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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화

땅나리

땅나리
Lilium callosum Siebold & Zucc.
백합과 (Liliaceae)

     오랫동안 만나고 싶어 하던 땅나리를 마침내 친견하고 왔습니다. 생각보다는 그리 멀지 않는 곳에 뿌리를 내리고 오랜 세월을 계속 그 자리에서 피고지고 있었는데, 왜 이제서야 만난 것인지...

     저 곳을 찾는데 도움 주신 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십 수종의 야생 나리꽃 종류 중에서 색상의 황홀함으로는 이 땅나리야말로 솔나리와 더불어 단연 투 탑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솔나리의 맑고 투명한 분홍이 우아함, 고귀함의 이미지라면 땅나리의 깊고도 짙은 적황색은 순수한 정열의 느낌이라고 해도 될까요?

 

     여러 나리류의 이름도 참 재미있습니다. 꽃 방향이 하늘을 향하면 하늘나리, 땅을 보고 있으면 땅나리, 중간을 보고 있으면 중나리. 참으로 단순하고도 직관적인 작명법이 아닐 수 없어요. 그 센스에 양손 엄지척!을  드리고 싶습니다. Two thumbs up!

     한반도 자생 백합속 나리 종류 중 이름(정명)에 "하늘/중/땅"이 들어가는 것을 국생정에서 찾아보니 생각 이상으로 많이 검색됩니다.

 

하늘 : 하늘나리, 큰하늘나리, 하늘말나리, 누른하늘말나리, 지리산하늘말나리, 날개하늘나리
: 중나리, 털중나리, 노랑털중나리, 광릉털중나리
: 땅나리, 노란땅나리

    저 중, 아직 친견치 못한 것들이 더 많으니 갈 길이 아직도 한참 멀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 분이 알려 준 그 자리에 당도해 보니, 과연 땅나리는 간간이 뿌리는 장맛비를 맞은 채 수줍은듯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당당한 모습의 참나리와는 대조되는 모습이지요. 꽃의 크기도 다른 나리 종류에 비해 작은데다가 다 핀 꽃잎은 얼레지처럼 혹은 박쥐나무의 꽃처럼 뒤로 도르르 야무지게 말려 귀엽고 단정한 느낌입니다. 꽃대도 가녀리고 하늘하늘한 것이, 오죽했으면 서양인들이 이 꽃을 Slim-stem Lily로 불렀겠습니까?

     땅나리를 더욱 땅나리답게 하는 것은 바로 꽃밥이 아닐까 합니다. 다른 종류의 나리는 꽃밥과 꽃의 색깔이 다른 경우가 많은데, 땅나리는 큼직한 꽃밥을 꽃잎과 동일한 색상으로 통일하고 있어서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일체감을 완성하고 있습니다.

    종소명 칼로숨callosum은 "피부가 두꺼운[thick skined]" 혹은 "굳은살이 박힌[hardened skin]" 이라는 의미의 라틴어 "callum"을 어원으로 하고 있습니다. 꽃잎이 다른 나리 종류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두꺼운 데서 온 것으로 보입니다.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의 땅나리 항목 설명에 의하면, 《종명의 callosum은 "자색 반점이 있다(callosus)"는 뜻으로 꽃에 반점이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라고 기재되어 있는데, 라틴어 "callosus"에 "자색 반점이 있다"라는 의미가 있는 근거는 세계 라틴어 사전 어디에서도 찾지 못하였기에 국생정의 설명이 다소 황당한 느낌이 듭니다. (어설픈 제 라틴어 지식 때문에 생긴 저의 오해일까요?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얼굴에 자주색 주근깨 반점이 있긴 하지만 희미하기도 하고 꽃 안쪽 깊숙한 곳으로 집중돼 있어서 외관상 잡티하나 없는 해맑은 모습입니다. 저런 자태에 심쿵하지 않은 사람이 과연 있기나 할지?

     장마 철 무더위와 높은 습기에 온 몸은 땀으로 흥건히 젖고, 모기떼마저 극성으로 물어뜯어 가려움 때문에 피가 나도록 몸 여기저기를 긁어야 했지만 이 모든 것이 땅나리를 친견하는데 들어야 할 마땅한 댓가라고 생각하니 감당해 내는 것이 오히려 즐거움이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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