동

      ③ 자이언 국립공원 관람

      ④ I-15를 따라 라스베이거스 이동 및 숙박

 

      총 주행할 거리 : 약 302마일(486km) - 국립공원 내부 이동 포함.


 

     매섭게 추운 날씨다. 땅바닥엔 잔설이 꽁꽁 얼어붙어 있고, 스치는 바람이 칼날처럼 옷 틈으로 파고든다. 가져 간 옷 중 가장 두터운 옷으로 무장하였다. 그랜드 캐니언의 일몰, 일출에 이어 두 번째로 덕다운 패딩 점퍼 덕을 제대로 보는 것같다. 식사 등 출발 준비를 마치고 첵아웃 후 브라이스 캐니언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해발 7777피트 지점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휙 지나간다. 7777피드라면 2,370미터 아닌가? 그렇다. 이 곳은 한라산 정상보다 높은, 해발 2천 미터가 넘는 고소 평원 지대인데 아무리 둘러봐도 비교되는 저지대의 풍경이 보이지 않으니 그냥 평지같은 느낌이다.

 




     입구를 거쳐 방문자 센터에 주차하고 잠시 들러보니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탐방객이 거의 없어 매우 한산하다. 기념 엽서와 사진집을 하나 사 들고 화장실 들렀다가 본격 공원 탐방길에 오른다. 입구로부터 공원 남쪽으로 난 브라이스 캐니언 경관 드라이브 코스는 최남단 요빔파 포인트(Yovimpa Point)까지 편도 29km에 달하며, 도중 14개의 뷰 포인트가 있다. 이 드라이브를 왕복하며 각각의 포인트를 둘러보는데만 3~4시간은 족히 걸린다. 

 




     위 지도상에 보이는 바와 같이, 공원 경관 드라이브는 남북으로 길게 이어져 있으며, 붉은 선으로 표시한 공원 주 도로를 따라 남행하면서 각 포인트마다 잠시 정차하여 관람하였다. 무료 셔틀버스가 있지만 5월 초에서 10월 초까지만 운행한다. (지도 출처 : 미국 브라이스 캐니언 국립공원 홈페이지 ☜ 클릭).

 

     브라이스 캐니언을 대표하는수십만 개의 "후두(Hoodoo)"를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포인트는 위 지도상에서 네모 박스로 표시한 "Bryce Amphitheater Region(원형 극장 지역)"이며, 이 곳을 벗어나면 오밀조밀, 아기자기한 맛은 떨어지지만, 침엽수림과 붉은 사암으로 이루어진 공원의 장쾌한 풍경을 조망할 수 있는 포인트가 이어진다. 





     공원 내부로 진입하여 가장 먼저 만나는 장소는 선라이즈 포인트(Sunrise Point)이다. 이 곳에서 동북쪽을 바라보면 침엽수 숲 속에 붉은 많은 바위 기둥이 드문드문 보인다. 일종의 예고편인 셈이다.



 

조금 더 남행하면 해발 8000피트(2,438m)의 선셋 포인트가 나온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후두가 보이기 시작한다.












더 남으로 가면 브라이스 캐니언의 백미, 인스피레이션 포인트(Inspiration Point)를 만난다.




인스피레이션 포인트의 북으로 면한 비탈은 잔설에 덮혀있다.




콜로세움을 연상케하는 원형극장 형상 내부의 무수한 후두!


    



      이 곳의 풍경도 사진으로, 화면으로 많이 보아 왔지만, 실물을 생눈으로 보는 것은 차원을 달리하는 가슴떨림이 있다. 바로 이 순간, 바로 여기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참으로 경이롭고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미국 내의 다른 자연공원과 마찬가지로, 이 곳도 장구한 지구 역사의 산물이다. 아득히 먼 옛적, 인간이 이 땅에 나타나기도 훨씬 이전, 이 곳은 광활한 저지대였다. 공룡이 멸종하기 전(대략 65억여년 전) 지각 변동으로 로키산맥과 콜로라도 고원이 만들어지면서 여기서 발원한 물이 낮은 이 지역으로 흘러들면서 이 곳은 호수가 되었고, 고원지역으로부터 떠내려 온 산화철과 칼슘, 탄소가 풍부한 석회암 성분의 퇴적물이 지속적으로 쌓이게 된다.



     


     또 수많은 세월이 흐른 후, 이 유역이 900~2745미터 정도로 융기하여 고지대로 변하면서 수분이 증발하고 퇴적물은 단단한 바위로 압축되었다. 이후 강한 산성을 띤 빗물이 석회암을 서서히 녹여 곳곳에 바위틈을 만들어 놓았다. 이 틈새를 침투한 빗물은 밤의 결빙과 낮의 해동을 반복하면서 틈새를 더욱 더 벌려 나간다.





     결빙과 해동은 대략 1년에 200회 정도 반복된다고 한다. 물이 얼어 얼음이 되면 원래의 부피보다 110% 팽창하게 되는데, 이로 인하여 바위에 큰 압력이 가해지고 균열이 생기면서 갈라지게 된다. 몬순기에 많은 비가 내려 균열에 의해 발생한 잔해를 씻어내면 단단한 암석으로 된 기둥 모양의 핀(fin)만 남음으로써 후두(hoodoo) 형성의 첫 단계가 된다. 두 번째 단계는, 동결 쐐기 작용으로 핀에 균열이 생겨 창(windows)이라 부르는 구멍이 생기는 것이다. 창이 무너지면 뾰족한 바위 형상만 남는데, 이것을 후두라 부른다. 


     수명을 다한 후드는 지금도 붕괴하고 있으며, 또 새로운 후드가 계속 만들어지는 중이다. 브라이스 캐니언을 형성하는 원형극장(amphitheater)의 가장자리는 50년 간격으로 1 피트씩 후퇴하고 있다고 한다. 우주가 팽창하듯, 브라이스 캐니언도 서서히 영역을 넓혀가는 중인 것이다. (이상 국립공원 소개 브로슈어 및 위키피디아에서 참조 인용함)




후두 하나 하나 마다 수십 억년의 세월의 비밀을 나이테처럼 간직하고 있다.


         


브라이스 포인트(Bryce Point).




(브라이스 포인트) 브라이스 캐니언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포인트다.




(브라이스 포인트) 아득한 절벽아래 




(브라이스 포인트) 일망무제의 브라이스가 광활하게 누워 있다.




브라이스 원형극장 지역을 벗어나 남하하면 만나게 되는 내추럴 브릿지(Natural Bridge). 사진만 보면 크기가 짐작이 안되는데 꽤 큰 규모다.




폰데로사 포인트(Ponderosa Point)




(폰데로사 포인트) 후두의 역사를 보듯, 형성되기 시작한 초기 후두와 그 왼편으로는 장차 후두가 될 지반이 그대로 보인다.




블랙버치 캐니언(Black Birch Canyon).




(블랙버치 캐니언)



(블랙버치 캐니언)



레인보우 포인트(Rainbow Point)


     이제 공원 탐방로의 최남단인 레인보우 포인트와 요빔파(Yovimpa) 포인트에 도달하였다. 표고 9,115피트(=2,778미터)다. 2,744미터인 백두산보다 34미터 높다. 주차 후 주변을 산책해 보았다. 쌀쌀하지만 상쾌한 공기를 한껏 들이마시며 ...




(레인보우 포인트) 딸 녀석은 꼬마 눈사람을 만들어 보는 여유도 부려 본다.




(레인보우 포인트) 북동 방향




요빔파 포인트(Yovimpa Point)의 동쪽 방향




요빔파 포인트의 남쪽 방향


     이 무렵, 마눌님이 두통과 메스꺼움을 호소하기 시작한다. 고산증임을 직감하였다. 사실 나도 아까 공원 초입에서부터 머리속이 띵 한게 뭔가 불편한 증세가 있었지만, 이것이 고소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애들에게 물어보니 역시 가벼운 두통과 어지러움 등 조금씩 불편한 증상을 느끼고 있었다고 한다. 차를 돌려 나오는 길에 마눌의 증상은 점점 심해지고, 급기야 연탄가스에 중독된 것처럼 머리 속이 빠개지는 듯하다는 두통을 호소하더니 구토까지 하고 한바탕 곤욕을 치루었다. 아침 숙소 출발 후 고소에 적응할 틈도 없이 곧장 고지대까지 올라온 탓이리라. 이럴 땐 빨리 낮은 지대로 이동하는 수 밖엔 다른 도리가 없다. 급히 차를 몰아 공원을 빠져나왔다. 돌아 나오면서 보기로 했던 몇 가지 포인트를 스킵할 수밖에 없었고, 특히 걷기 싫어하는 가족을 꼬셔 모처럼 예정에 넣었던 퀸즈 가든 트레일을 걸어보지 못하고 황망히 공원을 뒤로할 수밖에 없었던 점이 너무도 슬프다!




공원 출구 방향의 터널길


     황망히 공원을 빠져나와 얼마간 달리니 US-89S을 만난다. 여기서 좌회전하여 자이언 국립공원으로 향하였다. 도중 점심 시간이 되어 UT-9와 만나는 삼거리(Mt. Carmel Junction)에 잠시 쉬며 "서브웨이(Subway)"에서 샌드위치로 점심을 대신하였다. 아이들 엄마는 상태가 더 나빠지지는 않았지만 컨디션 난조에서 아직도 헤어나지 못하여, 아무것도 먹지 못하겠다고 한다. 우리는 금세 상태가 정상으로 되돌아 와서 서브웨이의 거대한(?) 샌드위치를 맛나게 먹었다. 커피까지 한 잔 마시니 숙취가 사라지듯 머리속이 다시 상쾌해진다. 





자이언 국립공원 동문(東門)을 통과. 




동문 초소를 통과하니 자이언 국립공원의 거대 암봉이 그 위용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눈 앞에 아득하고 거대한 바위덩이가 태산처럼 떡 버티고 앉았다. 금방이라도 피가 뚝뚝 묻어날 것만 같은 붉은 암석이란! 공원을 관통하는 도로도 붉은 색으로 포장하여 주위 경관과 잘 매치되도록 배려한 흔적이 역력하다. 




부드러운 사암을 뚫어 소박한 터널을 만들었다. 성수기엔 이런 터널에서 병목현상으로 차량이 많이 정체된다고 한다.



 

Zion-Mount Carmel Highway(UT-9)





     붉은 암산 사이로 이어지는 붉은 도로를 몇 굽이 돌아 나가니 깊이를 알 수 없는 아득한 협곡이 나타나고 저 멀리 우뚝우뚝 거대한 바위산이 줄지어 서 있다. 



 


     구절양장과도 같이 구불구불 이어진 유타주 9번 하이웨이는 캐니언 저 아래로 연결되어 있고, 천단만애의 아찔한 그 길을 운전하면서도 한 굽이 두 굽이 돌 때마다  저 멀리 시시각각 전개되는 놀랍고도 새로운 세계에 감히 눈을 뗄 수가 없다! 


     이 곳도 태초엔 평평하고 단단한 암석지대였지만, 멀리 상류 지역인 콜로라도가 3000미터 이상 융기하여 고원으로 변하면서, 그 곳에서 발원한 빗물이 예까지 흘러내리며 바위에 틈새를 만들고, 무수한 세월을 깍고 또 깎아 이런 거대한 협곡을 만들어 낸 것이다.





          우리는 상상력의 한계를 넘는 아득한 세월을 "억겁(億劫), 영겁(永劫)"이라고 한다. 불교에서의 겁(劫)은 아주 긴 세월을 이르는 말이다. 사방 사십리 크기의 거대한 바위가 있어, 이 바위 곁을 천녀(天女)가 사 년 마다 한 번씩 지나가는데, 그 때마다 천녀의 옷깃에 스친 바위가 다 닳아 없어질 때까지의 기간을 한 겁(반석겁 : 盤石劫)이라고 한다. 어느 할 일 없는 사람이 이 기간을 계산해 보니 대략 4억 3천 2백년 쯤 된다는데, 모르긴 해도 천녀가 겁의 겁만큼은 부지런히 지나 다녀야 지금의 이 정도의 거대 자이언 캐년을 빚어 낼 수 있지 않을까.

 

   



    짧은 트레일 한 군데를 걸어 보기로 했었지만 집사람의 컨디션이 호전될 기미가 안보여 이번에도 포기하고 공원 시닉 드라이브를 따라 맨 안쪽의 "시나와바 사원(Temple of Sinawava)"까지 가 보기로 했다. 이 지역이 본격 자이언 캐니언이다. 협곡 사이로 흐르는 버진 강(North Fork Virgin River)을 따라 장엄하고도 아름다운 바위가 계속 이어져 있다.




위핑 롹(Weeping Rocks) 주차장에서(1) 




위핑 롹(Weeping Rocks) 주차장에서(2) - 눈물을 흘리듯 계속 물이 흐는다고 얻은 이름인데, 좌 중간 밝은 색 바위 위의 말라버린 눈물자국이 보이는가?




적벽의 산 사이로 흐르는 버진 강(1). 

이 버진 강이야말로 자이언을 만들어 낸, 바로 그 천녀(天女)다!




적벽 사이로 흐르는 버진 강(2). 

이름마저 처녀 강(Virgin River) 이니 천녀의 역할에 딱 맞는 적절한 작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처녀 강




     오른쪽 어두운 그림자의 바위는 "The Organ" 이다. 아치스 캐니언에도 같은 이름의 거석이 있었는데, 미국인들의 마음 속엔 교회의 파이프오르간이란게 엄청 거물이라는 이미지로 박혀있는 듯하다. 




오르간 바위 뒤의 흰 암봉은 "에인절스 랜딩(Angels Landing) 인 듯하다. 우리말로 옮기면 "강선대(降仙臺)" 쯤 되겠지.




왼쪽 위로 강선대가 보인다.

천녀가 자이언을 빚으러 이 세계에 내려 올 때 저 곳을 정거장으로 삼았을까?


시나와바 사원까지 다 왔다. 이제 돌아 나가야 할 시간이다.




시나와바 사원에서




직벽




남문 방향으로 나오면서 다시 자이언을 되돌아보았다.




자이언 공원 진입 도로변의 흔한 풍경이다.




남문의 멋진 방문자 센터.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주차장의 반열에 올리고싶다.




자이언 국립공원의 남쪽 입구.


     사실 이번 여행에서 자이언은 크게 기대하지 않았었다. 더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그랜드 캐니언이나 브라이스 캐니언, 모뉴먼트 밸리 등에 밀려서 말이다. 그저 그랜드 써클을 역방향으로 한 바퀴 돌아서 최종 목적지인 라스베이거스로 가는 길에 잠시 들른다는 개념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 자이언이야말로 이번 미국여행의 뜻하지 않았던 하일라이트였음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장엄하고 웅혼한 거인의 모습을 보았달까, 자이언의 압도적인 스케일과 핏빛 붉은 바위에서 뿜어나오는 강력한 오오라(aura)는 카메라로 담을 수도 없고, 담아 봤자 소용없는 공허한 행동일 뿐이었다. 명암차가 커서 노출 조절이 극히 어려운 점도 덤이었지만, 설령 제대로 찍었더라도 사진만으로는 그 느낌이 제대로 살아나지 않는다. 우리가 본 모습은 자이언의 손톱만한 겉모습을 아주 살짝 맛을 본 정도에 불과하다. 진면목을 제대로 보려면 최소한 2~3일 정도는 머물며, 공원 전체를 발 아래 조망할 수 있다는 캐니언 오버룩 트레일이나 버진 강을 따라 8시간, 15.1km의 오솔길을 걷는 "The Narrows" 트레일 정도는 경험해 보아야 한다는데, 오호 애재라. 우리 인생은 왜 이다지도 짧기만 한 것인지!




공원을 빠져나와 처녀 강(버진 강)을 따라 계속 이어지는 UT-9번 도로를 계속 타고 세인트 조지(St. George) 방향으로 달리다.




뒤돌아보니, 자이언의 여운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계획대로라면 세인트 조지 市에서 유숙하고 다음날 아침 라스베이거스로 입성하는 것이었지만, 예정보다 일정이 일찍 끝난데다가 라스베이거스까진 약 200km 남짓, 2시간 정도면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아 세인트 조지는 그냥 패쓰하고 야밤의 고속도로(I-15)에 올라 가속 페달을 힘차게 밟았다. 가족들에게 라스베이거스의 눈부신 야경을 보여 주고 싶은 나름대로의 계산도 한 몫 했다.


     이 곳 고속도로 역시 무척 적막하였고 가도가도 칠흑같은 어둠이었다. 조금 심심하고 지루한 운전 끝에 드디어 도시 외곽으로 진입하는 순간, 저 멀리 언덕 위로 좌악 펼쳐진, 그야말로 불야성 같은 라스베이거스의 밤이 딱 나타나는데 그 흥분과 충격은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마치 오랜 우주 여행에서, 오직 암흑뿐인 블랙홀을 빠져 나와 휘황하고 찬란한 다른 행성계로 진입하는 순간의 쇼크라고나 할까.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한 우리는 바로 투숙하지 않고, 스트립 일대를 한 바퀴 드라이브하였다. 나는 이 곳을 몇 번 와 본 터라 큰 감흥은 없었지만 마눌과 아이들은 장님이 처음 눈 뜨기라도 한 듯, 화려하게 명멸하는 어지러운 네온사인을 정신줄 놓고 바라보았다. 그래, 이것이 미국식 자본주의의 끝판인 곳이란다. 싫컷 보고 즐겨라!


     숙소는 스트립 북쪽 끝의 스트래터스피어(Stratosphere Hotel & Casino)로 정하였다. 상대적으로 외곽이라 숙박비도 저렴하고, 프리미엄 아울렛이 지척인데다가 무엇보다도 이 곳 랜드마크의 하나인 스트래터스피어 타워를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는 속셈이 있었던 것이다. 체크인 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미소를 지으며 뷰가 좋은 방을 달라 부탁했는데, 이것이 효험이 있었는지 창 바깥으로 스트립의 야경이 잘 조망되는 객실이 배정되었다. 이 호텔은 낡은 시설로 그간 평판이 그다지 좋지 않았는데, 근래에 말끔히 리모델링하여 복도와 객실은 상당히 깨끗하고 쾌적하였다.


   (제 10일 끝. 다음 편에 완결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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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서부 자동차여행 9일차 (2014.02.11 - 2/2), 아치스 국립공원 

 

     아쉬움을 뒤로 하고 나바호 부족공원을 빠져나오니 시간은 벌써 정오가 훌쩍 넘고 있었다. 금세 만난 US-163도로를 타고 아치스 국립공원(Arches National Park)이 있는 모앱(Moab)을 향하여 북행길에 올랐다. 이 곳에서 아치스 NP 입구까지는 약 160마일, 3시간이 소요된다고 네비가 알려준다. 아치스 국립공원 구역 내에서도 만만찮은 거리를 이동하며 관람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 약간 서두르기로 했다. 간밤에 잠을 거의 못잔 탓에 노곤함이 몰려 와 생초보 아들녀석에게 운전대를 잠시 맡겼더니 행여 사고라도 나지 않을까 아이 엄마가 전전긍긍 불안해하기에 결국 다시 내가 운전대를 잡았다.


 

      이 도로는 영화 "포레스트 검프(1994, 로버트 저매키스 감독)"의 촬영지로 유명하다.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사막 가운데 난 도로를 달리고 또 달리던 주인공 검프(탐 행크스 扮)가 갑자기 달리기를 중단하고 뜬금없이 "이제 지쳐 못뛰겠다.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선언하자 그를 줄줄이 따라 뛰던 많은 추종자들이 단체로 멘붕하던 그 유명한 신을 기억할 것이다. 이런 연유로 이 도로는 "포레스트 검프 포인트"로 유명세를 타게 되는데, ...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한 장면. 영화 화면 캡춰)


   포레스트 검프 포인트라고 생각하여 찍은 사진과 위 영화의 장면을 비교해 보면 뭔가 어색하다. 상세히 보면 뒤 배경의 좌우가 반전됐다. 아무래도 장소를 헛다리 짚은 듯하다. 망했다. (추후 구글맵에서 포인트를 찾아 위치를 확인해 보니 정확한 좌표는 북위 37.101741, 서경 -109.990753 이다. 이 담엔 놓치지 말아야...ㅠㅠ;)



 

왼편 차창 밖으로 멕시칸 햇(Mexican Hat)이 보인다. 멀리서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계속 북으로 차를 몰았다.

 


 

주행 중에 만나게 되는 각종 기묘한 지형과 풍광은 길멀미를 나지 않게 해 주었다.

 


 

운전하는 즐거움이 절로 생겨나는 길이다.

 


 

 

 


 

몬티셀로(Monticello) 근처에서 만난 설산. (US-191)

 


 

지도를 보니 좌측은 웨스트 마운틴(West Mt), 우측 봉우리는 아바호 피크(Abajo Peak)인 것으로 추측한다.

 

 

눈이 시원해지고 가슴이 뻥 뚫리는 이 광경. 차에서 내려 찬 공기를 폐부 깊숙히 들이쉰 후, 마음껏 고함이라도 내지르고 싶은 충동이 마구 든다.

바로 이 맛에 운전하는 것 아니겠나!

 


 

US-191을 따라 북행 또 북행...

 


 

또 다른 설산이 보이고(아마 아치스에서도 보이는 La Sal 산이 아닐까?)

 


 

묘하게 생긴 바위도 만난다.

 


 

 

     나중 자료를 찾아보니 "Church Rock" 이란다. 1900년대 초, 이 곳에 찾아 든 한 여성 신비주의 교주가 신도들을 규합 후 저 바위 내부를 파 내고 교회로 만들려고 시도하던데서 이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실제 바위엔 정으로 쪼아낸 자국이 있고, 어느 정도의 공간이 있으며, 현재 곡식 저장 창고로 사용된다고.


 

 

 

     모앱(Moab)을 지나 얼마간 진행하니 아치스 NP를 알리는 이정표를 만났다. US-191을 빠져 나오면 바로 아치스 NP 입구에 도달한다. 현재 시각 15:08, 모뉴먼트 밸리로부터 3시간이 약간 덜 걸렸다. 방문자 센터의 화장실을 들렀다가 센터 내부를 휘둘러 본 후 공원 진입로로 차를 몰았다.

 


 

 

     제법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라 붉은 바위산에 난 언덕길을 넘어야 국립공원 지역으로 진입할 수 있다. 고갯마루에 차를 세우고 왔던 길을 되돌아 보니 왼쪽엔 모앱(Moab)에서 연결 되어 서편 저 멀리 고개를 넘어 가는 US-191 도로가, 사진 중간쯤엔 아치스 NP 방문자 센터가 자그맣게 보인다.

 

     아치스 국립공원은 어떤 곳일까? 공원 검표소에서 나눠주는 브로셔를 대략 번역해 볼라치면, 

 

    "물과 얼음, 극한의 기온, 지하에서 움직이는 소금기가 이 아치스 공원의 바위 조각 작품을 새겨놓았다. 맑고 청명한 날엔 이 엄청난 자연의 힘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지만, 1억년에 걸친 풍화와 침식 작용이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자연석 아치를 빚어 놓은 것이다. 구멍의 직경이 1미터에 불과한 꼬마 아치부터, 두 기둥간의 거리가 무려 93미터에 달하는 넘(Landscape Arch)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아치가 무려 2000개 이상이나  모여 있다"

 

     93미터 크기의 아치라...얼마나 크기에? 생눈으로 직접 보기 전엔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계속 더 읽어보자.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아치가 생겨나고 있으며 오래된 아치는 무너져 내리고 있다. 침식과 풍화 작용은 대단히 느리지만 한 순간도 쉬는 법 없이 오랜 세월에 걸쳐 역동적으로 움직여 이 땅의 모양새를 바꾸어 간다. 가끔 드라마틱한 변화가 덮치기도 한다. 1991년, 길이 18미터, 너비 3.4미터, 두께 1.2미터에 달하는 랜드스케이프 아치의 상부 바닥부분의 바윗덩어리가 떨어져 내려 바닥으로 붕괴하였다. 이 바람에 이 아치(의 상단부)는 얇은 띠 모양의 바위만 남게 되었다...(이하 중략)"

 

    좀 무섭군. 머리 위의 아치 바위 일부가 떨어져 내리는 순간 운 없는 사람이 그 아래 있었다면? 누군가가 날벼락을 맞았다는 기사는 없는걸 보니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컨대, 이 곳의 드라마틱한 풍광도 장구한 세월의 풍화작용으로 만들어졌고, 지금도 계속 진행형이며,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 최다의 아치를 보유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이 곳의 백미는 트레일을 걸어서 각종 아치를 지근 거리에서 구경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우린 세계 최대 규모라는 랜드스케이프 아치도, 라 살 산을 배경으로 웅장한 아름다움의 극치를 뽐낸다는 델리킷 아치에도 접근해 보지 못했다. 시간의 제약이라는 덫에 걸려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처지... 어렵게 곰을 잡아서 웅담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격이랄까? 공원 내 시닉 로드(Scenic Road)를 왕복하면서 뷰 포인트마다 차를 세우고 구경하는데 만족해야 했다. 못 본 포인트는 차후의 여행을 위하여 숙제로 일단 남겨두기로 하자.

 

 
 

 

     공원 내로 진입하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파크 애버뉴(Park Avenue)" 뷰 포인트다. 직벽으로 우뚝 선 거대한 바위 병풍이 떡 하니 나타나는데, 위압감이 실로 대단하다. 만약 우리 조상들이 이 곳에 살았더라면 저기에 거대한 마애불을 조각해 넣지 않았을까? 저 바위의 높이는 대략 100미터가 넘고, 두께는 10미터 남짓하다니, 얇은 돌판을 모로 세워 놓은 형상이라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스릴이 있다. 왼쪽 계곡(?)으로는 공원 내부로 통하는 올레길 비슷한 트레일이 나 있고, 거기를 걷는 탐방객들이 개미새끼만하게 보였다.

 

 

 

"La Sal Viewpoint"에서. 저 멀리 보이는 설산이 아마도 라 살(La Sal) 산인 것같다.

 

 

눈 덮힌 산과 기묘한 형상의 붉은 바위땅과의 극명한 대조. 

 

 


 

"Courthouse Viewpoint"의 "The Organ". 대성당의 거대 파이프오르간을 닮아서 얻은 이름일까?

 


 

"Petrified Dunes(화석 언덕) Viewpoint"에서 조망하는 설산 (1)

 


 

"Petrified Dunes Viewpoint"에서 조망하는 설산 (2)

 

 


유명한 "Balanced Rock(균형 바위)"과 주위에 도열한 이름 없는 돌기둥이 보인다.

 

 

 

 

     Balanced Rock... 사진으론 실감하기 힘들지만, 가까이에서 본 뾰족한 바위 위에 살짝 얹힌 고구마 모양의 바위는 거대하였다. 좁은 좌대에 아슬아슬하게 가부좌를 틀고 앉아 이름 그대로 절묘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어 슬쩍 밀면 그냥 와르르 무너질 듯하다. 풍화가 계속되고 있어 언젠가는 분명 무너질 터인데, 그게 언제쯤일지 심히 궁금하다.

 

     아들 낳아달라고 비는 용도로 적합해 보이는 양 옆의 거대 남근석(?)은, 우리 나라였더라면 균형 바위(Balanced Rock)보다도 더 민간의 숭배를 받아 "변강쇠바위" 등등 멋진 이름을 벌써 얻었을 터인데, 이 곳 사람들에겐 득남이 중요하지 않은지 아무 이름도 없고, 그 아랜 촛불 켜고 빈 흔적도 없는, 이 곳에서는 흔해빠진 그냥 평범한 기둥바위일 뿐이다. 


 

문자 그대로, 점입가경(漸入佳景), 기기괴괴(奇奇怪怪)라는 말 밖엔...

 


 

상상을 넘어 선 풍광... 마법에 홀려 꼭 별세계에 들어온 것만 같다.

 


 

시닉 드라이브

 


 

저 멀리 "동굴 아치(Cove Arch)"가 보인다. 가까이 접근해 보진 못하고 멀리서 조망하는 것으로 때웠다.

 


 

"소금 계곡 전망대(Salt Valley Overlook)"에서 조망하다. (1)

 


 

"소금계곡 전망대(Salt Valley Overlook)"에서 조망하다. (2)

 

 


"끓어오르는 용광로?(Fiery Furnace)" 뷰 포인트에서 (1)

아마 용암으로 부글부글 끓어 넘친 마그마가 식으면서 굳어 형성된 땅이라는 뜻인 듯.

 


 

"끓어오르는 용광로(Fiery Furnave)" 뷰 포인트에서 (2)

 

 


 

고깔모자를 쓴 요괴들이 금방이라도 우르르 튀어나와 우리를 홀릴 것만 같은 공원길.

 

 


 

 

     우리 수준에 딱 맞는 아치 트레일을 발견하고 마침내 끝까지 가 본, "모래 언덕 아치(Sand Dune Arch)". 주차장과 불과 5분 정도의 거리에 있고, 소규모 아치인데도 막상 가까이 접근해 보면 예상 외의 규모에 깜짝 놀라게 된다.


 


"스카이라인 아치(Skyline Arch)". 이 곳도 주차장과 불과 7~8분 정도의 거리에 있어 접근해 보았다. 가까이 가 보니 역시 엄청난 규모다.
 

 


 

"악마의 정원(Devil's Garden)" 트레일 입구 근처의 캠핑장이다. 이제 공원 안쪽 끝까지 거의 다 왔다.

 

 

 

 

     아치스 국립공원 끝단의 주차장이다. 더 이상 자동차가 진입할 수 있는 도로는 없으며 여기에서 왔던 길로 돌아 나가야 한다. 입구에서 도중에 이 곳 저 곳 구경하며 여기까지 오는데 2시간이 약간 넘게 걸렸다. 공원 전역엔 화장실 외 식당이나 상점이 전혀 없어 물과 음식은 미리 준비해 와야 한다.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고, 석양이 바위에 떨어지니 삐죽삐죽 하늘을 찌르는 바위가 붉게 물들고 있다.

 


 

공원을 빠져나오면서 바라본 라 살 산. 시간의 변화에 따라 카멜레온처럼 다양한 색깔의 옷을 갈아입는다.

 

 


서편 하늘이 붉게 물들고,

 


 

이윽고 해는 져서 어둑어둑한데, 라 살 마운틴 뷰포인트 바위 위엔 어느 새 보름달이 둥실 걸렸다.




     공원을 빠져나올 무렵, 날은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 이제 브라이스 캐니언 근처로 이동하여 적당한 숙소를 잡아야 한다. 낮 시간이라면 UT-24번를 타고 캐피톨 리프(Capitol Reef) 국립공원을 경유하여, 경관이 환상이라는 UT-12번을 따라 브라이스 캐니언으로 가는게 당연하겠지만,  아무리 황홀한 씨닉 드라이브라도 깜깜한 밤엔 그저 그림의 떡일 뿐이다. 내비가 지시하는대로 I-70, UT-89로 연결되는, 빠르고 안전한 길을 택했다. 목적지까지는 약 435km, 4시간 8분이 소요될 예정이라고 내비가 알려준다.


     도중 시골 마을의 햄버거집에 들러 샌드위치로 간단히 저녁삼아 요기하면서 와이파이를 잡아 호텔을 예약하였다. 도착 예정 시간은 밤 10시 40분경. 그 시각이면 직원이 퇴근하고 없을 것같아 저으기 걱정이 되었다. 예약 사이트에서 전화번호를 찾아 프런트에 전화하여, 밤 늦게 도착 예정인데 직원이 아무도 없으면 어떻게 투숙할 수 있겠느냐고 물으니 퇴근하면서 키를 봉투에 넣어 현관 어딘가 눈에 띄는 곳에 보관해 두겠다고 한다. 


     다시 4시간의 장도에 올랐다. 아무리 인터스테이트 고속도로라지만, 워낙 이 동네가 보리깡촌인 탓에 너무도 한산하여 완전히 텅 빈 도로를 홀로 전세 낸 것같다. 주위엔 인적이 극히 드물어 저 멀리 인가의 불빛만 가끔 보일 뿐이다.최근에 눈이 내렸는지 도로 연변은 온통 하얀 눈으로 덮혀 온통 은세계인데 그 위로 달빛이 교교히 내려앉아 온 천지를 훤히 밝히니, 밤도 아닌것이 낮도 아닌것이 또다른 환상의 세계가 연출되고 있다. 이 순간 온 우주를 내가 소유한 것같은 뿌듯한 느낌이 들어 운전하는 것이 너무도 즐겁다. 


     "브라이스 캐니언 리조트"에 도착한 것이 22시 반. 차에서 내리니 칼바람에 실린 매서운 추위가 훅 엄습한다. 리조트 주위의 눈 쌓인 마당 바닥은 온통 얼음으로 꽁꽁 얼어붙어 있다. 여긴 완전 겨울인가 보다. 리조트 현관쪽으로 가 보니 실내는 불이 다 꺼져있고, 문은 다 겼다.  현관 주위를 살펴보니 유리문에 과연 내 이름이 적힌 객실 키 봉투가 스카치테입으로 붙어 있다. 


     (제 9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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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9일 2014.02.11(화) 맑음.    

  

      오늘의 일정:

 

      ① 모뉴먼트 밸리 드라이브(17마일 비포장길)

      ② US-163N, US-191N을 따라 모앱(Moab) 방향 이동

      ③ 아치스 (Arches) 국립공원 관람

      ④ I-70을 타고 브라이스 캐니언(Bryce Canyon) 국립공원 근처 이동 및 숙박 


      총 주행할 거리 : 약 500마일(805km)- 국립공원 내부 이동 포함.


