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국내여행

2017.06.24. - 경주 남산 잠깐 산책하다 (feat.부흥사)

주말, 경주 남산 자락을 어슬렁거리다가
멀리서 들려오는 아주 청아한 독경 소리에 끌려
그 소리의 근원을 따라 발길을 옮기다.

처음엔 그저 녹음된 염불 테이프를 틀어
확성기에 연결해 산자락을 시끄럽게 하는 것인줄 알았는데
간간이 염불하다 말고
목구멍에 찬 가래를 헛기침으로 끌어올려
꿀꺽 삼키는 소리까지 섞여 들리니
이것이 실시간 라이브인 줄 알겠더라.

전엔 그 존재를 몰랐던,
'부흥사'라는 작고 아름다운 절이다.

초입에서 젊은 돌부처가 나를 반긴다.
가사장삼 대신 천 년 묵은
푸른 이끼를 걸치고 있는 부처,
크기도 작고 지극히 소박하지만
알 듯 모를 듯 엷은 미소를 띄고 있는 듯한
상호(相好)에서 범상치 않은
오오라(aura)가 스며 나오는 듯하다.

젊은 석불의 오른편엔
작은 감실(龕室)이 조성되어 있고
그 내부엔 비교적 최근에 조각된 듯한 불상이
홀로 가부좌를 틀고
고요히 선정 삼매에 들어 계신다.

카메라 눈도 내 심안(心眼)도 심히 몽매하여 
저 안의 부처님이 제대로 보이질 않는구나.

대웅전엔 음력 초하루 기도가 한창이다.
좁은 공간이지만 저마다의 염원을 안고 찾아 온
아랫마을 할머니 신도들의 경건스러운 기도가
간절하게 느껴진다.

산자락 저 아래서 확성기로 들었던
큰스님의 염불소리를
지근거리에서 육성으로 들으니 더더욱 좋다.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염불의 뜻은 모르겠으나,
목탁 반주 함께 경 읽는 음성 그 자체만으로도
 완벽한 음악이다.

간간이 비치는 햇살이
곱게 비질한 대웅전 뜨락 마당에 내려앉아
그림자로 된 만다라를 그려 보여주다가
거두기를 반복한다.


이 순간, 천상천하 온 공간엔
오롯이 염불만이 존재하는 듯.

뜰 한 귀퉁이에 놓여있던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거의 한 시간 반 가량을
두 스님의 목소리 라이브 공연을
조용히 감상하다.

극락화가 피었나 했더니 ...


대웅전 현판의 필치가 예사롭지 않다.

당대의 학승이었던 탄허(呑虛)스님의 글이다.


재(齋)를 마치고 나면
불전에 봉헌되었던 음식을 거두어
다 함께 모여 점심 공양을 한다.
신도들께선
일원짜리 하나 시주하지 않은 나를 붙잡아 
점심 공양을 꼭 하고 가라고 간곡히 권하신다.

주방에는 음식 나눔 준비가 한창이다.


헤드 테이블은 스님 전용석이다.
일반 신도의 식탁에 차려진 음식과
전혀 다르지 않다.


근래의 심한 가뭄으로 설거지에 여려움이 있어
부득불 1회용 식기를 사용하게 되었단다.

이 뜻밖의 성찬을 공짜로 취해도 될 것인가...

지갑을 저 아래 주차장의 차에 두고 온 터라
시주를 할래야 할 수가 없는 처지다.

또 하나의 갚아야 할 업을 짓는구나.
부처님께 자비를 일단 구하고, 맛나게 먹었다.


반대편 산등성이에 석탑이 보여 가 보기로 했다.
"늠비봉 오층석탑 가는 길"이라 쓰인
팻말이 가리키는 곳으로
약 10분가량 진행하니 이런 괴석도 보이고

암반 위에 기초석을 쌓고 그 위에 조성한
호리호리한 화강암 석탑이 나타난다.



자연석 암반 위에
소위 "그랭이 공법"으로 기초를 다지고
그 위에 너른 기단을 조성한 다음
폭의 변화가 거의 없는 오층으로 탑을 쌓았다.
 

기단과 탑신에는
정으로 쪼은지 그리 얼마 되지 않은
돌들이 많은 것으로 보아
비교적 최근에 복원한 것 같다.
주변에는 근처에서 발굴한 듯한 파편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어
예전에는 이 곳에 법당이 있었음을 말해준다.

다이어트를 한 듯 군살 없이 날렵한 탑은
저 아래 내남 들판과 멋진 조화를 이룬다.

아래는 하산하는 길에서 만난 들꽃 모음.


바위떡풀 바위취
(댓글로 바로잡아주신 바위떡풀님께 감사)


매화노루발

개옻나무 열매

어성초

이건 절에서 약으로 쓰려고 재배한 것 같다.
"약모밀"이 정명이지만 익숙하게 불러 온
"어성초(魚腥草)"로 이름붙여 보았다.

어성초


어성초

자귀나무

큰까치수염

 1초간 늑대인 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