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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해외여행

미국 서부 자동차여행 5일차 (2014.02.07) - 로스엔젤레스 시내 투어(1)

제5일 2014. 02. 07. (금요일) 흐린 후 갬.


       오늘의 일정:


      ① 유니버설 스튜디오 관람
      ② 로스엔젤레스 시내 투어
 
 
     오늘의 일정은 오전에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관람한 다음 헐리우드 거리를 비롯한 LA의 유명한 관광지 몇 군데에 발도장 찍고, 밤에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이 가까운 팜 스프링스 근처로 이동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많이 붐비지 않는 이른시간에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입장하여 관람을 마쳐야 하기 때문에 좀 서둘러 기상하였다. 습관처럼 밖으로 나와 먼저 날씨부터 확인한다. 하늘은 말끔이 개었고, 아침 공기가 선선하고 상쾌하다동계 올림픽 소식이 궁금하여 TV를 켜 보고자 하였으나 골동품에 가게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구형 브라운관 TV는 전원 스위치가 파손된 상태라 아예 켤 방법이 없어 쓴 웃음만 짓고는 포기하였다
 
     시간 절약을 위하여 아침 식사는 밥 대신 호텔 제공 음식으로 대신하기로 하고 아들과 함께 프런트에 가서 조식을 추진하였다. 커피와 오렌지주스를 비롯한 서너가지 음료와 다양한 도우넛을 제공하고 있어서 예상보다는 많이 양호한 편이다. 리셉션을 지키고 있던 스리랑카 출신 초로의 장년 아저씨와 인사 겸 잡담을 나누는데 는 본인이 예전 한국에서 일하며 좋은 추억을 만든적이 있어서 특히 한국사람을 만나면 반갑다고 한다잠깐 너스레를 떨어가며 유쾌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음료와 도우넛 몇 개를 챙겨 나오는데 더 가져가라며 자꾸 집게로 도우넛을 집어 안겨주신다덕분에 한 아름 안고 객실로 돌아왔다. 한국에 관한 작은 인연만으로 이리 우호적일 수 있다니TV 건과는 별개로 기분이 좋았다. 도우넛과 케익은 너무 달긴 했지만 아침 식사가 될 정도로 먹고도 제법 남아서 나중에 좋은 간식이 될 것같아 봉다리에 넣어 따로 챙겼다. 짐 다 꾸려 차에 싣고 출발 전 다시 한 번 프런트에 들러 첵아웃 하면서 스리랑카 할배에게 작별인사를 하고준비한 빈 물병에 커피도 채워 나왔다

 

     유니버설 스튜디오로 가는 170번 하이웨이는 출근 차량 탓인지 예상외로 정체가 심하였다. 10분이면 충분할 거리를 30분이 넘게 걸려 도착한 것같다. 16불짜리 지하 제너럴 파킹에 주차하고 에스컬레이터를 타니 바로 씨티워크(Citywalk) 광장으로 나온다. 입장권은 어젯밤 노트북으로 온라인 티켓(e-Ticket)을 구입해 두었다. 1인당 거금 87! UCLA의 티켓 센터에서 할인권을 구입할 수 있다는 정보를 알고 갔지만 시간이 맞지 않아 온 돈 주고 살 수밖에 없었다. e-Ticket은 프린터가 없어 PDF 화일을 아이패드에 저장하여 두었다.
 
     입구에 도착해 보니 830, 꽤 많은 사람들이 벌써 진을 치고 오픈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850분쯤에 게이트를 열어 입장을 시작하였는데, 아이패드의 pdf 화일을 보여주어 스캔 후 통과하였다. 입장한 관람객들을 잠시 광장에 대기시켰다가 정확히 9시에 풀어서 관람을 개시한다.
 




e-ticket





     우린 먼저 상단(Upper Lot)의 슈렉4D(Shrek 4D), 심슨라이드(The Sympsons Ride)를 거쳐 하단으로 내려가서 가장 인기가 많은 트랜스포머 3D 라이드, 머미 라이드, 쥬라기 공원 라이드를 두루 섭렵하였다. 이른 시간부터 설친 덕분에 줄을 길게 서지 않고도 쾌적하게 관람이 가능하였고, 어떤 것은 두 번씩 타기도 하였다. 예전 출장길에 짬을 내서 잠시 들렀을 땐 대기열이 어마어마하여 그 끝에 설 엄두를 내지도 못하고 스튜디오 투어와 워터월드 공연만 보고 나왔던 아픈 기억이 있다.
 
