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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해외여행

서안(西安) 역사기행 #5 - "중국 최고의 대형 실경 역사 무극 - 장한가"



서안(西安) 역사기행 #5 - "중국 최고의 대형 실경 역사 무극 - 장한가"



       패키지 여행이 대개 그렇듯 판매 가격이 저렴하면 저렴할수록 옵션(선택) 관광이 많아진다. 운이 나빠 부실 업체를 만난 경우 정작 관광 코스는 대충 때우고 이리저리 쇼핑몰로 끌고 다니면서쇼핑을 강요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관광객들의 협조(?)가 시원찮을 경우 현지 가이드가 관광객을 버리고 잠적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번 우리가 선택한 패키지 역시 유류할증료나 가이드, 기사 팁 외에 발마사지($20), 장한가 가무 쇼($50), 화산 관광($120) 등의 옵션품이 포함되어 있다. 말이 옵션이지, 옵션 구입을 거부할 경우 특별히 계획한 일이 없는 경우, 팀의 다른 사람들이 옵션 코스를 돌 때 덩그러니 홀로 남아 자칫 개밥의 도토리꼴이 되기 십상이다. (다행히 연변 출신 조선족인 우리 가이드는 매우 성실하고 달변인데다 역사에 해박한 청년이어서 여행에 불편함은 느껴보지 못했다.)


       이런 사정을 대강 알기에 우린 모든 옵션코스를 다 수용하기로 했다. 어차피 싼 패키지에 옵션을 선택하건, 모든 코스가 기본으로 포함된 비싼 패키지건 결국 그게 그것인 것이다. 그리고 현지 가이드도 뭔가 남기는게 있어야 할 터이니 고민하지 않고 현지에서 지출할 비용으로 미리 계산하여 준비해 두었던 것이다.  애초에 장한가 가무 쇼는 그다지 관심이 가지 않았었다. 화려한 분장을 한 여장 남자 배우들이 나와 손발이 오그라드는 괴성을 지르며 갖은 재주를 부리는 북경식 경극류거나, 어릴적부터 비 인도적인 혹독한 훈련을 거쳐 연체동물같은 유연함으로 고난도 기예를 선보이는 써커스 쑈에 장한가의 스토리를 대충 얽어 넣은 촌스럽기 그지없는 퍼포먼스쯤으로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내 선입견이 만든 큰 생각의 오류였다. 안보았더라면 필경 후회할 뻔했다. 규모는 생각보다 훨씬 컸으며 음향, 무대, 춤, 군무, 특수효과 등은 하나의 거대한 블록버스트였다. 한마디로 상식을 뛰어넘는 방대한 규모와 현란한 기술과 탄탄한 스토리라인을 갖춘 스펙터클 라이브 쇼라고나 할까.


       백거이는 원 진(元 稹), 한 유(韓 愈), 유 종원(柳 宗元)과 더불어 중당(中唐)을 대표하는 시인이다. 백거이는 그의 자(字)인 백 낙천(樂天)이란 이름으로 우리에게 익히 알려져 있다. 가난한 지방 관리의 아들로 태어나 젊은 나이에 과거에 급제하여 지방 사무관에서 출발하여 검찰관, 황제 비서, 지방 잡관을 역임하고 나중에 형부상서, 즉 법무장관의 직책으로 낙양에 은거하다가 75살 고령으로 서거하였다.  현종은 685년생, 백거이는 772년생이니 두 사람은 87년의 나이차가 난다.




백거이 (772-846)







       장한가는 원화(元和) 원년, 서기 805년, 작자의 나이 35세, 문관 시험에 급제하여 섬서성 주질현의 사무관에 갓 임명되었을 때 의 작품이다. 백거이의 작품 중 가장 아름다운 시로서, 현종과 양귀비의 애절한 러브스토리를 비극적으로 구성하고 사후의 세계까지 범위를 넓혀가면서 노래하고 있다.  서사시 형식으로 소설처럼 스토리를 전개하고 있는데, 7언 120구, 총 840자로 이루어진 무척 긴 시이다. 혹자는 백거이가 장한가를  당명왕과 양귀비의 황음 무치한 생활을 비난하면서 이런 생활이 나라를 망치고 그들의 애정도 비극으로 종말 짓게 된 근본 원인이라고 매우 완곡하게 비난한 것이라 해석하기도 하는데, 아래의 원문과 해설을 참조하여 각자 나름껏 행간을 읽어보라.