 

          오늘도 역시 요란한 알람 소리에 잠이 깨였다. 별 궤적을 찍느라 부산을 떤 덕분으로 잠을 거의 자지 못하였지만, 눈 뜨자마자 바로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발코니로 나가 보았다. 여명과 함께 하늘이 희붐하게 밝아온다. 모뉴먼트 밸리의 일출을 놓쳐서야 말이 되겠는가? 옷을 후다닥 챙겨입고 객실을 빠져나왔다. 동쪽 지평선 너머로 붉게 물든 아침 노을이 서서히 밝아지면서 해가 마악 돋아나려 하고 있다. 호텔 밖에는 일출을 감상하려는 많은 관광객들이 벌써 옷을 두텁게 입고 나와 진을 치고 해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이윽고 해가 떠오르자 이 순간을 놓칠세라 사방에는 탄성과 함께 셔터소리가 제법 요란하다.








나바호족의 성스러운 땅, 이 너른 밸리엔 금세 햇살이 가득 들어찬다.




북편 메사(Mesa)의 직벽이 아침 햇살에 붉디 붉게 물들고 있다.






     일출은 눈 깜짝할 새에 진행되어 이제 완전히 날이 밝아졌다. 객실로 되돌아 가 신속히 샤워를 하고 짐을 챙겨 출발 준비 후 조식을 추진하러 호텔의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호텔은 조식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다른 사람의 여행기엔 조식이 유료라고 하였는데, 아마도 고객 유치를 위하여 비수기엔 한시적으로 무료 운영하고 있는 듯하다. 음식 종류도 꽤 다양하고 맛도 괜찮아 오랫만에 퀄리티 높은 아침 식사를 할 수 있었다. 특히 창 밖으로 펼쳐진 모뉴먼트 밸리의 황홀한 아침 정경을 만끽하며 식사를 할 수 있는 호사는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같다!


     


자료출처: 나바호 부족공원의 공식 홈페이지 (http://navajonationparks.org/htm/monumentvalley.htm)


 

          호텔 프런트에서 받은 지도를 참조하여 17마일 밸리 비포장길 드라이브(17 Mile Valley Loop Drive)를 해 보기로 했다. 나바호족이 운영하는 셔틀 차량을 이용하여 투어를 할 수 있지만 비용이 제법 비싸고, 무엇보다도 우린 시간을 절약해야 했다. 사실 4륜 구동 SUV 차량을 렌트한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이 17마일 밸리 룹 드라이브 때문이었다. 밸리 내부 도로는 포장 구간이 전혀 없이 울통불퉁한 바위와 모래구간으로 이루어진 자연 그대로의 오프로드여서 세단형 승용차로는 어려움에 처할 수도 있다는 조언을 따른 것이다. 최고 속도는 시속 15마일로 제한되어 있으며, 총 2~4시간이 소요된다. 우리가 방문했던 때는 오랜 가뭄으로 인하여 진창길은 전혀 없었고, 고운 모래 때문에 먼지가 많이 일었던 점 외엔 특별히 운전이 어렵진 않았다. 실제 승용차를 몰고 온 탐방객이 많았고, 우린 앞 차가 일으키는 흙먼지를 피하려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운전했다.  




자료출처: 나바호 부족공원의 공식 홈페이지 (http://navajonationparks.org/htm/monumentvalley.htm)


 

     전체 코스는 위 지도에서 권고하는 대로, ① The East Mitten & Weat Mitten Buttes에서 시작하여 ⑪ The Thumb 까지 순서대로 일주하는 것이다. 모든 구간은 일방통행으로 되어 있어 길을 잃을 염려가 없다. 체크아웃을 마치고 차를 몰아 밸리 지역으로 진입하였다. 그런데 이 곳 모뉴먼트 밸리는 어떤 곳일까?


     콜룸부스의 신대륙 발견과 스페인 이주자의 유입으로부터 생기기 시작한 원주민-이주자와의 갈등은 이 대륙이 미국의 영토가 된 이후에도 계속 되었다. 특히 미국 독립 시기를 전후하여 신대륙의 꿈을 좆아 유럽 각지에서 대량으로 들어 온 백인들은 나바호족의 땅을 점령하는 일이 생기고, 이로 인한 충돌이 빈번하였다. 이러한 사정은 원주민을 미개하고 무자비한 야만인으로, 백인들을 선량한 개척자이자 피해자로 묘사하던 서부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바다. 1863년, 미 연방은 압도적인 화력과 잘 훈련된 조직력을 앞세워 대대적인 원주민 토벌 작전을 진행, 나바호족의 집과 농작물을 불태우고 이들을 뉴멕시코 지역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강제 이주 시 300마일에 걸친 긴 여정(롱 워크 Long Walk라고 한다)을 추운 겨울에 강행했고, 이 과정에서 많은 희생이 있었다. 쫓겨 간 나바호족은 4년간 신 개척지에서도 기아와 질병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가는 큰 희생을 치루게 된다. 1868년 연방 정부는 강제 이주의 잘못을 인정하여 고향으로의 복귀를 허락했는데, 그들이 돌아 와 정착한 곳이 모뉴먼트 밸리를 중심으로 한 나바호 부족 자치구다.  


     나바호 부족의 인구는 약 30만 정도이며, 미국 내 565개 원주민 부족 중 가장 큰 규모라고 한다. 자치 지역 또한 71,000 평방km로서, 애리조나 주의 북동부, 뉴멕시코주의 서북부, 유타주의 남동부에 걸치며, 원주민 부족의 영토 중 가장 넓다. 나바호인들은 그들의 부족을 하나의 자치국가(Navajo Nation)로 부르고, 미 연방법이 적용되지 않고 나바호족의 자치법을 따른다. (이상 위키백과 일부 참조). 영어와 더불어 나바호족 고유의 언어를 사용하며, 특히 나바호족의 언어는 해독이 가능한 사람이 극히 적고, 체계가 매우 복잡하여 2차대전 중 암호로 쓰였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니컬러스 케이지가 주연한 영화 "윈트토커 Windtalkers(바람을 말하는 사나이)"에 나온다. 


      모뉴먼트 밸리는 나바호족의 정신적 성지다. 나바호 부족공원의 공식 홈페이지에는 나바호족의 신성한 땅을 모독하지 아니하고 부족의 신념을 존중해 달라는 호소문이 걸려있다.




     더 뷰 호텔이서 밸리로 내려가면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이 East Mitten, Weat Mitten 및 Merrick Butte다.  인간이 탄생하기도 전인 수십억년 전, 이 곳은 물이 흥건히 고인 저지대 분지였다. 오랜 세월동안 이 분지에 록키산맥으로부터 흘러내려 온, 산화철을 함유한 모래가 층층이 쌓여 단단한 사암지대가 되었다. 그 당시엔 대기 중의 산소 농도가 지금보다 훨씬 높아서 산화가 많이 진행된 탓에 붉은 빛을 강하게 띄게 되었다. 약 50,000,000년 전 지각 변동으로 지표가 융기하였고 그 이후 바람과 물로 인해 침식되면서 부드러운 부분은 깍여 나가고 단단한 부분만 남아 오늘날 우리가 보는 형상이 남은 것이다. 꼭대기가 평평한 산 형상으로 남은 것을 메사(Mesa), 굵은 기둥처럼 우뚝 선 모양으로 고립되어 남은 것을 뷰트(Butte), 뷰트 옆에 가는 돌기둥이 남아 마치 벙어리장갑처럼 보이는 것은 미튼(Mitten)이라 한다.

   



웨스트 미튼이 잘 보이는 곳에 나바호족 원주민들이 아침 일찍 나와 노점 좌판을 펼치고 영업 준비를 하고 있다.



     나바호족만의 비밀스런 성지로 남아있던 모뉴먼트 밸리는 1800년대 말, 은광이 발견됨으로써 개발 러쉬가 일면서 외지인이 유입되기 시작하였으며 이후 존 포드 감독이 자신의 서부영화의 배경으로 즐겨 활용하기 시작하여 세간에 알려지게 된다. 마치 이 세상의 것이 아닌듯한 독특한 지형은 많은 영화에 영감을 주어 존 포드 이후에도 수많은 영화의 배경으로  쓰였다. 2001:스페이스 오딧세이(스탠리 큐브릭), 포레스트 검프(로버트 저매키스), 백투더 퓨쳐3(로버트 저매키스), 미지와의 조우(스티븐 스필버그), 인디아나 존스 : 최후의 성전(스티븐 스필버그), 스타워즈(조지 루카스) 등등 셀 수 없이 많은 영화의 촬영지가 된다. 




서부영화의 대표작 혹은 최고봉으로 알려진 존 포드 감독의 역마차(Stagecoach, 1936)의 한 장면.

좌로부터 웨스트 미튼 뷰트, 이스트 미튼 뷰트, 매릭 뷰트가 보인다.

(영화 화면 캡쳐)





    멀리 이스트 미튼(East Mitten Butte)이 있고 가운데는 메릭 뷰트(Merrick Butte)다. 가까이엔 깃발이 보인다. 깃대 위에는 애리조나 주기(州旗) , 그 아래는 나바호족 국기(國旗)가 게양되어 있다. (다시 보니 애리조나 州旗가 아니다. 성조기 위에 오버랩시킨 저 문양은 무엇일까?)




     서부영화의 거장 존 포드(John Ford)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수색자(The Searchers, 1956)의 한 장면. 주인공인 이튼(존 웨인 扮))이 남군으로 참전했던 남북전쟁에서 패한 후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이다.  웨스트 및 이스트 미튼 뷰트를 배경으로 깔고 있다.




가톨릭 수녀가 2명의 제자와 대화한다는 형상의 세 자매(Three Sisters) 바위.




"세 자매 바위"를 비롯한 이 곳 밸리 지역은 정해진 루트 외엔 나바호 원주민의 가이드 없이 함부로 출입할 수 없다.

세 자매 바위로 향하는 길 입구엔 상징적인 출입문이 서 있다.





존 포드(John Ford) 감독이 촬영 캠프를 즐겨 차렸던 존 포드 포인트다.




    

     존 포드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수색자(The Searchers, 1968)의 한 장면. 주인공 이튼(존 웨 ) 일행이 납치된 조카를 구출하기 위해서 코만치 인디언의 캠프를 오랜 추적끝에 발견, 야간 기습을 준비하는 신이다. 위의 존 포드 포인트와 비교해 보자. (영화 수색자의 한 장면에서 캡춰)




말을 탄 관광객(원주민이 운영하는 말타기 체험 패키지)을 만나 한 컷 찍어도 되느냐고 하니 흔쾌히 포즈를 잡아 준다.




말타기 체험 관광객의 뒷모습과 배경은 아래...





...존 포드의 수색자 중의 한 장면과 오버랩된다.

(영화 수색자의 한 장면에서 캡춰)





"The Hub" 포인트. 아마도 다른 방향에서 보면 이 곳이 마차의 바퀴살처럼 보이는 모양이다.

그리고 저 깃발이 애리조나 州旗다. 왜 하필이면 욱일승천기를 닮았는지...




멀리 Three Sisters 포인트가 보인다.





     토템 폴(Totem Pole). 거대한 메사(Mesa)가 침식되어 굵은 기둥모양의 뷰트(Butte)가 되고, 뷰트가 계속 깎여 저렇게 가느다란 모양의 작대기(Pole) 형상이 되었다.






     토템폴은 나바호족의 신령이 이 곳 동쪽에 머무른다는 믿음으로 특히 신성시 되는 곳이다. 부족의 상징으로 여기며, 나바호족의 나무 조각 공예품으로 자주 등장한다.






     토템폴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영화의 한 컷. 주인공 이튼이 조카딸 을 구출하기 위하여 "스카"가 지배하고 있는 코만치 부족마을로 들어오는 장면.

     (존 포드 영화 "수색자"의 한 장면에서 캡춰)



붉은 모래땅 위의 기기묘묘한 바위 형상은 지루할 틈 없이 계속된다.







아홉번째 포인트인 Artist's Point로 들어가는 길.
















아티스트스 포인트에서 바라 본 밸리.








붉은 색 고운 모랫길.








밸리에서 바라본 더 뷰 호텔. 마치 이 곳 자연의 일부인 듯하지 아니한가?




투어를 마치고 원점으로 되돌아 왔다. 떠나기가 너무도 아쉬워 한 컷 더 찍어 보았다.




웨스트 미튼 뷰트와 이스트 미튼 뷰트.




우리 회사에사 만든 장비를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한 장 담아 본다.




이제 다시 출발이다. 모앱(Moab)을 지나 유타주의 아치스 국립공원(Arches NP)을 향하여!


(2월 11일 - 1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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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일 2014. 02. 10. (월요일) 맑음.


        오늘의 일정:

 

      ① 그랜드 캐니언 사우스 림 이동 일출 감상

      ② 그랜드 캐니언 이스트 림 투어 

      ③ 페이지(Page)이동 및 어퍼 앤틀롭 캐니언(Upper Antelope Canyon) 투어

      ④ 호스슈 벤드(Horseshoe Bend) 거쳐 모뉴먼트 밸리(Monument Valley Navajo Tribal Park) 도착

 

     그랜드 캐니언의 일출 시각은 대략 7시17분, 최소한 7시 이전엔 도착해야 하므로 아침 식사도 생략한 채 서둘러 출발하였다. 여명의 쌀쌀한 새벽 공기를 가르며 40여 분을 달려 다시 남문으로 진입, 매써 포인트에 도착하니 이미 해는 지평선 위로 살짝 올라 와 그 너른 골짜기 한가득 금빛 햇살과 그림자를 쏟아부어 놓았다. 산화철을 함유한 캐니언의 사암층은 아침 햇빛을 받아 붉은기가 더욱 강해져 어제 일몰과는 또다른 황홀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고, 계곡 구석구석 짙게 드리운 그림자와 강한 대비를 이루어 입체감을 한껏 부각시킨다. 시리도록 새파란 하늘에도 흰 새털구름이 점점이 깔려 그 장엄한 풍광에 드라마틱한 효과를 한층 더하고 있다.

 



▲ 매써 포인트의 아침



















     눈 앞에 펼쳐진 형언키 힘든 광경을 넋 놓고 구경하다 보니 해가 점점 높아진다. 다시 시동을 걸고 데저트 뷰 드라이브(Desert View Drive) 따라 동쪽으로 천천히 이동하였다. 야키, 그랜뷰, 모란, 리판, 나바호 포인트를 차례로 거쳐 데저트 뷰까지 오는 동안 각 포인트마다 차에서 내려 되도록이면 벼랑과 가깝게 접근해서, 비슷한 듯 각각 색다른 캐니언의 모습을 천천히 둘러본다. 포인트별로 조금씩 각도를 달리하여 음미하는 장엄한 그 협곡의 파노라마란! 조금씩 높아지는 태양의 고도, 끊임없이 움직이는 구름, 그 구름이 계곡에 아로새긴 그림자가 서로 어우러져 시시각각 변하는 그랜드 캐니언의 황홀한 아침을 어떻게 필설로 나타 낼 것인가. 그저 불립문자(不立文字)라고 할 수밖에. 그냥 한 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으나 또한 한 순간도 붙잡을 수도 없는, 흘러가는 세월같은 것.

 















































▲ 사우스림의 최동단인 데저트 뷰(Desert View)




     11시 30분에 어퍼 앤틀롭 캐니언(Upper Antelope Canyon) 투어가 예약되어 있기 때문에 다시 서둘러야 했다. 데저트 뷰의 전망대에 올라보지도 못하고 다시 차를 휘몰아 동문을 빠져나온 후 64번 도로를 질주하였다. 숲이 끝나고 풀 한 포기 찾기 힘든 황량한 사막지대가 시작된다. 예전에 '인디언'으로 불리던 아메리카 원주민(Native Americans : 이하 '원주민'이라 함)들의 거주지가 드문드문 눈에 띄이고, 도로 연변에는 보잘것 없어보이는 공예품을 좌판에 늘어놓고 파는 노점들도 가끔 보인다. 도로와 멀리 떨어진 곳에는 학교로 보이는 건물과 함께 제법 마을의 모습을 갖춘 동네도 있다. 이런 황무지에서 무얼 키우고 가꾸어 생계를 꾸려 가는 것인지.        

 



▲ 데저트 뷰에서 본 동쪽의 전망




▲ 원주민들의 임시 거주지? 사람이 살고 있진 않는듯.




▲ US-89








     어느 덧 US-89도로를 만나 좌회전하여 북상하면서, 도중 혹 새로 난 우회도로 US-89T를 놓치고 그냥 옛 길로 고고씽하지나 않을까 조금 긴장하였지만 막상 'Express 주유소' 갈림길에 다다르니 자연스럽게 US-89T로 진입할 수 있었다. 마치 예전부터 이 곳에 익숙한 것처럼. '미국자동차여행' 사이트의 아이리스님이 올린 공지를 참조하여 몇 차례나 구글맵 등으로 도상 연습을 충분히 해 두었던 덕분이 아닌가 한다. 어차피 기존의 89번 도로 입구에도 차단시설과 함께 경고 표지판이 있어 웬만하면 기존의 89번 도로로 잘못 진입하는 낭패를 당할 가능성은 매우 낮아보였다.



▲ US-98변의 황무지를 지나며


 

     내비상의 도착 예상 시간이 매우 빠듯하여 최고 속도를 넘나들며 조금 밟았더니 페이지(Page) 외곽에 위치한 투어 오피스엔 20분 정도의 여유를 두고 도착할 수 있었다. 우린 프라임 타임대로 알려진 11시 30분의 Sightseer's Tour 프로그램을 선택했는데, 약 100분이 소요되고 1인당 요금은 $48이다. 이 시간대를 제외한 시간대는 $37로서 약간 싸다. 사진 전문 가이드가 동행하고 140분이 걸리는 82불짜리 Photographic Tour를 선택하고 싶었지만, 가족과 2시간 20분을 떨어져 행동해야 하는 고로 일찌감치 단념하였다. 

 



▲ 페이지(Page) 외곽의 앤털롭 캐니언 투어 오피스




▲ 출발 직전



    시간이 되니 약 30명 정도의 프라임 타임대 예약 손님들이 자연스럽게 모였는데 절반 정도는 동양계이고 우리 가족과 일본인 커플 2명을 제외하면 모두 중국인이다. 10여명씩 3팀으로 나누어 비닐로 지붕과 창을 만들어 가린 3대의 4륜구동 오프로드 트럭에 팀별로 분승하여 밸리 입구로 향하였다. 우리의 운전사 겸 가이드는 젊었을 적엔 피터팬에 나오는 타이거 릴리를 닮았을, 2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원주민 여성이다. 이 곳은 원주민 자치구이기 때문에 미 연방법 적용을 받지 않는 곳이고, 투어 프로그램도 원주민이 직접 운영한다. 물론 수익 일체도 원주민들에게 귀속될 것이다.



▲ 어퍼 앤털롭 캐니언 가는 길


 

      벌건 황토먼지를 일으키며 굴곡진 모래 언덕을 요리조리 몰아 가는, 나이 든 타이거 릴리의 오프로드 운전 솜씨가 예사롭지가 않았다. 심한 요동에 모두들 손잡이를 단단히 움켜잡고 원심력이 작용하는 쪽으로 쏠리지 않으려 안간힘을 써야 했다. 그래도 다들 즐거워한다. 몇 년 전에 경험했던 두바이의 사막 사파리 투어가 생각났다. 입구에 도착하니 약 6~7대의 투어 트럭이 주차돼 있다. 타이거 릴리는 팀원을 집결시킨 후 간단한 투어 안내와 함께 즉석 사진 촬영 강좌까지 해 준다. "화이트밸런스는 오토 아니면 구름(Cloud) 모드로 세팅하라, ISO는 가능한 한 끌어올려 셔터 속도를 확보하라. 플래쉬는 터뜨리지 마라, 각 촬영 포인트마다 내가 시범을 보여줄테니 잘 보고 따라 해라." 등등.




▲ 어퍼 앤털롭 캐니언 입구


      

     슬롯 안쪽으로 들어서자 서늘한 바람과 함께, 마술과 같은 빛의 세계가 펼쳐진다. 어둡고 좁은 바위틈에서 펼쳐지는 그 붉은 빛의 향연이란! 들어선 지 채 5미터도 전진하지도 않았는데, 모두들 약속이나 한 듯 저마다의 언어로 탄식을 내뱉는다. 사진으로만 보아왔던 이 공간 속에 실제로 두 발로 딛고 서 보니 꼭 거짓말같기만 하다. 이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앤틀롭 캐니언 역시 장구한 세월이 만든 걸작품! 몬순기에 쏟아진 집중호우가 급류가 되어 사암 지대를 쏜살같이 흘러 가면서 무르고 약한 곳을 깍고 또 깎아 깊게 파 놓은 바위 골짜기다. 급류 속에 죽탕처럼 섞인 다량의 모래 알갱이가 바위벽을 빠르게 훑고 지나가면서 이런 마법같은 조각 작품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상류 지역엔 Upper Antelope Canyon(UAC), 약간 떨어진 하류 지역엔 Lower Antelope Canyon(LAC)가 있고, 우리는 지금 UAC에 와 있다. 가이드에 따르면, 지금도 비가 많이 내리면 우리가 걷는 이 곳으로 엄청난 물줄기가 흘러 들어오며, 계속 침식은 진행중이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라 한다. 나중 자료를 찾아보니, 2006년 9월 말, 36시간 동안 지속된 급류로 LAC가 5개월 동안이나 폐쇄되었다고 한다. 

 











     캐니언의 내부를 걸어가 보니 두 사람이 겨우 비켜갈 정도로 좁은 곳과 여러 사람이 모일 수 있을 정도의 제법 너른 광장같은 곳이 번갈아 나온다. 붉은 사암의 벽은 이 곳을 통과해 간 유체의 흐름을 그대로 반영하듯 모난 곳 하나 없이 온통 수평 방향의 무수한 물결 모양 주름으로 부드럽게 웨이브져 있다. 머리 위 천장의 터진 좁은 틈으로 스며든 빛줄기가 캐니언 내부의 섬세하게 주름진 붉은 표면에 내려앉아 사방에 난반사로 흩어지면서 인공 조명으로는 흉내내기 힘든 환상적인 빛의 마법을 연출한다. 지금은 겨울이라 태양 고도가 낮아 햇빛이 직접 바닥으로 닿진 않지만, 바닥으로 폭포수같이 떨어지는 직광을 볼 수 있는 기간은 대략 3월 20일부터 10월 7일까지라고 한다.



 








     이렇게 한없이 부드럽고 아름다운 곳도 때론 악몽의 현장으로 돌변하기도 한다. 1997년 8월에 LAC에 큰 사고가 있었다. 갑자기 들이닥친 급류가 투어 중이던 여행객을 덮쳐 11명이 휩쓸려 사망하고 가이드 1명만 큰 부상을 입은 채 기적적으로 살아 남았다. 이 날도 캐니언 지역엔 거의 비가 내리지 않았지만 7마일 떨어진 상류 지역에 집중적으로 쏟아진 비가 깔때기로 모이듯 삽시간에 몰려 물폭탄이 되어 캐니언으로 날벼락처럼 들이닥치면서, 이것을 까맣게 모르고 투어 중이던 여행객들을 순식간에 휩쓸어 간 것이다. 8명의 시신은 파월 湖(Lake Powell)에서 발견되었고, 2명의 시신은 오랜 수색에도 결국 찾지 못했다고 한다. 2010년 10월엔 UAC쪽에도 갑자기 형성된 급류로 여행객들이 돌출된 바위 위에 긴급 피신하여 고립되어 있다가 나중 구조된 일이 있었다고 한다. (영문 위키피디아 "Antelope Canyon"편 참조함)  이런 잠재 위험 때문에 UAC, LAC 모두 원주민 투어 가이드를 통해서만 관람 가능하다.

 



▲ 갈라진 틈으로 보이는 하늘




▲ 고개를 왼쪽으로 90도 꺽으면 Butte의 형상이...




      사진을 제대로 좀 찍어보고자 하였으나 광량이 부족하여 카메라의 ISO(감도) 설정을 많이 올려도 셔터 속도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았다. 밝은 곳과 어두운 곳의 노출 차이도 극단, 삼각대 사용이 금지되어 있으니 장노출은 언감생심이다. 게다가 끊임없이 오고가는 탐방객들로 내부기 무척 번잡하였고 사진빨 좋은 포인트엔 예외없이 긴 줄이 형성돼 있는데다 우리 무리에서 이탈하지 않으려 신경까지 써야하니 사진 찍기로선 나쁜 조건만 엄선해 놓은 셈이다. 어쨌든 흔들림을 줄여 보려고 벽에 몸을 밀착시키고 숨도 참으면서 기회 봐 가며 정신없이 찍었는데, 나중 확인해 보니 죄다 망했다. 모처럼의 기회였는데 포토그래픽 투어를 택하지 못한 것이 상당히 아쉬운 대목... 

 



▲ 어퍼 앤털롭 캐니언 후문(?)



     투어를 마치니 점심 시간, 가까운 월마트를 들러 치킨과 과일, 맥주 등을 구입하여 간단하게 점심을 대신하고 바로 인근의 호스슈 벤드(Horseshoe Bend)로 향한다. US-98 구 도로를 타고 잠깐 남행하다 보면 표지판과 함께 오른쪽에 주차장이 보이므로 찾기는 쉽다. 차에서 내려 그늘막이 있는 작은 구릉을 넘어 10~20여분을 걸어야 한다. 그늘막에서 호스슈 벤드 방향을 내려다보니 평지에 약간의 크랙만 보여 그리 실감나지 않았는데 가까이 접근해 보니 허걱 하고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는 엄청난 스케일의 물돌이 광경이 딱 펼쳐진다. '평지돌출'이 아닌 '평지함몰'이라고 할까, 산 하나 없이 사방이 펀펀한한 평지에 갑자기가 푹 꺼진 아득한 허방같은 절벽이 나타나니, 엉뚱하게도 어이없다는 느낌이 먼저 떠올랐다.  

 



▲ US-89 변의 호스슈 벤드 주차장



     어쨌든 눈 앞에 펼쳐진 것은 헛것이 아닌 것만은 분명했다. 300미터가 넘는 절벽 아래를 내려다 보면 정말 무시무시하다. 웬만한 사람들은 오금이 저려 가까이 접근할 생각조차 못하고 멀찍이 떨어져서 바위같은 데 올라 까치발로, 호기심 많은 사람들은 낮은 포복으로, 나 같이 간뗑이가 배 밖에 나온 사람들은 살금살금 고양이발로 벼랑 가장자리에 접근하여 강 아래를 내려다 보면서, 내가 다행히 저 아래로 추락하지 않았음에 대한 일종의 안도감과 희열를 즐기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말 마따나 자연엔 자비 따위란 없는 것, 모르긴 해도 여기에서 실족하여 유명을 달리한 분이 없진 않을텐데 그 흔한 안전 난간 하나 설치되어 있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자연이라니!  Everything Do You is At Your Own Risk!  난 이런 것이 너무도 좋다!

 






      좌우로 펼쳐진 호스슈 벤드의 폭은 1200m 정도, 광활한 그 전경을 16mm 광각 렌즈로도 한방에 다 담을 수 없을 정도다. 콜로라도강이 하회마을처럼 암반을 휘감고 돌아나가는 형상은 영월 동강의 한반도 지형을 연상케 한다. 그 형상이 말굽과 흡사하여 호스슈 벤드라는 이름을 얻었다. 예전 미국자동차여행 사이트에 동강과 비교 사진을 올린 분이 있는데, 나도 마침 예전에 한반도 지형을 찍어 놓은게 있어 여기 함께 올려 본다. 

 



▲ 호스슈 벤드, 미국, 아리조나 주



▲ 동강 한반도지형, 강원도 영월




     호스슈 벤드를 뒤로하고 오늘의 목적지인 모뉴먼트 밸리(Monument Valley)로 향하였다. 130마일, 2시간 20분에 불과한 짧은 이동거리다. 98번 도로를 타자마자 가족들이 모두 곯아떨어졌다. 나도 덩달아 눈꺼풀이 무거워지기 시작더니 이내 주체할 수 없는 졸음이 몰려들었다. 음악을 크게 틀기도 하고, 창문을 활짝 연 채 목청 높여 노래를 불러보기도 하고, 심지어는 운전의 단조로움을 떨치려 크루즈 컨트롤을 끄고 제한 속도를 많이 초과하는 질주도 해 보았건만 좀체 수마에서 헤어나오기가 어렵다. 결국 도중 만난 공터 한켠에 차를 세우고 30분 가량 토막잠을 잔 다음에야 겨우 졸음을 면할 수 있었다.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왼편 저 멀리 거대한 병풍 바위가 보여 이것이 'Rock Door Mesa'인가 했더니 좀 더 진행하자 드디어 모뉴먼트 밸리 표지판이 나타난다. US-163 도로를 버리고 나바호 부족 공원(Navajo Tribal Park Monument Valley)을 가리키는 팻말을 따라 우회전해서 들어가니 영화에서 많이 보던 거대한 돌기둥이 석양을 배경으로 하여 양쪽으로 우뚝 서 있다. 입장료를 징수하는 부스는 근무 시간이 끝났는지 닫혀 있고 덕분에 우리는 1인당 5불의 입장료를 절약할 수 있었지만, 푼돈 20달러가 굳은 기쁨(?)보다는 나바호족에게 무언가 빚을 지는 듯한 미안함이 앞선다. 이런 멋진 곳을 곳을 공짜로 입장하다니! 지난 해 초여름, 설악산행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울산에서 밤새 달려 새벽 3시 20분에 설악동 탐방지원센터를 통과하는데, 놀랍게도 그 시간에 절(신흥사)에서 보낸 매표원이 눈을 부릅뜨고 앉아 문화재관람료라는 것을 거두어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쓸 데 없는 성실함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던 씁쓸한 추억.








▲ 모뉴먼트 밸리 입구의 돌기둥(Butte)

 


     더 뷰(The View)호텔이 도착하니 서산에 해가 막떨어지려 하고 있었고, 언덕 너머로 진짜 모뉴먼트 밸리가 고스란히 펼쳐져 있었다. 그 중 거대한 메사(Mesa)와 이 곳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3개의 뷰트(Butte)가 석양에 물든 채 우람한 자태로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그 광경은 평소 영화나 사진으로 보던 모습 그대로여서인지 희안하게도 전혀 낯설지 않았다. 우린 체크인도 미루고 해가 완전히 넘어 가 어두워질 때까지 언덕에 서서 밸리의 그 장관을 정신줄 놓은 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 모뉴먼트 밸리의 상징이라 할 삼형제 기둥.

좌로부터 East Mitten Butte, West Mitten Butte, Merrick's Butte.











     과연 더 뷰 호텔의 위치 선정은 명불허전 급이다. 모뉴먼트 밸리를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장소에 야트막한 3층 건물로 길게 지은 건물은 외벽도 붉은 색으로 마감하여 마치 메사처럼 보였고, 호텔 자체가 마치 밸리의 일부인듯 주위 경관과도 전혀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탓에 모든 시설이 청결하였고, 전체 객실에 동쪽으로 난 발코니가 딸려 있어 밸리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우린 상대적으로 저렴한 1층의 방을 잡았지만 시야를 가리는 것이 없어 밸리를 감상하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다. 워낙 인기가 많은 호텔이라 성수기엔 일찌감치 예약이 마감된다는데 우린 비수기여서 쉽게 방을 잡을 수 있었다. 도회적 호화로움은 없이 매우 소박한 곳이지만 지금껏 내가 묵었던 호텔 중 최고의 반열에 올리고 싶다!

 






     식사를 마친 후 두터운 패딩 점퍼로 무장하고 다시 밖으로 나와 밸리가 내려다보이는 호텔 주위 언덕을 산책하였다. 마침 오늘이 음력 1월 11일, 정월 대보름을 앞둔 밝은 달이 둥실 떠올라 계곡 전체를 환하게 비춘다. 끝이 보이지 않는 너르디 너른 밸리, 저 멀리 달빛을 받은 메사와 뷰트의 형상, 그 뒤 하늘엔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 무수한 별... 그 고요하고 유현한 분위기는 언어로 표현 가능한 영역 밖에 있을 뿐이다.

 



▲ 왼쪽 East Mitten Butte의 높이는 해발 1,898미터이고 오른쪽 West Mitten Butte는 1,882미터다.




▲ 모뉴먼트 밸리의 밤. 투어에서 돌아오는 차량의 불빛이 보인다.



    반반의 가능성을 두고 생각해 왔던 한 가지를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모뉴먼트 밸리의 아이콘, 세 개의 미튼(Mitten)을 배경으로 별 궤적 사진에 도전해 보기로 한 것이다. 가족들을 객실에 들여보내 먼저 취침하라고 이르고, 카메라와 삼각대, 랜턴 등을 챙겨 나오려 하니 아버지를 혼자 야밤에 내 보내는 것이 걱정되었는지 아들녀석이 동행하겠다며 따라 나선다. 흠. 기특한 녀석 같으니라구.  

 

     차에 시동을 걸고 조용히 호텔 주차장을 빠져 나와 인적 없는 밸리지역으로 진입하였다. 세 개의 돌기둥, 미튼이 잘 보이는 지점 근처에 차를 세우고 가까운 언덕에 삼각대를 펼치고 카메라를 얹었다. 사실 나도 별 궤적 사진은 난생 처음 시도하는 것이다. 미국으로 오기 전 별 궤적 사진 강좌를 인터넷에서 찾아 읽어 본 것이 전부이다. 강좌 내용을 기억하여 촬영 모드를 세팅하였다. 16-36mm 줌렌즈의 최대 광각, 조리개는 f/5.6, ISO는 640, 셔터스피드 30초, 30초마다 1초의 인터벌을 두고 2시간 30분 동안 연속 촬영.  