     다시 상단으로 올라와서 Special Effects Stage를 보고 나오니 점심시간이 넘었다공원 내 식당에서 피자와 파스타로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는 계속 스튜디오 투어, 애니멀 액터스 등 나머지 어트랙션을 즐겼다마지막으로 워터월드 공연을 관람을 마치고, 배우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파크를 빠져나오니 벌써 4시가 훌쩍 넘는다2시쯤 마치고 나오는 것이 당초 계획이었는데,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고, 정신없이 놀다보니 좀 늦었지만, 오랫만에 잠시나마 동심으로 되돌아가 마음껏 웃고 가슴 졸이면서 원초적 카타르시스를 맛볼 수 있어 행복했다.
 
     우리나라에도 경기도 화성땅에 2016년 완공을 목표로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짓고 있다는데, 아시아 최대 규모가 될 것이라고 한다. 완공되고 나면 굳이 미국까지 와서 이 곳을 찾을 이유가 없으니 다른 일정에 집중 할 수 있으리라.


@Universal Studio Hollywood


 
     예정한 일정대로라면 우린 지금 산타모니카 해안을 구경한 후 헐리우드 거리를 걷고 있어야 한다.  질 무렵엔 LA를 떠나 팜 스프링스로 향해야 하니까하지만 우린 이제서야 내비에 의존해 산타모니카로 가고 있고, 거기서 석양을 본 다음 헐리우드고 뭐고 가 볼 겨를도 없이 서둘러 LA 떠나지 않으면 안된다마눌님을 비롯한 식구들은 여기가 마음에 드는지 LA를 떠나고싶지 않았으면 하는 눈빛이 간절하다. 사실 나도 조금은 그랬다운전 도중 도중 짧은 번민(?)과 의논 끝에 LA의 일정을 하루 더 연장하기로 결단을 내렸다. 그러기 위해서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과 세도나를 포기하는 아픔을 감수해야 했다.
 
     사실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은 세도나로 가는 도중이어서 양념으로 넣은 일정이었고, 내 숨은 뜻은 세도나에 있었다세계에서 가장 지기(地氣)가 강한것으로 소문난 이 곳에 언젠가는 꼭 와 보고 싶었다예로부터 대대손손 이 곳에 살아 온 인디언들의 신성하고 영험한 기도처 세도나. 를 닦는 도꾼()들은 기도빨이 좋아 선정(禪定)에 쉽게 이를 수 있는 곳, 예술가들에겐 창조적 에너지를 고양시켜 기발한 영감을 떠올리게 해 주는 곳, 나처럼 일상의 스트레스에 찌든 凡夫들에겐 힐링의 기운으로 마음의 안식을 준다는 이 곳의 볼텍스(Vortex)를 체험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마눌님이나 아이들에게 볼텍스니 地氣니 하는 황당한 이야기를 꺼내본들 무슨 소용이리요? 그냥 나 혼자만의 이기심일 뿐. 과감히 포기했다. 그러나 이번만이다.
 
     포기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도중 UCLA 표지판을 발견하고 예정에도 없던 UCLA를 들러보자는 즉흥적 여유마저 생겨났다. 내비를 유씨엘에이의 심장부로 재설정하고 고고씽하는데 잘 가다가 공사로 도로가 막힌 부분이 떡하니 나타난다. 우회해서 대충 감으로 찾아가는데 이 내비 속의 아가씨는 "가능할 때 유 턴, 가능할 때 유 턴"이라 거듭 부르짖으며 신경질을 부린다. 무시하고 계속 진행하니 대학 내부로 추정되는 장소로 진입할 수 있었다. 근데 이 넘의 학교는 어떻게 된 셈인지 민간이 사는 동네와 학교간의 경계가 보이지 않는다. 학내를 외부로부터 보호하는 굳건한 담장이나 높은 철조망을 생각했는데, 완전 개방된 캠퍼스인 모양이다. 책가방을 메거나 든 젊고 표정이 밝은 아리따운 청춘들이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어디론가 오고가는 모양새를 보니 여기가 학교인 것만은 분명하다. 어쨌건 학내(라고 추정되는 지역)를 한바퀴 휘젓고 난 후 산타모니카를 향해 계속 달려 마침내 도착하니 황혼은 이미 다 져버린 후였다. 망했다. 일몰 땜에 왔는데. 오는 도중 도중 쓸 데 없는 욕심을 부린 탓이다.
 

