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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화

2015.05.01. - 신불산~영축산 야생화 탐방

   노동절 휴무를 맞아 영남알프스라 불리는 주요 산군인 영축산과 신불산의 야생화 탐방을 떠나다. 이번 심화행각(尋花行脚)은 늘 함께하던 K님이 봄맞이 고향 방문을 떠난 탓에 오랜만에 홀로 나서는 길이 되었다. 


   오늘의 메인 테마는 '설앵초'이다. 영축산-신불산 일대에 설앵초가 서식한다는 이야기를 오래 전부터 많이 들어왔고 한 번은 찾아보리라 생각만 하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실제로 대면한 것은 2011년 4월 말 간월산 등로변을 지나가다 우연히 발견한, 왜소하게 홀로 핀 딱 한송이 뿐, 각종 야생화 동호회 사이트나 블로그 등에서 사진으로만 접하며 입맛만 다시던게 고작이었다


   보현산을 갈까 생각하다가 때마침 설앵초가 필 시기인지라, 큰 고민 없이 그 곳을 탐방해 보기로 결정하였다. 상세한 서식지 정보를 알지 못한 채 무작정 떠나는 길(물론 이런저런 정보를 수집하여 대략 짐작은 하였지만)이어서 꼭 설앵초를 만난다는 보장은 없다. 설령 설앵초를 만나지 못하더라도, 신록의 싱그러움이 넘쳐나는 초여름의 신불산행은 그 자체로도 즐거운 일이 아닌가? 


   설앵초가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진 금강폭포를 경유하기 위해 산행 시작점을 삼남면 가천으로 잡았다. 장제마을을 통하여 군부대 포 사격장 옆을 지나 금강폭포, 영축산, 신불재, 신불산, 간월재를 거쳐 옛 간월산장으로 하산하는 코스다. 카메라 두 대와 렌즈 다섯개를 배낭에 우겨넣고, 떡 한 조각과 삶은 고구마 2개, 물 1리터, 캔맥주 하나를 챙겨 울산역으로 가는 리무진 시내버스를 탄 것이 5시 45분.


   KTX 울산역 구내 라멘 전문점에서 라면 한그릇을 후딱 비우고 시내버스로 언양터미널로 가서 거기서 다시 동래행 광역 시내버스로 환승하여 가천에서 하차하였다. 7시 15분부터 산행을 시작한다. 초입으로 들어가지마자 보리밭을 배경으로 영축, 신불, 간월로 이루어지는 영남알프스의 줄기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2015.5.01. 영축산, 신불산

Kodak 14nx, Nikon D800




로부터 영축산(1081m) 신불재 신불산(1208.9m) 간월재 간월산(1083m) 배내봉(966m) 오두산(823.8m)의 능선이 한 눈에 보인다. (사진을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다)









이슬 머금은 보리밭









장제마을 어느 농가의 돌담 너머 붉은 작약꽃이 활짝 피었다.









새 보기드문 밀밭도 만났다. 어릴적 남의 밀밭에 잠입하여 저 밀 모가지를 낫으로 한 웅큼 잘라 와 모닥불에 구워 먹던, 밀서리의 추억이 떠올라 슬며시 웃음이 난다.









등산로에 진입하기 전 시골 집 생울타리 아래서 뜻밖에도 은난초를 만나다. 올해 첫 대면이다. 

이 곳 이후부터 금강골로 들어가는 등로가 시작된다.









산길을 오르다 문득 뒤돌아보니 가천공단의 안개 속 아침 풍경이 펼쳐진다.









왼편으로 가면 군 포 사격 훈련장이 나온다. 당연 오른 쪽 길을 택해야 한다.









금강폭포와 아리랑릿지로 갈라지는 갈래길을 만난다.









아리랑릿지로 가는 표지석이 자못 앙징맞다. 누구일까, 저런 아름다운 배려심을 가진 사람이?









금강골 금강폭포로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하산길엔 사격장 출입금지 안내판이 서 있고, 그 위에 누군가가 "내려가면 고생함"이라 경고하고 있다. 

사격장 방향으로 하산하는 무모한 사람도 간혹 있는 모양이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려보니 민눈양지꽃 아래 있던 새끼 살모사 한 마리가 스르륵 달아나고 있다. 









그 위에 활짝 핀 으름덩굴의 암꽃.









험한 금강골이 한 눈에 조망된다. 수풀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지만 사진 정 중앙 조금 우측이 금강폭포다.









고추나무 꽃이 피기 시작한다. 잎이 고추잎과 닮아 저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3출엽으로 된 잎은 정말 고추의 잎과 흡사하다.









고추나무 새 순은 나물로 먹는다고 한다. 









꽃이 활짝 핀 나래회나무도 만난다. 









이 녀석은 꽃잎이 4장인 나래회나무와는 달리 5장이고 보라색이 감도는 걸로 봐서 이마 회나무일 것이다.









회나무(추정)








   

   

   금강폭포 하단에 도착하였다. 최근 큰 비가 없었던 탓에 수량은 그리 많지 않다. 주위에 비교 대상이 없어 사진만으로는 높이를 가늠하기가 어렵지만, 대략 이십 미터는 넘는 것같다.









폭포 오른쪽 절벽을 타고 올라 겨우 담아 본 설앵초.









폭포 아랜 민눈양지꽃이 많이 서식하고 있다.









