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해외여행

동유럽 둘러보기 - 《제3일 : 잘츠캄머굿 및 잘츠부르크》



동유럽 둘러보기 - 《제3일 : 잘츠캄머굿 및 잘츠부르크》



오늘은 오스트리아로 넘어 가 먼저 잘츠캄머굿의 호수를 유람하고

잘츠부르크로 이동하여 잘츠부르크 城, 모짜르트 생가,

간단한 잘츠부르크 시내 투어, 그리고  

미라벨 정원 등을 둘러보는 일정이다.


이른 조식을 마치니 시간이 약간 남아 숙소 주변 마을을 둘러보았다.

공원 녹지가 잘 조성되어 있고, 맑은 물이 흐르는 개천이

곳곳에 보인다.

 


밤새 어떤 연유인지 버스의 배터리가 방전된 것을 뒤늦게 발견하고

A/S 기사를 호출하여 점프선으로 시동을 거는 부산을 떠느라

출발이 약 40분정도 늦어졌다.


 

체코-오트트리아간 E55번 고속도로를 타고 남하하는 도중

잠시 쉬었던 휴게소 주변에 피어 있던 장미과의 꽃.

해당화일까? 꼭 닮았다.

 



국경을 통과하여 잘츠부르크로 이동 중.



 

체코에선 구경하기 힘들던 험한 산봉우리도 나타난다.

잘츠캄머굿이 가까와진 모양이다.


 


목적지의 선착장에 도착하여 기다리고 있던 유람선에 승선하다.



 

"잘츠캄머굿(Salzkammergut)"이란 "소금창고 領地"이란 뜻이라고 한다.

먼 옛날에 이 곳이 바다였는데 지각 활동으로 융기하여

해수가 증발한 후 염분이 암염형태로 굳어 매우 양질의 소금 산지가 되었다.

과거엔 이 곳의 소금이 금값 이상의 가치로 거래가 되었다고...



옥빛 맑은 볼프강 호수(Wolfgangsee)를 미끄러지듯 항행한다.

알프스의 빙하가 녹아 크고 작은 호수를 형성하였고,

이 곳 일대는 세계 자연유산으로 선정되었다.

이 호수의 최대 수심은 750미터 정도이고 어족 자원이 풍부하며

수질이 깨끗하여 정수 없이 그냥 마셔도 될 정도라고 한다.


 


호반 위의 자유로운 영혼들.



 

요트맨



 

호수 양안의 높은 산과 마을 풍광이 그림처럼 아름다워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



약 1시간의 수상 이동 끝에 장크트 길겐(Sankt Gilgen) 마을에 도착하였다.


점심을 먹으러 식당으로 이동하는 도중의 길가에

모짜르트 어머니 생가가 있다.

모짜르트의 어머니 "안나 마리아 모짜르트"는 이 곳 길겐 근처

힐덴슈타인이라는 마을 부촌장의 딸이었다고 한다. 


 


오스트리아의 대표 여류 작가 중의 한 사람인 

마리 폰 에브너-에센바흐의 묘지도 여기에 있다.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그녀가 남겼다는 "명언"이 많이 떠돌고 있다.


"당당하게 받아들인 패배도 승리다"


"가난한 자는 가난한 사람으로 취급되기를 원치 않고

부자는 부자로 취급되기를 원치 않는다.

전자는 경멸을 당할까봐 두려워서이고

후자는 돈을 뜯길까봐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헤어졌다 다시 만났을 때 나를 적당히 아는 사람들은

내가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를 묻지만,

넌 내 안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궁금해 할거야"


등등.

 


그림같은 마을 광장을 지나니 한인이 운영하는 식당이 있다.

한국에서 온 단체관광객들이 대부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전통 요리인 "슈니첼"의 전채요리로 나온 야채볶음과



 

밍밍한 맛의 정체 모를 국수.



 

돼지고기나 쇠고기를 나무망치로 두드려 넓게 펴서

빵가루를 입혀 튀겨 낸 슈니첼. 

아마 "돈까스"의 원조뻘쯤 되지 않을까?


엄청나게 커서 다 못먹을 정도의 크기로 서빙된다더니

내겐 작은 쪼가리가 나왔다. 이런 고얀놈들이 있나?

종업원 불러 강력 항의하려다가 맛을 조금 보고는 그만두었다.


다행히(?) 짜고 팍팍하고 기름기가 많아

내 취향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던 것이다.



 

밥 먹고는 소화도 좀 시킬 겸 케이블카(자일반)를 타고

 알프스 산맥의 한 자락인 쯔뵐퍼호른 정상에 올랐다.



 

해발 1,500여 미터의 서늘한 정상엔 여름 야생화가 곳곳에 피어 있고

높고 낮은 산과 호수가 어우러진 마을의 풍경이

저 아래로 멋드러지게 펼쳐져 있다.



 

정상으로 연결되는 트레일도 잘 정비되어 있어

배낭을 메고 등산을 즐기는 산꾼들도 꽤 많이 눈에 띄었다.


 


볼프강 호수의 푸르른 물빛.


모짜르트의 어머니는 아들이 태어나자 

고향의 이 아름다운 호수의 이름을 넣어 작명하였다.


"요하네스 크리소스토무스 볼프강구스 테오필루스 모짜르트"

줄여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짜르트"



 

다시 잘츠부르크 시내로 이동하여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위 사진 강 건너 저 위쪽에 보이는 호엔잘츠부르크 城이다.


 


성으로 진입하는 입구. 