    

사실 오늘은 별 사진 찍기엔 그리 적합하지 않는 날이다. 중천에 뜬 달 때문이다. 달빛이 전혀 없는 그믐날이 최적이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다. 대신 구름이 거의 없는 청명한 하늘에, 주위에 인위적인 불빛으로 인한 광해(光害)가 없는 이런 환경만 해도 감지덕지가 아닌가. 더구나 여긴 다른 곳도 아닌 모뉴먼트 밸리란 말이다!

 

     프레임에 달빛이 직접 들어오지 않게 렌즈 방향을 맞추고 구도를 대충 잡은 다음 인터벌 타이머의 릴리즈 버튼을 살포시 누른다. 30초 간격으로 끊는 경쾌한 셔터음이 고요한 계곡으로 울려퍼진다. 정확한 간격으로 울리는 이 셔터음 외엔 완벽한 정적의 세계다. 지금 시각 23:13분,촬영이 끝나면 1시 40분쯤 될 것이다. 매우 춥진 않았지만 밤공기가 제법 차가와져 우린 차 안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운전석을 뒤로 확 제끼고 누워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틀었다. 공간 가득 울려퍼지는 첼로의 선율을 타고 검푸른 하늘을 유영하는 그 느낌은 소름이 돋을 만큼 좋다! 안느 가스티넬(Anne Gastinel)의 연주는 첼로 특유의 묵직하고 거친 톤이 아니라 투명한 느낌을 주면서 비단결 같이 야들야들 보드라운 음색이다. 지금 이 밤, 이 순간의 분위기와 이보다 더 잘 맞을 순 없다!

    



▲ 달빛이 없었다면 세 배 이상의 별 궤적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약 한시간이 흘렀을까, 잠들 줄 알고 있었던 아들 녀석이 조용히 입을 열어 객실에 있을 어머니와 여동생을 걱정한다. 그렇긴 하다. 잠시 철수를 결정하고 혼자 열심히 작업 중인 카메라를 내버려 두고 조용히 차를 움직여 객실로 되돌아 왔다. 그 새 누군가가 카메라를 거두어가리라는 걱정은 전혀 들지 않았다. 모녀는 혼곤한 잠에 빠져 우리가 들어온 줄도 모른다. 아들에게도 취침하라고 해 놓고 나도 일단 눈을 좀 붙였다. 문득 눈을 떠 시계를 확인하니 두 시가 약간 넘었다. 거의 한 시간 반을 잔 것같다. 객실을 살며시 빠져나와 현장으로 가 보니 이미 촬영이 끝나 있다. 

 

     카메라를 회수하여 객실로 되돌아 와서 눈을 붙이려 하니 좀체 잠이 오질 않는다. 피곤한 느낌도 없다. 잘 됐다. 이번엔 발코니샷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발코니로 나가 다시 카메라를 세팅하고 다시 인터벌 타이머를 세팅하여 릴리즈 버튼을 눌러 놓고 다시 잠을 청하였다.




▲ 객실 발코니에서 찍어 본 별 궤적.



(8일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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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일 2014. 02. 09. (일요일) 맑음.

        오늘의 일정:
 
      ① 그랜드 캐니언 사우스 림 이동 및 투어
      ② 일몰 감상 후 인근 지역 숙박

 
     오늘의 주요 일정은 그랜드 캐니언 사우스 림(South Rim)의 서쪽편을 탐방하는 것이다. 허밋 로드(Hermit Rd)를 따라 두루 돌면서 주변의 각 포인트별 경관을 두루 섭렵하고 저녁엔 호피 포인트(Hopi Pt)에서 일몰을 감상한 후 공원 남문과 가까운 윌리엄스의 발레(Valle) 지역에 위치한 숙소에서 하루를 묵을 계획이 예정되어 있다. 총 이동거리는 220마일(354km), 이동시간은 4시간에 불과하여 모처럼 여정이 가볍다. 시간의 압박이 적으니 그간 부족했던 잠을 보충하도록 늦잠을 허하였다. 미국에 온 지 벌써 일주일이나 지났으니 이제 시차에 적응하였는지 곧잘 잔다.
 
     새벽형 인간인 나 혼자 일찍 잠에서 깨었다. 가족들이 아직 잠에 취해 있는 동안 바깥으로 나가 날씨 점검 겸 별반 볼 것이 없는 숙소 일대를 한바퀴 산책해 보았다. 하늘은 쾌청하고 온도는 서늘하여 괜히 기분이 업된다. 잠시 후면 그랜드 캐니언을 만난다는 설레임 때문일까?


     음식이 떨어지기 전에 식사 꺼리를 챙기러 프런트로 가 보았다. 리셉션의 테이블엔 백인 노인 대여섯 분이 빵과 커피를 앞에 두고 정담을 나누고 계셨다. 가볍게 인사 말씀을 드리니 반갑게 응대해 주시면서 어디서 왔느냐, 언제 왔느냐? 코리아 중 사우스냐 노스냐 질문 공세가 이어졌고, 나도 장난기를 좀 섞어 "물론 노스"라고 응수해 드리자 모두 깜놀하신다. "물론 농담"이라 말씀드리고 서로 한참 웃었다. 어줍잖은 영어지만 그 분들과 잠시 나누는 대화는 즐겁다. 다들 오랫동안 여행 중인 여행객들이라 하신다. 커피 2잔과 빵 서너 개를 양 손으로 들고 몸으로 문을 밀어 나오려 하는데 백발의 할아버지 한 분께서 벌떡 일어나셔서 친절하게도 출입문을 열어주시더라. 낯선 사람들에게도 관심을 보이고, 악의없는 조크 좋아하고 상냥(?)하고 친절한 미국의 이런 면은 참 좋다!




킹맨을 출발하여 윌리엄스(Willams) 방면으로 가는 길(I-40)


 
     숙소를 빠져나와 가까운 주유소에서 기름을 만땅으로 채운다. 갤런당 3.01불. 지금껏 주유한 곳 중 가장 싸다. 원래 계획은 66번 도로를 타고 가다가 도중에 I-40으로 합류하는 것이었으나 깜박하여 내비가 추천하는 경로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바람에 바로 I-40을 타버린 것이다. 수십 마일을 주행하고 나서야 아차하고 생각이 났으나 차를 되돌리기도 그렇고, 아쉽지만 그냥 진행하기로 했다. 덕분에 미 서부 개척사의 숱한 애환이 서려 있는 옛 Route 66을 주행해 보려던 계획은 다음으로 미루어야 했다.





투사얀 근처에 이르니 사막지형은 끝나고 이런 울창한 숲 길이 나타난다.
 


    



▲ 국립공원 입구




     윌리엄스와 투사얀을 거쳐 정오가 조금 지난 시각에 사우스 림 비지터 센터에 도착하였다. 주차 후 먼저 방문자 센터를 둘러보며 대협곡의 생성 과정 등 자연 공부를 잠시 한 후 가장 가까운 매써 포인트(Mather Pt)로 나가 보았다. 그랜드 캐년은 세 번째 방문이지만, 올 때마다 느끼는 경이로움은 그대로다. 지금까지 계속 평지로만 질주해 왔는데, 저 심연을 알 수 없는 아득하고도 거대한 계곡이 떡 하니 나타날 줄이야! (사실 지금껏 주행해 온 길은 콜로라도 고원(Colorado Plateau)의 일부여서 해발 고도가 상당히 높은 곳인데, 산이 없고 밋밋하여 고도를 느끼기 어려웠다. 매써 포인트만 하더라도 해발 2,170m로서, 한라산(1950m), 지리산(1915m)보다 훨씬 높은 곳이다).





▲ 사우스 림의 대표 명소인 Mather Point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장관을 지켜보고 있다.

 


     그랜드 캐니언은 콜로라도 고원이 오랜 세월동안 침식되어 형성된 거대한 계곡이다. 계곡 아래를 흐르는 콜로라도 강의 길이는 총 446km, 계곡의 최대 깊이가 1,600m, 계곡의 가장 넓은 폭이 무려 29km에 이른다고 하나, 수치만으론 그 어마어마함을 짐작하기가 쉽진 않다. 직접 와서 생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느끼기 전까지는 어떤 언어로도 형용하기 여러울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여행기를 읽어보니 이 곳의 풍광이 너무도 장엄하여 오히려 아무 감흥이 일어나지 않더라고 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공감이 간다.





▲ Mather Point



     그랜드 캐니언은 지질학의 타임캡슐이라 불러도 될 것이다. 자료에 의하면, 이 계곡은 생성 연대별로 퇴적된 토양과 암석이 시루떡처럼 켜켜이 쌓여 있는데, 대략 12~13층으로 분류된다. 우리가 밟고 있는 제일 높은 곳 표면의 지층(Kaibab Formation; 카이밥 형성물)은 가장 젊은 연령대에 속하는 반면, 협곡 바닥쪽으로 내려 갈 수록 오래된 노령의 지층이 되는 것이다. 콜로라도 강이 흐르는 기층(基層)인 비쉬누 기반암(Vishnu Basement Rocks)의 나이는 약 20억년, 최상층인 카이밥 형성물은 2억 7천만년 정도라고 하니 1,600미터에 이르는 계곡의 높이에 18억년이라는 시간차를 가지고 각각의 연대별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각 지층별로 그 시대에 번성했던 다양한 종류의 생물 화석들이 출토된다고 한다. 저 계곡 아래로 떠나는 트레일은 무려 18억년에 걸친 시간여행을 하는 셈인데, 당연(?)하게도 우린 트레일 계획이 없다. 그냥 눈호강으로 만족하고 떠날 뿐이다.





▲ 매써 포인트 아래의 벼랑에 보이는 지층들. 저마다 층당 1~2억년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매써 포인트를 관람하고 나서 주위 벤취에서 점심 식사를 한 후 본격적인 그랜드 캐니언 구경에 나섰다. 예정대로 오늘 둘러볼 곳은 서쪽 허미츠 레스트(Hermit's Rest)까지 이동하면서 중간중간의 전망을 즐기는 것이다. 원래 개인 승용차는 진입하지 못하는 곳이지만 동계 비수기(12월~이듬해 2월)엔 셔틀버스를 운행하지 않아 이 기간 동안 한시적으로 개인 승용차 통행이 허용되는데 덕분에 허밋 로드의 서쪽 끝까지 기분 내키는 대로 머물고 떠날 수 있었다.





▲ 그랜드 캐니언 사우스 림의 서쪽 개념도(출처:미 국립공원 공식 사이트)



       오늘 우리가 집중 감상(?)할 부분의 맵. 지도상의 맨 우측에 방문자 센터가 있고, 왼쪽 방향으로 매써 포인트, 야바파이 포인트가 보이고, 붉은 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웨스트림으로 불리기도 하는 셔틀버스의 허밋 로드이다(정확하게는 허미츠 레스트 루트(Hermit's Rest Route) 셔틀버스가 운행하는 노선도임). 각 포인트별 사진 몇 장을 아래에 게재해 본다.





▲ Mather Point에서





▲ El Tovar 호텔 근처에서





▲ El Tovar 호텔 근처에서




▲ El Tovar 호텔 근처에서






▲ 아마도 Trailview Overlook 근처일 듯





▲ 콜로라도 강의 반영





▲ Hopi Point인듯





▲ 피마 포인트(Pima Pt)를 지날 무렵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여 협곡의 측면에 석양을 비추니 안 그래도 붉은 협곡이 더욱 븕게 물든다.





▲ 피마 포인트




▲ 서쪽 끝단인 허밋츠 레스트(Hermit's Rest)





▲ 허밋츠 레스트





▲ 허밋츠 레스트에도 석양이 물들고 있다.






▲ 허밋츠 레스트





▲ 돌아오는 길에 만난 사슴





▲ 호피포인트에서 보는 일몰


   


      호피 포인트(Hpoi Pt)엔 수많은 관람객들이 미리 진을 치고 일몰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해가 지자마자 기온이 급강하하여 무척 쌀쌀해지니 모두들 두터운 패딩 점퍼를 입고도 덜덜 떨면서 저 협곡 너머로 해가 떨어져 숨는 순간까지 자리를 뜨지 않는다. 이 일몰 장면을 마지막으로 우린 다시 남문을 빠져나와 윌리엄스와 투사얀의 중간 지점인 발레에 있는 숙소에 투숙하여 하루를 마감한다.



(02.09. 일정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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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일 2014. 02. 08. (토요일) 맑음.



      오늘의 일정:

 

      ① 로스엔젤레스 시내 투어 


      ② 그랜드 캐니언 向發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늘 부족한 잠을 털어내고선 간단히 식사하고 짐 챙겨 거리로 나선다.  어제 취침 전 간단한 토의를 통하여 오늘의 동선을 정했는데, 헐리우드 거리-베벌리 힐스-LA 다운타운을 거쳐 산타모니카 해변을 재방문 후 LA를 떠나는 것이다. 이 곳 말고도 LA 주변엔 둘러볼 곳이 깨알같이 많으나, 어차피 저수지의 고기를 모두 건져 올리기는 불가능한 것. 이번 여행의 컨셉(?) 부합하게 그냥 설렁설렁 둘러보고 또 다음 목적지로 떠나는 전격 기동전을 펼칠 수 밖에 없다. 오늘의 전투는 어제에 이어 LA 시내 투어와 내일 그랜드 캐니언으로 가기 위한 전초기지 까지의 이동이다. LA 시내 동선 포함 오늘 숙박 예정지인 아리조나주 킹맨까지의 총 이동거리는 약 362마일(585km)로 나오는데 실제 이동거리는 약 600km가 약간 넘을 것이다. 한국이라면 좀 먼 거리로 볼 수 있으나, 고작 600km라면 이 동네에선 옆동네 밤마실 수준 아닌가? (며칠 전 한 여행기에서 아이리스님이 20일간 13,000마일(≒20,921km, 오만 삼천 리)을 달린 적이 있다는 내용의 댓글을 읽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루 평균 주파 거리가 무려 1,046km라니!  존경합니다, 아이리스느님...!!!)



코리아타운에서 헐리우드로 가는 길

 


     우리의 든든한 전차에 연료를 만땅으로 먹이고 바로 작전 투입. 헐리우드 거리 근처에 도착하니 한 대형 마트가 보여 부식과 간식거리 등 보급품을 추진하기로 했다. 가족들이 마트 내부에서 쇼핑하는 사이에 잠시 주차장에서 트렁크 짐을 정리하고 있는데 어딘가에서 웬 거구의 사나이가 나타나더니 뜬금없이 돈을 달란다. 차림새가 그리 후줄근하지 않아 이 사람이 단순 걸인인지 말로만 듣던 강도인지 순간 종잡을 수가 없어 혼란스러웠지만, 그렇게 먹고사는 그들만의 삶의 방식을 일단 존중해 주기로 했다. 청바지 뒷주머니에서 지폐 한 장을 잡히는대로 꺼내니 5불짜리, 나꿔채듯 냉큼 받아 들고는 고맙다는 말 한 마디 없이 제 갈 길을 가버리더라. 예끼, 예의 범절이라고는 모르는 고얀 것 같으니라구

 



     이른 시간인데도 제법 많은 인파가 붐비고 있는 스타의 거리로 진출한다. 스트릿 파킹은 이미 만땅이라 두어 바퀴 돌다가 포기하고 식구들을 헐리우드 거리의 중심부라 할 수 있는 중국 극장 앞에 하차시킨 후 근처의 한 지하 유료주차장에 주차하였다. 다시 가족들과 합류하여 약 1시간 이상 도보로 주변을 둘러보면서 양떼들에게 풀을 먹이듯 이국적인 풍물(?)들을 두루 섭렵시켰다. 아직 자연 경관보다 도시 문명에 더 관심이 많을 우리 식구들에겐 이번 미국 여행 중 다른 어느곳 보다도 여기가 가장 미국적인 정취를 느낄만한 곳일 것이다. 주위엔 온통 중국인 일색이다. 특유의 억양으로 떠들썩한 중국인 단체 여행객들이 거리를 점령하다시피 메우고 있다

 


이 곳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TCL 차이니즈 씨어터



     이런 분위기를 반영이라도 하듯 이 곳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맨즈 차이니즈 극장(Mann's Chinese Theater)TCL 차이니즈 극장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TCL이라는 회사는 하이얼(Haier)과 함께 중국의 양대 가전사 중의 하나 아니던가? 하이얼이 삼성이라면 TCLLG에 해당한다. 조악한 카셋 플레이어를 만들어 초저가에 팔아먹던 이 회사는 이제 세계 중저가 가전시장을 휩쓸고 있는 거대 기업으로 훌쩍 커 버렸고, 이제 삼성/LG의 위치를 노리는 위치로 올라섰다. 바로 이 회사가 작년(2013) 이 극장의 명명권(Naming Rights)500만달러에 사서 에서 TCL Chinese Theater로 개명했단다. 이러다가 예전 일본에 이어 이젠 중국 자본이 미국 엔터테인먼트 시장을 장악할 날이 곧 오지 않을까?

 




코닥극장은 돌비극장으로 문패를 바꿔 달았다



     2001년도 설립 이후 아카데미상 시상식이 열리고 있는 코닥 극장(Kodak Theater)"Dolby Theater"로 이름이 바뀌었다. 한 때 미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초 우량기업 중의 하나였던 코닥, 미국 영화산업과 함께 성장해 왔던 코닥이 파산하고 나니 이 극장도 결국 코닥이라는 이름을 버리게 된 것일까. 나는 오늘도 10년이 넘은 골동품 코닥 DSLR(DCS 14n) 카메라를 손에 쥐고 있다. 물론 니콘 카메라(D800)도 함께 챙겨왔지만 어디까지나 코닥카메라를 보조하는 역할일 뿐이다. 하드웨어적인 성능이 최악인 코닥 카메라를 내가 아직까지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코닥이 주는 감성 때문이다. 촬영 조건이 좋은 날, 코닥이 만들어 주는 사진의 색감은 일본제 최신 고급 기종들이 따라오기 힘든 그 무엇이 있다. 100년이 넘게 필름을 만들어 오면서 축적한 독보적인 영상기술은 코닥의 자부심이었다. 디지털 카메라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지만 디지털화의 트렌드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아날로그 필름을 고수하다가 필름 시장의 소멸과 함께 결국 덧없이 몰락하고 만 코닥. 문패 바뀐 돌비 씨어터를 바라보고 있자니 참으로 씁쓸하다. (근데 여행기에서 이게 무슨 오버인지...)



타임캡슐...세월이 흐른 후 어떤 유물들이 출토될 것인지...?



 

     헐리우드 길거리엔 진짜 스타들은 길바닥에 이름과 손도장, 발도장으로만 존재하고 있었고, 다쓰베이더, 배트맨, 원더우먼, 스파이더맨 등 각종 영화속의 캐릭터 복장을 한 코스프레어들이 이 거리의 주인이 되어 손님을 맞고 있다. 사진을 찍자고 강요하진 않지만, 함께 찍으면 얼마간의 팁을 줘야하는 모양이다. 제법 너른 광장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유명인사의 손발도장과 사인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위치를 나타낸 지도를 파는 사람도 있다. 첩혈쌍웅, 영웅본색 등으로 명성을 쌓은 후 헐리우드로 진출하여 브로큰 애로우, 미션임파서블2 등 미국식 블록버스터로도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우위썬(오우삼) 감독의 핸드프인팅은 성지라 불려도 좋을만큼 중국인들의 인기를 끌고 있었는데, 중국인 관광객들이 줄을 지어 주위에 몰려들어 인증샷을 찍고 있었다. 안성기와 이병헌도 동양인 배우 최초로 핸드프린팅 했다는 소문을 들은 듯한데 찾지는 못하였다

 


우위썬 감독의 핸드프린팅 위에 선 중국관광객들.




거리 풍경



     우리도 이리저리 둘러보며 각자 관심 있는 인사들의 핸드프린팅 시멘트판을 찾아 구경한 후 돌비극장과 연결된 헐리우드&하이랜드 센터에 들어 가 보았다. 명품관으로 이루어진 쇼핑몰과 식당, 대형 호텔로 이루어진 건물이다. 바빌로니아풍으로 지었다는데, 중앙엔 개선문 비슷한 아치가 있고 흰코끼리 석상이 양편을 호위하고 있는 최신 건물이지만 좀 촌스러워 보이는건 왜일까?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 보니, 남쪽은 헐리우드 광장과 거리가, 북쪽으로는 헐리우드 입간판이 보이는 리 산을 잘 조망할 수 있어서 많은 관광객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내 어깨에 둘러맨 DSLR 보더니 내가 무슨 대단한 작가나 되는 줄 착각하여 커메라를 맡겨 사진 촬영을 부탁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 곳에도 예수천국 불신지옥이...()

밀랍인형 박물관 앞에는 마릴린 먼로 누님이 호객행위를...()




헐리우드 & 하이랜드 센터에 올라가면 북쪽으로 Mount Lee의 헐리우드 사인이 잘 보인다

 



     헐리우드 거리를 뒤로하고 베벌리 힐스로 차를 몰았다. 그 곳의 아기자기한 주택가와 로데오 드라이브를 랜덤으로 돌아보며 차에서 내리지 않고 눈요기만 하였다. 특히 로데오 거리를 지날 땐 마눌님으로부터 정차 명령이 떨어질까봐 가슴을 살짝 졸이기도 하였다. 고층 건물이 빽빽하게 들어 선 다운타운도 마찬가지로 주마간산격으로 휘둘러만 보고 다시 산타모니카로 진입한다. 목조 잔교(피어)를 한바퀴 돌고 적당한 장소를 찾아 준비한 도시락을 꺼내어 약간 늦은 오찬을 해결하였다. 낮이라서 그런지 해변의 정취는 지난 밤보단 못하였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해변이었다.   

 

 

싼타모니카 해변(북쪽)






     다시 출발이다. 도심을 벗어나면서 내내 가족에게 미안한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식구들이 가장 호기심을 가질 이 도시문명을 가능한 한 건성건성으로 건너뛰는 내 스타일, 이건 분명 일종의 횡포일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이것이 이번 여행의 컨셉인 것을. 아이들이야 앞르호 살아 갈 날이 구만리니 나중 얼마든지 자기들만의 여행을 기획하고 실행할 기회가 많겠지만, 모든 것을 내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마눌님은 어쩔 것인가. 한 곳에 안주하질 못하고 끊임 없이 돌아다녀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성미 급한 신랑을 잘못 만난 고약한 팔자를 탓할 수밖에.


     밤길을 달리고 또 달려 밤 9시 반경 킹맨에 도착하다. Exit를 빠져 나가 가장 먼저 만난 Travel Lodge에 여장을 풀었다.   (6일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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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일 2014. 02. 07. (금요일) 흐린 후 갬.


       오늘의 일정:


      ① 유니버설 스튜디오 관람
      ② 로스엔젤레스 시내 투어
 
 
     오늘의 일정은 오전에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관람한 다음 헐리우드 거리를 비롯한 LA의 유명한 관광지 몇 군데에 발도장 찍고, 밤에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이 가까운 팜 스프링스 근처로 이동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많이 붐비지 않는 이른시간에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입장하여 관람을 마쳐야 하기 때문에 좀 서둘러 기상하였다. 습관처럼 밖으로 나와 먼저 날씨부터 확인한다. 하늘은 말끔이 개었고, 아침 공기가 선선하고 상쾌하다동계 올림픽 소식이 궁금하여 TV를 켜 보고자 하였으나 골동품에 가게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구형 브라운관 TV는 전원 스위치가 파손된 상태라 아예 켤 방법이 없어 쓴 웃음만 짓고는 포기하였다
 
     시간 절약을 위하여 아침 식사는 밥 대신 호텔 제공 음식으로 대신하기로 하고 아들과 함께 프런트에 가서 조식을 추진하였다. 커피와 오렌지주스를 비롯한 서너가지 음료와 다양한 도우넛을 제공하고 있어서 예상보다는 많이 양호한 편이다. 리셉션을 지키고 있던 스리랑카 출신 초로의 장년 아저씨와 인사 겸 잡담을 나누는데 는 본인이 예전 한국에서 일하며 좋은 추억을 만든적이 있어서 특히 한국사람을 만나면 반갑다고 한다잠깐 너스레를 떨어가며 유쾌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음료와 도우넛 몇 개를 챙겨 나오는데 더 가져가라며 자꾸 집게로 도우넛을 집어 안겨주신다덕분에 한 아름 안고 객실로 돌아왔다. 한국에 관한 작은 인연만으로 이리 우호적일 수 있다니TV 건과는 별개로 기분이 좋았다. 도우넛과 케익은 너무 달긴 했지만 아침 식사가 될 정도로 먹고도 제법 남아서 나중에 좋은 간식이 될 것같아 봉다리에 넣어 따로 챙겼다. 짐 다 꾸려 차에 싣고 출발 전 다시 한 번 프런트에 들러 첵아웃 하면서 스리랑카 할배에게 작별인사를 하고준비한 빈 물병에 커피도 채워 나왔다

 

     유니버설 스튜디오로 가는 170번 하이웨이는 출근 차량 탓인지 예상외로 정체가 심하였다. 10분이면 충분할 거리를 30분이 넘게 걸려 도착한 것같다. 16불짜리 지하 제너럴 파킹에 주차하고 에스컬레이터를 타니 바로 씨티워크(Citywalk) 광장으로 나온다. 입장권은 어젯밤 노트북으로 온라인 티켓(e-Ticket)을 구입해 두었다. 1인당 거금 87! UCLA의 티켓 센터에서 할인권을 구입할 수 있다는 정보를 알고 갔지만 시간이 맞지 않아 온 돈 주고 살 수밖에 없었다. e-Ticket은 프린터가 없어 PDF 화일을 아이패드에 저장하여 두었다.
 
     입구에 도착해 보니 830, 꽤 많은 사람들이 벌써 진을 치고 오픈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850분쯤에 게이트를 열어 입장을 시작하였는데, 아이패드의 pdf 화일을 보여주어 스캔 후 통과하였다. 입장한 관람객들을 잠시 광장에 대기시켰다가 정확히 9시에 풀어서 관람을 개시한다.
 




e-ticket





     우린 먼저 상단(Upper Lot)의 슈렉4D(Shrek 4D), 심슨라이드(The Sympsons Ride)를 거쳐 하단으로 내려가서 가장 인기가 많은 트랜스포머 3D 라이드, 머미 라이드, 쥬라기 공원 라이드를 두루 섭렵하였다. 이른 시간부터 설친 덕분에 줄을 길게 서지 않고도 쾌적하게 관람이 가능하였고, 어떤 것은 두 번씩 타기도 하였다. 예전 출장길에 짬을 내서 잠시 들렀을 땐 대기열이 어마어마하여 그 끝에 설 엄두를 내지도 못하고 스튜디오 투어와 워터월드 공연만 보고 나왔던 아픈 기억이 있다.
 
     다시 상단으로 올라와서 Special Effects Stage를 보고 나오니 점심시간이 넘었다공원 내 식당에서 피자와 파스타로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는 계속 스튜디오 투어, 애니멀 액터스 등 나머지 어트랙션을 즐겼다마지막으로 워터월드 공연을 관람을 마치고, 배우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파크를 빠져나오니 벌써 4시가 훌쩍 넘는다2시쯤 마치고 나오는 것이 당초 계획이었는데,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고, 정신없이 놀다보니 좀 늦었지만, 오랫만에 잠시나마 동심으로 되돌아가 마음껏 웃고 가슴 졸이면서 원초적 카타르시스를 맛볼 수 있어 행복했다.
 
     우리나라에도 경기도 화성땅에 2016년 완공을 목표로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짓고 있다는데, 아시아 최대 규모가 될 것이라고 한다. 완공되고 나면 굳이 미국까지 와서 이 곳을 찾을 이유가 없으니 다른 일정에 집중 할 수 있으리라.


@Universal Studio Hollywood


 
     예정한 일정대로라면 우린 지금 산타모니카 해안을 구경한 후 헐리우드 거리를 걷고 있어야 한다.  질 무렵엔 LA를 떠나 팜 스프링스로 향해야 하니까하지만 우린 이제서야 내비에 의존해 산타모니카로 가고 있고, 거기서 석양을 본 다음 헐리우드고 뭐고 가 볼 겨를도 없이 서둘러 LA 떠나지 않으면 안된다마눌님을 비롯한 식구들은 여기가 마음에 드는지 LA를 떠나고싶지 않았으면 하는 눈빛이 간절하다. 사실 나도 조금은 그랬다운전 도중 도중 짧은 번민(?)과 의논 끝에 LA의 일정을 하루 더 연장하기로 결단을 내렸다. 그러기 위해서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과 세도나를 포기하는 아픔을 감수해야 했다.
 
     사실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은 세도나로 가는 도중이어서 양념으로 넣은 일정이었고, 내 숨은 뜻은 세도나에 있었다세계에서 가장 지기(地氣)가 강한것으로 소문난 이 곳에 언젠가는 꼭 와 보고 싶었다예로부터 대대손손 이 곳에 살아 온 인디언들의 신성하고 영험한 기도처 세도나. 를 닦는 도꾼()들은 기도빨이 좋아 선정(禪定)에 쉽게 이를 수 있는 곳, 예술가들에겐 창조적 에너지를 고양시켜 기발한 영감을 떠올리게 해 주는 곳, 나처럼 일상의 스트레스에 찌든 凡夫들에겐 힐링의 기운으로 마음의 안식을 준다는 이 곳의 볼텍스(Vortex)를 체험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마눌님이나 아이들에게 볼텍스니 地氣니 하는 황당한 이야기를 꺼내본들 무슨 소용이리요? 그냥 나 혼자만의 이기심일 뿐. 과감히 포기했다. 그러나 이번만이다.
 
     포기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도중 UCLA 표지판을 발견하고 예정에도 없던 UCLA를 들러보자는 즉흥적 여유마저 생겨났다. 내비를 유씨엘에이의 심장부로 재설정하고 고고씽하는데 잘 가다가 공사로 도로가 막힌 부분이 떡하니 나타난다. 우회해서 대충 감으로 찾아가는데 이 내비 속의 아가씨는 "가능할 때 유 턴, 가능할 때 유 턴"이라 거듭 부르짖으며 신경질을 부린다. 무시하고 계속 진행하니 대학 내부로 추정되는 장소로 진입할 수 있었다. 근데 이 넘의 학교는 어떻게 된 셈인지 민간이 사는 동네와 학교간의 경계가 보이지 않는다. 학내를 외부로부터 보호하는 굳건한 담장이나 높은 철조망을 생각했는데, 완전 개방된 캠퍼스인 모양이다. 책가방을 메거나 든 젊고 표정이 밝은 아리따운 청춘들이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어디론가 오고가는 모양새를 보니 여기가 학교인 것만은 분명하다. 어쨌건 학내(라고 추정되는 지역)를 한바퀴 휘젓고 난 후 산타모니카를 향해 계속 달려 마침내 도착하니 황혼은 이미 다 져버린 후였다. 망했다. 일몰 땜에 왔는데. 오는 도중 도중 쓸 데 없는 욕심을 부린 탓이다.
 

     주차 미터기 옆에 차를 세워두고 해변으로 걸어 나가 보았다정말 엄청나게 넓은 해안이 펼쳐져 있다. 가족들이 단체로 공중 화장실에 간 동안 해변의 벤치에 잠시 홀로 앉아 있자니 저 앞에서 포옹과 함께 진한 키스를 나누는 커플이 눈에 들어왔다이문열의 소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의 한 장면이 문득 떠오른다. 소설에서 남자주인공이 첫 사랑의 대상이었던 옛 연인과 극적인 재회를 하는 장소가 바로 이 산타모니카 해변이다. 장차 두 사람에게 닥쳐 올 비극적 파멸도 까맣게 모르는 채 말이다나도 이 벤치에 홀로 앉아 있으면 아득한 첫 사랑과 거짓말같이 해후할 수 있을까? 정말로 "참다운 사랑은 인생에 한 번 밖에 앓지 않는 홍역같은 것"일까

 

     이내 돌아온 마눌님과 아이들이 실없는 망상에 젖어 있는 나를 현실 세계로 데려다 놓는다. (. 근데 내게 첫 사랑의 추억이란게 있기나 했었나?) 조금 떨어진 저 쪽에 휘황한 조명으로 번쩍이는 놀이공원 비슷한게 있어서 그 곳으로 걸어가 보니 목조로 된 부두 시설이었고 그 넓은 데크 위엔 위락시설과 각종 식당, 상점들이 늘어서 있어 많은 사람들이 우글거린다. 목조 데크를 따라 끝까지 가 보니 서쪽으론 일망무제의 태평양이 펼쳐져 있고, 좌우 남북 방향으로는 끝이 보이지 않는 길고 긴 해안선과 모래사장이 전개되어 있다. 과연 명불허전의 비치가 맞다. 데크 끝단에 아빠와 함께 게 낚시를 나온 소년이 있었는데 양동이 크기의 뼁끼통엔 손바닥만한 게가 제법 쌓여있다. 게는 잡에서 무엇을 할거냐 물어보니 팔아서 돈을 번다는군. 영악한 녀석! 게를 씀벙씀벙 건져올리는 모양이 하도 신기하여 한동안 구경하고 있는데 뱃속에서는 벌써 들어와야 할 것이 아직 들어오고 있질 않는다고 야단이 났다.

 
     어디서 밥을 먹을것인가? 문득 코리아타운이 생각났다. 좋다! 오늘 만찬은 코리아타운에서 한식으로 한다. 가족들도 모두 대환영. 다시 코리아타운을 향해 질주하였다. 음식점에 대한 정보도 없이 무작정 달려간 것이다. 예전(아마도 LA 폭동 2~3년 후?) 그 곳에서 하루 유숙하며 "우보탕"이라는 이름의 설렁탕을 먹은 적이 있는데큼직한 湯器에 각 부위별 쇠고기 건더기가 엄청난 양으로 들어 있어서 당시 대식가였던 내가 도저히 못다 먹고 남길 정도였던 기억이 있었고, 오늘도 적절한 데가 없다면 어렴풋한 기억을 되살려 그 집으로 찾아 가 볼까 하는 마음이 있었다그런데 막상 코리아타운 지역에 도착해 돌아보니 보니 거기가 어디쯤이었는지 도통 기억해 낼 수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벌써 20년도 넘었으니...
 