     주차 미터기 옆에 차를 세워두고 해변으로 걸어 나가 보았다정말 엄청나게 넓은 해안이 펼쳐져 있다. 가족들이 단체로 공중 화장실에 간 동안 해변의 벤치에 잠시 홀로 앉아 있자니 저 앞에서 포옹과 함께 진한 키스를 나누는 커플이 눈에 들어왔다이문열의 소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의 한 장면이 문득 떠오른다. 소설에서 남자주인공이 첫 사랑의 대상이었던 옛 연인과 극적인 재회를 하는 장소가 바로 이 산타모니카 해변이다. 장차 두 사람에게 닥쳐 올 비극적 파멸도 까맣게 모르는 채 말이다나도 이 벤치에 홀로 앉아 있으면 아득한 첫 사랑과 거짓말같이 해후할 수 있을까? 정말로 "참다운 사랑은 인생에 한 번 밖에 앓지 않는 홍역같은 것"일까

 

     이내 돌아온 마눌님과 아이들이 실없는 망상에 젖어 있는 나를 현실 세계로 데려다 놓는다. (. 근데 내게 첫 사랑의 추억이란게 있기나 했었나?) 조금 떨어진 저 쪽에 휘황한 조명으로 번쩍이는 놀이공원 비슷한게 있어서 그 곳으로 걸어가 보니 목조로 된 부두 시설이었고 그 넓은 데크 위엔 위락시설과 각종 식당, 상점들이 늘어서 있어 많은 사람들이 우글거린다. 목조 데크를 따라 끝까지 가 보니 서쪽으론 일망무제의 태평양이 펼쳐져 있고, 좌우 남북 방향으로는 끝이 보이지 않는 길고 긴 해안선과 모래사장이 전개되어 있다. 과연 명불허전의 비치가 맞다. 데크 끝단에 아빠와 함께 게 낚시를 나온 소년이 있었는데 양동이 크기의 뼁끼통엔 손바닥만한 게가 제법 쌓여있다. 게는 잡에서 무엇을 할거냐 물어보니 팔아서 돈을 번다는군. 영악한 녀석! 게를 씀벙씀벙 건져올리는 모양이 하도 신기하여 한동안 구경하고 있는데 뱃속에서는 벌써 들어와야 할 것이 아직 들어오고 있질 않는다고 야단이 났다.

 
     어디서 밥을 먹을것인가? 문득 코리아타운이 생각났다. 좋다! 오늘 만찬은 코리아타운에서 한식으로 한다. 가족들도 모두 대환영. 다시 코리아타운을 향해 질주하였다. 음식점에 대한 정보도 없이 무작정 달려간 것이다. 예전(아마도 LA 폭동 2~3년 후?) 그 곳에서 하루 유숙하며 "우보탕"이라는 이름의 설렁탕을 먹은 적이 있는데큼직한 湯器에 각 부위별 쇠고기 건더기가 엄청난 양으로 들어 있어서 당시 대식가였던 내가 도저히 못다 먹고 남길 정도였던 기억이 있었고, 오늘도 적절한 데가 없다면 어렴풋한 기억을 되살려 그 집으로 찾아 가 볼까 하는 마음이 있었다그런데 막상 코리아타운 지역에 도착해 돌아보니 보니 거기가 어디쯤이었는지 도통 기억해 낼 수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벌써 20년도 넘었으니...
 
     타운 거리를 지그재그로 다니며 식당 간판이 붙은 곳을 눈으로 훑어보니 저녁 식사시간이 좀 지나서인지 거의 개미 새끼 한 마리 없이 썰렁하다그러다가 꽤 많은 손님이 북적거리는 어느 고깃집을 발견하고는 바로 주차장으로 진입하였다제법 너른 주차 공간엔 차량이 꽉 들어 차서 남은 자리가 없을 정도다. 식당으로 들어가 보니 아직도 자리를 못잡은 먼저 온 손님들이 대기석에서 기다리고있다. 뭔가 대단한 맛집인 모양이다. 번호표를 받았는데, 우리 앞으로 이제 5팀밖에 남지 않았단다. 제기랄, 이 넓은 미국땅에서 번호표가 웬말이냐!
 

