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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화

2014.09.09. - 논배미에서 만난 "잡초"

     "잡초"란 무엇일까? 국어사전에는 "저절로 나서 자라는 여러가지 풀"로 정의하고 있지만 결국 사람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거나 오히려 해가 되는 식물을 아우르는 말일 것이다. 인적이 닿지 않는 깊은 산중에서 자라는 "잡초"는 오로지 자연 환경의 영향하에 주위 생물들과 상호작용하면서 살아가지만, 사람이 사는 곳 주변에서 자라는 잡초들은 자연환경과 더불어 "인간"이라는 재앙에 가까운 막강한 권력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숙제까지 안고 있다. 하물며 인간의 삶의 원천인 쌀이 생산되는 논에서 태어 나는 바람에, 고귀하신 신분의 벼와 경쟁하며 자라는, 그것도 쌀에게 돌아가야 할 토양의 영양분을 가로채 먹고 사는 얄미운 잡초임에랴!


     들꽃학습원을 가려고 나선 길, 정류장에서 시내버스를 기다리다가 벼가 한창 익어가는 근처의 논으로 무심코 던진 시선에 보라색이 유난히 도드라진 곳이 있었더. 접근해 보니, 뜻밖에도 물옥잠이 한창이다. 그것도 엄청난 군락으로! 가끔 한 두 포기 핀 것을 본 적은 있으나 이렇게 대규모 군락을 이룬 곳은 처음이라 버스 시간도 잊고 사진기를 꺼내 정신없이 셔터를 눌렀다. 어느 정도 찍고 나니, 옆에 보풀도 보이고 그 옆에 피, 알방동사니, 또 그 옆엔 한련초도 보인다. 사마귀풀, 주름잎, 개구리밥, 털별꽃아재비, 세모고랭이 등등도 잇따라 눈에 들어온다. 한마디로 수생식물의 전시장이라고나 할까.


     이 곳은 조그만 논뙈기다. 사방으로 큰 논이 있는데, 그 사이에 낀 짜투리 땅이라 경작하지 않고 그냥 묵힌 작은 논배미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관심 밖의 땅이기에 이런 수생식물들이 그들만의 리그를 벌이는 작은 우주를 형성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등장하는 다양한 수생 식물들은 벼농사의 "주적(主敵)"이다. 번식력이 워낙 왕성하여 제때 손을 쓰지 않으면 논 전역으로 번지고, 특히 월등한 양분 흡수 능력으로 어린 벼에게 공급되어야 할 토양의 영양분을 가로채서 벼의 생장을 방해는 공공의 적으로 꽤 악명이 높다.


     농부들이 농기구나 농약으로 이놈들의 씨를 말리려 힘쓰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아무리 아름다운 잡초일망정 지나친 감상(感傷)론적인 접근은 금물인 것이다. 하지만 그러나 저 식물들이 무슨 죄란 말인가? 우연히 씨앗이 떨어진 곳에서 싹이 트고 뿌리 박고 자란 잘못밖엔 없는 "착한"식물일 따름인데. 하필 앉은 곳이 오로지 벼만 허용된 "논"이라는 공간일 뿐.


     다행히도 이 녀석들은 사람들의 경작 범위 밖에 있는, 버려진 작은 논배미에서 태어나 자라는 탓에 효능 좋은 농약으로부터의 멸문지화(滅門之禍)를 피할 수 있었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혼신을 다해 자라서 후손을 남기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생물다양성이란 측면에서 보면 아무리 "잡초"일망정 귀중하지 않은 생물은 없다. 수십년 후, 이 물옥잠이란 녀석이 효능 좋은 농약때문에 도태되어 "제1급 멸종 위기 식물"로 지정되는 불상사가 없으리라는 보장은 없을 것이다. 이 곳의 생태처럼, "익초"와 "잡초"가 공존하는 식물 "DMZ"를 모색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2014.09.09. 울산, 북구.

Kodak DCS 14n




▼ 보풀 ▼

















물달개비  물옥잠 ▼

(물달개비로 잠시 착각...)



















▼ 한련초 ▼




▼ 올챙이고랭이 ▼





▼ 분명 고랭이 종류인데 ... 좀 더 알아본 후 이름표 달 예정 ▼





▼ 알방동사니인듯... ▼







▼ 방동사니 ▼

(금방동사니일 가능성도,,,)





▼ 털별꽃아재비 ▼



(논배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