     타운 거리를 지그재그로 다니며 식당 간판이 붙은 곳을 눈으로 훑어보니 저녁 식사시간이 좀 지나서인지 거의 개미 새끼 한 마리 없이 썰렁하다그러다가 꽤 많은 손님이 북적거리는 어느 고깃집을 발견하고는 바로 주차장으로 진입하였다제법 너른 주차 공간엔 차량이 꽉 들어 차서 남은 자리가 없을 정도다. 식당으로 들어가 보니 아직도 자리를 못잡은 먼저 온 손님들이 대기석에서 기다리고있다. 뭔가 대단한 맛집인 모양이다. 번호표를 받았는데, 우리 앞으로 이제 5팀밖에 남지 않았단다. 제기랄, 이 넓은 미국땅에서 번호표가 웬말이냐!
 

     다른 식당을 찾아보자는 말에 마눌님은 붐비는 집은 다 이유가 있는 법이라며 파리 날리는 곳은 싫단다. 여행의 평화를 위해서는 별 도리가 없다. 마눌님 의견을 따를 수밖에홀 안에서는 떠들썩 왁자지껄한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슬쩍 들어가 보니 한국식 가스 불고기판엔 고기가 지글지글 익거나 타고 있고, 테이블마다 참이슬과 하이트병이 한두병씩 뒹굴고 있다고기 굽는 연기와 남녀 구분 없이 내뿜는 담배 연기가 엉겨 매연이 자욱하고이들이 떠들어 대는 소음은 왜 그리도 시끄러운지!  빈 참이슬병 예닐곱병을 줄세워놓고 연신 건배를 외치는 테이블도 보인다

 

     어떤 종류의 손님들인지 재빨리 스캔해 보니 흑인, 백인, 히스패닉계열이 주종인 가운데 간간히 아시안도 눈에 띈다. 한국 교민이 대부분일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다. 사장님께 물어보니 요샌 한인 손님이 거의 70% 이상이고 그 비율이 날이 갈 수록 늘어난다고. 한국 대학가 시장통의 선술집 분위기보다 더 한국적인... 이것이 과연 말로만 듣던 음식 한류의 현장이란 말인가?

 
      우리 차례가 와 테이블로 안내되었다. 돼지삼겹살, 불고기, 오리불고기쇠고기 각 부위별 등등으로 구성되는 모듬 메뉴 기본 한 판을 주문하면 소주나 맥주 중 한 병이 제공되고 고기는 무한 리필인 그런 시스템이다과연 한국에 비해 고기값이 상당히 저렴하다덕분에 몸무게 0.1톤에 육박하고 고기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아들녀석이 때를 만났다. 지금껏 암소 한우가 우주 최강으로 맛있는 줄로만 알았는데 이런 신세계가 있었느냐며 지금까지의 헝그리 여행을 보상이라도 하듯 쇠고기 등심만 몇 번 리필하여 그야말로 폭풍 흡입하였다. 과거 광우병 파동 때 미국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 시위를 강력 지지하던 딸녀석도 그 "위험한" 미국 쇠고기를 잘만 먹더라. 자고로 세상에서 제일 보기 좋은게 두 가지가 있다고 했다. 첫째, 자기 논에 물 들어거는 것, 둘째. 자기 자식들 입에 밥 들어가는 것. 그래, 오늘만큼은 다이어트 신경 뚝 끊고 싫컷 먹어 두어라. 앞으로도 춥고 배고픈 고행의 날은 계속되리니.
 
     우리는 조용히, 그리고 열심히 먹었다. 담배 연기와 무례하게 떠드는 시끄러운 소음을 평소 극 혐오하던 마눌님은 이 분위기가 아주 싫지만은 않은지 이맛살을 찌푸리면서도 그들 하는 짓을 은근히 즐겨 구경하는 듯했다식사를 마치고 계산하면서 식당 사장 아주머니께 가까운 호텔을 추천해 달라고 하니 바로 근처라며 JJ Grand Hotel을 알려준다. 모텔에 비해서 가격은 좀 나가지만 그래도 가깝고, 교민이 운영하는 곳이라 편하다고. 배도 부르고 피곤도 하니 하룻밤 묵을 곳을 찾아 또 방황하기가 귀찮아 그냥 그 곳으로 결정하였다. 두어 블럭 떨어진 호텔로 이동하여 짐을 내리고 차는 발레 파킹 아저씨에게 맡긴 후 객실로 올라왔다. 방은 과연 넓고 깨끗하여 마음에 든다밥솥을 꺼내어 내일 조식과 점심 도시락 분량의 밥을 지을 수 있도록 쌀을 씻어 준비해 두었다.
 
     일정이 바뀌었으니 동선을 다시 짜야했다. 내일은 LA의 나머지 명소를 들러보고 그랜드 캐니언을 향하여 떠나는 여정인데 구글맵을 띄워보니 그랜드 캐니언까지 반나절에 주파하긴 너무 먼 거리다그랜드 캐니언으로 가는 길목의 킹맨(Kingman)이라는 소도시가 시간상 적절해 보여 내일은 일단 그리로 가서 유숙하는 것으로 잠정 결정해 두었다다소 무계획적, 충동적이었던그러나 자동차여행의 자유를 느낄 수 있었던 5일차 일정을 이렇게 마감한다.  (5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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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일 2014. 02. 06. (목요일) 비온 후 오후 늦게 갬.


       오늘의 일정:


      ① 몬터레이 출발

      ② 캘리포니아 1번 주도(PCH-1) 를 따라 남행

      ③ 로스엔젤레스 도착 

 

 

 

 

 

 

      좀 느긋하게 기상했다. 문을 열어보니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먹구름 낀 어두운 날씨와 비에 흠뻑 젖은 정원의 울긋불긋한 나뭇잎이 어울려 꼭 가을비 내리는 저녁 무렵과 같은 을씨년스런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오늘은 1번 해안 주도(Pacific Coast Highway No.1)를 타고 LA까지 약 330마일(531km)의 여정을 따라가면서 주위의 볼거리를 둘러보는 로드 트립(Road Trip)이다. 순수 운전만 6시간 30여분이 소요될거라고 내비가 알려준다. 미국에 PCH-1이 있다면 한국에는 7번 국도가 있다. 파도에 침식된 벼랑위의 길을 따라 태평양 연안의 절경을 끼고 남북을 종단하는 도로라는 점에서, PCH-1은 우리 동해안의 7번 국도와 많이 닮았다.

 

      캘리포니아 최고의 휴양도시라는 몬터레이까지 왔는데, 그냥 잠만 자고 훌쩍 떠나자니 참으로 아깝다는 느낌이 들지만, 어차피 우린 로드 무비의 주인공 역할에 충실하기로 작정하지 않았는가? 한 곳에 눌러 앉아 오래 머물 수는 없다. 본래 목적 외의 것에 미련을 두어서는 아니되는 것이다. 이 동네가 존 스타인벡의 대표작 "캐너리 로(Cannary Raw)"의 무대가 되었던 통조림 공장 골목, 세계 최대의 수족관 "몬터레이 베이 아쿠아리움"등으로 유명한 곳이라는 말은 가족들에게 하지 않았다. 특히 페블비치가 있는 17마일 드라이브의 존재를, 나름대로 골프 마니아인 마눌님께서 알고 있을까봐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하였지만, 다행히 그 곳으로 달려가 보자는 명령은 떨어지지 않았다...한 숨(?) 놓았다. 어차피 이런 날씨에 가 봐야 별 의미도 없겠지만. 

 

 

 

 

 

 

     호텔을 출발해서 한동안 달리는 동안 빗줄기는 다시 폭우로 변하였고, 퍼붓는 비에 도로는 작은 강이 되어 넘쳐 내린다. 간간히 천둥 번개까지 찬조 출연하였다. 이 길을 달리면서 감상할 "태평양 연안의 절경"에 대한 기대는 일찌감치 자동 보류되었고, 관광 모드에서 안전 운행, 무사 도착 모드로 전환하였다. 여행 준비 단계에서, 미국 날씨 사이트를 통해 여행 예정지의 날씨정보를 계속 체크해 왔는데, 쾌청과 비/눈 등이 계속 번갈아 오락가락하던 패턴을 보여 주던 터라 악천후를 만날 예상도 충분히 하였던 바다. 눈이 아니라 비여서 그나마 다행한 일인지도 모른다.

 

 

 

 

     드디어 오른쪽으로 태평양이 보이기 시작했지만, 자욱한 운무와 빗줄기로 "절경"은 보여주질 않는다. 도중 곳곳의 뷰 포인트마다 차는 세웠지만 우산을 준비하지 못해 차창을 조금 열고 내다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것도 어차피 안개와 비에 가려 제대로 보이지도 않지만. 

 

 

 

 

    

 

     빅스비 브릿지(Bixby Bridge)에 도착하였다. 여긴 캘리포니아 서부해안도로의 랜드마크와 같은 곳, 거대 협곡과 그 사이의 빅스비 강, 탁 트인 태평양 해안과 어울려 멋진 파노라마를 연출하는 곳인데 야속하게도 날씨가 협조를 안해주는구나.

 

 

 

 

 

 

     그렇다고 해서 그냥 지나칠 순 없다. 벙거지 모자를 눌러쓰고 대충 머리카락만 덮고선 차에서 내려 주위를 둘러 다녀 보았다. 빗소리와 파도소리가 바람에 섞여 깊은 협곡 사이를 가로질러 휘감고 돌아다닌다. 세찬 바람에 날린 빗방울이 얼굴을 때리니 안경이 물방울이 맺혀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금세 몸이 비에 젖어들었고, 셔터 몇 방만 누르고는 이내 물에 빠진 생쥐꼴로 차로 되돌아 오고 말았다.

 

 

 

다리 아래의 언덕엔 울긋불긋 이름 모를 다육식물이 무성히 자라고 있다.

 

 

     이 다리 말고도 비슷한 생김새와 분위기의 콘크리트 교량 몇 곳을 더 통과하였다. 건설한지 벌써 80년이 모두 넘어 거의 인류 문화 유산급이 다 돼가는데도 전혀 노후화한 느낌이 들지 않았고 아직 튼실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빅 써(Big Sur) 지역을 지나던 도중 예쁘게 꾸민 아담한 갤러리가 있어 잠시 들러 구경면서 차도 한 잔 마시고 작은 기념품 몇 개를 구입하였다.

 

 

   

 

 

 

 

 

 

 

 

 

    얼마나 달렸을까? 빗줄기가 점점 가늘어지더니 푸른 하늘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비가 잠깐 그친 틈을 타서 차에서 내려 싱싱한 바다 냄새도 맡으며 기지개를 켤 수 있었다. 구름 사이로  터진 말간 하늘 색깔은 왜 그리도 푸르냐?

 

 

 













 

 


 

 

     해가 살짝 나타나니 검푸르게 칙칙하던 바다 색깔이 일순 옥빛으로 변신하며 황홀한 마법을 부리고 있었다. 지나치던 과객들이 이 순간을 놓칠세라 열심히 카메라로 담고 있다. 











 













 

 

    해가 비치는 것도 잠깐, 다시 구름이 몰려오고 비가 분분히 뿌리는 날씨의 변덕은 계속되었다.










 

 

     그렇게 계속 남으로 남으로 달리는 도중, 우린 뜻밖의 희귀한 광경을 목도하게 된다. 그것은... 야생 상태에서 보는 물개와 코끼리바다표범(Elephant Seal)의 무리!






     처음엔 모래톱에서 노니는 이 코끼리바다표범 몇 마리만 보고도 탄성을 지르며 신기해했는데, 좀 더 가니.... 




 

     아예 떼거리로 엄청난 군락을 이루고 있는 지역이 나타난다! 둘째 날, 샌프란의 피어39에서 물개(바다사자)떼를 깜박하고 못보고 온 것이 조금 아쉬웠는데, 그 곳의 떼거리는 떼거리 축에도 끼지도 못하는구나! 





  "개그콘서트"에 나오는 표현을 빌려, 굉장히 굉장하고 대단히 대단하다라는 것 밖에 할 말이 없다! 세상에나, 이 넘들이 이렇게도 흔한 동물들이었던가? 그 넓은 백사장이 오히려 비좁게 보일 정도로 천지삐까리로 깔려 서로 뭉쳐 뒹군다. 독도 주변에도 예전엔 물개(강치)가 집단 서식하였으나 일제 강점기 왜인 어부들이 독도에 무단으로 들락거리며 모조리 남획하는 바람에 씨가 말랐다는데, 미국인들은 얘들의 효험(?)을 몰랐던 것일까?  좌우지간 미국인인들의 이런 친환경적 마인드는 때론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알고보니 이런 장관을 늘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짝짓기 및 번식철인 1~3월 사이가 이들 관찰에 최적기라고 한다. 다들 게으르게 모래 언덕에 널브러져 자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암놈을 서로 차지하겠다고 뒤엉켜 싸우는 놈, 혼자 포효하는 놈, 손인지 발인지 날개인지 모를 지느러미같은 것으로 배를 질질 끌며 동료들 사이를 방황하는 놈, 암수 서로 부둥켜안고 닭살 행각을 벌이는 놈 등등 다양한 모습들이 눈에 띈다. 




 

     이 곳 관리소(?)에서 나눠 주는 자료를 보니, 여기가 샌 시메온(San Simeon)의 "피에드라스 블랑카스 곶(Point Piedras Blancas)"라는 동네다. 세계적으로도 코끼리바다표범이 서식하는 몇 안되는 곳 중의 하나라고 한다. 이런 명소가 있는지도 모르고 무심히 운전해 온 나도 참...한심하다.

 

     꽤 고약한 배설물 냄새가 꿀꿀/꺽꺽거리는 시끄러운 소음과 함께 진동하고 있었지만, 그 악취와 소음에도 누구 하나 얼굴을 찡그리는 사람 없다. 때마침 비가 많이 약해진 덕분에 이곳에서 30분 정도 시간을 보내고 다시 남행길에 오른다. 남행 도중 허스트 캐슬(Hearst Castle)로 들어가는 표지판이 보였다. 20분이면 도달할 거리다. 핸들을 꺾을까 말가 순간 고민하다가 그냥 지나쳤다. 짐짓 가속기 페달을 더 세게 밟아 계속 달렸으나 가슴은 시렸다. 어차피 방문 예약도 안했고, 시간도 늦었고...가 봤자 뭐 별거 있겠나? (저 포도는 시어서 못먹어)

 

     이어서 주유도 할 겸 화장실도 갈 겸 잠시 들렀던 캠브리아(Cambria)라는 작은 동네. 매우 깨끗하고 아기자기 예쁜 마을이다. 비 그친 후라서 더욱 깔끔하게 비쳤는지도. 아담한 공간에 들어 선 각종 공예품 가게, 찻집, 옷 가게 등이 마치 미국 동화에 나오는 가공의 마을처럼 도회적이면서 세련된 신비로움이 묻어났는데, 가게마다 입구에 아담한 화단을 가구고 있고, 촌스럽지 않은 각종 캐릭터 장식과 저마다 특색 있는 간판이 그런 느낌을 더해 주었다.

 

 

캠브리아(1)

 

 

     기념품 가게를 몇 군데 들렀더니 모두 고령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자리를 지키고 계셨다. 이것 저것 구경만 하고 물건은 사지 않고 그냥 나가는 우리 동양인 여행객들에게도 매우 친절하고 우호적인 눈빛으로 대하는 저들의 모습에서 중산층 은퇴자들의 여유와 유유자적함을 엿볼 수 있었다. 나중 은퇴하면 이런 곳에서 살고도 싶다.

 

 


캠브리아(2)

 



캠브리아(3)


 


캠브리아(4)





 

 

 

     캠브리아를 빠져나오니 서서히 하늘이 걷히면서 저 멀리 바다에 빛내림이 시작되고 있다.




 

 

 

     철조망이 개방된 턴 아웃이 있어 차를 세우고 빛내림을 따라 바닷가로 홀린듯 걸어가 보았다.


 




 





    







          빛내림~


 



 

 

 

     바다는 저녁 노을과 함께 푸른 어둠이 서서히 몰려오기 시작한다.



 

 

 

     모로 베이(Morro Bay)의 상징과도 같은 모로 락(Morro Rock) 가까이 접근해 보았다. 땅거미 몰려드는 해안엔 개를 데리고 산책 나온 주민 몇 명이 눈에 띈다. 이 사진을 끝으로 내 카메라는 오늘의 임무를 마치고 가방속으로 들어갔다.

 

     이후 어둠이 찾아 왔다. 운전 도중 인-앤-아웃 버거집에 들러 저녁 식사를 하면서 와이파이를 잡아 Hotwire.com  접속, 노스 헐리우드의 Super8 모텔을 예약해 두었다. 이 곳을 숙소로 잡은 이유는 저렴하면서도 아침 식사가 제공되고, 내일 아침 일찍 첫 일정으로 들를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불과 10분의 거리에 있기 때문이다.

 

     칠흑같은 밤 도로를 달려 곧장 LA로 향하였다. 꼬박 3시간 넘게 논스톱으로 쏘았더니 22시가 다 되어 갈 무렵 예약한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번 미국 여행에서 묵은 숙소 중 가장 허름하였으나 (TV가 20년도 더 넘었을 법한 배불뚝이 브라운관... 그나마 파워가 켜지지도 않음) 피곤이 몰려오니 샤워 후 그냥 곯아떨어졌다. (제4일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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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일 2014. 02. 05. (수요일) 맑은 후 흐린림. 밤부터 비.


       오늘의 일정:


      ① 요세미티 국립공원 탐방 

      ② 몬터레이 근처로 이동

 

 

      오늘은 7시에 기상했다. 밥을 여유있게 지어 점심으로 먹을 맨밥 도시락을 싸 놓고 아침 식사는 간단하게 마쳤다. 짐을 챙겨 나오니 매우 차가운 날씨에 주위엔 온통 서리가 하얗게 내려 있다. 차창에 두껍게 앉은 성에를 긁어내고 히터를 틀어 유리의 얼음을 녹이는 동안 뜨거운 커피 한 잔을 타 들고 한산한 모텔 주위를 잠깐 산책했다. 투숙객이 우리 외 2~3팀밖에 없는것 같다. 파랗게 맑은 하늘, 고요한 숲, 유리알처럼 투명한 공기, 먼지 한 톨 없을 것같은 깔끔한 도로... 이런 하늘을 본 적이 언제였더라? 중국발 미세 먼지로 이제 가을철조차 눈 시린 맑은 하늘을 보기 힘들어져버린 가련한 대한민국.

 

 

 

출발 직전, YGL 입구에서.

 

 

     여기서 요세미티 西門(Big Oak Flat Entrance Station) 까지는 12마일. 주위의 산악 경치를 만끽하며 숲 속으로 이어지는 120번 하이웨이를 천천히 달렸다. 조금 가다 보니 울창하던 숲이 일순 사라지고 황량한 민둥산이 좍 전개된다. 마침 안내판과 함께 주차 공간이 있어 차를 세우고 사방을 자세히 둘러보니 모두 산불에 새카맣게 타버린 흔적이다. 도로 연변엔 진화에 쓰였던 화학 물질의 찌꺼기들이 아직도 더께로 쌓여있다. 먼지가 앉아 지저분해진 잔설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아마도 2013년도 여름, 중부 캘리포니아를 휩쓴 대형 산불의 잔해인 것같다.

 

 

 

작년에 있었던 대형 산불(The Rim Fire)에 대한 정보와 함께 산불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있다.

 

 

      2013년 8월 17일, 중부 시에라 네바다 요세미티 국립공원 서북쪽의 한 지역에서 사냥꾼의 실화로 추정되는 산불이 발생하여 마침 오랜 가뭄에 바짝 마른 덤불과 고온 건조한 바람을 타고 파죽지세로 번졌다. 무려 2주일간이나 계속 타 올랐으며 진화까지 3주 이상이 걸렸고 그 결과 1,032 제곱킬로미터, 즉 서울특별시 전체 면적의 1.5배가 넘는 울창한 삼림 지역이 잿더미로 변했다. 피해 면적으로 볼 때 캘리포니아 산불 역사상 3번째로 규모가 큰 산불로 기록되었다. "The Rim Fire"로 명명되었고, 우주에서도 선명히 관측될 정도로 그 기세가 대단했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뉴스로 크게 다루었는데, 바로 그 현장에 와 있는 것이다.

 

 

 

그 울창했던 삼림이 졸지에 훌렁 헐벗은 민둥산으로.

하지만 새로운 숲으로의 탄생을 준비하고 있다.

 

 

 

    산불이란 워낙 파괴적인 재앙이라 늘 경계해야 하지만, 항상 부정적인 효과만 있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산림생태학적 측면에서 보면, 산불은 "자연의 대청소"와 같은 것이어서, 나무가 너무 많이 자라 밀식되어 있거나 죽은 나무 등이 많은 상태가 되면 자연 발화 혹은 인화되기 쉬운 조건이 되는데, 산불로 인해 청소가 이루어지면 새싹이 돋아나기 좋은 환경이 되고 새로운 숲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SD 중앙일보 보도내용에서 일부 참조함). 산불은 그 지역을 점령하고 있는 수종들의 배타적 지배 행위(타감작용-他感作用-이라고 함)로 인해 제대로 기를 펴지 못하고 있던 멸종 위기종이나 취약종이 발아하고 생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생물 種 다양성 보존에도 큰 도움이 되기도 한다. 과거엔 산불이 난 곳에 성장이 빠른 수종으로 인공조림을 하여 회복을 시도하였지만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그냥 그대로 두어 자연의 복원 능력에 맡기는 것이 회복 속도가 빠르며 동물들도 훨씬 빨리 돌아온다고 한다. 스스로 힐링하는 자연의 섭리에 따라 이 곳의 생태계도 언젠가는 복원되어 건강을 되찾을 것이다.

 

 

 

(NASA의 Aqua 위성이 2013.08.22.에 찍은 Rim Fire의 영상 - 출처:인터넷)

 

 


     The Rim Fire는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일부를 태우긴 했지만, 다행히 이 쪽으로 크게 번지지는 않아 큰 화는 모면했다고 볼 수 있다. 좀 더 진행하니 시에라 네바다를 횡단하여 넘어가는 타이오가 패스(Tioga Pass Rd.)의 갈림길을 만난다. 왼쪽으로 난 타이오가 패쓰는 차단기로 막혀 있다. 이 길은 미국의 가장 아름다운 자동차 도로로 정평이 나 있지만 도로가 결빙과 강설이 시작되는 가을부터 이듬해 5월까진 폐쇄된다고 한다. 언젠가 좋은 시절에 다시 와서 타이오가를 반드시 넘으리라고 다짐하며 요세미티 밸리 방향으로 계속 진행하였다.

 

 

 

 

타이오가 패스 갈림길(구글맵스 스트릿뷰 캡춰)

 

 

 

     이윽고 요세미티 국립공원임을 알리는 안내판을 만난다. 잠깐 차에서 내려 인증샷을 찍었다. 조금 더 가서 공원 서문에 도착했다. 매표소의 레인저에게 상큼하게 인사해 주니 기분좋은 미소와 함께 인사로 화답하며 여권과 입장권을 보여달라고 한다. 간단한 확인 후 지도가 필요하느냐 묻고 그렇더고 하니 국립공원 소식지와 지도를 건네주며 좋은 시간을 보내라고 인사해 준다. 그들의 친절한 음성과 해맑은 미소에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공원 초입의 안내판. 조금 더 가면 서문 매표소가 나온다.

 

 

 

      매표소를 통과하여 계속 호젓한 삼림길을 달린다. 매표소에서 공원 중심부인 요세미티 빌리지까지는 자동차로 40분 이상을 더 달려야 한다.

 

 

 

눈 쌓인 침엽수림 사이로 난 공원 진입도로를 기분 좋게 드라이빙.

 

 

 

 

 

응달지역엔 아직 많은 눈이 두텁게 쌓여 있지만 도로는 제설작업이 잘 되어 있고, 다행히 기온이 올라 결빙 구간도 없었다.

 

 

     숲 속을 벗어나니 요세미티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멋진 경치가 전개된다. 요세미티의 깊은 협곡과 그 아래로 흐르는 구불구불한 계곡이 한눈에 다 들어온다. 도로 중간중간에 비스타 포인트를 만들어 차를 세우고 경치를 즐기도록 잘 배려하고 있다.  

 

 



 


도중의 한 비스타 포인트에서.

세미티에서 흘러 내려오는 계곡이 펼쳐져 있고, 왼쪽 산허리엔 요새미티 국립공원 중심부로 접근하는 빅 오크 플랫 로드(Big Oak Flat Rd.)가 보인다.

 

 

 


저 멀리 요세미티의 상징과도 같은 하프돔(Half Dome)이 보인다.

 

 

 

     도로의 오른쪽은 높은 낭떠러지다. 운전하는 동안에는 몰랐는데, 차에서 내려 아래를 바라보니 정말 아찔하다. 그러나 두껍고 튼튼해보이는 돌난간이 있어 운전 중 실수로 미끄러지더라도 웬만해서는 도로를 이탈하여 계곡 아래도 추락할 것 같지는 않다.

 

 


 

이런 터널을 서너 개 통과하였다.

 

 

 

 

     몇 개의 터널을 통과하고 내리막길을 따라 가다보니 숲 사이로 명경처럼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을 만난다. 머세드 江인 모양이다. 드디어 밸리 지역에 도착하였다.

 

     평지길을 따라 조금 더 진행하면 왼편에 거대한 바위가 떡 버티고 서 있다. 요세미티의 명물 중의 하나인 엘 캐피탄(El Capitan)이다. 이 바위는 높이가 1,078미터, 폭이 1,600미터에 달하여 지상에 노출된 세계 최대의 단일 화강암 덩어리라고 하는데, 깎아지른 듯 아득한 직벽은 전 세계 암벽 등반가들이 꿈꾸는 클라이밍의 성지가 되고 있다. 클라이머들은 이를 "엘캡"이란 애칭으로 부르며 필생까지 한 번정도는 등반할 꿈을 키운다.

 


 


엘 캐피탄 (1)

 

 

 

 


엘 캐피탄 (2)과 밸리로 들어가는 진입로

 

 


 

물이 말라버린 요세미티 폭포

 

 

 

     엘캡의 오른쪽엔 세계 랭킹 7위, 736m의 낙차를 자랑한다는 유명한 "요세미티 폭포(Yosemite Falls)"가 있었으나 물이 완전 고갈되어 폭포인지도 모르고 그냥 지나갈 뻔했다. 요세미티관람의 백미 중의 하나가 트레일을 걸으며 공원 내 여러 곳에 위치한 거대한 폭포를 구경하는 것인데, 눈이 녹아 제대로 수량이 확보되는 5~6월이 적기라고 한다.  

 

 

 

 

 

백팩을 메고 여유있게 트레킹을 하고 있는 저 커플이 부러웠다.

 

 

     위의 사람처럼 며칠간의 여유를 가지고 다양한 하이킹 코스 구석구석을 천천히 둘러보는게 요세미티를 대하는 올바른 자세인데 시간에 쫓겨 대충 눈도장만 찍고 도망치듯 다음 목적지로 허겁지겁 내달려야 하는 우리의 신세가 참 가련하고 처량하기도 하다.

 

 


센티널 비치(Sentinel Beach)에서 본 공원 입구 방향

 

 

     밸리로 진입하는 도중 만나게 되는 센티널 비치. 수량이 줄어들어 모래 바닥이 많이 드러나 있지만, 여전히 빼어난 풍광을 자랑한다.

 

 


 

센티널 비치(Sentinel Beach)의 반영

 

 

 

     물이 많이 고인 곳을 찾아 몸을 최대한 낮추고 반영샷을 찍어 보았다. 수량(水量)이 많은 봄/여름이나 단풍이 물드는 가을철, 눈 쌓인 겨울에 찍은 수많은 멋진 사진을 보면서, 나도 저들만큼 멋진 사진을 담아보리라 생각했었는데 오늘은 풍부한 물도, 노란 단풍도, 쌓인 눈도 없다. 그래도 아름답다.

 

 


 

커리 빌리지(Curry Village)에서 본 하프 돔.

 

 

     커리 빌리지 근처에 주차하고 포근한 햇살을 받으며 잠시 주변을 산책해 보았다.

 


 

미러레이크(Mirror Lake)로 향하는 트레일 코스

 

 

     아무리 시간에 쫓기는 몸이지만 나중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짧은 하이킹 코스 한 곳 정도는 걸어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지도를 훑어보니 미러 레이크(Mirror Lake) 트레일이 가장 만만하게 보여 그 곳에 발자국을 남겨 보기로 했다. 미러 레이크라, 거울호수? 명경지수(明鏡止水)?  뭔가 그럴듯 하지 않는가?

 

 

 


 

하프돔의 정상부에서 바람에 흩날리는 눈가루.

 

 

 

     미러레이크 하이킹 코스는 약 2마일, 왕복 1시간이면 충분한 거리다. 마치 걷기 싫어하는 우리 식구들을 위해 마련한 맞춤형 코스같다. 하프돔을 가장 가까이 두고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오른쪽에 거대한 바위, 하프돔과 그 아래를 흐르는 실개천을 따라 발걸음을 옮긴다.

 


 

실개천 흐르는 숲 속에서 하프돔을 보다. (1)

 

 

 

 


실개천 흐르는 숲 속에서 하프돔을 보다. (2)

 

 

 


 

하프돔 머리위에 걸린 무지개구름

 

 

 


미러레이크 (1)

 

 

     느릿느릿 천천히 걷다 보니 금방 미러레이크에 도착하였다. 이 곳도 물이 말라서 미러레이크라는 이름도 무색하게, 물이 가득 고여 있어야 할 호수 가운데는 바윗장과 모래 바닥이 그대로 드러나 있고 군데군데 살얼음이 얼었다.

 


 

미러레이크 (2)

 

 

 

     짤박하게 남아 있는 약간의 물이 "레이크"로서의 명맥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데 만수기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미러레이크 (3)

 

 

       마른 호수 바닥으로 걸어 들어 가 바위 위에 비스듬이 몸을 기대고 누워 실없는 시체놀이 퍼포먼스를 해 보았다. 우리가 나오니 다른 사람들의 모방 퍼포먼스가 이어지더라.   

 

 


 

미러레이크 (4)

 

 


 

미러레이크 (5)

 

 

     수량은 부족해도 여전히 빼어난 풍광을 자랑한다.

 

 


 

미러레이크 (6)


 

 

 

미러레이크 (7)

 

 


 

미러레이크 (8)

 

 


 

돌아오는 길(1)

 

 


 

돌아오는 길(2)

 

 

     오대산 월정사의 전나무길을 연상케 하는 멋진 숲길이다. 아무래 오래 걸어도 결코 지루하지 않을 것만 같은.

 

 


 

하프 돔 위로 걸린 구름이 하도 예뻐서 한 컷 담아 보았다.

 

 


 

사슴에게 먹이를 주지 마시오.

 

 

       눈망울이 슬퍼 보이는 사슴도 알고 보면 꽤 위험한 동물인 것같다.

 

 


 

파이팅!

 

 

     이 곳에선 사슴 쯤은 동네 뒷골목 길고양이 보듯 흔히 만날 수 있다. 지금이 동면기가 아니었더라면 곰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밸리 뷰의 반영(1)

 

    

     공원을 나오는데, 멋진 풍경이 보이는 포인트가 있어 차를 세웠다. 내리고 나서야 이 곳이 요세미티 사진에 많이 등장하는 밸리뷰(Valley View)인 것을 알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DSLR로, 똑딱이로, 폰카로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나도 그 사람들 틈에 끼여 몇 컷 담아 보았다.

 

 


 

밸리 뷰의 풍경(2)

 

 


 

밸리 뷰의 반영(3)

 

 


 

밸리 뷰의 반영(4)

 

 

 

 

터널 뷰(Tunnel View) 포인트(1)

 

 

     머세드 강을 건너고 오르막길을 올라 요세미티를 한눈에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다는 터널뷰(Tunnel View)에 도착하였다.  

 

 

 

 


터널 뷰(Tunnel View) 포인트(2)

 

 

 

 

터널 뷰에서 본 밸리지역(1)

 

 

     눈으로 하얗게 덮힌 설경이야말로 요세미티의 풍경의 진수라 할 수 있는데, 애석하게도 오랜 가뭄으로 눈이 거의 내리지 않아 이런 모습으로 만족해야 했다.

 

 

 

터널 뷰에서 본 밸리지역(1)

 

 

     흰 눈을 머리에 이고 있는 하프돔을 좀 당겨 보았다.

 


 

터널 뷰에서 본 밸리지역(1)

 

 

 

     너무도 아쉬운 요세미티의 일정이 순식간에 흘러가고 있다. 그 유명한 폭포 트레일을 못 걸어보고 가는 것도, 웅장한 조망을 자랑하는 글레이셔 포인트(Glacier Pt)를 못가보고 발길을 돌리는 것도 많이 애석하다. 다시 올 기회가 있으면 반드시 2박 이상 머물며 구석구석 깨알같이 아름다운 트레일을 걸어보리라. 하지만 기약은 없다. 사노라면 그런 날이 또 있겠지. 그런 희망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이다.