   상단 폭포로 올라가는 길도 매우 험난하다. 거의 80도 정도의 직벽에운 매우 가파른 경사에다가 바위 표면에는 물기가 축축하고 오랜 이끼가 끼어 상당히 미끄러우니 로프를 붙들고도 오르기가 만만찮다. 어쨌던 낑낑대며 기다시피 오르다가 오른발이 순간적으로 미끄러지는 바람에 몸을 바위에 철푸덕 패대기치고 말았다. 그 바람에 등쪽으로 돌려 매었던 카메라가 바위에 부딛혀 렌즈 후드가 박살나버렸다. 다행히도 저 빨랫줄을 확실하게 움켜 쥐고 있던 터라 몸은 무사하였고 카메라나 렌즈도 손상 없이 후드만 깨지는 선에서 마무리되었다.  










로프길을 힘겹게 지나 조금 안전한 공간을 확보하여 잠시 쉬며 놀란 가슴을 달래고 있는데, 매화말발도리가 활짝 웃고 있다.









폭포 상단이 보이는 중간에 도달하였다. 하단보다 두세배는 규모가 커 보인다.









   여기도 공간이 협소하여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 자칫 미끄러져 저 아래도 실족하는 날이면 곧바로 황천행이다. 간뗑이가 배 밖에 나온 사람이 아니고서야 이 곳에 접근초차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모험가들이 왜 보험회사의 기피 대상 고객인지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여기선 모험심을 자제하고 최대한 조신 모드를 유지하기로 했다. 목숨은 소중하니까. 어쨌든 소심에 소심을 거듭하여 폭포 왼쪽 축축한 직벽 벼랑에 피어 있는 설앵초를 프레임에 넣어 보았다. 










폭포 옆에서 충분한 수분을 확보해서인지 때깔이 저리도 곱다.










직벽에 매달린 설앵초(1)









직벽에 매달린 설앵초(2)


   흰색 설앵초도 서식하는 모양이더라마는 오늘은 더 욕심을 내지 않고 이 선에서 마무리하기로 했다. 아까 벼랑길을 오르면서 용을 많이 쓴 탓에 다리가 심히 후달려서 에너지바를 씹으며 한참동안을 쉬었다. 폭포 중간의 벼랑에서 활짝 핀 설앵초를 감상하는 맛도 꽤 운치있는 일이다.


   다시 로프에 의지하여 상단 폭포 벼랑길을 다 기어 올라오니 험로는 거의 끝났다. 대신 조릿대 빽빽한 가파른 등로가 기다리고 있다. 길도 희미하여 띄엄띄엄 매달린 산악회의 본을 찾으며 전진하였다. 길을 찾는데 큰 도움이 되었던 "울산오바우" 리본을 달아 두신 분께 감사드린디.  











영축-신불산 능선에 거의 도달할 무렵에 또 만난 설앵초 군락.









여기서 점심을 먹고 가기로 하다. 정상 바위에 걸터앉아 시원한 바람 맞으며 마시는 맥주 한 캔의 맛이란!








신불산 가는 등로를 조금만 비껴나면 이런 군락을 만날 수 있다.









습지엔 동의나물과










호랑버들도 있다.









영축산 가는 길







신불산을 700미터 앞두고 있다.







숙은처녀치마가 심심찮게 눈에 띈다.








숙은처녀치마








일반적인 처녀치마와는 달리 숙은처녀치마는 주로 고산지대에 서식하며 크기가 작고 잎에 결각(톱니)가 없이 매끈하고 잎 자체도 짧다. 미니스커드의 처녀치마라고나 할까.








신불산 정상 부근엔 진달래가 한창이다
















정상부 데크에서 남으로 영축산 방향을 조망하다. 영축산 정상, 시살등(981m), 저 멀리 오봉산과 금정산이 아스라히 전개된다.








신불산 정상(1209m)








영축산 방향









간월재로 내려가는 길








북쪽으로는 저 아래 간월재가 보인다.








언양 방향도 조망해 본다. 멀리 고헌산도 보인다.








간월재 데크엔 야영객들이 텐트를 치고 막영할 준비를 하고 있다.








데크 위에서 바라보는 간월산(1083m)








간월산장 방향으로 하산하는 도중의 계곡에서 만난 미치광이풀. 











시기가 약간 늦은 탓에, 수분을 끝낸 꽃을 떨구고 꼭지만 남은 것이 보인다.



 





독성이 매우 강해 먹으면 미치광이처럼 날뛴다고 해서 저런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안간월 마을 버스 정류소에 도착하니 여섯 시 반이 넘고 있다. 아침 7시 15분에 시작한 산행이 무려 11시간이 넘게 걸린 것이다. 물론 꽃을 찍느라 퍼질고 눌러앉아 보낸 시간이 대부분이지만, 이렇게 많은 시간이 소요된 것은 모든 것을 그 때 그 때 내키는대로 했던 나 홀로 산행이었다는 점 때문이리라. 


   이번 코스는 혼자 와서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때론 생명까지 위태로울 그 험산 벼랑길의 리스크를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순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아무런 안전 장구도 갖추지 않은 채로 말이다. 아무리 야생화도 좋지만, 우리의 생명보다야 더 소중하겠는가? 오늘 금강폭포를 올라와 보고서야 3년 전 겨울(2012.12.8.), 이 루트로 하산하려다 결국 포기했던 일 (http://eastream.tistory.com/187 참조)이 얼마나 잘 한 결정이었는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아마 다시 이 코스를 재방문하는 일은 당분간은 없을 것같다.










(尋花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