                   長恨歌 --- 白樂天

漢皇重色思傾國(한황중색사경국) : 한의 황제 아름다운 여인 좋아하여 절세 미인을 생각하였으나 
御宇多年求不得(어우다년구부득) : 황제의 자리에 오르고도 몇 년 지나도록 찾지 못했다
楊家有女初長成(양가유녀초장성) : 양씨 가문에 딸이 있어, 이제 갓 장성하였는데
養在深閨人未識(양재심규인미식) : 규방 깊숙한 곳에서 자란지라 아무도 알지 못했네
天成麗質難自棄(천성려질난자기) : 하늘이 내린 아름다움은 묻히기 어렵도다
一朝選在君王側(일조선재군왕측) : 어느 날 갑자기 뽑혀 황제를 모시게 되었다
廻眸一笑百媚生(회모일소백미생) : 눈동자 돌려 한 번 웃으면 천하의 교태 생기고
六宮粉黛無顔色(육궁분대무안색) : 분으로 연지로 치장한 육궁 궁녀들 얼굴빛을 잃었다
春寒賜浴華淸池(춘한사욕화청지) : 봄 날씨 쌀쌀하여 화청지를 하시하시니
溫泉水滑洗凝脂(온천수활세응지) : 온천물이 매끄럽게 흘러 보드라운 살결을 씼어주네
侍兒扶起嬌無力(시아부기교무력) : 시녀들이 부축해서 일으키니 요염하게 하늘거렸는데
始是新承恩澤時(시시신승은택시) : 이것이 천자의 사랑을 받게 된 시초였다
雲鬢花顔金步搖(운빈화안금보요) : 구름같은 머리카락, 꽃다운 얼굴, 걸으면 흔들리는 금비녀
芙蓉帳暖度春宵(부용장난도춘소) : 연꽃 수놓은 따뜻한 휘장 안에서 봄 밤이 깊어간다
春宵苦短日高起(춘소고단일고기) : 봄밤은 너무 짧아 해가 이미 높이 솟으니
從此君王不早朝(종차군왕부조조) : 그 뒤로 천저는 아침 조회에 나가지 않았다.
承歡侍宴無閒暇(승환시연무한가) : 기뻐 잔치를 벌임에 한가한 시간이 없었다.
春從春游夜專夜(춘종춘유야전야) : 봄에는 봄 따라 놀고 밤에는 새도록 놀았다.
後宮佳麗三千人(후궁가려삼천인) : 후궁에 미녀가 삼천 명이나 되지만
三千寵愛在一身(삼천총애재일신) : 삼천 미녀의 총애가 오직 한 몸에 머물렀다.
金屋粧成嬌侍夜(금옥장성교시야) : 금빛 궁궐에서 화장하고 교태로 황제 모시는 밤
玉樓宴罷醉和春(옥누연파취화춘) : 옥루의 연회가 마치자 취하여 봄날처럼 따뜻했다.
姊妹弟兄皆列土(자매제형개렬토) : 형제자매가 모두 봉토를 나누어 받았으니
可憐光彩生門戶(가련광채생문호) : 부러워라, 광채가 가문에 생생하였다.
遂令天下父母心(수령천하부모심) : 마침내 세상의 부모 된 사람들 마음이
不重生男重生女(부중생남중생녀) : 아들 낳는 일보다 딸 낳은 일을 귀하게 여겼다.
驪宮高處入靑雲(려궁고처입청운) : 여궁의 높은 곳으로 푸른 구름 모여들고
仙樂風飄處處聞(선낙풍표처처문) : 신선의 음악이 바람에 날려 곳곳에서 들려온다.
緩歌慢舞凝絲竹(완가만무응사죽) : 느린 노래, 느린 춤이 악기에 어울려 행해지니
盡日君王看不足(진일군왕간부족) : 종일토록 보아도 황제는 다시 보고 싶어 했다.