 


 

 

 

 

     이제 내일 있을 캘리포니아 1번 해안국도 종주 드라이빙을 준비하기 위하여 태평양 연안의 몬터레이로 다시 이동해야 한다. 공원을 벗어나오는 길은 40번 와워나 로드(Wawona Rd.)를 타고 남문을 경유하기로 한다. 당초 계곡을 따라, 엘 포털 로드(El Portal Rd.)에서 시작되는 140번 하이웨이를 탈 것이냐, 터널 뷰에서 계속 연결되는 와워나 로드를 탈 것이냐를 두고 고민했지만, 산 중턱을 따라 나 있는 와워나 로드가 주위 전망이 좋을 것같아 이 길을 택했는데, 가지않은 길, 140번 도로에 대한 미련은 아직도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다. 몬터레이까진 약 210마일, 4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된다(고 내비가 알려준다).

 

 


 

 

    

 

     옥허스트(Oak Hurst)를 거쳐 코어스골드(Coarsegold)를 지날 무렵 산악지대는 점점 이런 순한 목초지로 변하기 시작한다. 좀 더 달리니 산지가 사라지고 끝이 보이지 않는 완전한 평원이 펼쳐진다. 

 


 

평원 (1)

 

 

     말을 탄 카우보이가 망아지떼를 몰고 나타날 것만 같은 대평원이 펼쳐지고,

 


 

평원 (2)

 

 

     나중엔 지루할 정도로 변함 없는 풍경이 오랫동안 이어진다. 

 


 

마데라의 켄터키 영감댁에서 점심인지 저녁인지를 해결하다.

 

 

     마데라(Madera)라는 작은 도시에 잠시 들러 사람도 차도 에너지를 보충하였다. 신발을 사러 들렀던 가게가 마침 한인이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우리보다도 가게 쥔장께서 더 반가워하였다. 이 곳은 한인이 거의 없어 한국말로 대화할 기회가 적다고. 미국에 이민와서 성공한 사위와 딸 자랑이 대단하였다. 물론 신발가게로 자수성가한(?) 본인의 입지전적인 성공담도 덤으로.

 

     오늘은 내비게이션의 지시에 순응하여 성실(?)히 차를 몬 끝에  몬터레이에 해가 질 무렵 도착하였다. 호텔 예약을 하지 않았던 터라 내비게이션의 숙박지 검색 서비스를 이용, 데이즈 인(Dayn Inn)과 트래블 랏지(Travel Lodge)를 찾아 갔는데, 적합한 방이 없거나 중 저가 체인 모텔답지 않게 생각보다 룸 차지가 비싸서 일단 철수하였다. 비슷한 가격의 다른 곳을 알아보기로 하고 길거리를 눈으로 스캔하며 몇 바퀴 방황한 끝에 "Casa Munras Hotel & Spa"라는 이름의, 분위기가 상당히 고급스러워보이는 호텔을 을 발견하고 일단 들이밀어 보았다. 리셉션의 젊은 남자 직원이 매우 친절하여 인상이 좋았고, 가격도 세금 포함 $132로 스파와 온수 야외 수영장이 딸린 호텔 치고는 저렴한 편이어서 바로 유숙하기로 결정했다. 슬쩍 네고를 시도해 보니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원래 가격은 230불이 넘는데 비수기여서 최저 요금을 적용한 것이라며 정색을 하기에 그냥 그 가격에 결제한다.

 

     나중 객실에 비치된 소개 자료를 읽어보니, 스페인 통치 말기 시절, 스페인에서 이 곳에 파견한 최후의 외교관이었던 돈 에스테반 문라스(Don Esteban Munras)가 1824년 처음 세운, 몬터레이 지역 최초의 가든 호텔이라고 한다. 알고 보니 무려 190년의 역사와 전통을 간직하고 있는 유서깊은 곳이다. 본관동 외벽에 창립자 문라스를 기리는 동판이 있다. 건물은 일반 Lodge 처럼 2층 건물이었고, 꽤 많은 객실동이 전체적으로 디귿자로 배치된 형태였는데 고층 빌딩 형태의 도심 호텔에만 익숙해 왔던터라 좀 생소한 느낌이다. 객실 구조는 어제 묵었던 곳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Casa Munras Hotel & Spa. 짐 풀기 전에 한 컷.

 

    

     체크인을 마치고 차로 돌아오는데 빗방울이 후두둑거리기 시작한다. 급히 객실로 차를 몰아 짐을 방으로 옮기고 나니 빗줄기가 점점 거세어저 폭우가 되어 퍼붓는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상당히 난감한 상황을 맞을 뻔했다. 전기밥솥으로 밥을 짓고 한국에서 만들어 간 반찬을 꺼내고 라면을 끓여 저녁으로 삼으니 고생한 만큼 꿀맛이다. 이렇게 미국에서의 삼일차 밤이 지나간다.  (제3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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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일 2014.02.04. (화요일) 맑음. 가끔 구름.

 

      오늘의 일정:


      ① 샌프란시스코 시내 투어    

      ② 요세미티 국립공원 西門 근처로 이동

 

     스마트폰 4대에서 동시에 울려퍼지는 요란한 알람소리에 눈이 번쩍 떠진다. 아침 6시. 식구들을 보니 일어나기 싫은 기색이 역력하다. 즉시 기상하여 샤워를 마치라고 일러 두고 큰 짐을 대충 정리한 다음 "공짜" 조식을 추진하러 프런트로 나가 보았다. 비좁은 리셉션엔 커피 머쉰과 오렌지주스, 비닐 봉지에 포장된 차가운 케익이 모텔에서 제공한다는 "free breakfast"의 전부였다. 빵 몇 개와 음료 두 잔을 대충 챙겨 객실로 돌아와 아침으로 때운다. 빵 맛이 영 아니었고, 어차피 입 속이 까끌하니 식욕이 전혀 당기지도 않았다. 대신 어젯밤 사 왔던 클램차우더를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어보니 과연 썩 괜찮은 맛이다. 이럴 줄 알았다면 두 개를 사 오는건데...




피셔맨즈 와프 광장 주차장에서



 

     짐 챙겨 첵 아웃 후 10분 정도의 지척지간인 피셔맨즈 와프로 다시 나가서 적절한 장소에 주차하고 피어39까지 일대를 산책하였다. 지금 우리가 미국에 와 있다는 이국적인 느낌만 제외하면 자갈치 시장과 그리 다를 바 없는, 관광지를 겸한 여느 漁港의 풍경의 전형적인 아침 분위기다. 아침 햇살을 받고 있는 피셔맨즈 와프 광장은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한산한 가운데 길고양이와 다투며 쓰레기통을 뒤지는 노숙자들과 그 위를 어지러이 날아다니는 갈매기와 비둘기, 그리고 부댕(Boudin)에서 풍겨나오는 향긋한 빵 굽는 냄새 등등이 어우러져 나름대로 묘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었다.

 

 




피셔맨즈 와프의 "맛집"들





부댕(부딘; Boudin)에서 열심히 재료를 주무르고 빵을 굽는 제빵匠.

통유리로 개방되어 길거리 행인들이 지나다니며 구경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Boudin 의 내부



 

     유명한 Boudin Bakery & Cafe에 들렀지만 그다지 입맛이 당기지 않아 구경만 하고는 그냥 나왔다. Boudin 외 가까운 곳에 Fishermen's Grotto, Alitos 등 맛집 리스트에 단골로 등장하는 식당들이 즐비하였지만, 모든 것이 타이밍이라, 모텔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나온 탓에 식욕이 동하지 않아 그냥 지나친다. 피셔맨즈 와프를 떠나 언덕길로 유명한 롬바르드 거리, 차이나타운, 유니언스퀘어, 다운타운 등 명소들을 주마간산으로 주욱 훑어보고 다시 트윈픽스에 올랐다.




저 꼬불꼬불한 길을 올라오면 트윈픽스에 도착한다. 

사진 왼쪽 멀리 금문교가, 오른쪽엔 다운타운이 보인다.



 

     트윈픽스는 두 개의 봉우리로 된 해발 291m의 야산 언덕인데 전망이 확 트여 있어 샌프란을 한 눈에 내려다 보기 좋은데다가 접근성도 양호하여 방문객들에게 꽤 인기가 있는 포인트다. 언덕길로 유명한 거리를 통과하여 꼬불꼬불 오르막을 달리다 보면 금세 전망대에 도착한다. 주차는 무료였고 우리가 도착한 시간에는 주차 공간도 널널하였다. 날씨가 청명하여 동서남북 어디나 막힘 없이 조망할 수 있어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동쪽으로는 다운타운과 베이브리지, 오클랜드 방향, 서쪽으로는 태평양 일대, 남쪽으로는 북쪽으로는 금문교 등의 명소를 한 눈에 다 볼 수 있다.





금문교가 있는 북쪽을 더 당겨 찍어보았다.





서쪽은 다운타운 방향. 첫 날, 두 번이나 잘못 진입했던 베이브리지가 보인다.





남동쪽으로 본 풍경. 멀리 샌프란시스코 만(San Francisco Bay) 가 보이고 그 너머 땅은 미국 본토다.




 

     이제 금문교(Golden Gate Bridge)를 구경할 차례다. 트윈픽스를 내려오는 길에 코스트코를 들러 현지 보급을 추진하였다. 저렴한 전기밥솥, 오렌지, 포도, 사과 등 과일과 쌀, 과자, 반찬통, 수저 등을 구입하여 트렁크를 채우니 마치 추수를 끝고 나락 가마니를 곳간에 가득 쌓아 놓은 농부처럼 마음이 든든하였다. 코스트코에 들른 김에 스넥코너에서 피자와 샌드위치로 점심까지 해결한다.

 

     금문교 남쪽 전망대(South Vista Point)에 도착하여 주차 후 금문교가 잘 보이는 포인트로 나가보니 과연 웅장한 자태를 자랑하는 금문교가 눈앞에 딱 펼쳐지고 있었다. 실물을 생눈으로 접해 보니 지금껏 영상으로 보면서 상상했던 것보다 압도적으로 스케일이 커 보인다. 지금은 현수교나 사장교 공법이 상당히 진보하여 현재 금문교를 능가하는 규모의 다리가 세계 곳곳에 세워졌지만 (지금 건설중인 울산 대교만 해도 두 기둥간 거리가 1,150m로서, 1,280m인 금문교에 거의 필적하는 규모임) 금문교가 가지는 상징성, 역사성 등을 생각하면 아마도 세계 현수교 역사의 불멸의 전설로서 앞으로도 계속 남아 있지 않을까? 그 시대에 이런 공법을 연구해 내고 이를 실행하여 현실로 에 옮긴 선각자들의 혜안이 새삼 놀랍다. 다리가 잘 보이는 지점에 금문교를 건설한 사람과 내력을 간략히 새긴 동판이 있는데 그 내용을 글을 읽어보니 괜히 콧날이 시큰해진다. 인공 구조물에서 이런 감동을 느껴 보는것도 그리 흔한 일은 아닐 것이다.




South Vista Point에서 본 금문교





금문교의 주 경간을 연결하는 매인 스팬 와이어.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찾게 되는 금문교는 명실 공히 샌프란시스코의 랜드마크다. 관광 코스로서도 가장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지만, 스스로 목숨을 버리려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아오는 자살의 세계적인 명소이기도 하다. 보도에 의하면, 1937년 이 다리가 완공된 이후 작년(2013년)까지 여기서 투신한 사람을 약 1600명으로 추산한다고 한다. 작년 한해에만 46명의 사람들이 여기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니 일주일에 한 건 정도는 자살이 이루어지는 셈인데 자살 방지를 위해 골머리를 않고 있는 당국은 올해 무려 7,600만 달러를 들여 자살 방지용 철제 그물을 설치하는 공사를 시작한다고 한다. 

 

     30분간의 기본 주차 시간 내에 전망대 이 곳 저 곳을 섭렵한 후 다시 차를 몰아 금문교를 건너서 북쪽 전망대로 향하였다. 금문교는 샌프란을 벗어나는 방향으로는 무료지만 샌프란으로 진입하는 방향은 통행료를 징수한다. 통행료 납부 방법은 다양하지만 https://www.bayareafastreak.org 에 접속하여 통과 예정 일자, 차량 번호, 결제할 신용카드 정보 등을 등록해 두면 편리하다. 사전 등록 없이 무단으로 통과하면 나중 과태료가 붙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돈을 물어야 한다. 우린 어젯밤 취침 전 미리 통행 등록을 해 둔 터였다. 주차비가 없는 북쪽 전망대는 그리 뷰가 좋지 않아 잠시만 머물렀다. 더 멀리서, 더 높은 곳에서 금문교 일대를 조망하기 위하여 컨젤먼 로드(Conzelman Rd)를 타고 남으로 태평양이 시원스럽게 펼쳐진 언덕으로 진행하였다. 




컨젤먼 로드 언덕에서 본 금문교와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



 

      컨젤먼 로드의 언덕배기에서 내려다 보는 금문교와 샌프란 일대의 풍광도 숨 막히게 멋있다. 관광객들도 거의 눈에 띄지 않아 샌프란시스코 베이가 잘 내려다보이는 벤치에 앉아 커피와 간식 타임을 갖는 여유도 부려 볼 수 있었다. 저 다리가 "골든게이트 브리지"라는 이름을 얻은 것은 해 질 무렵 황금빛 석양과 오렌지색 의 다리가 어우러져 자아내는 황홀한 자태 때문이라는데, 지금 시간이 해질녁이 아닌것이 조금 아쉬울 따름이다.





컨젤먼 로드 언덕의 한산한 벤치에서 샌프란 베이를 내려다보다.




 

     조금 더 가면 포인트 보니타(Point Bonita) 등대가 나오는데, 거기까지 가 보기로 했다. 등대로 가는 길은 매우 한적한 일방 통행로였고, 주위엔 과거 군사 요새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등대 근처엔 미사일 기지(SF-88)가 있는데, 과거 냉전시절 소련의 폭격기의 공습에 대응하기 위한 나이키 허큘리스 미사일 발사 시설이었지만 지금은 나이키 미사일 박물관으로 변모했다. 왼편으로 저 아래로 샌프란과 금문교, 태평양이 펼쳐진 호젓한 언덕길을 드라이브하는 그 기분이라니!  등대 입구에 도착하니 제법많은 탐방객들의 차가 주차되어 있고, 등대까진 차량 통행이 제한되어 2km 정도를 도보로 왕복해야 한단다. 아직 몸이 덜 풀렸는지 걷기를 극히 꺼려하는 가족들의 뜻을 수용, 등대까진 가지 않고 잠시 주변을 산책한 후 다음 목적지인 요세미티 웨스트게이트 랏지(Yosemite Westgate Lodge)의 좌표를 내비에 입력하고 약 180마일 정도의 짧지 않은 장도에 올랐다.

 



옛 요새의 흔적, 아마도 포대(砲臺)가 있었던 자리인 듯.





* 미국에서의 내비는 한국과 달리 상호명으로 검색이 안되는 경우가 많다. 그 광활한 미 대륙의 무수히 많은 상호를 불과 몇 기가바이트밖에 안되는 메모리에 어떻게 다 구겨 넣겠는가? 정확한 주소나 좌표를 입력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우린 첫날 피셔맨즈 와프 해프닝 이후 모든 목적지를 구글맵에서 좌표를 따서 내비에 입력하여 이동했다. 




여행 내내 우리의 발이 되어 준 닛산 패쓰파인더. (아마 미국 내에서 생산된 듯하다)




 

    오늘도 역시나 약간의 삽질은 빠지지 않는다. 컨젤먼 로드 언덕에서 바로 차를 돌려야 했는데, 욕심을 부려 등대까지 오는 바람에 길은 일방 통행로로 바뀌어버렸고, 내비는 한참이나 북쪽을 우회하여 리치몬드-샌 라파엘 대교(Richmond-San Rafael Br.)을 통과하여 요세미티 방향으로 안내하는 경로를 잡아두고 우리를 안내하였다. 금문교로 되건너 샌프란시스코 시내로 재진입 후 베이브리지를 타고 요세미티로 가려던 계획도 그 바람에 무산되어버린 것이다. 금문교 통행 등록까지 해 두었는데 말이다. 역시 구글맵이나 종이 지도를 보면서 큰 동선을 머리 속에 그려 놓고 그 감각을 살리되, 내비는 보조 수단으로 삼아야한다는 교훈을 뼈저리게 느낀다. 이후부터는 내비의 목적지를 설정할 때 중간 경로를 군데군데 삽입해 둠으로써 이런 실수의 재발을 방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실수" 또한 여행의 컨셉이 아니던가? 실수에서도 배울 것은 있으니까 말이다.

 

     도중 월마트에 들러 맥주 등 생필품 몇 가지를 추가로 구입하였는데, 스노우 체인도 함께 구입했다. 시에라 네바다 산악지대는 날씨 변덕이 심하여 언제 폭설이 내리고 결빙될지 예측이 힘들기 때문에, 이 시기에 이 곳을 출입하는 차량은 스노우 체인을 갖추도록 법으로 강제하고 있다. 체인 컨트롤이 발령되었는데 체인 없이 운행하면 출입이 거부될 뿐더러 벌금을 물어야 할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자신과 가족의 안전을 위해서 체인을 반드시 준비해야 한다. 이 곳 뿐만 아니라 앞으로 가게 될 유타주의 국립공원도 고산지대여서 강설, 결빙이 잦아 체인을 준비하는 것을 강력 권고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여행을 마칠 때까지 단 하루를 제외하곤 날씨가 양호하여 체인을 쓸 일이 한번도 없었지만 체인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예측 불가한 날씨에 대하여 심리적인 안정감을 얻을 수 있다.

 

     도시를 벗어나 요세미티로 이어지는 120번 도로를 탈 무렵 밤이 되었다. 고도가 점점 높아지면서 마치 한계령 같은 산악 도로가 시작되었고, 급경사와 급커브가 결합되어 스릴 있는 운전을 만끽한다. 다니는 차량이 거의 없는데다가 바깥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 도로의 결빙이 걱정되고, 가끔 야생 동물의 느닷없는 출현에 신경이 쓰였지만, 때로 과속까지 해 가면서 목적지인 글로벌런드의 "Yosemite Westgate Lodge"에 도착하니 아홉시가 다 돼간다다. 차에서 내려 주위를 둘러 보니 온통 고요한 숲 뿐, 민가가 있는 마을로 나가려면 30~40분은 걸리는 한적한 곳이었다. 비수기인지라 방이 남아 돌아갈 시즌이어서 예약은 하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프런트에 들어가 서너번을 소리쳐 주인을 부르니 인도계로 보이는 젊은이가 나와서 손님을 맞는다. 퀸 사이즈 더블베드룸 세금 포함 94.35불. 요즘같은 한가한 시절에 너무 비싸니 좀 깍자고 슬쩍 찔러본 말은 씨알도 안먹힌다. 

 

     이 모텔을 숙소로 결정한 것은 요세미티 국립공원(西門)과 가장 가깝다는 이유 하나 뿐이었다. 가격도 그리 높지 않아 금상첨화. 국립공원 내 숙소는 비수기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비싼 편이어서 고려 대상 밖이었고, 결과적으로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랏지(Lodge)형 모텔이어서 후진 주차하여 차를 객실 문 앞에 바짝 대고 트렁크를 여니 짐 운반 거리가 짧아 무척 편리하였고, 내부 시설도 깔끔, 가격 대비 꽤 훌륭한 편이었다. 단점이라면 공짜 아침식사가 제공되지 않는 것인데, 어차피 우린 밥을 지어 먹을거니 단점이 되지 않았다. 대강 짐을 정리한 후 밥솥의 포장을 뜯고 쌀을 앉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더운 밥을 푸고 한국에서 가져 온 반찬도 꺼내 펼치고 여기에 미국 맥주를 곁들이니 남부럽지 않은 만찬 상이 차려졌다. 미국 쌀밥도 찰기가 충분하여 우리 입맛에 잘 맞는다.




늦은 만찬


 

     꿀맛 같은 식사를 마치고 가족들이 차례로 샤워를 하는 동안 바깥에 나와 보니, 침엽수림 사이로 트인 차가운 하늘로부터 무수한 별빛이 쏟아내리고 있었다.  (제2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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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일 2014. 02. 03. (월요일) 맑음. 가끔 구름.

 

    오늘의 일정 :

 

     ① 출국 및 미국 입국

     ② 샌프란시스코 시내 투어

 

 

     드디어 출발이다. KTX 울산역으로 가는 5시50분 리무진 버스를 타기 위해서 꼭두새벽부터 한바탕 부산을 떨었다. 당초 가까운 김해공항 출발을 계획하였지만 일정에 맞는 마땅한 항공편을 찾지 못하여 어쩔 수 없이 인천공항까지 이동하여 출국하게 된 것이다. 어쨌든 서울역에 도착한 우리는 서울역내 도심공항 터미널에서 수하물 탁송을 포함한 출국 수속을 마치고 근처 식당에서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해결한 다음 직통 열차편을 이용하여 인천공항으로 향하였다. 도심공항 터미널에서 이미 보딩패스 발권, 출국심사까지 완료한 상태였기 때문에 인천 공항에선 3층의 전용 출국 통로를 통하여 간단한 보안 검색만 마치고 면세지역으로 나설 수 있었다. 창구가 한산한 서울역 공항터미널에서 출국 수속이 가능한 점은 상당히 편리하였는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제주항공의 국제선 이용객만 가능하다고 한다. 약간의 시간적 여유가 있어 면세점을 둘러보고 라운지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있으니 탑승 수속이 시작되었다.

 



인천공항 전용출입문으로 들어가 보안검색대를 통과하면 바로 출국심사장이다.




     아시아나 OZ-114편은 정시에 출발하여 나리타공항에 안착한다. 여기서 2시간 30분 가량 환승 대기 후 유나이티드항공(UA) 편으로 미국행 장도에 오른다. UA社는 세계적 규모의 메이저 항공사임에도 불구하고 최하위 수준의 서비스로 평판이 그리 좋지 않은 항공사다. 장점으로 내세울 수 있는거라고는 비교적 저렴한 항공료와 조금 후한 마일리지 뿐, 싼 맛에 타는 항공사라는게 중론인데, 우린 다른 대안이 없었을뿐더러 그나마 촉박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티켓을 확보했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였다. 기종은 보잉사의 베스트셀러 모델 중의 하나인 737-800이었고, 그리 낡진 않았으나 좀 싸구려틱한 인테리어에, 좌석 간격이 생각보다 좁아 롱다리인 내게 큰 불편함으로 다가왔다. 어여쁘고 젊은 승무원을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는 것쯤은 문제삼을 만한게 아니었는데, 무엇보다도 큰 불만은 맥주나 와인 등 주류가 무료 제공되지 않아 제 돈 주고 사 마셔야 한다는 점, USB 충전 단자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요새 때가 어떤 때인데, 좌석에 USB 충전 단자가 없는 국제선이 있단 말인가? 배터리 전원을 아끼기 위하여 스마트폰에 담아 온 음악이나 영화를 볼 생각은 접어야했다. 기내식도 최악이라는 혹평이 많았는데, 내 입이 싸구려라서 그런지 그럭저럭 먹을만은 하였다. 어쨌는 알코홀 기운을 전혀 빌리지 않고 12시간 가량을 좁은 좌석에 옹색하게 앉아 견디는 것은 언제나 고역이다.

 

     샌프란시스코 공항엔 정시 착륙하였다. 미국이 처음인 아내와 아이들은 입국 심사관들의 고압적인 분위기에 약간 긴장하는 듯했지만 문제없이 입국 허가를 받았다.  심사대를 통과하니 정말 미국땅에 발을 디딘 실감이 드는데, 출구에 덩그렇게 "welcome to san francisco"라고 쓰인 간판은 입국 환영인사 치고는 너무 썰렁한 느낌이 든다.

 

     짐을 찾아서 맨 먼저 향할 곳은 렌트카 센터이다. 대합실의 안내판을 둘러보고 "To Rental Cars"라고 씌어진 안내판을 찾아서 화살표가 지시하는 곳으로 가면 된다. 안내대로 앨리베이터를 타고 4층으로 올라 가서 무료로 운용되는 에어트레인(Air Train)의 블루 라인을 타면 5분 정도 걸리는데 여기가 종점이다. 허츠, 알라모, 에이비스 등 영업소가 보인다. 허츠사 창구를 찾아가니 차를 빌리려는 수많은 사람들이 벌써 장사진을 치고 있는데 우린 한국에서 사전에 "허츠 골드 플러스 리워즈"에 가입했기 때문에 이 곳을 패스하여 아래층의 전용 창구로 향하였다. 위층 일반 고객 창구에 비해 대기열이 매우 짧아 순조로운 출발을 예고하는 듯했다. 후딱 차를 수령하여 나가면 조금 여유있게 오늘 일정을 소화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뿌듯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순조로움은 딱 여기까지. 첫 번째 사단이 발생하고 말았다.  

 

     내 차례가 되어 한국에서 미리 인쇄해 간 바우처와 여권, 면허증, 신용카드를 제시하니 창구 직원은 서투른 타자법으로 느릿느릿 시스템을 조작하는데, 뭔가가 잘못되었는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몇 번이나 똑 같은 작업을 되풀이하는 것이었다. 뭔 문제라도 있느냐고 물으니 어깨를 으쓱하며 자기도 잘 모르겠다고 하며 내 뒤의 대기 손님들을 일단 먼저 처리하고 다시 해 볼테니 좀 기다려 달라고 한다. 흔쾌히 오케이하고 뒤로 물러서 주었다.

 

     근데 손님이 다 떨어졌는데도 계속 헤메는구나. 더 이해하지 못할 일은, 내게 일언 반구도 없이 창구를 이탈하여 제 사무실로 사라졌다가 한참이나 있다 나타나서 다시 시스템을 조물락거리다가 다시 사무실로 슬며시 돌아가 동료들과 히히덕거리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기약없는 시간이 흘러가자 아무리 평소 사람좋기로는 물황태수급으로 소문난 나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방금 도착한 또다른 고객 한 사람을 처리한 후 또 사무실로 들어가려는 그녀를 불러세워서 최대한 눈을 부릅떠 똑바로 쳐다보고, 짐짓 언짢은 표정을 지으면서 톤을 약간 높여 한 마디 던졌다. 

  

     "헤이 여보쇼. 어떻게 돼 가는거요? 지금 내 인내력을 시험하는거요? 내 꼭지 돌기 일보 직전이나 빨리 조치를 취해 주는게 좋을거요. 우리도 바쁜 사람이란 말이요!"

 

     백인 여자는 당황한 표정을 으며 다시 예의 속 터지는 독수리타법으로 예약시스템을 떠듬떠듬 만지다가 고개를 갸웃가리더니 결국 사무실에서 고참으로 보이는 직원을 불러 도움을 청한다. 고참은 익숙한 솜씨로 몇 자를 후다다닥 입력하고 엔터를 탁 치더니 내게 다른 신용카드를 가지고 있느냐고 묻는다. 알고 보니 처음에 제시한 신용카드가 무슨 이유인지 승인이 떨어지지 않는다네? 고작 이런 이유땜에 거의 한시간 40분을 허송한건가? 이런 황당한 일이!

 

     옆에 있는 쓰레기통을 냅다 걷어차버리고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억누르고 조금 더 기다린 끝에 결국은 키를 받았다. 그 와중에도 보험은 풀 커버리지로 가입하였다. 아내를 추가 운전자로 등록하는 것은 무료였지만, 25세 미만인 아들을 추가 등록하는데는 하루 30불의 적지 않는 추가요금을 요구하였다. 아들 녀석에게 미국에서의 운전 경험을 쌓게 해 주기 위해서 거금을 기꺼이 지불하기로 한 것이다.

 

     한국에서 예약 당시 7인승 4WD SUV인 포드의 익스플로러를 신청하였는데 동급인 닛산의 패쓰파인더(Pathfinder)가 배정되었다. 16,000마일밖에 타지 않은 거의 새차였고, 말끔하게 세차되어 있는데다가 신차 향기(?)까지 폴폴 풍긴다. 트렁크 후드를 열고 제3열 좌석을 평평하게 눕히니 제법 너른 공간이 나와 짐을 수용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짐을 적재하고 나서 차에 타 보니 앞, 뒷열 다 레그룸이 충분히 넓어 상당히 만족스럽다. 미리 가져간 내비게이션을 달고, 아들녀석을 내비게이터로 임명하였다. 우리의 내비게이터에게 부여한 첫 미션은 "피셔멘스 와프(Fisherman's Wharf)를 찾아 목적지로 설정하라"였다. 스타트 버튼을 누르니 경쾌한 스타팅 모터 소리와 함께 시동이 걸린다. 좌석과 스티어링 휠 위치를 조정한 후 기어를 넣고 가속 페달을 지그시 밟으니 묵직한 중량감으로 차가 기분좋게 움직여 주는데, 아까의 불쾌했던 기억들이 눈 녹듯 사라진다. 나 역시 미국에서의 본격 드라이빙은 처음이라 미국의 교통 체계에 빨리 적응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과 조금 긴장감이 느껴진다. 렌트카 출구를 빠져나와 공터에 잠시 차를 세우고 내비가 GPS신호를 제대로 잡는 것을 확인한 후 다시 출발하여 샌프란시스코 시내로 접어들었다. 

 

     공항을 빠져 나온 차는 101번 프리웨이를 타고 막힘 없는 넓은 도로를 시원하게 질주하였다. 그런데 여기에서 또 2번째 사단이 생겨버렸다. 내비게이션상의 남은 거리와 도착 예정시간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게 화근이었다. 한동안 신나게 달리다가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게 되는데, 피셔맨스 와프는 분명 북쪽인데 우린 계속 남행하고 있지 않은가? 거 이상타? 프리웨이 복판에 차를 세울 순 없는 노릇이어서 한참 달리다가 턴아웃이 있어 잠시 차를 세운다. 내비의 최종 목적지를 확인하니 피셔맨스 와프는 맞는데, 남은 거리가 무려 510마일, 지금으로부터 7시간 후 도착으로 안내하고 있다. 우째 이런 일이? 내비란 넘이 가끔 엉뚱한 짓을 한다더니 역시 기계에 전적으로 의존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까 렌트카 사무실에서 가져 온 시내 지도를 펼쳐들고 감각 운전을 하기로 하였다. 내비를 끄고 가까운 출구로 빠져 유턴하여 반대방향으로 다시 진입하여 북쪽으로 계속 차를 몰았다. 어쨌든 101번 프리웨이만 계속 따라가면 목적지가 나오는 것으로 돼 있으니. 

 

     드디어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으로 접어들면서 익숙한 지명의 이정표들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도로는 점점 복잡해지고 이정표의 지시 내용이 약간 혼란스러워져 다시 내비를 켜고 도움을 받기로 했다. 내비가 시키는대로 한동안 잘 가고 있는데 어느 순간 엄청나게 큰 철교 방향으로 진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고, "베이브릿지(Bay Bridge)"란 간판을 발견한 순간은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헐... 지금 샌프란시스코를 이탈하여 오클랜드 쪽으로 가고 있잖은가? 낭패감이 엄습하였지만 차를 되돌릴 방법이 없어 그냥 진행할 수밖에 없는데 수렁에 점점 빠져들고 있다는 느낌... 내비가 지시하는대로 일단 움직이기로 하고 울며 겨자먹기로 다리를 건넜다. 어느 새 우린 880번 프리웨이를 타고 남하 하고 있었고, 또한 이 길은 오늘 우리의 목적지와는 명백히 반대 방향이란 것만은 분명하였다. 또다시 턴 아웃에 차를 세우고 내비를 재점검하였다. 근데 자세히 보니 목적지가 "Fisherman's Wharf, San Diego CA" 라고 되어 있질 않는가? 오 마이 갓! 알고보니 미국땅에 피셔맨즈 워프는 어디에나 있는 흔한 명칭이었던 것이다. 출발 전 아들 녀석이 피셔맨즈 와프를 검색하고, 검색된 수많은 피셔맨즈 와프 중 내비가 맨 먼저 제시하는 장소로 목적지를 세팅하였는데, 이게 샌 디에고에 있는 피셔맨스 와프 식당인지 호텔인지 였던 것이다. 

 

     목적지를 수정하니 이제서야 남은 거리 80여마일, 소요 시간 1시간 30으로 알려 주는데, 샌프란시스코 만(灣)을 시계방향으로 일주하여 샌프란시스코로 진입하는 경로를 잡아놓고 있다. 그냥 차를 돌려 거꾸로 되돌아가면 훨씬 빠를텐데 왜 이렇게 먼 경로를 잡는건지 의아했으나 이왕 늦은 것, 샌프란 외곽을 드라이빙하는 셈치고 그냥 시키는 대로 고고씽하자는 마눌님의 의견을 좇아 다시 출발하였다. 덕분에 우린 예정에도 없던 웨스트 오클랜드, 샌 로렌조, 프리몬트, 밀피타스, 팔로 알토, 레드우드, 샌 마테오 등 샌프란시스코 만 주변 도시로 이어지는 눈물의 라운드 투어를 강제로 하게 되었다.

