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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화

[창고뒤지기 #2] - 예년 이맘 때 만난 들꽃들


내가 좋아하는 漢詩 중에 중당(中唐)기의 설도(薛濤)의 "춘망사(春望詞)"라는 작품이 있다. 

당대의 명기(名妓) 가인이자 대표 여류 시인이었던 설도가 

원진(元稹)이라는 선비를 애절히 그리워하며 지은

총 4수로 이루어진 오언절구인데

그 중, 제 3수는 다음과 같다.


화풍일장로 (花風日將老)

가기유묘묘 (佳期猶渺渺)

불결동심인 (不結同心人)

공결동심초 (空結同心草)


어설프게 번역 해 보면,


꽃은 바람에 하루하루 시들어 가고

아름다운 기약은 점점 아득히 멀어만 가네요

우리의 마음은 함께 묶지 못하고

쓸 데 없이 동심초만 묶고 있어요


안서(岸曙) 김 억 시인은 이를 다음과 같이 번역했다.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갖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역시 시인다운 감성이 절절히 배인 탁월한 번역(번안이라고 해야할지?)이다.


김성태 작곡가가 여기에 곡을 붙인 것이 "동심초(同心草)"이고, 이는 거의 "국민 가곡"이 되었다.

그런데...여기에서 동심초란 무엇일까?


아마도 설도의 집 근처엔 풀이 무성하였던 모양이다. 

그녀는 떠나가는 님을 조금이라도 더 붙들어 두고자 

길가의 풀을 서로 묶어 님의 발길에 걸리도록 하였다. 

서로의 마음을 함께 묶어 보려는 애달픈 시도인 것이다. 

그 동심초가 바로 수크령이라고 한다.


아래 사진은 4년 전, 아파트 근처 야산, 

이른 아침 우연한 산책길에서 찍은 것이다.

채 마르지 않은 이슬을 영롱하게 달고 있던 수크령의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웠고,

이슬 맞은 채 잠에 취해 아직 꿈꾸고 있는 부전나비가 있어 

행여 화들짝 깨어 날아갈세라 노심초사하며 정신없이 셔텨를 눌렀었다.


수크령끼리 서로 묶어 있진 않았지만, 

내 발길은 거의 한 시간이나 이 곳에 붙들어 매여 있었던 것이다.


이듬해 그맘때쯤 다시 가 보니 

예초기로 말끔히 정리된 그 오솔길엔

더 이상 수크령은 흔적도 찾아 볼 수 없었다.


행여나 하여 찾아가 보았던 지난 토요일도 역시 그랬다.


묶고 싶은 어떤 애틋한 마음이 있다면

이제 무엇이 사라진 그 수크령을 대신할 수 있을까?




1. 수크령 (2010-9-19, 동네 앞 야산)




2. 수크령 - 부전나비 찬조출연 (2010-9-19, 동네 앞 야산)




3. 수크령 - 부전나비 확대 (2010-9-19, 동네 앞 야산)




4. 수크령 - 부전나비 찬조출연 (2010-9-19, 동네 앞 야산)




5. 금강아지풀- 부전나비 찬조출연 (2010-9-19, 동네 앞 야산)



6. 금강아지풀- 부전나비 확대 (2010-9-19, 동네 앞 야산)




7. 금강아지풀 (2010-9-19, 동네 앞 야산)




8. 수크령 (2010-9-19, 동네 앞 야산)




9. 놋젓가락나물 (2009-10-04, 동대산, 울산 북구)



10. 놋젓가락나물 (2009-10-04, 동대산, 울산 북구)



11. 놋젓가락나물 (2009-10-04, 동대산, 울산 북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