 

       여기까지는 양귀비가 입궁하여 현종과 꿀 같은 나날을 보내는 장면이다.  현종이 죽은지 43년 후에 쓴 작품이기 때문에 양귀비와 현종의 아름다운 로맨스와 비극적인 최후를 비교적 소상히 알고 있는 상태에서 씌어졌으리라. 그런데 이 시에서는 "현종"이나 "양귀비"라는 말은 단 한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현종은 "漢皇"으로, 양귀비는 "楊家有女"로만 간단히 언글할 뿐이다. 이렇게 주인공을 현종이나 양귀비로 적시하지 않고 애매하게 두루뭉수리로 표현한 것은 일종의 예절이다. 당시 시인은 현종 황제의 5대째의 헌종(憲宗)의 현직 정부 관리이며 이 시는 당대 황제의 선조에 대해 노래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나치게 노골적인 언사는 피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 할 것이다.

 


漁陽鼙鼓動地來(어양비고동지내) : 어양 땅에서는 전쟁의 북소리가 땅을 울리니
驚破霓裳羽衣曲(경파예상우의곡) : 그 놀라움에 예상우의곡도 소리가 끊기었다.
九重城闕煙塵生(구중성궐연진생) : 구궁궁궐에서 전쟁의 연기와 먼지 일어나
千乘萬騎西南行(천승만기서남항) : 수천수만 수레와 말들이 서남으로 피해갔다.
翠華搖搖行復止(취화요요항복지) : 화려한 깃발 흔들거리며 가다가 다시 서며
西出都門百餘里(서출도문백여리) : 서쪽으로 대궐문을 나와 백여 리를 나갔다.
六軍不發無奈何(육군부발무나하) : 모든 군대가 움직이지 않으니 이를 어찌하나
宛轉蛾眉馬前死(완전아미마전사) : 아름다운 양귀비가 임금 말 앞에 죽는데
花鈿委地無人收(화전위지무인수) : 꽃비녀가 땅에 떨어져도 줍는 사람 없었다.
翠翹金雀玉搔頭(취교금작옥소두) : 취교와 금작과 옥소두 같은 장신구도 버려졌도다.
君王掩面救不得(군왕엄면구부득) : 임금은 얼굴을 가리려 했으나 어쩔 수가 없어
回看血淚相和流(회간혈누상화류) : 돌아보니, 피눈물이 서로 엉기어 흘러내렸다.
黃埃散漫風蕭索(황애산만풍소삭) : 누런 흙먼지 흩어져 자욱하고 바람은 스산한데
雲棧縈紆登劍閣(운잔영우등검각) : 구불구불한 잔도를 지나가서 등검각에 올랐다.
峨嵋山下少人行(아미산하소인항) : 아미산 아래에는 다니는 사람 드물고
旌旗無光日色薄(정기무광일색박) : 깃발들은 빛을 잃고 햇빛도 엷어졌다.
蜀江水碧蜀山靑(촉강수벽촉산청) : 촉 땅의 물빛은 보석 같고 산은 푸른데
聖主朝朝暮暮情(성주조조모모정) : 임금에게는 아침마다 저무는 마음이었다.
行宮見月傷心色(항궁견월상심색) : 행궁에서 보는 달도 상처받은 양귀비 얼굴빛
夜雨聞鈴腸斷聲(야우문령장단성) : 밤비에 들리는 방울소리도 애간장 끊는 소리였다.

 

       여기까지는 안사의 난과 피난길에서의 양귀비의 죽음 그리고, 귀비를 잃은 후 피난처에서의 애끊는 현종의 소회를 묘사하고 있다. 