 

     이런 어이없는 삽질 끝에 2시간을 넘게 허비하고 결국 목적지 근처에 다다르니 이미 날은 어두워져 있었다. 렌트카 센터 포함 도합 4시간을 날려먹은 덕분에 샌프란의 명물 지상 케이블카 탑승 체험, 트윈픽스(Twin Peaks)에서의 일몰 감상 등의 야무진 계획은 죄다 허공에 날아가버렸다. 일정을 바꿔 일단 롬바르드 거리의 예약된 숙소로 직행, 체크인을 먼저 하기로 했다. 이 곳으로 가는 도중에도 내비의 안내와 실제 지형에 시간차가 생겨 아차 하는 순간에 베이브리지로 또다시 진입해버리는 3번째 불상사를 겪는다. 그러나 이번에는 삽질에도 요령이 생겨 베이브리지를 다 건너지 않고 중간에서 트레저 아일랜드(Treasure Island)로 빠졌다가 유턴해 나오는 기지를 발휘하였다. 그런데 트래저 아일랜드에서 보이는 샌프란시스코의 야경이 기막혔다. 돌아 나오는 도중 전망이 탁 트인 턴아웃이 있어 차를 세우고 한동안 넋을 잃고 야경을 구경하는데, 병풍처럼 늘어 선 다운타운 고층 건물의 불빛과 바다에 반사된 그 빛이 바로 코앞에서 찬연하게 어울려 일대 장관을 연출한다. 마눌님께서 뜻밖의 이 야경 감상만으로도 오늘의 삽질을 충분히 보상받았다고 말씀해 주시니 가족들에게 미안했던 마음이 조금은 덜어진다. 시야가 트인 도로 곳곳의 공터엔 많은 사진가들이 삼각대를 펼치고 야경 촬영에 여념이 없었다. 나도 삼각대를 펼쳐 카메라를 얹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으나, 피곤해하는 가족들을 생각해서, 눈에 담아가는 것만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트래저 아일랜드를 빠져나와 정신 바짝 차리고 운전한 끝에 마침내 숙소에 도착하여 체크인 및 짐만 내려놓고 바로 피셔맨즈 와프로 달렸다. 도착해 보니 길거리엔 왁자지껄 오가는 사람들과 어지러운 전찻길과 각종 상가밖에 보이지 않는다. 오랜 비행과 시차로 몸이 녹초 직전까지 간 데다가 속이 몹시 허하니 구경이고 뭐고 할 의욕이 사그라드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생각해 보니 기내에서 간단한 빵 쪼가리 등으로 아침을 때운 후 지금껏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일단 민생고부터 해결하기로 하고, 이 곳의 명물이라는 클램차우더를 먹을것이냐 해산물 요리를 먹을것이냐 짧은 의논 끝에 아이들의 요청에 따라 엉뚱하게도 바로 옆에 있는 애플비(Applebee)에서 스테이크를 먹기로 했다. 코인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주차비를 넣으려고 주차기계를 만지니 이 넘마저 내 말을 안듣는구나. 기계와 잠시 씨름하고 있는 나를 지켜보고 있던 옆 옷가게 흑인 점원 언니가 다가 와 야간엔 주차비가 공짜라고 친절하게 알려 주신다. ㅎㅎ




AppleBee @ Fisherman's Wharf





     포식하고 나니 아무 생각이 없다. 오로지 빨리 가서 쉬고 싶은 생각 뿐. 그래도 피셔맨즈 와프까지 와서 클램차우더 맛을 보지 않는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는 생각에 호객 행위를 하는 사람을 따라간 가게에서 $6짜리 클램차우더를 테이크아웃으로 하나 포장하여 받아 들었다. 바로 숙소로 돌아가서 쉴 것이냐 좀 피곤하더라도 트윈픽스로 가서 야경을 즐길것이냐를 두고 약간 갈등하다가 이왕 고생길에 들어선 것, 조금 더 고생하는 것으로 결정하고 트윈픽스로 차를 휘몬다.





트윈픽스에서 본 다운타운 방향의 야경





     트윈픽스엔 샌프란시스코 일대를 360도 조망할 수 있는 명소 답게 많은 야경 구경꾼들로 북적였다. 트레저 아일랜드에서의 야경을 이미 본 터라 감흥은 좀 덜하였지만, 도시의 휘황한 불빛과 별이 반짝이는 태평양의 밤하늘이 어우러진 스펙터클한 밤경치는 오랜 이동의 피로를 잠시 잊게 해 주기에 충분하였다. 전망대를 거닐며 여러 방향을 둘러보며 성의 없는 사진 몇 장 찍은 후 숙소로 돌아오니 밤이 깊었다. 어리버리 좌충우돌했던 미국 땅에서의 길고도 짧은 하루가 그렇게 흘러간다. 머릿속이 혼미하고 몽롱한 와중에도 금문교(Goldengate Bridge) 관리 웹 사이트에 접속하여 내일 있을 금문교 통행료 지불을 위한 통행 등록은 해 두고 잠자리에 들었다.    (1일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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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 캐니언

2014.03.13 21:51 from 여행/해외여행

 

2014. 2. 10.


Grand Canyon, AZ

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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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 연휴 직후 2주간의 미국 서부지역 자동차 여행을 다녀왔다. 이번 여행은 가족 모두가 함께하였다. 아주 오래 전, 미국 출장길에 잠시 짬을 내어 그랜드캐니언을 처음 구경했을 당시, 머릿속을 하얗게 만드는 그 압도적인 풍광에 충격을 받고선 언젠가는 가족과 함께 반드시 다시 오리라고 다짐했었는데, 그것이 23년만에 이루어진 것이다. 이제 여행에서 돌아온 지 불과 2주일이 채 지나지 않았지만, 어느 새 그 들뜸과 흥분도 점차 사그라들고, 특히 14일간의 여정을 되돌아볼라치면 벌써 기억이 흐릿해지고 있어, 퍼뜩 떠오르지 않는 부분은 한참 머리를 굴려 퍼즐 조각 맞추듯 조립해 봐야 겨우 꿰맞출 수 있으니 점점 무디어져만 가는 이 기억을 어찌할 것인가! 더 늦기 전에 그 보석같았던 순간들의 조각들을 붙잡아 두고자 블로그에 그 날의 여정을 기록해 보기로 한다.



트윈픽스(Twin Peaks)에서 본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 방향

 

 

1. 계획 

 

      모처럼 회사에서 8일간의 장기 휴가를 쓸 수 있는 때가 왔다. 사실 특별휴가 기회는 몇 번 있었지만 이런 저런 사유로 지금껏 제대로 챙겨 써 본 적이 한 번도 없었고, 이번에도 그냥 무심히 지나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엔 그냥 놓쳐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고, 며칠동안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마침내 결심하였다. 그래 떠나자! 한 살이라도 젊을 때! 기회가 왔을 때! 이왕이면 식솔을 다 거느리고!

 

      여행지는 처음부터 미국이 자연스럽고도 당연하게 떠올랐고, 다른 곳은 아예 고려 대상에 포함하지 않았다. 기간은 주어진 휴가 기간에 개인 연차를 더하여 2주일로 뽑았고, 여행사 패키지가 아니라 평소 벼르던 자동차 여행으로 정하여 모든 것을 스스로 계획하고 결정하고 헤쳐나가는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여행이 되도록 하고자 했다. 내심 이렇게 결심한 후 가족을 모아서 미국 여행을 제안하니 "놀러 미국까지 가자는데" 어찌 반대 의견이 있을 수 있으랴! 여행 계획의 개요를 설명하고 식구들의 동의를 구하는 동시에 의견도 수렴하였다. 벌써부터 들뜬 분위기와 더불어 미지의 세계에 대한 일말의 불안감도 없진 않아서, 가장인 나를 믿고 따르라고 당부하였다. 

 

      미국을 타깃으로 삼은 이상 서부 지역 라운드 트립으로 컨셉을 잡았다. 뉴욕을 중심으로 한 동/북부는 계절이 계절인지라 폭설, 한파 등으로 낭패를 맛볼 가능성이 있고, 플로리다를 중심으로 한 동남부 지역은 올랜도 근처에 집중된 테마파크 외엔 별로 볼 것이 없으니 자연스럽게 서부지역으로 결정된 것이다. 미 서부 그랜드써클 지역 국립공원의 순차적 탐방을 기본으로 하고, 주변의 도시 투어도 겸하는 것을 염두에 둔 일정의 대강을 수립하기 시작하였다. 미국 여행의 묘미는 무엇보다도 거대하고 광활한 자연 속으로 온 몸을 내던져 야생의 순수함을 제대로 맛보는데 있지 않는가? 자연 투어를 위주로 하면서도 샌프란시스코, 로스엔젤레스, 라스베이거스 등의 대도시를 둘러보는 일정을 넣은 것은, 초강대국 미국의 도시문명에 호기심과 관심이 많을 마눌님이나 아이들을 위한 배려이자 보너스인 셈이다.




 

      둘러 보아야 할 포인트와 관심지역을 선정해 놓고 , 모니터에 구글맵스를 띄워 대략적인 큰 동선을 수립하였다. 구글 맵은 지점 단순 검색 뿐 아니라 경로를 지정하면 지점간 거리, 이동시간, 타야 할 도로 정보 뿐 이나라 주변 흥미있는 장소까지 소상하게 알려준다. 스트릿 뷰를 이용, 가야 할 길을 미리 화상으로 시뮬레이션 해 보며 사전에 지형을 익혀두는 것도 현지 적응에 큰 도움이 된다. 여행자들에게 구글맵은 축복 그 차체다. 일단 샌프란시스코부터 시작하여 가까운 요세미티, LA를 거쳐 그랜드 써클을 반시계 방향으로 돌면서 두루 섭렵하고 라스베이거스에서 피날레를 장식하는 일정이다. 일곱 곳의 국립공원, 1곳의 자치구역, 3개의 도시 외 도로 주변의 각종 볼거리 등이 포함된 "종합편성"판이라고나 할까.

 

       계획 수립 과정에서 "미국자동차투어" 사이트를 알게 되었는데, 이 곳의 자료들이 큰 도움이 되었다. 미국 자동차 투어에 관한 한, 가장 핵심적이고 생생한 자료들이 집대성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회원들의 각종 질문이나 조언 요청에 정말 성심 성의껏 답변을 달아 주는 운영진의 전문성과 배려심에 깊은 감동이 느껴질 정도이다. 또한 회원들이 등록한 각종 여행기는 매우 좋은 레퍼런스가 된다. 내 경우 가입은 하였지만 구태여 질문글을 쓸 필요까진 없었다. 운영진이 올려 주는 정보, 회원 여행기, 회원들의 질의 및 운영진의 응답 글을 훑어보면서 내가 가졌던 궁금증을 대부분 해소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 자동차여행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참조해야 할 곳으로 생각한다. 사이트 주소는 : http://usacartrip.com 이다.

 

      그리하여 나온 일정 계획은 다음과 같다.

 

(2/3)  인천공항 출발, 나리타 거쳐 샌프란시스코(SF) 도착. 렌터가 수령, SF 시내 투어

(2/4)  SF 시내 투어, 오후 요세미티 국립공원 근처 이동

(2/5)  요세미티 투어. 짧은 트레일 코스 걷기. 오후에 몬터레이로 이동

(2/6)  몬트레이-빅써-모로베이-피스모비치로 이어지는 캘리포니아 해안도로(Pacific Coast Highway No.1)를 따라 LA행 및 LA 야경 투어

(2/7)  LA 시내투어 및 저녁에 팜 스프링스로 이동

(2/8)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 관람 및 세도나 이동

(2/9)  세도나 지역 탐방 및 그랜드 캐니언 이동, 일몰 감상

(2/10) 그랜드 캐니언 일출 감상 및 어퍼 앤틀롭 캐니언, 호스슈 벤드 관람 및 모뉴먼트 밸리지역 이동 및  일몰 감상

(2/11) 모뉴먼트 밸리 투어 후 모앱으로 이동, 아치스 캐니언 관람 후 브라이스 캐니언 근처 이동

(2/12) 오전 브라이스 캐니언, 오후 자이언 국립공원 관람 후 가까운 도시로 이동

(2/13) 라스베이거스 이동, 도시 투어 및 카지노 체험, 쇼 관람

(2/14) 데쓰밸리 투어, 라스베이거스 복귀, 렌터카 반납,

(2/15,16) 라스베가스-샌프란시스코 거쳐 인천공항 귀국





 

      상기 일정을 바탕으로 세부 일정을 작성하였다. 동선 주변의 볼거리, 각 목적지에 대한 여행정보, 숙박 장소, 호텔 예약 등은 아이들에게 숙제로 주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가족들의 피로도를 고려하지 않은, 의욕이 앞선 다소 무리한 계획이었지만, 두어 군데만 제외하면 대체로 이 일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시나리오대로 여행을 잘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계획과 달라진 일정은 당초 1박 예정이었던 LA의 일정을 하루 연장하여 이틀로 하고 대신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과 세도나를 포기하였는데, 이는 가족들의 초기 시차 부적응과 장거리 이동에 때른 피로도를 감안한 것이다. 또한 마지막 날 계획된 데스밸리 투어를 취소하고 그냥 라스베이거스에 눌러 앉았는데, 이 또한 오랜 이동에 지친 가족들의 강력한 요청에 의한 것이었다. 

 

      이동 거리와 소요 시간 등은 구글맵스에서 산출된 수치에 약간의 20%~30%여유시간을 더해 정하였고, 매일 아침 8시 출발에 늦어도 밤 7시 이전에 숙소에 도착하는것을 원칙으로 하였는데 실제 실행해 보니 늘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였다. 우선 출발부터 한시간 정도는 지연되기 일쑤고, 들른 각각의 여행지에서 이 곳 저 곳 둘러보고 포인트마다 사진찍고, 비지터스 센터나 길거리 기념품 가게에서 구경하다 보면 계획했던 시간을 훌쩍 초과하기가 다반사였다. 그렇다고 패키지 투어처럼 깃발 들고 양떼 몰듯 이동을 강제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그냥 실컷 즐기게 내버려 두는 쪽을 택했다. 이런 게 자동차 투어의 묘미 아니겠나?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아쉬웠던 점은, 운전이 밤 늦은 시간까지 이어져서 미국 시골 국도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하기사, 낯 시간 동안 이동할 때도 처음엔 차창 밖에 전개되는 이국적인 풍경에 눈을 떼지 못하다가 비슷한 풍광이 계속되니 식상한지 그냥 잠에 곯아 떨어지고 말더라.

 

 

2. 준비

 

1) 예산

 

      항상 돈이 가장 큰 문제다. 처음부터 비용 최소화를 지향하였고, 총 비용은 1000만원을 초과하지 않는 것을 목표로 계획을 수립하였다. (마친 후 정산해 보니 약간 초과) 이를 위한 전략으로는,

     - 저가 항공 이용 : 항공료가 총 비용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바, 서비스의 질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저렴한 항공편을 이용한다.

     - 쇼핑 자제 : 목적이 쇼핑이 아닌 여행인 만큼 목적 외 비용 지출의 최소화를 강조. 다행히 마눌님께서 워낙 알뜰형이라 지름신이 강림할 가능성이 희박하여 그리 염려는 하지 않았다.

     - 식비의 최소화 : 매끼 현지 식당에서 사 먹는다면 식비 폭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음식값 외에 10% 이상의 세금, 여기에 또 10~15%의 팁이 추가되니... 게다가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아 고생하는 것은 옵션. 따라서 가급적 식사는 자체 해결하기로 하였다. 밑반찬을 한국에서 준비하여 가고 현지에서 쌀과 취사도구를 구입해서 해결하되 지나친 궁상은 떨지 않기로 한다. 식도락 또한 놓칠 수 없는 여행의 참 맛 아닌가?

     - 숙박비의 최소화 : 이번 여행에서의 호텔은 이동 중 잠깐 잠만 자는 개념이니 구태여 안락함과 럭셔리함을 추구할 필요는 없다. 따라서 중/저가 호텔 중 가격이 저렴하고 사용자의 피드백이 좋은 곳으로 선택 하여 비용을 최소화하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君子는 食無求飽하며 居無求安하며, 敏於事...라 "는 공자님 말씀이 우리의 여행 컨셉에 딱 부합하는 말이렸다! ㅎㅎ

    

2) 항공권 구입

 

      항공권은 최소 3개월 정도의 여유를 두고 구하는 것이 좋다고 하나 우리에겐 2주일의 여유 밖에 없었다. 국 내외 할인항공권 사이트를 비교하면서 중간 기착 횟수가 적고 환승 대기시간이 짧으면서 우리 일정과 최대한 잘 매치되는 조건으로 검색한 결과, onetravel.com을 통하여 유나이티드 에어라인편으로 결정하였다. 2월 3일 아시아나편으로 10:34 인천 출발하여, 나리타에서 2시간 30분 대기 후 유나이티드 항공으로 갈아 타고 샌프란시스코에 오전 11:30 도착하는 편이었는데 샌프란시스코에 일찍 도착할 수록 유리한 점이 많았고,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귀국편이 샌프란시스코-인천 직항이며, 아시아나와 코드를 쉐어한다는 점이었다. 또한 일정이 2월 3일(월) 출발, 2월 16일(일) 도착으로 내 휴가 일정과 정확히 일치하였던 것이다. 가격은 세금 포함 4명이 $4,564($1,141/인)에 예약사이트 수수료 $47.80, 좌석배정 수수료 $112.00 포함 총 $4,723.80이었는데, 이는 매우 저렴하진 않지만 스탑 오버가 최소화된 점을 고려하면 합리적인 것으로 판단하였다. 여유기간이 더 있었다면 더욱 저렴한 편을 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3) 여권 만료기간 확인 및 미국 비자 면제 신청

 

      여권은 최소 6개월의 만료기간이 남아 있어야 한다. 우리 가족은 모두 전자여권이어서 "미국 전자여행허가제(ESTA)" 사이트에 접속하여 비자면제 신청을 하였다. 수수료는 1인당 $14.14로서, 신용카드로 결제하면 된다. 사이트 주소는 : https://esta.cbp.dhs.gov/esta/application.html?execution=e1s1 이다. 과거 비국 비자를 받으려면 서울에 있는 미 대사관을 직접 방문하여 인터뷰를 해야 했는데, 그 시절에 비하면 우리의 국력 신장이 피부로 느껴진다.

 

4) 렌터카 예약

 

      샌프란시스코 픽업, 라스베이거스 리턴, 12일간 사용 조건으로 여러 렌터카 예약 서비스를 비교한 결과  중 rentalcars.com이 가장 저렴하였으나 결국 허츠사(Hertz.co.kr)를 선택하였다. 한국 허츠 사이트를 통해 "Hertz Gold Plus Rewards" 회원으로 가입하면 15%의 DC에, 아시아나 항공마일리지 적립 혜택이 있었고,  더우기 허츠사는 거의 신차를 배정한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운반해야 할 짐이 많은데다가 오프로드 주행 필요성 및 강설, 결빙 등으로 인한 주행 안전성 등을 고려, 4륜 구동 풀 사이즈 SUV 차종을 선택하였고, 포드의 익스플로러가 대표 차종이었다. 실제로는 동급인 닛산의 패스파인더(Pathfinder)로 배정받았다.

 

5) 호텔 예약

 

      도착 첫 날과 숙박시설에 선택의 여지가 없는 모뉴먼트 밸리의 호텔만 한국에서 사전 예약했고 나머진 현지 스케줄에 따라 그 때 그 때 예약 또는 현장 구매하기로 했다. 계획 자체가 유동적이어서 중도에 얼마든지 일정이 바뀔 수도 있으니 사전 예약하면 취소 연락, 위약금의 발생 등으로 오히려 불편할 수도 있고, 때가 때인만큼 비수기여서 숙소를 구할 수 없을 가능성은 거의 없으리라는 것이 "미국자동차여행" 사이트 전문가의 조언이었다. 실제 여행 기간동안 예약 없이 숙소를 구하는 데는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따라서 위 두 곳을 제외한 대부분의 숙소는 전날 혹은 당일 아침 와이파이가 제공되는 호텔 혹은 이동 중 스마트폰을 통해 예약하였고, 몇 곳은 아예 예약 없이 즉석 방문하여 투숙하였다. 예약은 주로 hotesl.com, booking.com, wyndham.com, hotwire.com 등의 서비스를 비교하여 이용하였다.

 

6) 내비게이션

 

      내비게이션의 도움 없이 미국의 그 드넓은 지역을 여행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것도 초행길임에랴! 렌트하면서 옵션으로 내비를 빌릴 수 있으나 기간이 일주일이 넘는다면 임대료가 내비게이션 가격을 초과한다. 배보다 배꼽이 커지는 셈이다. 나는 타이밍 적절하게도 "미국자동차여행" 사이트에서 중고 내비게이션을 12만원에 구입하였다. 귀국 후 비슷한 가격에 되팔 수 있으니 결국 공짜인 셈이다. 중고를 구하기가 어렵다면 amazon.com 등의 사이트를 통하여 미국 내비게이션 시스템을 미리 구입해 두면 좋을 것이다. 중고 내비(Garmin Nuvi 2595LMT모델)는 수령 후 출발 전날, 제조사 홈페이지에 접속하여 맵 데이터를 최신으로 업데이트 해 두었다. 북미 전용이지만 한국어 메뉴도 지원되고 음성 안내도 한국어로 해 주어서 사용상의 불편함은 거의 없었다.

 

7) 국제운전면허증

 

      미국 내의 운전을 위해서는 국제운전면허증을 준비해야 한다. 운전면허증과 여권용 사진 1장을 지참하여 가까운 경찰서로 가면 발급해 준다. 그런데 국제운전면허증은 "면허(License)" 라기보다도 "허가(Permit)"의 개념이기 때문에 국제면허증과 더불어 한국 운전면허증도 지참해야 한다. 한국면허증 미 제시 시 렌트카 빌리는 것이 거부될 수도 있다.

 

8) 국립공원 입장권

 

      미국의 국립공원은 승객 수와 무관하게 차량 1대당 입장료를 부과한다. 물론 나홀로 여행시에는 1인 입장권을 살 수도 있다. 차량 입장료는 공원에 따라서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25 수준인데, 연간 입장권(Annual Pass)을 $80에 팔고 있어 이를 구입하면 비용을 아낄 수 있다. 연간 입장권은 각 국립공원 입구 매표소에서 구입할 수 있으며 카드엔 두 개의 서명란이 있어 두 사람이 연간 사용 가능하다. 나는 위 내비게이션을 구입하면서, 한쪽 서명란이 비어있는 입장권까지 중고(?)로 함께 구입(4만원)하였다. 빈 서명란에 본인이 서명해서 사용한다. 국립공원 입장 시 게이트에 애뉴얼 패스와 여권을 제시해야 하는데, 여권의 서명과 애뉴얼 패스 카드의 서명이 일치해야 한다. 요세미티($25), 그랜드캐니언($25), 브라이스캐니언($25), 자이언($25), 아치스($10) 도합 $110을 4만원에 해결했으니 $70 정도를 절약한 셈이다.

 

9) 식량 준비(한국)

 

      밑반찬은 국물이 발생하지 않는 것으로 준비했다. 멸치 볶음 2종, 오징어채 무침을 만들고, 조미 김, 냉동건조 즉석 북어국/미역국/된장국 몇 개, 컵라면 몇 개(알맹이만 꺼내어 집팩에 포장하고 용기는 버리면 부피가 대폭 줄어든다)를 마트에서 조달했다. 생김치는 발효 진행에 따라 국물 누출, 악취 진동, 폭발 등의 위험이 있으므로 기름에 볶아 볶음 김치를 만들어 밀폐 용기에 담았다. 결과적으로 매우 잘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차량 이동 중의 군것질 거리로 오징어와 쥐포, 땅콩도 챙겼다. 특히 오징어와 쥐포는 긴 이동 도중 심심풀이와 더불어  뭔가 "찝찌름한" 맛에 대한 그리움을 해소하는데 큰 역할을 해 주었다. 미국 입국시 세관 신고는 별도로 하지 않았고, 통관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

     

10) 취사도구 및 식량 조달(현지)

 

      샌프란시스코 도착 후 이동 중에 가까운 코스트코를 내비게이션에서 찾아 현지 보급을 하였다. 한국에서 만든 코스트코 회원권은 국제적으로 통용된다. 우선 $29짜리 전기 밥솥을 골랐고, 쌀은 칼로스 브랜드의 자포니카種 쌀로 구입했다. 펄펄 날아다니는 길쭉한 동남아 품종(인디카種)을 잘못 구입하면 대략 난감이니 잘 살펴 사야 한다. 캘리포니아 쌀밥은 우리네 쌀밥과 맛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가볍고 얇은 전자레인지용 밀폐용기(반그릇 및 국그릇용), 숟가락, 오렌지 1박스, 포도, 생수 1박스, 맥주, 기타 과자부스러기 등도 장만했다. 밥솥은 여행 마지막 날 미련없이 버리고 왔다.

 

11) 여행자 보험

 

      인터넷을 통하여 해외 여행자보험에 가입하였다. 연령별로 보험료 차이가 있는데, 4명 합 17만원 정도 소요되었다. 

 

12) 옷 준비

 

      준비에 가장 실패한 것이 옷이었다. 쓸 데 없이 이것 저것 잔뜩 챙겨 갔으나 결과적으로 절반도 입어보지 못하고 그대로 가져 왔는데, 부피 때문에 여행 내내 성가진 짐만 되었다. 일인당 두터운 방한 외투(덕다운 패딩)하나, 춘추용 점퍼 하나, 셔츠나 스웨터 2~3개, 바지 2~3개 외 3~4일치의 속옷과 양말로 충분할 듯하다. 속옷이나 양말은 전날 샤워하면서 함께 빨아 목욕 타월 등으로 물기를 꼭 짜서 취침 도중 적당한 곳에 널어놓으니 대부분 잘 말랐고, 미처 마르지 않은 빨래는 이동 도중 차 내의 적당한 위치에 두면 금방 건조된다. 방한 패딩도 입을 일이 몇 번 되지 않으므로 진공 비닐 팩에 넣고 압축하여 부피를 최소화하여 운반하다가 필요시 꺼내 입고 또 압축 보관하면 편리하다. 진공 비닐 팩은 동네 마트에 2000원 정도에 구입할 수 있다.

 

13) 통신 및 충전 장비

 

      국제 로밍 비용이 제법 비싸기 때문에 미국에서 쓸 선불 유심칩을 출발 전 미리 구입해 두었다. 구입한 것은 AT&T 통신망을 쓰고 1G까지의 데이터통신이 지원되는 56,000원짜리 h2o 마이크로 유심 칩이다. 미국 도착 즉시 폰의 기존 유심칩을 빼 내고 이것을 꽃았는데 프란시스코나 LA 도심에서 불통지역이 많아 심히 불편하였다. 우습게도 애리조나, 유타, 네바다주의 시골에서는 오히려 잘 터졌고, 여행기간 중 호텔 예약, 여행지 날씨나 도로정보 확인 뿐 아니라 아이들의 대학 신학기 수강 신청도 이걸로 해결했다. 나머지 가족들의 모든 스마트폰은 불의의 요금폭탄을 피하기 위하여 데이터 네트워크 접속 차단을 설정하였다. 대신 필요할 때마다 내 전화기에 테더링/핫스팟 설정을 하여 데이터 통신을 공유함으로써 가족들이 카카오톡, 페이스북 등을 통하여 국내 지인과 연락할 수 있도록 하였다.

 

      스마트폰이 없으면 하루도 못사는 가족들을 위해서 폰 충전에 대한 대비도 해야 했다. 음성 통화는 하지 않더라도 게임, 음악 감상과 더불어 가는 곳마다 폰으로 사진은 찍어야 하니. 또한 와이파이가 터지는 곳에서는 한국의 친구들과 열심히 카톡질도 해야 하니. 4대의 스마트폰 외에 DSLR용 카메라 배터리 충전기 및 노트북까지 최소 6대의 장비를 연결해야 하기 때문에 좋은 방법을 궁리하다가 무식하지만 내 방에서 쓰던 6구짜리 멀티탭을 그대로 챙겨 가기로 했다. 물론 멀티탭에 쓸 110V-220V 변환 젠더 플러그도 포함. 스마트폰 충전기는 모든 각자 개인용 충전기를 가져갔고, 어미돼지가 새끼들에게 젖을 물리듯 밤마다 멀티탭에 6개의 충전기가 주렁주렁 꽃히는 진풍경을 연출하였다. 


 

멀티탭(6구) 및 110V-220V 플러그 변환 젠더


 


14) 호텔이나 길거리 와이파이 서비스

 

      대부분의 호텔에서 와이파이 무료 접속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접속 아이디와 비밀번호는 체크인 시 따로 제공한다. 다만 모뉴먼트 밸리의 더 뷰호텔에선 객실 내 접속은 안되고 로비에 나와서 접속하는 것으로 돼 있는데 우리 객실은 로비와 가까운 탓인지 객실 내에서도 접속이 가능하였다. 라스베이거스에서의 호텔은 기기 1대에 대해서만 무료 접속 서비스를 제공하였고 추가 장비에 대해서는 별도의 요금을 받고 있어 내 폰에 테더링을 설정하여 공유하는 방법으로 해결했다. 속도는 국내 환경과 비교가 되지 않게 느리다. 그러나 웹 브라우징, 카톡 교신, 사진 전송 등을 하는데 큰 불편함은 없었다. 객실에서 영화 등 대용량 화일의 다운로드를 자제해 달라는 호소문이 붙어 있는 곳도 있었다. 이동 중 3G 통신이 되지 않는곳에서 인터넷 접속이 필요한 경우는 주로 패스트푸드점 주변을 이용하였다. 스타벅스나 인앤아웃, 맥도날드 등 주변에 접근하면 대부분 신호가 잡히고 비밀번호가 걸려있지 않아 무료로 와이파이를 이용할 수 있었다.

 

15) 환전 및 의약품 및 기타

 

      현금은 약 1500달러 정도를 환전하였고, 팁 등에 사용할 수 있도록 1$ 소액권 지폐를 많이 준비하였다. 해열제 소화제, 소염제(안티푸라민) 외 피로회복용으로 약국에서 우루사를 사 갔다. 우루사는 모두가 매 끼마다 1알씩 복용하도록 했다. 실제 피로회복에 효험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심리적 효과는 분명 있었다고 생각한다. 호텔에서 어메니티 품목으로 제공하는 샴푸나 비누, 로션 등의 퀄리티가 형편없이 싸구려틱한 것이 많기 때문에 치솔, 치약, 로션 등은 미리 준비하는게 좋다.  

 

   (이상 계획 및 준비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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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아 잠깐 둘러보기 (#2/2)

 

 


《길거리 스냅》

 

 

 

 

 


▲ 공산당 신 청사 왼편 이면도로. 

대부분의 도로가 시멘트나 아스팔트가 아닌 돌 블럭으로 포장되어 있다.






 


▲ 소피아 대학 근처의 공중전화 부스







 

 

▲ 지하철역 입구의 낙서








▲소피아대학교 근처 젊음의 거리






 

 

▲ 지하철역 입구 찌라시







 


▲ 길거리






 

 

▲ 멋진 벽화. 레스토랑을 겸한 클럽일듯. 






 

 

▲ 회랑







 

▲ 뒷골목 구석구석까지 전차는 다니고








▲ 시나고그 이면도로









▲ 대형 아케이드와 모스크와 소피아의 아가씨들









▲ 음수대










▲ 아마도 학교인듯








▲ 일반 가정집인듯 한데 대문 입구에 저런 비문이 ...








▲ 대통령 집무실 앞엔 수문장 교대식이 막 끝났다.








▲ 교대를 마치고 정위치에 자리잡은 위병









▲ 구 공산당사 앞의 데모대열


지난 봄에 선출된 내각의 부패(?)에 대한 불신임으로 

총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는데...








▲ 시위라기보다도 축제를 즐기는 분위기에 더 가깝다.

부부젤라를 앞세워 ...








▲ 데모용품 장사도 덩달이 전을 펼쳤다









▲경찰은 지들끼리 놀고 있다. 진압은 별로 관심이 없는듯.








▲ 아무리 데모 와중에도 할 것은 꼭 한다.


급히 찍느라 흔들리는 바람에 

자동으로 초상권 보호 처리가 되었다. --; 타이밍도 늦었고.


다시 한번 더 뽀뽀를 해 달라고 부탁하려다가 참았다.






《벼룩시장》




▲ 공원 근처의 상설(?) 벼룩시장








▲ 구 공산당 시절의 군/경 제복과 모자 등과







▲ 개털 모피코트(?)도 시장에 나왔다.








▲ 접시를 몇 개 사고 포즈를 부탁하니 흔쾌히 들어주시던 

인상 좋은 노점상 아주머니







▲ 길거리 聖畵 갤러리.

장사에는 관심이 없고 체스 삼매경.









▲ 저 앞에 중딩쯤 돼 보이는 청소년들이 우릴 보더니 

"니 하오!"를 외치길래

한국에서 왔다고 말해주니 거리낌 없이 

"안녕하세요!"로 인사하는구나. 

"반갑습니다"라고 화답해 주니 저들끼리 아주 좋아했다.








▲ 지하 교회 구석의 두 처자








▲ 길거리 까페








▲ 공원









▲ 공원의 시민들








▲ 공원 옆 야외까페에서 불가리아 맥주 한 잔.

한 잔에 약 2천원 정도니 음... 싸다!





《먹을 거리》






▲ 저녁식사를 위해 들렀던 현지 식당.

도심 호수변의 운치있는 식당인데, "Edno Vreme"라는 곳.

 

불가리아식 샐러드다.

토마토, 오이, 샐러리, 고추 등 야채에 채 썬 치즈를 듬뿍 올리고

드레싱을 뿌린 것인데 베리 굿!

방금 구워 낸 빵 또한 맛이 환상인데 배가 불러 1/4도 못먹고 남겼다.








▲ 메인 요리로 내가 주문한 양고기 스테이크와







▲ K 부장이 주문한 치킨 스테이크!


누린내가 거의 없고... 너무도 입맛에 잘 맞는다!








▲ 와인까지 한 병 주문하여 배 터지도록 먹고도 많이 남겼다.

음식값은 토털 6만원 약간 넘게 나왔다!







▲ 다음 날 현지 회사 주재원들이 우리를 위해 저녁을 쏘았다.

시내 한복판의 "빅토리아"라는 레스토랑!










▲ 불가리아 전통酒 "라까야"를 맛보기로 했다.

