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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화

털백령풀을 찾아서

     계획에 들어 있지 않던 뜻밖의 장소를 다녀왔습니다. 제게 가끔 꽃소식을 들려 주시던 분과의 인연으로. 그 분이 아시던 꽃객의 탐방길에 얼떨결로 염치불구 편승하여 동행하게 된 것입니다. 동행한 분은 알고 보니 나와 같은 아파드 단지 내에 거주하시는 이웃 주민이군요. 덕분에 경북지방의 깊은 산골로 달려가 털백령풀, 홍도까치수염 등 생전 처음 보는 식물 몇 종을 친견하는 기쁨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초대해 주시고 직접 운전까지 해 주신 L님께 감사드립니다.


▲ 개잠자리난초

     목적지에 주차한 후 산으로 이동하는 도중 털백령풀이 발 아래 풀섶 사이로 보였지만, 나중에 담기로 하고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산 중턱의 습지입니다. 이 곳에도 습지에서 만날 수 있는 식물은 거의 다 볼 수 있네요. 처음으로 눈에 들어온 것은 개잠자리난초입니다.


▲ 개잠자리난초

     언뜻 보았을 땐 잠자리난초인 줄 알았으나 자세히 보니 개잠자리난초입니다. 거(距:꿀샘)가 짧고 뭉툭하며 날개 형상의 옆꽃받침조각이 옆으로가 아닌 뒤로 완전히 젖혀져 있어서 다이빙선수가 팔을 뒤로 뻗어 다이빙대 아래로 몸을 던질 준비를 하듯 날렵해 보이는 것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덕분에 개잠자리난초와 생애 첫 대면하는 기쁨을!


△ 잠자리난초 (2015, 동대산)

     위 사진은 동대산에서 담은 잠자리난초인데, 꿀샘이 개잠자리난초보다 2~3배 더 길며 끝이 뭉툭하지 않고 날씬한 느낌이죠. 옆꽃받침조각 역시 양 옆으로 날개처럼 활짝 펼친 형상을 하고 있는데, 마치 영화 타이타닉에서 두 주인공(L. 디카프리오, K. 윈슬렛)이 뱃머리에 서서 양 팔을 벌려 갈매기의 비행을 흉내내는 유명한 장면이 연상됩니다.

     잠자리난초의 학명은 Habenaria linearifolia Maxim. 입니다. 종소명으로 쓰인 라틴어 "linearfolia"는 일직선(linear) + 잎(folia = leaf)의 결합어인데 이건 옆꽃받침조각이 양팔을 벌린듯 일직선인데서 온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 개잠자리난초 Habenaria cruciformis Ohwi의 종소명 "cruciformis"는 십자(十字)라는 뜻의 crux(=cross)와 형태, 모양이라는 뜻의 forma(=form)가 결합된 것인데, 꽃 아래 꿀샘이 십자(十) 형상임에서 온 것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 이삭귀개

     이 곳도 올해 극심했던 여름 가뭄을 피하지 못한듯 여기가 정말 습지가 맞나 싶을 정도로 바싹 말라가고 있었는데, 저런 싱싱한 이삭귀개가 진퍼리새 수풀 속에서 많이 관찰되더군요. 가뭄만 아니었다면 더 많은 개체를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 땅귀개

     땅귀개는 동대 습지에 비해 키가 크고 제법 튼튼하여 사진으로 담기가 한결 낫습니다.


▲ 땅귀개


     이삭귀개나 땅귀개 등은 식충식물이지만 끈끈이주걱과는 달리 벌레잡이 매카니즘이 지상부에 있지 않고 뿌리에 달린 포충낭으로 땅 속의 작은 곤충이나 미생물을 포집하여 먹고 삽니다. 

     습지 탐방을 마치고 솔체꽃을 만나기 위하여 정상부로 이동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솔체꽃은 상태가 그리 좋지 않습니다. 예년에 비해 개체가 몹시 빈약한 상태인데다 아직 개화 초기여서 서식 확인 그 자체에 의미를 두어야겠습니다.

 

△ 솔체꽃 

     저 멀리 낙동강과, 낙동강을 끼고 있는 들판이 시원하게 조망되는 곳이어서, 솔체꽃이 조금만 더 풍성해진다면 상당히 멋진 그림이 나올 것 같군요. 하늘 저 편으로 붉은 황혼이 드리워진다면 금상첨화겠죠?


