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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화

2015.06.06. - 설악산 서북릉 야생화 트레킹 (2/2)



 설악산 서북릉 야생화 트레킹 (2/2)






귀떼기청봉이 점점 멀어지는 걸 보니

이제 너덜겅도 다 지나온 것같다.








탁 트인 바위능선에서 가리봉 방향을 조망해 보다.

눈측백나무가 바위에 찰싹 붙어 심한 가뭄에도 싱싱한 자태를 유지하며 강한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다.





 




서북릉에서 제법 악명이 높은 귀떼기청봉 주변의 너덜 구간은 상상 이상으로 힘들었다.

삐죽삐죽 예각을 드러낸 무수한 바위가 아무렇게나 누워있어 안전한 스텝 확보가 곤란한 경우가 많고

시소처럼 덜커덩 한 쪽이 들리는 흔들바위를 잘못 밟는다면 

균형을 잃고 넘어질 수도 있으니 걷는 내내 신경이 쓰인다.

바위 틈새에 빠질 수도 있어서 지팡이(스틱)를 쓰지 않는편이 더 안전한 것같다.

스텝 확보에 집중하며 한 걸음 한 걸음을 조심스럽게 옮기다 보니 쉬이 피로해진다.








높은 곳에 가야 만날 수 있는 홍괴불나무도 만났다.







괴불나무 집안도 비슷한 종이 많아 100% 확신할 수는 없지만 아마 홍괴불이 맞을 것이다.







우산나물의 꽃은 이제 흔적이 없고 저마다 씨방을 달고 있다.







바람꽃은 대청봉에서처럼 대규모 군락으로 뭉쳐 있진 않았지만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꽃이 피려면 아직 2~3주는 더 기다려야 할 듯하다.







만개한 바람꽃은 딱 1송이, 이것이 전부다.







이제 운해는 완전히 걷혀버렸다. 

대신 녹음 푸르른 싱싱한 설악의 골짜기가 한껏 젊음을 자랑하고 있다.







저 멀리 가리봉, 주걱봉은 북극성처럼 산행 내내 우리의 나침반이 돼 주었다.








이 가뭄에도 팥배나무의 꽃이 활짝 피었다.







향기가 강한 털개회나무도 지천으로 보인다.

앞서 본 꽃개회나무와는 달리 묵은 가지에서 꽃이 피고, 꽃차례가 옆이나 아래를 향한다.

 

원예종으로 미국에서 들여와 키우는 '미스킴라일락'은

미국의 한 식물학자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북한산에서 이 야생 꽃개회나무 씨앗을 채취해 가져가서

원예종으로 개량하여 전 세계에 보급한 것이라고 한다.

일을 도와주던 타이피스트의 성을 따서 '미스킴라일락'이라 명명하였다고.








소담한 함박꽃이 활짝 피었다. 깨끗함, 우아함의 극치가 아닐런지?







가만... 이넘은 물참대가 아니라 혹 말발도리일까?

(물참대가 맞는 듯하다.)







끝물인 풀솜대. 

 

꽃이 온전하게 남은 싱싱한 풀솜대를 산행 초입에서 여러 개체를 만났으나 

앞으로도 계속 만나겠지라고 생각하여 사진을 찍지 않았는데,

대부분 끝물이라 더 이상 온전한 녀석을 만날 수가 없어 아쉬운대로 찍어 두었다.







이 일대에 왕성한 세력을 자랑하는 박새도 꽃을 피울 채비를 하고 있다.







네잎갈퀴나물과







산꿩의 다리도 자주 눈에 띈다.







이 녀석은 아마도 큰꼭두서니일 것이다.







위 녀석과 약간 생김새가 달라보이지만, 역시 큰꼭두서니일 것이다.

예전에 뿌리를 캐어 말려서 분말을 내어 천연 염료로 썼다.

'꼭두서니빛'으로 불리는, 분홍빛이 아름답게 감도는 붉은 색깔을 내 준다고 한다.








나비나물. 꽃은 아직 멀었다.







설악산에서만 서식한다는 설악조팝나무도 곳곳에 자란다.







설악조팝나무







설악조팝나무

산조팝나무와 많이 닮았지만, 잎을 보면 어렵지 않게 구분이 된다.






쉬엄쉬엄 걷다보니 1,408봉에 도착하였다.

너덜바위에서 아침 식사를 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다리가 후달리는걸 보니

과연 체력 소모가 심한 구간인걸 느끼겠더라.


이럴 때 쓰려고 챙겨 온 간식을 꺼내어 바위에 차려 보았다.







산에 올 때마다 시도해 보는 인증샷.

 

세계 최악의 맛으로 평가받는 국산 맥주보다도 더 저렴한 독일 맥주다.

500ml 짜리가 무려 단돈 1300원. 내 싸구려 입맛에는 국산맥주보다는 다섯배 쯤은 더 맛있다.


맥주와 함께 바나나와 방울토마토 몇 알을 섭취하고 나니

전투력이 다시 상승한다.







기대했던 산솜다리도 마침내 만났다.







가뭄에 메말라 척박한 바위틈에서도 모진 생명력을 용케 유지하고 있어 참으로 고맙기까지 하다.