라끼야는 각종 과일주를 증류해서 만드는 아주 도수 높은 술인데

우리가 마신 "부르가스 스페셜 셀렉션"은 알코올 함량이 40%였고

60%짜리도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막걸리처럼 지방에 따라, 또는 집안 전통에 따라

조그금씩 제법도 다르고 맛도 다르다고 하는데


그냥 마셔도 되고, 얼음 위에 온더락스로 마셔도 좋고, 

심지어는 폭탄주로 마셔도 좋다고 한다.


우린 잡것(?)을 섞지 않고

냉동실에 차게 보관한 오리지널 라끼야의 순수한 맛을 보기로 한다.






 


▲ 냉동 보관하면 얼지 않는 대신 약간 젤 상태로 변해 

점성이 느껴진다.

색깔은 화이트와인의 색에 가깝다.








▲  한 모금 입에 머금으니 혀 끝에서 장미향이 은은하게 감도는 부르가스 라끼야!

강하지만 부드럽고, 약간 달착지근한 것 같기도 하고, 

독주 특유의 쓴 맛도 가지고 있고, ...


금세 알딸딸 취기가 올라온다,








▲ "난"과 아이스크림








▲ 오징어 튀김과 비슷한 요리






 


▲ 베이컨을 올린 송이버섯 버터구이








▲ 양고기 스테이크와 감자튀김


어제 갔던 식당에 비해서는 맛 면에서

살짝 한 수 아래라고 평가하고 싶다.

그래도 내 입에는 착착 달라붙더라. 








▲ 불가리아 맥주 "자고르카"로 마무리 입가심하다.








▲ 저 모든 것을 몽땅 합하여 131.8레바.

환산하여 약 65유로, 원화로 계산한다면 10만원 정도?


4명이 배불리 먹고 취하도록 마시고 저 정도면 많이 싼 것 아닌가?









▲ 뉘엿뉘엿 지는 햇살 비낀 소피아 거리









▲ 뒷골목





《소피아의 밤》







▲ 소피아 거리에 밤이 들다








▲ 화려하진 않아도 운치있는 정경이 연출되었다







▲ 옷가게








▲ 인적이 드물어진 지하철 역

지금 시각 22시32분








▲ 회랑의 밤








▲ 대통령 집무실 근처 게오르기 성당에서 만난 여행객








▲ 동양인을 처음보는지, 함께 사진 찍을 수 있냐기에

흔쾌히 모델이 돼 주었다.

우크라이나의 키예프에서 놀러 왔단다.

내 카메라로도 찍고, 나중 이 사진을 그들에게 이메일로 보내주기로 했다.


혹시 우크라이나에 놀러오게 되면 연락해 달라고 한다. 

기약은 없지만 그러기로 하고 헤어지다.








▲ 밤 공원.  치안이 매우 잘 유지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 잔디밭의 견공








▲ 뉘신지? 새똥을 머리에 둘러쓰고 계신다.








▲ 비가 잠시 오다가 그쳤다








▲ 이내 하늘에는 다시 별이 총총하고

공산당사 첨탑 위엔 불가리아 국기가 나부낀다.








▲ 어딜 가나 국기에는 조명을 늘 환하게 밝히더라.








▲ 전력 부족으로 대체로 도시는 어두웠지만

이런 문화재엔 아낌없이 조명을 밝힌다.








▲ 알럽 쏘피야~~







▲ 귀가를 서두르는 지하철의 여인






《소피아 길거리 스냅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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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아 잠깐 둘러보기 #1/2》

 


 


업무차 불가리아의 소피아를 잠시 다녀오다.


관광 목적이 아니라 많은 곳을 가 보진 못했지만,

소피아의 볼거리가 비교적 도심에 집중되어 있는데다가

섬머타임을 실시하고 있는 덕분에 하루 일과 후에도 대낮이라

시간적으로 약간의 여유를 벌 수 있어서 

겉핥기나마 발품을 팔아 이 곳 저 곳을 둘러보며

사진도 몇 장 찍어 보았다.


불가리아는 동유럽 중에서도 비교적 극동부에 위치해 있어 

서쪽으로는 세르비아와 마케도니아, 북쪽으로는 루마니아,

남쪽으로는 그리스와 터키, 동쪽으로는 흑해와 맞닿고 있는 탓에

EU 공동체 중에서도 변방 중의 변방이다.


유럽 문화사의 중심에서 비켜나 있을 수밖에 없었고

오랫동안 외침(특히 오스만투르크)에 시달려 왔던 탓에

약소국가로서 고난의 역사를 이어 온 한반도를 생각나게 한다.


팍스 로마나(Pax Romana)의 주류 무대였던 화려한 서유럽과

신성로마제국의 역사와 함께 해 온 오스트리아-독일 제국의

인근 국가들 비해 볼 만한 것이 적다는 이유로 

휴가철 그 흔한 "동유럽 7개국 투어"등등 여행 상품의 대상에도 끼지 못하는

그런 아웃사이더가 불가리아를 포함한 그 인근국인 것이다.


그러나, 오랜 터키의 지배에도 불구하고

불가리아인의 영토와 문화적 정체성을 끝끝내 지켜 낸 데 대하여 

오늘날의 불가리아인들은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한다.

 

그 동안 관심 밖이었던 불가리아의 역사를 훑어보면서

동병상련이랄까, 일종의 연민을 느낀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인천을 출발, 터키 이스탄불의 아타튀르크 공항에서

소피아행 국제선으로 환승하여 불가리아로 출발한다.


창 밖으로 이스탄불의 아타튀르크 올림픽 스타디움과

에게海에 연결된 마르마라海가 보인다.








1시간 30분 비행하여 소피아 공항에 도착했다.

멀리 소피아의 靈山, 해발 2290m 비토샤 산이 보인다.









공항 국기게양대의 소피아 국기, EU旗, 소피아 공항旗가

이방인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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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아에 머무르는 나흘동안, 일과 후 짬짬이 둘러 본 

소피아의 거리와 사람과 음식과 주요 명소, 그리고 자연의 모습을 

두서 없이 올려본다.




《소피아의 주요 명소》







일과 후 호텔에 객실에 짐을 두고 간편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나와서

가장 먼저 만났던 교회다.

이 낡은 건물은 동방정교의 불가리아판이라 할 수 있는

불가리아 정교 회당이다. 








정교회당은 지하에 위치한 경우가 많은데,

과거 오스만 지배 시기에, 터키의 지배자들은 

이슬람 교회를 세우고, 이슬람으로의 개종을 권장했지만, 

이슬람 특유의 "관용의 정신" 답게

개종을 강요하지도, 교회를 파괴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다만, 알게 모르게 규제가 가해졌기 때문에

규모가 화려하게 커지지 않고 소박한 모습을 유지했고,

지배계층이었던 이슬람 세력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이렇게 지하에서 작은 교회를 세워 조용히 신앙활동을 하였다.







회당 안으로 들어가 보니 엄연히 살아 숨쉬는 교회였다!

그저 형해(形骸)화 된 유적인줄로만 알았는데.


회당 내부에는 촛불, 성화 등 여러 가지 예배용 성물들이 잘 갖추어져 있고 

관광객들이 기념품을 사는 형식으로 기부를 할 수 있도록 

작은 성물 가게가 있다.


매우 어두운 가운데 정교회 특유의 장식과

촛불을 밝혀 놓으니 경건한 마음이 절로 우러나는 것 같다.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건물이다.

전통 군 제복을 입은 위병이 근무를 서고 있다.












왼쪽은 현대식 아케이드, 정면의 건물은 공산당 신청사,

지하엔 발굴하다가 중단한 유적이 그대로 있다.

우측은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건물이다.









불가리아 국립 극장


예전에 끼릴 문자를 심심풀이로 익혀 두었는데

불가리아어도 타 슬라브 국가와 마찬가지로 끼릴 문자를 사용한다.

뜻은 차치하고, 문자를 읽을 수만 있는 것으로도

시내를 돌아다니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위 현판에 있는문자는

"НАРОДЕН ТЕАТЬР - ИВАН ВАЭОВ"인데

나로덴 떼아찌르 - 이반 바조프

"나로드"는 러시아어로 "인민, 국민"을 의미하고

(톨스토이나 이문열의 소설에 "나로드니끄"란 단어가 가끔 등장함)

테아찌르는 영어의 씨어터, 즉 극장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건물은 "이반 바조프 인민극장"으로 유추할 수 있다. 


나중에 호텔에서 구글로 "이반 바조프"란 인물을 검색해 보니

1899년도에 교육장관을 역임한 불가리아 민족작가임을 알겠더라.

 장편, 단편소설 뿐 아니라 희곡까지 썼다니

불가리아를 대표하는 국립극장에 그의 이름을 붙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소피아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각종 건축물의 현판, 간판, 표지판 등을

저런식으로 문자를 읽어서 내 나름대로 유추해 짐작하였는데

거의 틀린것이 없더라. ㅎㅎㅎ









좀 더 걸어가니 낡은 교회풍의 건물에 헌화단이 있고

꺼지지 않는 불이 비문에 그을음을 잔뜩 입혀 놓았다.

가까이 접근해 보니







БЪЛГАРИЙО ЗА ТЕБЕ ТЕ УМРЯХА. 

ЕДНА БЕ ТИ ДОСТОЙНА ЗАРАД ТЯХ

И  ТЕ ТЕБ ДОСТОЙНИ МАЙКО БЯХА!

 

위와 같은 비문이 새겨져 있는데
대관절 무슨 의미일까?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여 나중 호텔로 돌아 와 

저 불가리아어를 떠듬떠듬 자판기에서 찾아 입력하고

구글 번역기에 넣어 돌려보니


뜻을 짐작하기 어려운 4차원(?) 번역문이 나오는데

대강 의미를 꿰맞춰보니 이런 뜻인것 같다.


불가리아여, 그들은 당신을 위해 죽었노라.

당신은 그들에게 (지켜야 할) 가치였고,

또한 당신은 그들에게 (지켜야 할) 어머니였노라!


아마도 불가리아를 지켜 낸 무명 열사나

애국 지사들에 대한 추모의 글인듯.


좀 더 검색해 보니

위에서 언급한 이반 바조프가 불가리아 순국 지사에게 바치는

 긴 弔詩 중의 일부인 것 같다.


이런 식으로 퍼즐 맞추듯 소피아를 유추해서

나름대로 재구성해 보는것도 

꽤 재미있는 일이다!











소피아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알렉산데르 네스키 대성당" 광장에 도착하였다.

성당 입구에 불가리아어 외 별도로 영문으로 된 안내판이 있어서

유래를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이 성당은 발칸 반도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화려함을 자랑한다.

황금빛 돔 지붕과 건물 전체가 웅장한 느낌을 주는 네오 비잔틴 양식이다.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기 위하여

1877년부터 1878년 있었던 전투에서 싸우다 죽어 간 

수천명의 러시아, 불가리아, 우크라이나, 몰도바, 핀랜드, 루마니아 군인들을

추모하기 위하여 전체 불가리아 국민들의 노력을 모아

여기에 알렉산데르 넵스키 원로 대성당을 짓다" 


라고 안내문에 씌여 있다.








너무나 아름다운 건물이어서 한참이나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내부의 채광창.

서유럽의 여느 성당 못지 않게 스케일이 크고 화려한 모습이었지만

성당 내부는 사진 촬영 금지라, 눈으로 보는것으로만 만족해야 했다. 









공원에서도 황금색 지붕이 눈길을 끈다.










"나로드나 비블리오떼까 끼릴 이 메토디"

끼릴-메토디 국립 도서관.


끼릴은 800년대 중반, 비잔티움 제국에서 활약한 신학자이자 선교사였

대 모라비아의 대주교였다.

동생인 선교사 메토디와 함께 슬라브족 선교사업에 나서

슬라브 민족을 기독교화 하는데 큰 업적을 남겼고,

특히 끼릴은 그리스 문자를 변형하여 끼릴 문자를 만들어

슬라브 국가들에게 보급하여 지금의 슬라브를 대표하는 문자가 되었다.


사후 동생과 함께 로마카톨릭과 동방정교 모두에서 성인으로 추대되어

성 끼릴리우스, 성 메토디우스로 불린다고 한다.


끼릴 문자를 창제(엄밀히 말하자면 변용), 보급한 분의 이름을 딴 도서관이니

우리나라로 치면 "세종대왕 국립 도서관" 정도가 될까?








국회의사당 









성 니꼴라이 성당.

러시아 정교회당인데 박물관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오스만 지배 시기에 건립된 이슬람 예배당(모스크)이며

이슬람 세력이 물러간 이후 모스크로서의 기능은 상실하였다.
















불가리아를 대표하는 대학인 "소피아대학교"








온천장 건물









소피아 공대(?)








소피아의 수호여신 동상.


원래 이 자리엔 레닌의 동상이 서 있었는데

공산주의 몰락 후 철거되고, 대신

소피아 수호 여신상을 만들어 세워놓았다.




 






여신이 소피아 도심을 지켜보고 있다.


여신의 얼굴은 가상 인물로, 불가리아 역대 대표인물의 얼굴을 조합하여

제작하였다고 한다.









소련 군 주둔 기념 조형물


소련군에 대해 아픈 역사의 기억을 안고 있는 우리로서는

"소련군"이라는 말만 들어도 아드레날린이 분비되기 시작하지만

불가리아에서 소련군은 해방의 은인쯤으로 인식된다.


아주 오래 전엔 터키의 지배로부터 해방시켜주는 주역을 담당하였고

20세기에 와서는 히틀러의 나치 독일군을 몰아내어 주었다.


특히 2차대전 당시 군수품 공장을 불가리아에 세워

불가리아의 경제가 전쟁특수로 흥하게 해 주었으니.








국회 건물 앞엔 농성자들의 텐트가 질서정연하게 설치되어 있고

텐트의 주인들은 모두 공산당사 앞으로 농성하러 떠난 상태다.










호텔 근처 뒷골목 산책길에서 만난 유대교의 예배당, 시나고그(Sinagogue)









법원 건물








《이상 1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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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 둘러보기 - 《제5일 : 부다페스트 및 귀국》




드디어 사실상의 마지막날이다.

오늘 일정은

빈의 호텔을 출발, 3시간 30분 가량 남행하여 헝가리로 입국,

부다페스트 시내 투어를 마친 후

마지막 코스로, 저녁에 유럽 3대 야경 중의 하나라는 다뉴브강을

유람선으로 관람하는 계획이 준비되어 있다.


다뉴브강 야경 유람 후 숙소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 공항으로 직행, 모스크바를 거쳐

인천공항으로 귀국한다. 


주마간산도 이런 주마간산은 없을것이다.

유난히 호기심 많은 내 성격상, 언제 다시 올지 기약할 수 없는 이 낯선 곳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보고, 더 느끼고, 더 기억속에 담아두려는 욕심을 부리다 보니,

남들보다 두 배, 세 배는 더 많이, 더 멀리, 더 빨리 움직여야 했다.

이렇게 하면서도 행여 일행을 놓쳐 단체 일정 진행에 폐를 끼칠까봐 

늘 단체의 動線을 염두에 두고 또 따로 움직여야 하니

한시도 강박감에서 벗어나 보지 못했던 것같다.

더구나 허벌스럽게 무거운 카메라는 2대씩이나 걸머지고 땡볕을 쏘다녔으니...


이런 경우야말로 

아마 "가장 바람직하지 않은 여행자의 자세"의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


혹 다음에 다시 이 곳을 찾아 올 기회가 있다면

카메라고 뭐고 다 집에 두고

그냥 빈 몸에, 빈 마음으로 홀가분하게 와서 

되도록이면 천천히, 그냥 머리가 아닌 오감으로만 느끼는 

그런 아무 생각없는 여행을 하고싶다.

 

그런 날이 올 것인가?








간밤은 좀 더웠는데 에어컨 시설이 없는 방이라

창문을 열어 두었더니 바깥이 시끄러워 잠을 약간 설쳤다.


왁자지껄 소란한 중국 단체객들 사이에서 좀 불편한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눈이 시리도록 청명한 하늘이 열려 있다. 

공기도 더없이 상쾌하다.


다시 행장을 꾸려 버스에 타고 헝가리를 향해 출발,

거의 산이 없이 구릉 뿐인 창 밖 경치를 감상하며 고속도로를 달린다.









청정에너지 강국의 이미지답게 고속도로변 평원엔 

풍력발전용 터빈이 끝도 없이 늘어 서 있다.

오스트리아는 풍력발전의 원천기술을 보유한 나라이기도 하다.









오스트리아-헝가리 국경에 도착, 국경휴게소에서 잠시 쉬다.









EU로 통합되면서 국경개념은 이제 없어졌다.

과거 국경검문소로 이용되다가 용도폐기된 건물이

뜨거운 햇볕을 피하려는 차량의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다.


헝가리는 한 때 헝가리 제국을 이룰 정도로 강성했던 때가 있었다.

영문 표기 "Hungary"의 "Hun"이 훈족을 뜻하는 것이고, 따라서 

흉노족이 헝가리를 세운 직계 조상이라는 설이 있을 정도로 

동양과의 동질성/유사성이 많아 유럽 속의 동양으로 불리기도 한다.


대부분의 서양인들이 성명을 "이름+성"으로 표기하는데

헝가리는 우리처럼 성을 먼저 표기하는 것이나

날짜도 월/일/년 혹은 일/월/년이 아닌 년/월/일의 순으로

표기하는 점, 이 이외에도

매운 고추를 듬뿍 넣은 뜨거운 내장탕을 즐기는 등등의 유사성으로

극동지방과의 동일 조상설이 떠돌기는 하지만,

증명된 바는 없다고 한다. 

 

헝가리 왕국으로서 강성했던 때가 서기 900년~1200년 정도였고

이후엔 칭기즈칸의 침입으로 파괴되도 하고

또 그 이후엔 오스만투르크에 정복되어 오랫동안 지배를 받기도 하였다.


그 후 오스만투르크가 쇠하면서 1686년 오스트리아에 점령되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 존재하다가

1차대전 이후 비로소 헝가리리는 자주국가로서 독립한다.


2차대전땐 나치에 점령되어 부다페스트의 유대인 6~7만명이 대학살 당했고

2차대전 이후엔 소련의 지원을 받는 사회주의 정부가 수립된다.


1956년엔 헝가리 反蘇 혁명이 일어났으나 소련의 물리적 탄압으로 무산되었다가

(국어교과서에 나왔던, 김춘수 시인의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를 기억해 보시라)

소련 연방 해체 후 90년대에 공산 정권이 몰락하자

비로소 헝가리는 지금의 민주국가로 탈바꿈하였다.

 









휴게소에서 시원한 헝가리 맥주를 하나 사서 맛보다.

쌉쌀한 맛이 나쁘지 않다.









부다페스트가 멀지 않다.








 


부다페스트 시내의 첫 인상.

과거와 현대의 공존과 조화?


부다페스트는 유럽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아름답고 유서깊은 도시이다.

서울이 동서로 흐르는 한강을 두고 강남과 강북으로 나뉘듯

부다페스트는 남북으로 흐르는 다뉴브 강(헝가리어로는 두너:Duna 강)을 두고

강서쪽인 "부다"와 강동쪽인 "페스트"가 합쳐져 현재의 이름이 되었다.

부다는 왕궁과 관청가, 귀족 등 상류층, 지배계층이,

페스트에는 서민들이 거주하였다고 한다.


현재는 신도시격인 페스트지역이 매우 발달하여 

근대에 건립한 관청이나 행정기관, 대학, 대성당, 문화시설 등이

대부분 이 곳이 있다. 

 









중식을 마치고 맨 처음 들른 곳은 페스트 지역의 영웅광장이다.

헝가리 건국 1000년을 기념하여 1896년 건립하였다.


중앙의 기둥 위엔 대천사 가브리엘 동상이 우뚝 서 있고 

양쪽 옆으론 국왕, 장군, 정치가 등 헝가리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근대 지도자 14명의 청동 조각상이 각각 7명씩 늘어 서 있다.









가브리엘 아래 기단에는 각 헝가리 부족을 대표하는 6명의 부족장,

가운데는 부족을 통할하는 머저르족 족장의 기마상이 서 있다. 


외국 외교사절들이 방문하면 위 사진의 석관에 헌화하는 것이

이 나라의 공식 의전 절차라고 한며

헝가리의 국가적 행사는 거의 이 곳에서 거행한다고 한다.








머저르 족장 아르파드와 6명의 부족 족장 기마상









 

광장 양편엔 박물관과 근대미술관이 마주보며 서 있는데,

박물관엔 지금 에곤 쉴레의 작품전이 열리고 있다.









미술관에도 모종의 이벤트가 진행되고 있는 모양이다.









너무도 뜨거운 날씨...

관광객들이 헝가리 족장 대표들이 만들어 준 그늘 밑에서 휴식하고 있다.









다음은 다뉴브강의 그 유명한 "세체니 다리"를 건너

부다지역으로 이동, 부다 왕궁과 마차시 성당, 어부의 요새를 둘러볼 차례다.


위 사진은 부다 지구 언덕으로 진입하는 계단이다.






 


부다 지구 언덕에 올라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것이 마차시 성당이다.

원래의 이름은 성모 마리아 대성당이지만

이 곳의 남탑에 마차시 후냐디(1458-1490) 왕가의 문장과 머리카락이

보관되어 있기 때문에 마치시 성당으로 불린다.


13세시경에 건립된 고딕 양식의 성당인데, 역대 왕들의 대관식이 열렸다고 한다.

보수 공사 중이라 성당 내부 진입이 막혀있어 내부 관찰은 하지 못했다.







오스만투르크와의 전쟁 막바지에 반 터키 신성동맹군과의 전투가 있었는데

동맹군의 포격으로 성당 벽이 무너지면서 원래 봉납되어 오던 성모 마리아상이

터키군 눈 앞에 나타자자 동맹군들의 사기가 충천하여

결국 터키군을 몰아내고 오스만 제국의 통치를 종결지을 수 있었는데,

이 일로 인하여 "성모 마리아의 기적이 있었던 장소"로 불린다고 한다.



 





성당 오른편엔 "어부의 요새"로 불리는 고깔모자 모양의 지붕을 이고 있는

석조 건축물이 있는데, 여기서 내려다 보는 부다페스트 시내 조망이 일품이다.

과거 어시장이 있던 자리여서 "어부의 요새"란 이름이

붙었다는 설이 있다.










<까페에서 본 페스트 지역>







 


이 곳은 과거 왕궁이었으나 왕정 폐지 후 공산 정권이 들어서면서

인민들을 위한 도서관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 곳 내부에서 KBS TV 드라마 "아이리스"를 촬영하였다는데

이 드라마를 본 적이 없어서...








왕궁 내의 오래 된 다리









도서관이 된 왕궁









도서관 건물 내부 광장








현직 대통령 집무실.









헝가리 건국시조 또한 우리의 박혁거세처럼 알에서 탄생하였다.

왼쪽 독수리처럼 생긴 새는 건국 시조를 낳은 전설의 새이고

오른쪽 아름다운 아치는 "승리의 문"이라고 한다.








<왕궁에서 본 다뉴브강과 부다페스트 시내 1>


강 건너 국회의사당이 보인다.








<왕궁에서 본 다뉴브강과 부다페스트 시내 2>









<왕궁에서 본 다뉴브강과 부다페스트 시내 3>










<왕궁에서 본 부다 지역의 언덕>


저 멀리 안테나가 서 있는 언덕은 부다페스트의 최고급 주택가라 함...








2차대전 당시 폭격을 당해 많은 문화재가 파괴되었고

아직도 복원작업이 계속 이루어지고 있으며,

복원 도중에도 계속 새로운 유적이 발굴된다고 한다.









광장 복판엔 "마차시"의 기마상이 있다.









마침 대통령 집무실 위병들이 교대식을 진행하고 있다.









공산권 군인 특유의, 다리를 일직선으로 쭉쭉 뻗어 행진하는

일명 "뻗장다리 보법"이 이채롭다.









<임무 교대>


어느 나라건 수문장 교대식이 

관광객들을 위한 서비스 이벤트로 자리잡는듯 하다.









<대통령 집무실 전경>


경계가 그리 삼엄하지 않아 매우 개방되고 자유로운 느낌이다.







다음 코스는 부다페스트 최고의 전망대로 불리는 겔레르트 언덕이다.







언덕 올라가는 진입로엔 2차 대전때 쓰던 무기가 전시되어 있고

벽에는 독일군과의 치열한 전투 과정에서 생긴 무수한 총탄 자국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다.








언덕 정상에는 양 손에 종려나무 잎을 든 헝가리판 "자유의 여신상"이

구 소련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서 있는데,

2차대전때 헝가리를 도와 피를 흘리며 독일군과 맞서 싸운

소련 병사를 기리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언덕 위 광장









손을 잡고 부다페스트를 내려다보는

"부다페스트의 연인" 







<요새 언덕에서 본 다뉴브강과 부다페스트>


바로 아래의 다리가 오스트리아의 황후을 위해 만든

엘리자베스(일명 씨씨)다리이며


저 멀리보이는 다리가 "영화 글루미 선데이"에 등장하는,

"글루밍 선데이"라는 곡을 듣고서 수많은 사람들이 몸을 던져 자살했다는

 세체니 다리이다.





다음은 다시 페스트 지역으로 이동하여 성 이슈트반 대성당으로 향한다.







헝가리의 초대 국왕 성 이슈트반을 기리기 위해 축조되었다.

1851~1906년 사이에 건축되었으니 비교적 최신 건물이라 할 수 있다.










성당의 전형적 건축양식인 네오 로마네스크 방식으로 지어졌으며

전체 구조가 십자가 형상으로 되어 있고, 중앙에 돔이 있다.









돔의 스테인드 글라스가 유명하며, 

성 이슈트반의 오른쪽 손을 미라로 만들어 보관하고 있다는데,

들어가서 관찰하지 못한 것이 상당히 애석하다.










선상 야경 투어 가는 길, 선착장의 연인









유람선 한 척을 전세내어 갑판의 벤치에 앉아서

다뉴브 강의 물살을 헤치고 천천히 항행한다.

 

해가 져 어둑어둑해질 무렵부터 강상의 다리와 양안의 건축물에

하나 둘 조명이 켜지기 시작하니 

분위기가 급반전하고, 여기저기서 탄성을 지른다.

 

시원한 강바람을 느끼면서 와인이나 맥주를 조금씩 음미하며

느긋하게 양쪽 강안의 밤 풍광을 즐겨야하건만 

현실은 다들 폰카, 디카 등 찍을 수 있는 장비를 몽땅 꺼내 들고

사진이나 동영상 촬영에 혼을 빼앗겨

정작 江上遊의 운치를 맛보는 일은 뒷전이다.







 


무슨 건물이었는지 잊어버렸다 -_-;;;








부다 왕궁









조명에 물든 세체니 다리 너머로

부다 왕궁과 어부의 요새가 보인다.










세체니 다리









부다 왕궁과 성 마차시 성당, 어부의 요새










황금빛으로 물든 국회의사당










얼마 전 다뉴브를 휩쓴 대홍수로 침수되는 바람에

아직 보수공사 중인 국회의사당







이제 동유럽 투어가 끝났다

호텔로 돌아가 다들 귀국 짐을 꾸릴 차례다.




 


이튿날 아침, 숙소 체크아웃 후 바로 공항으로 향했다.

아침 일찍 귀국 비행기에 타자니 어쩐지 허전하고 아쉬운 느낌이 든다.

 

헝가리 국제공항 출국 대기 중.







<동유럽 투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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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 둘러보기 - 《제4일 : 비엔나》








아침에 일어나니 주위가 매우 소란하다.

투숙했던 호텔이 간선도로변의 24시간 운영하는 휴게소와

주유소를 겸한 곳이라 자동차 소음과 이동하는 사람들의 소음이

끊이지 않는다.


어쨌든 호텔 조식을 마치고 다시 버스를 타고 빈으로 이동한다.







 


빈(비엔나)에 가까워지니 교통체증이 발생.

다행히 오래 가진 않았다.








국회의사당이 차창 밖으로 휙 지나간다.










도착하자마자 점심시간이 되었다. 한인식당에서 중식 후

가장 먼저 들른 곳은 빈 新 市廳舍였다.


빈 시청사엔 "빈 필름 페스티발 2013"의 무대가 설치되어 있는데

이 페스티벌은 매년 여름 2달간 매일 저녁에 열린다.

각종 오케스트라 공연, 오페라, 발레, 독주회 등 클래식 음악 뿐 아니라

팝, 재즈, 기타 대중음악 등 다양한 장르에 걸친 퍼포먼스를 녹화하여

2006인치 대형 스크린에 쏘아 보여주는데

벌써 20년이 넘었다고 한다.








입구 왼쪽에 붙어 있는 프로그램을 보니

오늘(8/4)은 로시니의 오페라 "신데델라", 

내일(8/5)은 바그너의 반지 4부작 중 

"신들의 황혼" 공연이 예고되어 있는데

움직일 수 없는 일정에 꽁꽁 옭아 매인 몸이라 

아.깝.따.









공연이 열리지 않는 낮시간엔 광장 맞은편에 설치된 주점에서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마시면서 뮤지션들의 라이브 연주를 감상할 수 있다.

물론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주점은 운영된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수학했던 빈 대학이

신 시청사와 지근거리에 있다.










빈의 상징, 성 스테판 대성당.


보헤미아의 왕인 오토2세에 의하여 1147년 공사를 시작,

약 63년만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처음엔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졌으나 이후 화재로 전소된 것을 복원하였다가

1367년 합스부르크 왕가가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물을 완전히 헐어버리고

높은 첨탑을 가진 고딕양식으로 개축하였다.


이후 오스만투르크군에 의해 파괴되기도 하고

2차 대전의 난리통에도 화재로 내부가 전소되었으나

국민 성금으로 1948년 중건되었다.


모짜르트가 화려한 결혼식을 올렸고, 

쓸쓸한 장례식을 치른 곳이기도 하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별도의 입장료는 받지 않는다.







웅장하고 화려한 고딕 양식의 기둥과 천정, 벽화에서 눈을 뗄 수 없다!

성당 지하에는 역대 왕들의 시신을 안치한 카타콤베가 있는데

상당한 규모라고 한다. 내려가 보고픈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시간의 촉박으로  이렇게 내부를 한바퀴 휘둘러보고 

빠져나오는 데 만족해야 했다.









과연 빈의 상징답게 광장엔 수많은 관광객들로 북적였고










광장 한켠에는 이집트 군사정권의 만행을 알리고 

군부의 즉각적인 퇴진과 민주화를 요구하는,

무함마드 무르시를 지지하는 이집트인들의 시위가 한창이었다.









최연소(?) 무르시 지지자









시위장에 경찰이 한 명도 보이지 않는것이 신기했다.

오히려 그래서 평화적 시위가 가능한 것인지?


역시 시위란 깨어진 보도블럭 쪼가리와 불 븥은 몰로토프 칵테일이 휙휙 날아다니고  

펑펑 터지는 최루탄에 눈물, 콧물 범벅이어야 제맛인데...ㅎㅎ








호텔 "사커(Sacher)"의 토르테와 멜랑쥬를 먹어보지 않고선

비엔나 여행을 한 게 아니라는 말에 혹하여 

제법 멀리 떨어진 이 호텔을 찾아 나섰다.









호텔 사커의 "사커 토르테(Sacher Torte)"


토르테란 케익의 독일어인데, 1832년 오스트리아 외무장관 

메테르니히의 요리사인 프란츠 사커가 

초콜렛을 올린 살구잼 케익을 처음 만들어 호평을 받은 후

그의 아들이 지금 이 자리에 사커 호텔을 짓고 까페를 열어 

"사커 토르테"를 판매하여 크게 흥한 후, 

비엔나를 찾는 관광객들의 필수 순례코스가 되었다.


먹어 보니 내 입맛이 저질이라 그런지 동네에서 흔히 살 수 있는

초코케익과 별 다른 차이를 못느끼겠더라마는,


아마도 일본인들의 유별난 집착이 이것을 유명하게 만드는 데 

한 몫 하지 않았나 한다.


이 곳을 찾아가서 긴 줄을 서서 대기한 끝에 마침내 한 조각 맛보고 오느라

성 스테판 성당을 자세히 둘러 볼 기회를 날려버렸다. 젠장.









스테판 성당으로 돌아오는 거리의 까페 풍경










쓰레기통도 찍어보다.









이 강은 도나우의 지류다. 그리 멀지 않은 상류와 하류에서

본류인 도나우와 다시 합쳐지는데, 비엔나의 청계천이라고나 할까.


건너편 江岸에는 파라솔과 돗자리를 펴고 비치 의자에 누워서

해수욕이 아닌 강수욕을 즐기는 빈 시민들이 보인다.

바다가 없는 오스트리아라, 이해는 가지만, 문득 드는 측은지심은 어쩔 수 없다. 






 


무슨 의미의 그림일까? 









150년 된 낡은 전차와 최신형 전차가 섞여 다니는 빈 시내.






다음 일정은 합스부르크 왕가(The House of Habsburg)의 몰락과 함께 한

쉔브룬 궁전 투어다.


합스부르크 왕가는 부르봉 왕가, 로마노프 왕가와 더불어 

유럽 3대 왕가로 일컬어진다.

그 중 합스부르크 왕가는 원래 지금의 스위스의 한 산악지대, 

합스부르크 성을 중심으로 출발했던 가문에서 기원하였다. 

지금은 스위스에 속하지만 당시에는 신성로마제국의 영토였다.


처음엔 별 볼일 없던 합스부르크家는 이후 점점 세력이 커지면서 영향력을 확장,

현재 독일의 남서부 및 신성로마제국의 동남부(지금의 오스트리아)까지

손에 넣으면서 융성해 간다.