▲ 솔체꽃 

     봉오리가 열리기 전, 갓난아기의 머리에서 머리카락이 돋아나듯 한 다발의 수술이 먼저 올라오고 있습니다. 저 깨끗한 보랏빛 색감이 참으로 좋지 않나요?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자라고 있는 어린 솔체의 싹이 땅바닥에 많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기후 조건이 좋아지고 이 어린 싹들이 잘 성장하여 군락을 이룬다면 금세 이 곳의 명물이 될 것 같군요.


△ 털백령풀

     이 털백령풀 뿐 아니라 원종인 백령풀 및 큰백령풀은 모두 미국에서 들어온 귀화식물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국생정에 의하면 털백령풀은 백령도에 서식하는 것으로 돼 있는데, 어인 연유로 그 멀고먼 서해의 작은 섬을 벗어나 경북땅의 이 깊은 첩첩산중까지 와서 자리를 잡았을까요?


△ 털백령풀


△ 털백령풀


△ 털백령풀


▲ 털백령풀


△ 털백령풀


△ 털백령풀


△ 홍도까치수염

     이 곳 탐방은 출발 전날 저녁무렵에야 갑작스럽게 결정된 것이어서 이 지역에 자생하는 식물 정보를 제대로 챙겨 보지 못했는데, 이 홍도까치수염은 생각지 못했던 특별한 선물처럼 다가왔습니다. 일행이 홍도까치수염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서야 존재를 알게되었고, 그 일행의 눈썰미 덕분에 자칫 그냥 지나칠 뻔했던 이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 홍도까치수염

     홍도까치수염은 사진상으로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까치수염이나, 큰까치수염과 비슷하겠거니 생각했는데, 실물은 많이 다르군요. 같은 앵초과 식물이니 태생적으로 유사한 모습을 공유하지만 하나하나 뜯어 보면 꽃대, 꽃잎, 꽃차례등 모든 것이 닮은 듯 많이 다릅니다.

  

▲ 홍도까치수염

     옆 모습도 예쁘지만 바로 위에서 본 모습도 매우 아름답습니다. 나중 알고보니 예전엔 상당히 많은 개체가 서식하여 제법 풍성했는데 올해는 많이 빈약하다고 합니다. 다 폭염과 가뭄 탓이겠죠? 내년엔 예년의 풍성함을 되찾을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 대나물

     홍도까치수염과 이웃해 있던 대나물입니다. 담벼락 옆 작은 꽃밭이나 사방(沙防)공사를 한 절개지에서 흔히 보는 분홍색 끈끈이대나물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지만 원종이라 할 수 있는 대나물은, 적어도 내가 사는 지역에선 만나기가 힘든 종입니다.

 

▲ 대나물

 

△ 대나물

     가까이 다가가서 자세히 보면 살짝 분홍빛을 머금은 꽃잎과, 꽃잎의 굴곡을 따라 가늘고 길게 벋어나온 10개의 가느다란 수술이 참으로 매력적입니다. 어린 식물은 나물로 무쳐 먹고 땅 속 굵은 뿌리는 은시호(銀柴胡)라고 하여 약으로 쓴다고 하는군요.


△ 애기풀

     애기풀이 커서 이렇게 변하는 줄은 몰랐습니다. 아, 이만큼 컸으니 더 이상 애기풀이 아니라 이제 어른풀인가요?


▲ 큰벼룩아재비

     꽃이 깨알처럼 너무 작아서 사진으로 담기가 결코 만만치 않은 아이들입니다. 


▲ 산호랑나비의 애벌레

     습지에서 만난 산호랑나비의 애벌레입니다. 녹, 황, 흑의 조화와 패턴이 참으로 아름답지 않나요? '벌레'라는 편견을 버리고 보면 이렇게 또 다른 세계에 눈을 뜰 수 있습니다.


▲ 산호랑나비

     위 애벌레가 우화하면 이런 우아한 모습으로 탈바꿈합니다. 장차 나비가 되어 내보일 모습을 이미 애벌레 시절부터 어느 정도 예고하고 있죠? 


 팀

     함께 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왼편이 호스팅을 해 주신 L님이고 오른편에 계신 분은 죄송하게도 성함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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