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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화

노랑개아마

노랑개아마
Linum virginianum L.
아마과 (Linaceae)

        드뷔시(Debussy)가 남긴 많은 피아노 작품 중에는 2권 24곡으로 이루어진 전주곡집(Préludes)이 있습니다. 이 전주곡 중 아마도 가장 많이 연주되는 것이 1권의 8번으로 수록된 "아마빛 머리의 처녀 (La fille aux cheveux de lin)"일 것입니다.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 이 곡을 낮은 볼륨으로 음미해 보면, 쓸쓸함이 좀 실린 아련하고 몽환적인 그 느낌에 마음 한 곳이 찡 하고 떨려 올지도 모릅니다.

     뜬금없이 드뷔시를 꺼내는 것은 전주곡 8번이 오늘의 주인공인 '노랑개아마'와 간접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예전 저 곡의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 "아마빛"이라는게 도대체 어떤 색깔일까 궁금했었지요. 아마(亞麻)의 잎은 녹색, 꽃은 보라색인데, 염색하지 않고선 녹색이나 보라색 머리라는게 있을 수 없는지라 더 의아했고, 나중 아마씨 기름을 보는 순간 해답의 단서를 찾을 수 있었죠. 바로 황금색. 아마도 드뷔시가 음악적 영감을 얻은 소녀의 머리는 찰랑찰랑 윤기로 빛나는 금발이었을 것이라 추측해 봅니다.

     아마는 서양판 모시라 할 수 있는 리넨(Linen)의 원료가 되는 식물입니다. 학명이 Linum usitatissimum이고, 속명 Linum에서 리넨Linen이 파생되었지요. 리넨은 아마의 줄기에서 추출한 섬유질을 모아 직조한 것인데, 의복용 섬유로는 가장 오래되어 이집트 피라미드에서 발굴되는 미라는 대개 아마섬유로 짠 천을 두르고 있다고 합니다. 특유의 청량감으로 여름 옷의 원단으로 널리 쓰일 뿐 아니라 테이블보, 냅킨, 와이셔츠, 블라우스, 손수건 등에도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노랑개아마에서도 린넨 原絲를 추출해 낼 수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마가 동양권에 처음 알려졌을 때, 마(麻)와 닮았다고 하여 "버금 아(亞)"字를 붙여 "아마(亞麻)"로 불렀을 것입니다. 오늘의 주인공인 개아마, 그것도 노랑개아마(Linum virginianum L.)는 아마와 같은 쥐손이풀목 아마과(Linaceae)에 속해 있으니 같은 종씨 집안 출신이라 해도 되겠지요. 다만 노랑개아마는 북미가 원산지인 것으로 보아 종소명 비르기니아눔virginianum은 아마도 미국 버지니아주의 명칭에서 따온 것 같습니다. 

     "아마"라는 키워드때문에 서두가 좀 길어졌군요. 개화 조건이 제법 까다롭다는 소문을 들은 터라, 궂은 날씨 때문에 활짝 핀 모습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기대를 낮추고 현장에 도착했는데, 다행히 비를 맞으면서도 만개상태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매우 작은 꽃이어서 담기가 상당히 난감하였지만 군락은 상당하여 제법 넓은 묘역을 거의 덮다시피 퍼져 있습니다. 귀화 외래종으로서, 왕성한 번식력으로 환경유해식물이라는 달갑지 않은 딱지를 달고 있는 돼지풀, 환삼덩굴, 쐐기풀, 도깨비가지 등과는 달리, 한정된 공간을 크게 벗어나지 않고 나름 분수를 지키며 주위 식물들과 조화를 이루고어 온 덕분으로 천덕꾸러기 신세로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우리 같은 꽃쟁이들의 관심까지 받으며 잘 살고 있는 것 같군요.

     저 곳을 떠날 무렵, 그 수많은 노랑개아마들은 모두들 약속이나 한 듯 서서히 꽃잎을 접고 있었습니다.

<끝>

P.S.

     "아마빛 머리의 처녀"에 대해 메일 주신분이 계셔서 연주 음원 링크해 봅니다. 워낙 잘 알려진 곡이어서 오리지널 버전인 피아노 뿐만 아니라 바이올린, 첼로, 하프, 플룻, 클라리넷 등 수많은 다른 악기로도 연주되었고, 오케스트라 버전, 심지어는 재즈 버전도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상송 프랑소와(Samson François)의 연주로 준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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