 


天旋地轉廻龍馭(천선지전회용어) : 난리가 평정되어 황제 수레 돌아오는데
到此躊躇不能去(도차주저부능거) : 여기에 이르러서는 머뭇머뭇 차마 떠나지 못한다.
馬嵬坡下泥土中(마외파하니토중) : 마외역 언덕 아래 진흙 땅 속에서도
不見玉顔空死處(부견옥안공사처) : 옥 같은 얼굴은 보이지 않고, 죽은 곳만 쓸쓸하다
君臣相顧盡沾衣(군신상고진첨의) : 임금과 신하 서로 돌아보니 눈물이 옷을 적시고
東望都門信馬歸(동망도문신마귀) : 동쪽으로 여러 대궐문 바라보며 말 가는 대로 돌아간다.
歸來池苑皆依舊(귀내지원개의구) : 돌아오니 연못과 동산은 옛날과 같고
太液芙蓉未央柳(태액부용미앙류) : 태액의 부용, 미앙궁의 버드나무도 그대로였다.
芙蓉如面柳如眉(부용여면류여미) : 연꽃을 봐도 양귀비 얼굴, 버들을 봐도 양귀비 눈썹
對此如何不淚垂(대차여하부누수) : 이런 정경보고 어찌 눈물을 흘리지 않으리오.
春風桃李花開日(춘풍도리화개일) : 봄바람에 복숭아꽃, 오얏꽃 피는 날이요
秋雨梧桐葉落時(추우오동섭낙시) : 가을비에 오동나무 잎 떨어지는 때이로다.
西宮南內多秋草(서궁남내다추초) : 서궁 남쪽 안에는 가을 풀이 무성하고
落葉滿階紅不掃(낙섭만계홍부소) : 낙엽이 계단에 붉게 가득 쌓여도 쓸지 않는다.
梨園子弟白發新(이원자제백발신) : 이원의 자제들 이미 늙어 백발이 새롭고
椒房阿監靑娥老(초방아감청아노) : 초방의 태감도 젊은 궁녀도 모두가 늙었구나.
夕殿螢飛思悄然(석전형비사초연) : 저녁 궁궐에 반딧불 나니 양귀비 생각 처량하고
孤燈挑盡未成眠(고등도진미성면) : 외로운 등불 돋운 심지가 타버려도 잠이 오지 않는다.
遲遲鐘鼓初長夜(지지종고초장야) : 느리고 느린 종소리를 처음으로 길게 느낀 밤
耿耿星河欲曙天(경경성하욕서천) : 밝고 밝은 별과 은하수, 하늘이 밝아오는구나.
鴛鴦瓦冷霜華重(원앙와냉상화중) : 원앙새 장식 기와가 차가워 서리꽃은 더욱 짙고
翡翠衾寒誰與共(비취금한수여공) : 비취빛 찬 이불을 누구와 함께 하나
悠悠生死別經年(유유생사별경년) : 아득한 생사의 이별은 해가 지나가도
魂魄不曾來入夢(혼백부증내입몽) : 그 혼백은 아직 돌아와서 꿈에도 들지 않는다.

 

       반란이 평정된 후 조정에 돌아온 황제의 죽은 귀비에 대한 깊은 그리움과  처량하고 허전한 신세를 노래하고 있고,

 

 