접근하기 불가능한 저 아래 벼랑 가장자리에 

소롯이 핀 9 남매 산솜다리도 만나는 행운을! 







최대한으로 줌을 당겨 보았다.

함께 서식하는 바람꽃의 잎도 보인다.







만개한 범꼬리 군락이 환상이다.







골짜기 아래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살랑이는 저 범꼬리 군무를 보고 홀랑 반하지 않는다면

본인의 감성 지수를 크게 의심해 봐야 할 것이다.







때가 어느땐데 나도개감채가 아직껏 피어 있는고?







색조 화장을 한 듯한 인가목의 분홍빛 자태가 참으로 섹시하지 않는가?

코 끝에 스칠락말락한 아련한 향기는 더 섹시하다.







아마도 빈약하게 핀 덜꿩나무의 꽃인 듯하다.







금강초롱은 아직 잎과 줄기만 드러내고 있다.

머지 않아 봉오리를 낼 것이다.







여기가 광릉은 아니지만, 아마도 광릉갈퀴인 듯하다.







꽃들과 눈맞춤하며 설렁설렁 걷다보니 나도 모르는 새 대승령까지 와버렸다.

 

시계를 보니 남은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 

그늘에 잠시 앉아 허한 속을 달랜 후 하산을 서둘렀다.

 






하산길 주위에 가득 핀 조릿대 군락도 꽃이 한창이다.








대나무의 꽃은 그리 흔히 볼 수 있는게 아니다.

이백(李白)의 시가 불현듯 떠오른다.


鳳飢不啄粟

봉은 굶주려도 좁쌀을 쪼지 않는다

所食唯琅玕

오직 낭간(琅玕) 열매만을 먹을 뿐이다

焉能與群鷄

어찌 능히 뭇 닭떼들과 뒤섞여

刺蹙爭一餐

한 끼 밥을 차지하려 다투리오?







봉(鳳)이 먹이로 삼는다는 낭간(琅玕)은 중국 神話 속의 곤륜산에 사는 대나무의 열매다.

仙界가 아닌 인간계에선 흔히 조릿대를 낭간으로 친다.

조릿대는 백 년에 한 번 꽃이 피고, 꽃이 지고나면 말라 죽는다는 속설이 있다.

물론 확인해 보진 못했다.

하지만 장차 장차 낭간이 열릴 꽃을 만난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행운이라고 여기고 싶다.








대승령에서 장수대로 이어지는 내리막은 매우 순한 편이다.

흙길이 패이지 않게 인공적으로 깔아 둔 돌길을 따라 터벅터벅 걷다보니 어느 새 대승폭포까지 왔다.







설악산의 대승폭포는 개성의 박연폭포, 금강산의 구룡폭포와 더불어 명색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3대 폭포다.

그러나 가뭄엔 장사가 없는 것인지 시원한 물기둥은 고사하고 찔찔거리는 물줄기도 없어 그야말로 대 굴욕을 연출하고 있다.


참으로 가뭄이 심각하다. 천상 소라도 잡아 기우제를 지내야 할 것같다.








이제 다 내려왔다.

아래 한계령 계곡이 보인다.







장수대 분소로 향하는 마지막 계단길을 걸어내려오다가 문득 저 편을 바라보니

아득한 높이의 직벽을 캔버스삼아 한 폭의 노송도를 친 것같은 그림이 연출된다.




 

장수대 분소에 도착함으로써 트레킹이 끝났다.


양양에서 산악회 팀의 버스와 합류하기로 핬던 터라 바삐 움직여야 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양양편 직행버스 시간표를 보니 앞으로 두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한다.

망했다. 이렇게 시외버스가 뜸할 줄이야~


하는 수 없이 비싼 택시를 잡아타고 오색으로 이동했다.

오색에서도 버스 시간이 여의치 않아,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부산 아저씨들과 요금 분담하여 함께 택시를 잡아타고 양양으로 달렸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마침 버스도 방금 도착했다고 한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국립공원 안내도상으로는 12.7km인데 트랭글 앱에서는 11.7km로 기록되었다.

무려 12시간이 넘게 걸렸다. 순수 이동 시간은 9시간 남짓.

3시간 9분의 휴식시간 중엔 70%는 꽃을 찿고 촬영하느라 소요된 시간이다.

 

이동 속도 평균 시속 1.2km라, 거북이 산행도 이만한 거북이가 없을 터이다.

하지만 야생화 트레킹의 장점 중의 하나는, 목표를 정해놓고 무조건 시간 내에 주파하는

극기훈련식의 산행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주위를 좌고우면 하면서 느리게 걷는다는 것이다.

 

이번 트레킹은 매발톱나무, 털댕강나무, 홍괴불나무, 조릿대꽃 등 

지금껏 한 번도 실물로 접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꽃을 만났다는 점에서 꽤 성공적이라 자부하고 싶다.

물론 일출과 운해와 함께 한 아름다운 설악의 아침 풍경은 덤으로 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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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벌써 설악산이 그립다.

몸은 그 날의 고통을 벌써 잊어버렸는데

마음은 그 때의 좋았던 기억을 잊지 않고 있기 때문이리라.




(2015.06.06. 설악산 트레킹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