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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화

2017.04.01. - 만주바람꽃맞이를 갔지만...

    만주바람꽃도 대개 이 계절에 피는 다른 꽃들과 마찬가지로 성깔이 은근히 까칠하여 그 속살을 쉽사리 보여주지 않는다. 적당한 온도와 적절한 일조량이 어느 정도 지속되어야 그 앙증하게 앙다문 작은 입술을 겨우 열어주기 때문이다. 일단 입을 열기만 하면 그 속에 꽉 찬 샛노란 꽃술이 또 그렇게 예쁠 수 없다. 개화 기간도 그리 길지 않아 적기를 맞추기도 쉽지 않으니 잘 담기엔 조금 까다로운 꽃 중의 하나다. 


     모처럼의 휴일이자 꽃 대목인데, 날씨가 그리 좋지 않다. 며칠 전부터 접해 온 예보여서 실망스럽진 않았는데 Go냐, No go냐를 3초 고민하였다. 어차피 가 본들 그 성깔있는 아이들이 입을 활짝 열고 우릴 반길 리 만무한데, 그래도 해마다 이어 온 연중 순례길을 날씨 때문에 걸러서야 말이 되겠느냐는 생각이 더 앞서서 오락가락 하는 비 속에서도 그 곳을 향하여 기어이 떠나다.


     개화 상태는 과연 예상대로였다. 엊그제 먼저 다녀 온 K兄의 전언대로, 예전에 비해 개채 수가 현저히 줄어들어 계곡 아래쪽엔 빈약한 포기만 가끔 눈에 띌 뿐이어서 안타까운 마음을 더했다. 그나마 조금 풍성한 개체를 보기 위해서 계곡 상류방향으로 제법 먼 거리를 등산하지 않으면 안되어 땀을 비오듯 흘리며 오르막을 올랐다. 적절한 위치에 도달하여 모델 헌팅에 나섰으나 섭외는 그리 쉽지 않다. 뚫린 구름 사이로 햇살이 간간이 비쳐 이대로 계속 기다리면 입을 열어주겠거니 하는 기대로, 봉오리 주렁주렁 달린 한다발의 어린 만주바람꽃 포기 옆에서 좀 더 지켜보며 기다리기로 했다.


     준비한 막걸리를 함께한 꽃동무와 홀짝이며 시간을 보내는데, 하늘이 개기는커녕 산은 점점 더 어두컴컴하지고 빗방울마저 다시 뚝뚝 떨어지기 시작하더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간단하게 인증샷 몇 장 날리면서 내년에 다시 보마 작별 인사 속삭임으로 보내고 미련없이 하산하다.




출발 전, 동네 앞산 무덤의 할머니 알현을 가다. 

이미 지고 있는 상태지만 봄비를 머금으니 한결 싱싱해 보인다. 



할미꽃 근처의 솜나물이 활짝 피다.



풀 죽은 만주바람꽃. 

입을 열고 있는 몇 개체를 찾아 담아보다.



이 기후에 입을 열었다는건 이미 시들고 있다는 증거다.

입을 연 것이 아니라 연 입을 다물 힘이 없었을 것이다.






이 모델을 마지막으로 하산.



귀갓길에 반곡지를 들르다. 

날 흐리고 바람 불어 반영샷은 언감생심.

국민 포인트엔 오늘도 웨딩 촬영 커플이 보인다.



깽깽이풀 서식지를 들렀더니 상태가 이러하다.



봉오리 맺은 포기를 찾아내었으나 역시 입을 열어 줄 뜻이 없어보인다.



꽃받침을 헤치고 보라색 꽃잎이 세상에 얼굴을 드러내려 하고 있다.


깽깽이풀도 딱 여기까지다. 

아마 다음 주는 되어야 본격 깽깽이 리그가 개막될 듯.



또 다른 인근의 얼레지 군락을 찾았으나 이런 날씨엔 당연 이런 모습의 얼레지밖엔 없다.


만주바람꽃, 깽깽이풀, 얼레지 모두 好光性 식물이어서 흐리거나 비 오는 날엔 욕심일랑 내려놓고 그저 만남 그 자체에 만족하여야 할 것이다.


그래도 만날 건 다 만났으니 나름대로 성공적인 하루임은 분명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