입장료를 내고 표를 끊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다.



 

성 위에서 본 잘츠부르크 시의 외곽의 풍경.



 

사진 정 중앙에 멀리 잔디정원과 흰 건물이 보이는데,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속의 예비역 대령 "루트비히 폰 트렙"의 집으로 설정되어

영화를 촬영한 곳이라고 한다.



 

이 요새는 1077년 잘츠부르크 대주교의 명에 따라 지어졌고

 유럽에서 가장 큰 중세시대의 성 중의 하나이며

유럽에서 가장 보존이 잘 된 성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20세기 초, 1차 대전 당시 이탈리아 죄수들과

나치 전범들을 수용하는 감옥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砲口를 통해 본 잘츠부르크 시내


 


성내의 한 광장엔 



 

많은 관광객들이 구경하는 가운데

결혼식 화보 촬영이 진행되고 있었다.

 


잘츠부르크 대성당과 그 뒤로 이 도시를 가로지르는 잘자흐 강이 보인다.



 

호엔잘츠부르크를 빠져 나와서 잘츠부르크 대성당을 지나 조금 걸으니

모짜르트 생가에 도착하였다.

위 건물 3층, 창문이 열린 곳이 모자르트의 생가다.


 


문패엔

"이 집에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짜르트가

1756년 1월 27일 태어나다" 

라고 새겨져 있고,

지금은 모짜르트 박물관으로 꾸며 운영되고 있다.


현재의 잘쯔부르크는 모짜르트가 다 먹여살린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당시 모짜르트 일가는 음악가로는 이름을 떨쳤지만

황제나 대주교 전속(궁정) 음악가로서의 박봉 외에

귀족들에게 작품을 의뢰받아 작곡해 주는 수임료 및

개인 교습, 콘서트 입장료 등이 주 수입원이었지만

늘 가난에 쪼들렸다.


모짜르트의 일대기를 그린 외국의 다큐먼터리를 보면

오스트리아, 독일, 체코, 프랑스 등 연주 여행(해외 공연)을 다니면서

큰 돈을 벌기를 기대했지만, 

정작 작곡 의뢰인이나 콘서트의 청중들은 그의 음악엔 열광하면서도

댓가를 지불하는덴 매우 인색하여 말년의 모짜르트는 

지인들에게 돈을 꾸어 달라는 부탁을 끊임없이 해야 할 정도로

궁핍하였다고 한다.


당시 부와 권세를 쥐었던 귀족들의 이름은 흔적이 없고

모짜르트만 우뚝한 태산으로 남으니 

역시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어머니 안나는 이 주방에서 모짜르트와 가족들을 위하여

차를 끓이고 빵을 구웠을 것이다.



 

모짜르트의 육필 악보일까?

아쉽게도 이 악보의 설명문을 찍어오지 못했다.


 


모짜르트가 사용하던 피아노.


진품은 모짜르트가 나중 이사하여 거주하던 집에 옮겨 전시하고 있고,

이는 진품을 복제한 것이라고 한다.


 


소박한 거실. 

뒤로 바이올린과 그랜드피아노가 보인다.

 


모짜르트 생가 바로 오른쪽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간판으로 유명한 게트라이데 거리가 있다.


 


잘츠부르크 대성당 주변 레지덴츠 광장의 분수.


"사운드 오브 뮤직"에 보면 주인공 마리아(줄리 앤드류스)가 

트렙 대령의 집으로 가정교사를 떠나는 도중 여기를 지나치면서 

노래에 맞추어 이 분수의 말 조각상에 개구쟁이처럼 물을 뿌리며

들뜨고도 조금은 두려운 마음을 표출하는 장면이 나온다.



 

레지덴츠 광장과 면한 잘츠부르크 대성당의 뒷면.



 

미라벨 궁전(정원)으로 가는 길 건너편에

노랑머리 깃발 할매 여행단이 보행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미라벨 정원은 1600년대 잘츠부르크의 대주교 볼프 디트리히가

그녀의 연인 살로메를 위하여 지었다.


 


대주교의 신분으로 평민 여인을 사랑하여

열 몇명의 자녀까지 둔 것으로도 모자라

어마어마한 거금을 들여 이 궁전까지 지었다니

당시 대주교의 막강한 권세와 부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겠다.


 


미라벨 정원에서 폼을 잡으며 인증샷 중인 서양 처자


 


철책 건너 왼편에는 긴 잔디밭이 있는데,

이 곳에서 영화 속 마리아와 트렙 대령의 7명의 자녀가

그 유명한 "도레미송"을 불렀다.

 


젊은 음악도 2명이 기타의 반주로

사라사테의 "지고이네르바이젠"을 멋지게 연주하여

거금 1딸라를 쾌척(?)하였다. ㅎㅎ



 

디트리히 대주교는 이 일로 백성들의 지탄을 받았을 뿐 아니라

결국 로마 교황청의 분노를 사게 되고,

저 멀리 보이는 호엔잘츠부르크 성에 유폐되어

거기에서 죽음을 맞이했다고 한다.


대주교는 종교의 금기를 어기는 일탈로 큰 벌을 받았고

지금의 잣대로 보면 부도덕한 파렴치한일 뿐이지만,

오스트리아인의 자랑과 긍지를 길이 높여 주는 

아름다운 건축 유산을 남겼으니

다 용서가 되는 것인지?

결과가 과정을 정당화 할 수 있을까?


 


 《제3일 : 잘츠캄머굿 및 잘츠부르크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