臨邛道士鴻都客(임공도사홍도객) : 임공의 도사로서 도성에 머무는 길손 있어
能以精誠致魂魄(능이정성치혼백) : 정성으로 혼백을 불러들일 수 있다고 하는구나.
爲感君王展轉思(위감군왕전전사) : 황제의 잠 못 드는 처지가 가련하여
遂敎方士慇懃覓(수교방사은근멱) : 마침내 방사를 시켜서 은근히 찾아보게 하였다.
排空馭氣奔如電(배공어기분여전) : 구름에 올라 공기를 타니 빠르기가 번개 같아
升天入地求之遍(승천입지구지편) : 하늘에 오르고 땅을 들며 두루 찾아보았다.
上窮碧落下黃泉(상궁벽낙하황천) : 위로는 하늘 끝까지 아래로는 황천까지 찾았으나
兩處茫茫皆不見(양처망망개부견) : 두 곳이 너무 넓어 어디서도 찾아보지 못했다.
忽聞海上有仙山(홀문해상유선산) : 바다 위에 신선이 사는 산이 있다는 말 들었으나
山在虛無縹緲間(산재허무표묘간) : 아득한 사이에 산은 텅 비어 있었다.
樓閣玲瓏五雲起(누각령롱오운기) : 영롱한 누각에 오색구름 피어나고
其中綽約多仙子(기중작약다선자) : 그 안은 아름다운데 선녀들이 많이 있었다.
中有一人字太眞(중유일인자태진) : 그 중에 한 사람 있었으니 이름은 태진인데
雪膚花貌參差是(설부화모삼차시) : 눈 같이 흰 피부, 꽃 같이 고운 얼굴이 양귀비 같았다.
金闕西廂叩玉扃(금궐서상고옥경) : 황금 대궐 서쪽 행랑에서 옥대문을 두드려
轉敎小玉報雙成(전교소옥보쌍성) : 여종인 소옥에게 전하여 쌍성에게 알려주었다.

 

       끝내 귀비를 잊지 못하는 현종은 방사(方士)를 시켜 죽은 양귀비의 초혼(招魂)을 부탁하는데, 방사는 영계(靈界)로 올라가 귀비를 찾아 수소문하다가 태진(太眞)이라는 선녀를 만나고, 그녀가 양귀비의 화신임을 믿게 된다. 여기서 태진이란 환관 고력사가 양귀비의 과거 세탁을 위해 도사로 출가시킨 도교의 절이 "태진사(太眞寺)"였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聞道漢家天子使(문도한가천자사) : 한나라 황제의 사신이 왔다는 말 전해 듣고
九華帳裏夢魂驚(구화장리몽혼경) : 아홉 겹의 깊은 휘장 속에서 잠자던 혼이 놀랐다.
攬衣推枕起徘徊(남의추침기배회) : 옷을 잡고 베개 밀어 제치고 일어나 배회하다가
珠箔銀屛迤邐開(주박은병이리개) : 주렴과 은병풍이 스르르 열리더니
雲鬢半偏新睡覺(운빈반편신수교) : 구름 같은 머리 반쯤 기운채로 막 잠이 깨어
花冠不整下堂來(화관부정하당내) : 화관도 정제하지 못한 채로 방에서 내려온다.
風吹仙袂飄飄擧(풍취선몌표표거) : 바람이 부니 신녀의 소맷자락이 날리어
猶似霓裳羽衣舞(유사예상우의무) : 예상우의곡으로 춤추는 듯 하였다.
玉容寂寞淚闌干(옥용적막누란간) : 옥 같은 얼굴에 고독이 깃들고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梨花一枝春帶雨(이화일지춘대우) : 배꽃 한 가지가 봄비에 젖은 듯이
含情凝睇謝君王(함정응제사군왕) : 정을 품고 눈물을 머금고 황제께 감사하였다.

 

       황제가 보낸 방사와 선녀가 된 양귀비 태진과의 만남이다. 화관도 정제하지 못한 채 버선발로 뛰어나와 황제의 사자를 맞이하고, 눈물을 펑펑 쏟아놓는 양귀비의 모습이 리얼하게 묘사되어 있다.