     다른 식당을 찾아보자는 말에 마눌님은 붐비는 집은 다 이유가 있는 법이라며 파리 날리는 곳은 싫단다. 여행의 평화를 위해서는 별 도리가 없다. 마눌님 의견을 따를 수밖에홀 안에서는 떠들썩 왁자지껄한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슬쩍 들어가 보니 한국식 가스 불고기판엔 고기가 지글지글 익거나 타고 있고, 테이블마다 참이슬과 하이트병이 한두병씩 뒹굴고 있다고기 굽는 연기와 남녀 구분 없이 내뿜는 담배 연기가 엉겨 매연이 자욱하고이들이 떠들어 대는 소음은 왜 그리도 시끄러운지!  빈 참이슬병 예닐곱병을 줄세워놓고 연신 건배를 외치는 테이블도 보인다

 

     어떤 종류의 손님들인지 재빨리 스캔해 보니 흑인, 백인, 히스패닉계열이 주종인 가운데 간간히 아시안도 눈에 띈다. 한국 교민이 대부분일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다. 사장님께 물어보니 요샌 한인 손님이 거의 70% 이상이고 그 비율이 날이 갈 수록 늘어난다고. 한국 대학가 시장통의 선술집 분위기보다 더 한국적인... 이것이 과연 말로만 듣던 음식 한류의 현장이란 말인가?

 
      우리 차례가 와 테이블로 안내되었다. 돼지삼겹살, 불고기, 오리불고기쇠고기 각 부위별 등등으로 구성되는 모듬 메뉴 기본 한 판을 주문하면 소주나 맥주 중 한 병이 제공되고 고기는 무한 리필인 그런 시스템이다과연 한국에 비해 고기값이 상당히 저렴하다덕분에 몸무게 0.1톤에 육박하고 고기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아들녀석이 때를 만났다. 지금껏 암소 한우가 우주 최강으로 맛있는 줄로만 알았는데 이런 신세계가 있었느냐며 지금까지의 헝그리 여행을 보상이라도 하듯 쇠고기 등심만 몇 번 리필하여 그야말로 폭풍 흡입하였다. 과거 광우병 파동 때 미국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 시위를 강력 지지하던 딸녀석도 그 "위험한" 미국 쇠고기를 잘만 먹더라. 자고로 세상에서 제일 보기 좋은게 두 가지가 있다고 했다. 첫째, 자기 논에 물 들어거는 것, 둘째. 자기 자식들 입에 밥 들어가는 것. 그래, 오늘만큼은 다이어트 신경 뚝 끊고 싫컷 먹어 두어라. 앞으로도 춥고 배고픈 고행의 날은 계속되리니.
 
     우리는 조용히, 그리고 열심히 먹었다. 담배 연기와 무례하게 떠드는 시끄러운 소음을 평소 극 혐오하던 마눌님은 이 분위기가 아주 싫지만은 않은지 이맛살을 찌푸리면서도 그들 하는 짓을 은근히 즐겨 구경하는 듯했다식사를 마치고 계산하면서 식당 사장 아주머니께 가까운 호텔을 추천해 달라고 하니 바로 근처라며 JJ Grand Hotel을 알려준다. 모텔에 비해서 가격은 좀 나가지만 그래도 가깝고, 교민이 운영하는 곳이라 편하다고. 배도 부르고 피곤도 하니 하룻밤 묵을 곳을 찾아 또 방황하기가 귀찮아 그냥 그 곳으로 결정하였다. 두어 블럭 떨어진 호텔로 이동하여 짐을 내리고 차는 발레 파킹 아저씨에게 맡긴 후 객실로 올라왔다. 방은 과연 넓고 깨끗하여 마음에 든다밥솥을 꺼내어 내일 조식과 점심 도시락 분량의 밥을 지을 수 있도록 쌀을 씻어 준비해 두었다.
 
     일정이 바뀌었으니 동선을 다시 짜야했다. 내일은 LA의 나머지 명소를 들러보고 그랜드 캐니언을 향하여 떠나는 여정인데 구글맵을 띄워보니 그랜드 캐니언까지 반나절에 주파하긴 너무 먼 거리다그랜드 캐니언으로 가는 길목의 킹맨(Kingman)이라는 소도시가 시간상 적절해 보여 내일은 일단 그리로 가서 유숙하는 것으로 잠정 결정해 두었다다소 무계획적, 충동적이었던그러나 자동차여행의 자유를 느낄 수 있었던 5일차 일정을 이렇게 마감한다.  (5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