한창때는 지금의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헝가리, 보헤미아, 크로아티아,

폴란드 일부, 루마니아 일부, 스위스 일부, 벨기에, 네덜란드, 리히텐슈타인,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 사르데니아, 스페인, 포르투갈 등이 

직접적으로 합스부르크 가문에 속했으며, 이탈리아 북부, 프랑스,

발칸반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했으니 참으로 대단한 위세였다.


이는 대부분 전쟁 외 각국 왕실과의 정략결혼 정책을 통해 

주위 영토를 야금야금 편입하여 늘려온 결과다.









《쉔브룬 궁 입구》


합스부르크 가문이 유럽 통치의 전면에 부상하게 된 것은

1273년, 가문 內 루돌프 백작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선출된 이후부터라고 할 수 있으며  

그로부터 나폴레옹이 신성로마제국을 무너뜨릴 때까지 

거의 600년 이상을 제국을 통치하며 넓은 영토를 관장하였다.










《쉔브룬 궁 대문. 중간에 매를 형상화 한 합스부르크 가문의 紋章이 보인다》


쉔브룬(Shoenbrunn) 궁은 1612년 마티아스 황제가 사냥 도중 발견한

아름다운(Schoen) 샘물(Brunn)에서 유래하였다.


프랑스의 부르봉 왕가와 적대적 라이벌관계를 유지하던 황제는

파리의 베르사이유 궁보다 더 크고 화려한 궁전을 건축하려

베르사이유를 벤치마크하여 설계하였으나, 이후

경제사정의 악화로 지금의 규모로 줄여 축조하여

왕가의 여름 별장으로 사용하였다.








  



정원의 정 중앙 언덕 위 먼 곳에 글로리에테가 서있다.

글로리에테는 1775년 프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기념으로 

마리아 테레지아의 합스부르크 왕가 찬미를 위하여 건축이 계획되었으며

현재 이곳에는 카페가 들어와 있어 관광객이 찾는 주요 공간이자

빈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 역할을 하고 있다.


시간의 압박으로 근처에 접근해 보지도 못하고 돌아 나와야 했다.









궁전에서 글로리에테를 잇는 중앙 화원의 양편으로는

기하학적인 배열에 따라 유럽식의 정원이 잘 꾸며져 있다.









곳곳에는 조각상이 설치되어 있고 갖가지 기화요초들과 더불어

벤치가 있어 관광객들이 잠시 쉴 공간을 마련해 주고 있다.









걷보기와는 달리 궁전 내부는 입이 벌어질 정도의 

화려한 장식으로 치장되어 있었는데 

촬영을 엄격히 금하고 있어 남은 사진이 없다.


내부에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으며, 

총 1441개의 방 중 47개만 관광객들에게 공개하고 있다고 한다.


화려했던 합스부르크 왕가도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패한 이후 급격히 쇠락하였고

1918년 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후 

당시 황제였던 카를 1세가 이 곳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종말을 선언한 치욕의 장소이기도 하다.










오스트리아 역사탐방(?)이 끝나니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다.

비인의 맛집(가이드 왈)인 "볼프(Wolff)"로 이동하여 

비엔나식 스테이크를 맛보다.

주인이 중국계인듯.








느끼한 맛에 대한 편견만 버리면 괜찮은 음식이었다.

이 집에서 직접 빚었다는 맥주맛이 꽤 깔끔하고 좋았다.

맥주 이름은 잊어버렸다.


구글에서 이 집을 검색해 보니 2명이 평가를 해 놓았는데,

불친절한 서비스 등으로 최악의 등급을 매겨놨더라. 






다음은 마지막 오늘의 코스인 빈 음악회 공연을 보러 가는것이다.

80유로짜리 옵션 상품인데, 인솔자가 33명의 인원을 대상으로

 공연 참여 의향을 조사해 보니, 우리 부부 포함 달랑 4명 뿐이라고 했다.


옆에서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어보니,

뜨내기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음악회의 수준이란게 

안 봐도 비디오가 아니겠느냐면서 

차라리 서울에서 5만원짜리 공연을 보는 것이 훨씬 나을거란다.


이런 여론(?)엔 상관없이 나는 일찌감치 공연 참가를 결정해 놓은 터였다.

사실 드레스코드(Dress code)도 따지지 않고

반바지에 샌들 차림으로 듣는 음악회의 수준이 

아주 높을거라곤 기대하지 않았다.

다만 내게 필요한 것은 다른 곳에선 맛볼 수 없는 지적 탐험이었다.


그러나...

나중에 투어 버스에 탑승한 화려한 언변의 현지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난 후엔

참가 희망자의 수가 29명으로 확 늘어나 있더라.








이 음악회는 18-19세기 유럽에 유행했던 살롱 음악회의 형식을 따른다고 한다.

10~12명의 소편성 오케스트라에 성악가, 무용가를 피처링하여 

인터미션 포함 약 2시간 동안 공연하는 스케줄이었고,

위 사진에서 보듯 샴페인 한 잔씩이 제공된다.







 


인터미션에 제공된 샴페인 한 잔








팸플릿을 5유로에 팔기에 하나 샀다.









무대 세팅









사회자가 나와서 인사와 더불어 이 음악회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특히 솔로 바이올리니스트 게를린데 존라이트너의 

1682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의 소리를 들려 줄 수 있어서

매우 기쁘다고 했다.










오늘의 게스트 명단









소규모 원형 음악홀은 반향이 꽤 훌륭하였다. 









무대에 등장한 "비엔나 레지던스 오케스트라"의 단원.


첼로, 콘트라베이스, 제1, 2, 3 바이올린, 비올라, 바순, 

플룻, 오보에, 클라리넷의 소박한 소편성이다.

아마도 저녁 살롱에서 친구들을 초청하여 만찬을 들며 감상하기 딱 좋은 규모다. 



중간의 여성 바이올리니스트가 들고 있는것이 바로 

1682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


1부엔 모짜르트의 "코지 판 투테" 서곡 외 5곡

슈베르트의 교향곡 5번 1악장이 연주되었고,


2부는 요한 스트라우스 2세의 "남국의 장미"등

빈 왈츠 음악 9곡이 연주되었다.

빈 신년 음악회에서 보듯, "트리치 트라치 폴카"를 연주할 때는

청중들이 박자에 맞추어 손뼉을 치며 참여하도록 유도하여

신나는 시간이 되었다.


공연 도중엔 촬영할 수 없기에 사진이 없다.


내 막귀로는 연주가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공연 종료 후, 청중들의 열화(?)같은 앵콜에

솔로 바이올린 주자와 소프라노 가수가 나와서 화답하고 있다.


두 곡의 짤막한 앵콜곡을 연주한 후 모든 일정이 끝났다.

최소한 돈이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공연장 바깥으로 나오니 이미 밤이 깊었고,

비엔나의 밤거리엔 가랑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동유럽 둘러보기 - 《제4일 : 비엔나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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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 둘러보기 - 《제3일 : 잘츠캄머굿 및 잘츠부르크》



오늘은 오스트리아로 넘어 가 먼저 잘츠캄머굿의 호수를 유람하고

잘츠부르크로 이동하여 잘츠부르크 城, 모짜르트 생가,

간단한 잘츠부르크 시내 투어, 그리고  

미라벨 정원 등을 둘러보는 일정이다.


이른 조식을 마치니 시간이 약간 남아 숙소 주변 마을을 둘러보았다.

공원 녹지가 잘 조성되어 있고, 맑은 물이 흐르는 개천이

곳곳에 보인다.

 


밤새 어떤 연유인지 버스의 배터리가 방전된 것을 뒤늦게 발견하고

A/S 기사를 호출하여 점프선으로 시동을 거는 부산을 떠느라

출발이 약 40분정도 늦어졌다.


 

체코-오트트리아간 E55번 고속도로를 타고 남하하는 도중

잠시 쉬었던 휴게소 주변에 피어 있던 장미과의 꽃.

해당화일까? 꼭 닮았다.

 



국경을 통과하여 잘츠부르크로 이동 중.



 

체코에선 구경하기 힘들던 험한 산봉우리도 나타난다.

잘츠캄머굿이 가까와진 모양이다.


 


목적지의 선착장에 도착하여 기다리고 있던 유람선에 승선하다.



 

"잘츠캄머굿(Salzkammergut)"이란 "소금창고 領地"이란 뜻이라고 한다.

먼 옛날에 이 곳이 바다였는데 지각 활동으로 융기하여

해수가 증발한 후 염분이 암염형태로 굳어 매우 양질의 소금 산지가 되었다.

과거엔 이 곳의 소금이 금값 이상의 가치로 거래가 되었다고...



옥빛 맑은 볼프강 호수(Wolfgangsee)를 미끄러지듯 항행한다.

알프스의 빙하가 녹아 크고 작은 호수를 형성하였고,

이 곳 일대는 세계 자연유산으로 선정되었다.

이 호수의 최대 수심은 750미터 정도이고 어족 자원이 풍부하며

수질이 깨끗하여 정수 없이 그냥 마셔도 될 정도라고 한다.


 


호반 위의 자유로운 영혼들.



 

요트맨



 

호수 양안의 높은 산과 마을 풍광이 그림처럼 아름다워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



약 1시간의 수상 이동 끝에 장크트 길겐(Sankt Gilgen) 마을에 도착하였다.


점심을 먹으러 식당으로 이동하는 도중의 길가에

모짜르트 어머니 생가가 있다.

모짜르트의 어머니 "안나 마리아 모짜르트"는 이 곳 길겐 근처

힐덴슈타인이라는 마을 부촌장의 딸이었다고 한다. 


 


오스트리아의 대표 여류 작가 중의 한 사람인 

마리 폰 에브너-에센바흐의 묘지도 여기에 있다.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그녀가 남겼다는 "명언"이 많이 떠돌고 있다.


"당당하게 받아들인 패배도 승리다"


"가난한 자는 가난한 사람으로 취급되기를 원치 않고

부자는 부자로 취급되기를 원치 않는다.

전자는 경멸을 당할까봐 두려워서이고

후자는 돈을 뜯길까봐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헤어졌다 다시 만났을 때 나를 적당히 아는 사람들은

내가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를 묻지만,

넌 내 안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궁금해 할거야"


등등.

 


그림같은 마을 광장을 지나니 한인이 운영하는 식당이 있다.

한국에서 온 단체관광객들이 대부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전통 요리인 "슈니첼"의 전채요리로 나온 야채볶음과



 

밍밍한 맛의 정체 모를 국수.



 

돼지고기나 쇠고기를 나무망치로 두드려 넓게 펴서

빵가루를 입혀 튀겨 낸 슈니첼. 

아마 "돈까스"의 원조뻘쯤 되지 않을까?


엄청나게 커서 다 못먹을 정도의 크기로 서빙된다더니

내겐 작은 쪼가리가 나왔다. 이런 고얀놈들이 있나?

종업원 불러 강력 항의하려다가 맛을 조금 보고는 그만두었다.


다행히(?) 짜고 팍팍하고 기름기가 많아

내 취향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던 것이다.



 

밥 먹고는 소화도 좀 시킬 겸 케이블카(자일반)를 타고

 알프스 산맥의 한 자락인 쯔뵐퍼호른 정상에 올랐다.



 

해발 1,500여 미터의 서늘한 정상엔 여름 야생화가 곳곳에 피어 있고

높고 낮은 산과 호수가 어우러진 마을의 풍경이

저 아래로 멋드러지게 펼쳐져 있다.



 

정상으로 연결되는 트레일도 잘 정비되어 있어

배낭을 메고 등산을 즐기는 산꾼들도 꽤 많이 눈에 띄었다.


 


볼프강 호수의 푸르른 물빛.


모짜르트의 어머니는 아들이 태어나자 

고향의 이 아름다운 호수의 이름을 넣어 작명하였다.


"요하네스 크리소스토무스 볼프강구스 테오필루스 모짜르트"

줄여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짜르트"



 

다시 잘츠부르크 시내로 이동하여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위 사진 강 건너 저 위쪽에 보이는 호엔잘츠부르크 城이다.


 


성으로 진입하는 입구. 

입장료를 내고 표를 끊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다.



 

성 위에서 본 잘츠부르크 시의 외곽의 풍경.



 

사진 정 중앙에 멀리 잔디정원과 흰 건물이 보이는데,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속의 예비역 대령 "루트비히 폰 트렙"의 집으로 설정되어

영화를 촬영한 곳이라고 한다.



 

이 요새는 1077년 잘츠부르크 대주교의 명에 따라 지어졌고

 유럽에서 가장 큰 중세시대의 성 중의 하나이며

유럽에서 가장 보존이 잘 된 성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20세기 초, 1차 대전 당시 이탈리아 죄수들과

나치 전범들을 수용하는 감옥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砲口를 통해 본 잘츠부르크 시내


 


성내의 한 광장엔 



 

많은 관광객들이 구경하는 가운데

결혼식 화보 촬영이 진행되고 있었다.

 


잘츠부르크 대성당과 그 뒤로 이 도시를 가로지르는 잘자흐 강이 보인다.



 

호엔잘츠부르크를 빠져 나와서 잘츠부르크 대성당을 지나 조금 걸으니

모짜르트 생가에 도착하였다.

위 건물 3층, 창문이 열린 곳이 모자르트의 생가다.


 


문패엔

"이 집에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짜르트가

1756년 1월 27일 태어나다" 

라고 새겨져 있고,

지금은 모짜르트 박물관으로 꾸며 운영되고 있다.


현재의 잘쯔부르크는 모짜르트가 다 먹여살린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당시 모짜르트 일가는 음악가로는 이름을 떨쳤지만

황제나 대주교 전속(궁정) 음악가로서의 박봉 외에

귀족들에게 작품을 의뢰받아 작곡해 주는 수임료 및

개인 교습, 콘서트 입장료 등이 주 수입원이었지만

늘 가난에 쪼들렸다.


모짜르트의 일대기를 그린 외국의 다큐먼터리를 보면

오스트리아, 독일, 체코, 프랑스 등 연주 여행(해외 공연)을 다니면서

큰 돈을 벌기를 기대했지만, 

정작 작곡 의뢰인이나 콘서트의 청중들은 그의 음악엔 열광하면서도

댓가를 지불하는덴 매우 인색하여 말년의 모짜르트는 

지인들에게 돈을 꾸어 달라는 부탁을 끊임없이 해야 할 정도로

궁핍하였다고 한다.


당시 부와 권세를 쥐었던 귀족들의 이름은 흔적이 없고

모짜르트만 우뚝한 태산으로 남으니 

역시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어머니 안나는 이 주방에서 모짜르트와 가족들을 위하여

차를 끓이고 빵을 구웠을 것이다.



 

모짜르트의 육필 악보일까?

아쉽게도 이 악보의 설명문을 찍어오지 못했다.


 


모짜르트가 사용하던 피아노.


진품은 모짜르트가 나중 이사하여 거주하던 집에 옮겨 전시하고 있고,

이는 진품을 복제한 것이라고 한다.


 


소박한 거실. 

뒤로 바이올린과 그랜드피아노가 보인다.

 


모짜르트 생가 바로 오른쪽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간판으로 유명한 게트라이데 거리가 있다.


 


잘츠부르크 대성당 주변 레지덴츠 광장의 분수.


"사운드 오브 뮤직"에 보면 주인공 마리아(줄리 앤드류스)가 

트렙 대령의 집으로 가정교사를 떠나는 도중 여기를 지나치면서 

노래에 맞추어 이 분수의 말 조각상에 개구쟁이처럼 물을 뿌리며

들뜨고도 조금은 두려운 마음을 표출하는 장면이 나온다.



 

레지덴츠 광장과 면한 잘츠부르크 대성당의 뒷면.



 

미라벨 궁전(정원)으로 가는 길 건너편에

노랑머리 깃발 할매 여행단이 보행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미라벨 정원은 1600년대 잘츠부르크의 대주교 볼프 디트리히가

그녀의 연인 살로메를 위하여 지었다.


 


대주교의 신분으로 평민 여인을 사랑하여

열 몇명의 자녀까지 둔 것으로도 모자라

어마어마한 거금을 들여 이 궁전까지 지었다니

당시 대주교의 막강한 권세와 부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겠다.


 


미라벨 정원에서 폼을 잡으며 인증샷 중인 서양 처자


 


철책 건너 왼편에는 긴 잔디밭이 있는데,

이 곳에서 영화 속 마리아와 트렙 대령의 7명의 자녀가

그 유명한 "도레미송"을 불렀다.

 


젊은 음악도 2명이 기타의 반주로

사라사테의 "지고이네르바이젠"을 멋지게 연주하여

거금 1딸라를 쾌척(?)하였다. ㅎㅎ



 

디트리히 대주교는 이 일로 백성들의 지탄을 받았을 뿐 아니라

결국 로마 교황청의 분노를 사게 되고,

저 멀리 보이는 호엔잘츠부르크 성에 유폐되어

거기에서 죽음을 맞이했다고 한다.


대주교는 종교의 금기를 어기는 일탈로 큰 벌을 받았고

지금의 잣대로 보면 부도덕한 파렴치한일 뿐이지만,

오스트리아인의 자랑과 긍지를 길이 높여 주는 

아름다운 건축 유산을 남겼으니

다 용서가 되는 것인지?

결과가 과정을 정당화 할 수 있을까?


 


 《제3일 : 잘츠캄머굿 및 잘츠부르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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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 둘러보기 - 《제2일 : 프라하 및 체스키크룸로프》






집을 떠나 왔음을 가장 리얼하게 느끼는 순간이 아마도

여행 다음 날 잠에서 깨어 눈을 떴을 때가 아닐까 한다.


어릴 적, 어머니를 따라 외가에 왔다가 이튿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오는 천장 벽지의 패턴이 낯선 것임을 깨닫는 순간

"아 내가 지금 정말 외갓집에 와 있구나!"라는 인식이 피부로 확 와 닿으며

가벼운 흥분과 전률을 느끼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런 느낌이야말로 여행의 가장 원초적인 맛 아닐까. 



오늘 아침도 그랬다.

눈 뜨는 순간의 흥분을 그대로 침대에 누운 채 잠시 음미하고는

체코의 아침은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여, 

커튼을 걷어젖히고 창문을 활짝 열어 바깥 풍경을 내다본다.


야트막한 구릉지대에 끝없이 펼쳐진 보헤미아의 숲,

그 언덕 위엔 인형이 살 것만 같은 빨간 지붕의 그림같은 마을 ...



... 은 유감스럽게도 없었다. 










울산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 나를 반긴다.

아침 햇살을 받고 있는 덩그런 아파트. 허허헛...


"실속 패키지"가 다 그런 것 아니겠나.

대신 하늘은 명경처럼 맑고 공기는 서늘하고 뽀송뽀송하니 조금 용서가 된다.


도대체 체코란 어떤 나라일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어

체코를 키워드로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이미지를 떠올려 보니,


드보르작이나 스메타나 같은 작곡가, 

세계 탑 클라스의 반열에 당당히 올라 있는 체코 필하모닉과

이를 지휘하던 바츨라프 노이만, 라파엘 쿠벨릭, 카렐 안첼, 바츨라프 탈리히. 


전설적인 킬러 쟈칼이 애용(?)했다는 기관단총 PM-63의 나라,

그리고 


내가 보았던 유일한 체코 영화 "화장터 인부"에 나오는 

주인공 "고프로킹글"씨의 기괴한 행각과 그가 구사하던 생경한 체코어,


그리고 "프라하의 봄"으로 회자되는 反 소련/反 공산주의 항쟁 정도가 전부다.


그러고 보니 중/고교 시절 세계사 시간에 체코에 대해서 배웠던 기억이 거의 없다.

아마도 유럽 역사의 변방에 위치하여 듣보잡으로 살아올 수밖에 없었던 

그 미약한 존재감 탓이리라.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여 주류 서구의 관심을 오랫동안 받지 못하던

우리네 역사와도 좀 닮아 있는 것같다.







[천문시계탑에 올라서 본 프라하 시내의 일부]






 오늘의 일정은 


舊 시가지와 舊시청사 일대 - 카를橋 근처 - 바츨라프 광장을 구경한 다음

2시간 30분 정도 버스로 이동하여 체스키크룸로프를 둘러보고

체스키부데요비체의 숙소로 가는 여정이다.

물론 여행사에서 미리 정한 일정이며, 

우린 그저 가이드를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다.







신시가에서 버스를 내려 도보로 잠시 걷다 보면 어제 보았던 화약탑을 다시 만난다.

오른쪽 화려한 건물은 과거 역대 왕들의 궁정이 있던 곳인데

왕정이 무너지고 공화국 체제로 바뀌면서

1911년부터 시민회관이 되었다.


매년 "프라하의 봄 음악축전(5월 음악축전)"이 열리는

스메타나 홀이 있는 건물이기도 하다.  


프라하의 봄 음악축전은 1948년, 스메타나의 기일(忌日)인 5월 12일

처음 개최된 후 매년 5월 13일부터 6월 8일까지 3주간 열리며

1968년 소련/바르샤바 연합군의 프라하 침공때도 개최되었다.


음악축전은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 연주로 개막하며 

베토벤의 9번 교향곡 "합창"으로 폐막한다.


공산 정권을 피해 서방으로 망명하여

보스턴 심포니를 지휘하고 있던 라파엘 쿠벨릭은 

1980년대에 은퇴하였지만 조국이 민주화된 후 열린 첫 음악제에 참가하여

체코 필하모닉을 지휘, "나의 조국(Ma Vlast)"을 연주함으로써

큰 감동을 남겼다고 한다. 








화약탑의 관문을 통과하면 구시가지가 시작된다.

프라하의 인구가 늘면서 구시가지로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당시 황제였던 카를 4세의 명으로 신도시가 조성되었다.










과거 국왕의 야간 행차길을 밝히기 위해서 설치된 구 시가의 와사등(瓦斯燈).

지금은 물론 가스가 아닌 전기로 불을 밝힌다.









다시 구시청 광장에 도착.

왼쪽의 탑이 천문시계가 있는 舊市廳舍 건물이다.










뒤를 돌아 보면 틴(Tyn) 성당도 보인다.










광장 복판에는 체코인의 존경을 받는 성직자이자 종교개혁자인

얀 후스의 동상이 있다. 

얀 후스는 당시 로마 카톨릭 교회 지도자들의 부패를 정면 비판하고 

교회의 개혁을 주장하다가 교황 요한23세에 의해 파문당했으며

1415년 콘스탄츠 공의회 결정에 의해 화형당하지만,

그의 주장은 100년 후 마르틴 루터 등 후대의 종교개혁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게 된다.










[시계탑이 있는 구 청사]


통행료를 지불하고(패키지 경비에 포함) 탑 내부로 입장하여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시내 경관을 조망하다. 


아래 사진은 탑에서 내려다 본 프라하 시내의 일부.















































































































[광장]



발 디딜 틈 없이 빼곡한 사람들의 틈을 비집고 탑을 한바퀴 돌며

사진을 찍고는 서둘러 탑을 내려 와야 했다.


매시 정각에 시작한다는 시계 쑈를 구경하기 위해서다.










살갗이 따가울 정도의 뙤약볕에도 불구하고 

시계탑 앞엔 시계 쑈를 구경하려는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이

구름처럼 몰려 서 있다.


















이 기회를 놓칠세라 잡상인들도 대목이다.









이 시계는 천문학자이며 프라하대학 교수였던 얀 쉰델이 설계하고

시계 장인이었던 하누시가 1490년 완성하였다고 하는데 

상하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윗부분의 시계를 보면 자판과 눈금과 바늘 등이 복합적이고 입체적으로 어우러져

한눈에 봐도 상당히 정교하게 설계된 것임을 알 수 있는데

천동설의 원리에 의해 해와 달, 천체의 운행을 한 눈에 보여주는 동시에

연, 월, 일, 시 뿐만 아니라 분 단위까지도 알려주는

그야말로 최첨단(?) 천문시계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저 시계를 제대로 읽어내려면 상당한 시간을 들여 공부해야 할 듯하다.




하단의 시계는 우리나라의 책력과 비슷한 계절시계인데

12개의 원 안에 계절별로 영위해야 할 농경 활동의 그림이 그려져 있어

시계를 볼 줄 모르는 문맹의 일반 백성들이 

그림을 보고 계절을 알 수 있도록, 혹은 시계를 보고

해야 할 농사 활동을 준비할 수 있게 배려했다고 한다.









천문시계 양 편을 자세히 살펴보면,

거울을 보는 인형, 술병과 지팡이를 든 인형, 모래시계를 든 해골인형, 기타를 든 인형 등

4개의 인형이 있는데, 각각 허영, 탐욕, 죽음, 쾌락을 의미한다고 한다.










정각이 되면 저 해골맨이 줄을 당겨 종을 울림으로서 

인간에게 죽음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동시에








시계 좌우 거울맨, 술병맨, 해골맨, 기타맨이 고개를 까닥까닥 움직여 

코 앞으로 다가 온 죽음 앞에 허둥지둥하는 모습을 연출한다.









이어서

윗부분 천사 좌우의 두 창이 열리면서 예수의 열 두 제자를 형상화한 

12개의 마리오네뜨 인형이 나타나 아래의 인간을 비웃듯 내려다보고,

가장 윗부분의 황금 수탉이 울면서 쑈가 끝나는데,


이 모든 과정이 불과 십 몇초에 걸쳐 순식간에 흘러가버리기 때문에

눈 부릅뜨고 집중하지 않으면 그냥 놓치기 십상이다.


인생이란 순식간에 지나가는 짧은 것이니 

허영, 탐욕, 쾌락에 빠져 허우적대지 말고

살아 있을 때 열심히 일하고 충성을 바치라는 의미일까? 










일설에 의하면, 이 시계가 완성되자 큰 호평을 받아 

단숨에 프라하의 명물이 되었고

소문을 들은 유럽의 권력자들이 앞다투어 시계공을 데려 가 

비슷한 것을 만들려 하는 움직임이 있자,

이를 용납할 수 없었던 프라하의 권력자는 결국 이 시계공 집에 사람을 은밀히 보내어

불에 달군 쇠꼬챙이로 그의 눈을 찔러버렸다고 하는데... 믿거나 말거나.






[구 시가 광장의 결혼식 커플]









구 시청 건물 옆에 웨딩홀이 있어 시계탑 앞에서 

결혼 스냅 사진을 찍는 모습이 일상화 되어 있다.









먼 곳에서 온 이방인과도 흔쾌히 사진을 함께 찍어 준다.

관광객들의 카메라 세례에 전혀 거부감이 없다.

아니, 오히려 즐기는 것같다.















행복해 보이는 커플









전 세계인의 관심과 축북을 받을 수 있는 이 곳 광장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결혼식 장소임이 분명하다.









[관광객들이 땡볕을 피해 구 시청사 그늘에 몰려 서 있다]


시계탑을 왼쪽으로 끼고 나오면 구 시청사 측면 광장이 나오는데

 "2차 프라하 창문 투척사건(보헤미아 창문 투척 사건)"을 일으켜, 

후일 합스부르크 왕가에 의해 처형당했던 27명의 프로테스탄트를 기리는

 27개의 십자가 표지가 처형된 날짜(1621년 6월 21일)와

 함께 광장 바닥에 새겨져 있다.


 




광장 근처의 식당에서 간단히 점심 식사를 해결하고

여기와 지척거리인 카를루프橋(Karluv most)로 이동한다.







카를루프 다리는 프라하를 가로질러 흐르는 블타바강(독일어:몰다우강)에 건설된

가장 오래된 다리로서 프라하의 상징과 다름없다.


1357년 카를 4세의 명으로 처음 목조로 건축되었는데 홍수로 유실된 후

석재로 재건축되어 오늘에 이르렀는데

돌과 돌을 접합하기 위한 모르타르로 계란을 이용하였다고 한다.

구 시가지 광장과 함께 프라하를 대표하는 명소이며, 

늘 관광객들로 붐비는 장소이다. 









강 건너엔 현재 대통령 관저로 이용되는 프라하 성과 성 비투스 성당이 있다.


원래 프라하 城 관광도 일정에 있었으나 

시간관계로 생략하고, 강 건너에서 바라만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스메나타의 교향시 "나의 조국" 2악장에 묘사된

블타바 강이 카렐교 아래로 유장하게 흐른다.

이 교향시 1악장에 나오는 "비셰흐라드 城"도 저 너머로 아스라히 

보일락 말락.









다리 위 거리의 악사

















[성 요한 네포묵의 동상]


카를루프 다리를 언급할 때, 빠져서는 안되는 인물이 있다.


네포무크의 성 요한(Sanctus Ioannes Nepomucenus) 또는  성 요한 네포무크.


 그는 체코의 국민적인 성인이다. 

당시 프라하는 보헤미아 국왕이자 로마 왕이었던 벤체슬라우스가 통치하였는데

성 요한은 왕비의 고해신부로서, 어느 날 왕비가 그를 찾아 와 자신이 근위병과

부정을 저질렀음을 고백했는데, 근처에 있던 병사가 이를 엿듣고

국왕에게 고해 바친다.


국왕은 성 요한을 불러 왕비의 고해 내용을 밝힐것을 다그치지만 

성 요한은 이를 일언지하에 거부한다.

감옥에 갇혀 모진 고문에 지친 그는 죽기 전 딱 한사람에게만 자기가 들은 것을

말하겠다고 한다. 이 말을 들은 국왕은 자신의 애완견을 데리고 

감옥으로 행차하지만, 그는 왕의 애완견에게

귀속말로 몇 마디 말하고는 끝내 입을 닫아버린다.

화가 난 국왕은 그의 혀를 자르고 카를교 아래로 집어던져 죽인다.

1393년 3월의 일이다.


(위 사진 동판 오른쪽 반질반질한 부분에 

다리 아래로 던져지는 성 요한 네포묵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후 그 자리에 네포무크의 온전한 모습의 시신이 떠오르자

사람들은 그가 하늘로 승천했다고 믿게 되고, 후일 성인으로 시성된다.


그리하여 네포무크의 요한은 고해성사의 비밀을 준수하기 위하여 

목숨까지 버린 최초의 순교자이자 

다른 사람으로부터 비방을 받은 사람들의 수호성인이 되었으며, 

또한 강물에 빠져 익사하였기 때문에 홍수 피해자들의 수호성인이 되었다.


청동상 아랫부분에 위 전설의 내용을 부조해 놓았는데,

고해 중인 조세핀 왕비와 왕의 애완견 등의 형상이 보인다.


이 청동 부조를 왼손으로 만지며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속설로

청동면이 녹이 낄 새 없이 반질반질 닳아 늘 광채를 발한다.  








다리 아래 수장된 네포묵크 성인의 청동 부조도 역시 

사람들의 손길로 밴질밴질.










누가 봐 주든 말든 즐겁게 연주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바츨라프 광장]


과게엔 말을 거래하던 馬市場이었는데 이 곳은 체코 현대사의

가장 중요한 사건이 일어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체코는 2차대전 이후 소비에트 연방의 위성국으로서, 

소련의 절대적인 영향 하에 있었으나

개혁 성향의 알렉산데르 두브체크가 집권하면서 소련의 간섭을 탈피하여

"인간의 얼굴을 가진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다당제 도입, 일부 자본주의적인 요소 허용 등 과감한 정책을 펼쳤 나가면서

대다수 체코슬로바키아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다.


이에 위기를 느낀 소련이 바르샤바 조약 동맹군을 소집, 장갑차와 탱크를 앞세워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1968)하자 이에 시민들이 죽음으로 맞섰던

바로 그 현장인 것이다.


프라하의 봄은 금세 무력에 의해 좌절되었지만, 후일 소비에트 연방 해체 후

동유럽 민주화 혁명의 가장 중요한 사건인 벨벳혁명(1989)을 이끌어 냄으로써

결국 공산당 정권을 무너뜨리는 씨앗이 되었다.


 






[여름 꽃 만발한 혁명의 현장]





이로서 프라하 여정을 마치고, 다시 버스를 타고 체스키크룸로프로 향한다.





고속도로로 진입하여









보헤미아의 울창한 숲과









넓은 초원을 가로질러 2시간 30분여를 달리면










중세의 정취를 그대로 간직한 '체스키크룸로프'에 당도한다.



이 곳은 옛 중세 건축물과 문화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체코 남보헤미아 주의 작은 도시이다. 


《크룸로프 성》을 포함한 뛰어난 건축물과 역사 문화재로 유명하며, 

체스키크룸로프는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체스키"는 체코어로 〈보헤미아의 것〉을 의미하며, 

"크룸로프"는 〈강의 만곡부의 습지〉를 의미한다고 한다. 


블타바 강 상류의 물이 굽어 돌아 나가니

보헤미아의 하회마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마을 입구 높은 성벽에서 보는 이 작은 중세 도시는

완전히 시간이 정지해버린 만화속의 한 장소 같기만 하다.
















블타바 강이 도시를 감고 돌아 흐른다.

























슈바마 산맥에서 발원한 발원한 수원이 강을 이루고

체스키크룸로프, 체스키부데요비체, 프라하를 거쳐 

독일의 엘베강으로 합류하여 북해로 흘러 든다.

우리나라의 낙동강과 같은 위치로 보면 될 것이다.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에서 보듯이, 이 강은

보헤미아인의 민족 정서와는 뗄래야 뗄 수가 없는 강이다.







이 곳을 통치하던 왕자가 평민 처녀와의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에 실패하고

몸을 던져 죽음을 택했다는 전설의 탑.









골목 한 켠엔 내가 좋아하는 샤우덱의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지만

시간이 늦어 아쉽게도 문을 닫았더라.










골목길 1









골목길 2









낡은 건물 앞에서









골목길 3











골목길 4









골목길 5









골목길 6








체스키크룸로프를 빠져나가는 출구


오늘 일정은 여기가 마지막이다.

다시 버스를 타고 체스키부데요비체의 호텔로 향한다.











엄청난 규모의 양귀비 밭. 아마도 원예용?









숙소로 향하는 시골길









오늘 묵을 숙소에 당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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