 

 


一別音容兩渺茫(일별음용량묘망) : 한번 이별 뒤에 아련해진 황제의 음성과 얼굴
昭陽殿裏恩愛絶(소양전리은애절) : 소양전각 안에서의 임금의 은혜 끊어진 뒤로
蓬萊宮中日月長(봉래궁중일월장) : 봉래궁전 안에서의 세월은 길기만 하였습니다.
回頭下望人寰處(회두하망인환처) : 고개 돌려 인간 세상을 내려다보니
不見長安見塵霧(부견장안견진무) : 장안은 보이지 않고 티끌과 안개만 자욱합니다.
唯將舊物表深情(유장구물표심정) : 오직 지난날 쓰던 물건 가져다 나의 깊은 정 보이려
鈿合金釵寄將去(전합금채기장거) : 자개함과 금비녀를 부쳐 보내려합니다.
釵留一股合一扇(채류일고합일선) : 비녀와 자개함도 한 쪽을 정표로 남기려
釵擘黃金合分鈿(채벽황금합분전) : 금비녀 반으로 나누고 자개함 반으로 쪼개었습니다
但敎心似金鈿堅(단교심사금전견) : 본래 하나였던 우리의 마음이 이 비녀와 자개함처럼 굳게 맺어졌다면
天上人間會相見(천상인간회상견) : 언젠가는 천상이든 인간세상에서든 서로 만날 날이 있겠지요

 

        위는 방사를 통하여 황제에게 전하는 양귀비의 독백이다.


 


臨別殷勤重寄詞(림별은근중기사) : 떠나려 함에 은근히 거듭 부탁의 말을 하니
詞中有誓兩心知(사중유서량심지) : 말 가운에 서약함이 있으니 마음으로 알리라.
七月七日長生殿(칠월칠일장생전) : 어느 칠월 칠석 날 장생전에서
夜半無人私語時(야반무인사어시) : 사람 아무도 없는 깊은 밤에 사사로이 나눈 말
在天願作比翼鳥(재천원작비익조) : 하늘에서는 비익조가 되기를 원하고
在地願爲連理枝(재지원위련리지) : 땅에서는 연리지가 되었기를 원하였다.
天長地久有時盡(천장지구유시진) : 높은 하늘도 장구한 땅도 다할 때가 있지만
此恨綿綿無絶期(차한면면무절기) : 이들의 한은 이어져서 끊어질 때가 없으리라

 

       비익조, 연리지가 되어 영원한 사랑 이루기를 염원하는, 이 시의 결구다.  말미의 "천지구유시진, 차면면무절기" 대구(對句)에서 장한가라는 제목이 왔다.

 

       장한가 가무 쇼는 중국 관광청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프로젝트다. 상근 배우만 300~500여명이고, 대학 연예관련 학과의 학생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는데, 여기 출연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경력으로 인정받고 향후 진로가 보장된다고 한다. 총 감독은 중국이 자랑하는 영화감독이자 북경올림픽 개막식을 총 지휘한 장예모가 맡았다고 하는데 사실 장예모는 이름만 빌려주었을 뿐 직접적으로 관여하진 않았고, 베이징 올림픽 부감독의 작품이라고 한다. 

 

       가무쇼는 4월부터 10월까지, 폭우가 내리지 않는 한 연중 무휴로 공연되고 있으며, 입장료는 좌석 위치에 따라 238위안, 268위안, 998위안으로 꽤 비싼편인데도 매회 매진된다. 공연은 장한가를 서막부터 제 9막까지 10개의 막으로 구분하여 약 90분간 휴식 없이 진행된다. 배우들의 육성은 전혀 없이 행위로만 모든 것을 보여주는 판토마임이고, 대신 변사의 방백(나레이션)으로 진행된다. 중국어만 사용하여 말귀는 알아듣지 못하지만 스토리를 이해하는덴 어려움이 없다.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고, 입장시 공항에서나 볼 수 있는 검색대를 통과하게 하여 소지품을 까다롭게 검사했다. 카메라를 몰래 가지고 들어가려다 적발된 사람과 직원과의 실랑이가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스마트폰을 이용한 촬영은 특별히 제한하지 않는 것 같았다. 모든 좌석은 지정제이며 객석 중앙의 특석은 가격이 무려 998위안(20만원 정도)이다. 우린 268위안짜리 티켓을 구입하였는데 특석 바로 옆줄이라 특석과 다름없는 좋은 위치에서 관람할 수 있었다.


