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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화

2017.04.02. - 진달래



아주 먼 옛날, 호랭이 담배피던 시절,

지독히도 먹을 것이 부족했던 그 시절,

국민학교 저학년생이던 우리는 등 하굣길에 

이웃 두 군데 마을을 걸어서 통과해야 했는데,

텃세 심한 그 마을 형들의 등쌀에 

늘 시달리곤 하였다.





우리보다 몇 살 많은 형들과 함께일 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어쩌다 우리 또래들끼리만 모여 하교를 할라치면

어김없이 동네 골목에서 한두살 많은 애들이 

우루루 나타나

이유 없이 우리는 괴롭히는 것이다.


그래서 동네를 통과하는 신작로길을 버리고

먼 산길을 택해 둘러둘러 귀가하곤 하였다.





산길도 나름대로 재미있었다.

새 둥지를 발견하여 새알도 훔치고

산토끼 몰이를 하기도 하고(성공한 적은 없지만)

이스라지나 돌복숭, 돌배를 따 먹기도 하고

도라지나 딱주(잔대)를 파 먹기도 하고

개구리 잡아 뒷다리 구워 먹기도 하고 ...





역시 가장 배 고픈 계절은 봄.

그 계절 산길에 먹을것이라곤 참꽃밖에 없었다.

촉촉하고 야들야들한 감촉의 참꽃은

한 송이씩 먹으면 간에 전혀 기별이 가지 않아

한웅큼씩 따 모아서 한꺼번에 입에 털어넣고 

꼭꼭 음미하듯 씹었었는데,

시큼하기도 하고 떫떠름하기도 하고

아주 조금 달착지근하던 그 묘한 맛.


그 맛은 바로 봄의 맛이었다.





그렇게 먹고 먹어도, 먹을 수록 배는 더 고팠다.

가끔 어지럼증이 찾아 와 혼미한 정신으로 

비틀거리기도 했는데,

이 말을 들은 어른들은

참꽃이 아니라 개꽃을 먹어서 그렇다고 했다.





참꽃과 개꽃,

꽃을 조금 알고 난 후인 지금은 

진달래와 철쭉이라 부른다.


우린 꽃을 따기 전

꽃받침을 만져보고

끈적끈적 찐득함이 느껴지면 

개꽃으로 판단하여 

손을 대지 않았다.





허한 속을 달래기 위하여,

어지럼증으로 픽 쓰러지지 않기 위하여 

우린 아주 어린 시절부터

진달래를 올바로 동정(同定)하는 

노우-하우를 터득해야 했다.





나무하러 산에 갔다 돌아 오신

어머니의 땔감 단에도

봄이면 늘 저 진달래 가지 한 다발이 

묶여 있었다.




어머니는 빈 소주 유리 됫병에 물을 채워

꺾어 온 진달래 가지를 꽃아

방 안 개다리 소반 위에 올려 놓으면

비로소 우리 집에도 봄이 가득 차는 것이다.




지금도 저 꽃을 보면 배가 고파진다.





한 웅큼 따 모아서 입 안에 가득 털어넣고 

꼭꼭 씹어서 조용히 음미해 볼라치면

의식의 흐름? 그 타임머쉰을 타고

그 시절로 휘리릭 되돌아 갈 수 있을까?





한 송이 톡 떼어 

눈 감고 지긋이 씹다가 눈 떠 보니

그냥 여기 그대로인데,


맛은 예전 그 맛일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