       

서  막 : 楊家有女初長成 - 양씨 가문에 딸이 있어 갓 성장했네

제1막 : 一朝選在君王側 - 일약 궁으로 발탁되어 황제를 곁에서 모시게 되고

제2막 : 夜半無人私語時 - 아무도 듣는 이 없는 야심한 밤의 속삭임

제3막 : 春寒賜浴華淸池 - 봄 추위에 화청지를 하사하다

제4막 : 驪宮高處入靑雲 - 여궁의 높은 곳에 푸른 구름이 모여들다

제5막 : 玉樓宴罷醉和春 - 옥루의 연회가 파한 후 얼큰히 취하여 귀비와 함께하는 봄 밤

제6막 : 仙樂風飄處處聞 - 궁궐 곳곳에 울려퍼지는 꿈결 같은 음악

제7막 : 漁陽鼙鼓動地來 - 어양 땅에 울려퍼지는 반란의 북소리

제8막 : 花鈿委地無人收 - 금비녀 땅에 떨어져도 수습하는 이 하나 없고

제9막 : 天上人間會相見 - 언젠가는 천상이든 인간세계에서든 다시 만나기를 ... 



       날이 어두워지고 공연이 시작되면 조명이 모두 꺼져 캄캄한 가운데 여산 위로 초생달이 서서히 떠오르는데 이 장면에서 관객들은 반쯤 넋을 놓는다. 여산 기슭에 설치된 거대한 LED 스크린에 월출 장면을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한 것이다. 조금 후 밤하늘에 무수한 별들이 켜지면(!), 관객들은 또한번 탄성을 내지르는데 이는 여산 전체에 설치한 수많은 전구의 불을 밝혀 연출한 것이다. (공연 초기에 비해 별이 많이 줄어들었는데, 이는 농부들이 산에 들어 가 케이블과 전구를 잘라 훔쳐가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어서 구룡지 저수지 물 속이 오색으로 휘황하게 물들면서 무대가 서서히 물 속에서 솟아오르고, 저 멀리 하늘에서  한 여인이 서서히 하강하여 무대 위에 나비처럼 사뿐이 내려앉는데, 영화에서처럼 공중에서 와이어를 타고 내려 온 것이다. 황제와 여인이 물 위 스크린에서 조우하면 일제히 풍악이 울리고, 동시에 수많은 분수가 물줄기를 뿜어 분수의 커튼을 만들고, 춤추는 황제와 여인의 실루엣이 물줄기의 장막위에 투사되면 관객들은 또 정신줄을 놓게 된다. 


       클라이맥스는 안사의 난을 표현한 제7막이다. 천지를 진동하는듯한 효과음과 함께 수십명의 군사들이 객석 바로 앞을 거쳐 궁으로 진격하고 전면의 대형 스크린에는 장안을 유린하는 기병의 무리들과 거대한 규모로 불타는 궁궐의 영상이 교차하는데, 구룡지 연못에 기름을 뿌려 불을 당기니 갑자기 수면이 활활 타 오르고 그 화염의 열기가 관중석을 덮는다. 찰나 무대 좌우로 폭죽의 굉음을 터지고 불꽃이 좌우로 휙휙 정신없이 비산하면 관중들은 또 한번 자지러지고 ...

 

 

  

 카메라 반입을 금하여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찍어 보았다. 제7막 안사의 난 부분이다.
 

 

 

       요컨대,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실사판이라고나 할까, 의상이나 분장 외 대부분의 특수효과는 미국 기술진에게 맡겼다고 하니 더욱 그러하다. 한 편의 헐리우드 영화를 본 기분이었다. 내용보다는 비주얼에 치중한, 그런 전형적 타임킬링용 영화 말이다. 인생의 관조와  깨달음을 위한 철학을 설파하는 따분한 퍼포먼스가 아니라 그저 눈 앞에서 펼쳐지는 기상천외한 스펙타클을 오감을 총 동원해서 즐기면 그만인 "쇼"인 것이다. 268위안, 거금 5만원을 투자한 데 대한 값어치는 충분히 하였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