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해외여행

동유럽 둘러보기 - 《제2일 : 프라하 및 체스키크룸로프》






동유럽 둘러보기 - 《제2일 : 프라하 및 체스키크룸로프》






집을 떠나 왔음을 가장 리얼하게 느끼는 순간이 아마도

여행 다음 날 잠에서 깨어 눈을 떴을 때가 아닐까 한다.


어릴 적, 어머니를 따라 외가에 왔다가 이튿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오는 천장 벽지의 패턴이 낯선 것임을 깨닫는 순간

"아 내가 지금 정말 외갓집에 와 있구나!"라는 인식이 피부로 확 와 닿으며

가벼운 흥분과 전률을 느끼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런 느낌이야말로 여행의 가장 원초적인 맛 아닐까. 



오늘 아침도 그랬다.

눈 뜨는 순간의 흥분을 그대로 침대에 누운 채 잠시 음미하고는

체코의 아침은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여, 

커튼을 걷어젖히고 창문을 활짝 열어 바깥 풍경을 내다본다.


야트막한 구릉지대에 끝없이 펼쳐진 보헤미아의 숲,

그 언덕 위엔 인형이 살 것만 같은 빨간 지붕의 그림같은 마을 ...



... 은 유감스럽게도 없었다. 










울산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 나를 반긴다.

아침 햇살을 받고 있는 덩그런 아파트. 허허헛...


"실속 패키지"가 다 그런 것 아니겠나.

대신 하늘은 명경처럼 맑고 공기는 서늘하고 뽀송뽀송하니 조금 용서가 된다.


도대체 체코란 어떤 나라일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어

체코를 키워드로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이미지를 떠올려 보니,


드보르작이나 스메타나 같은 작곡가, 

세계 탑 클라스의 반열에 당당히 올라 있는 체코 필하모닉과

이를 지휘하던 바츨라프 노이만, 라파엘 쿠벨릭, 카렐 안첼, 바츨라프 탈리히. 


전설적인 킬러 쟈칼이 애용(?)했다는 기관단총 PM-63의 나라,

그리고 


내가 보았던 유일한 체코 영화 "화장터 인부"에 나오는 

주인공 "고프로킹글"씨의 기괴한 행각과 그가 구사하던 생경한 체코어,


그리고 "프라하의 봄"으로 회자되는 反 소련/反 공산주의 항쟁 정도가 전부다.


그러고 보니 중/고교 시절 세계사 시간에 체코에 대해서 배웠던 기억이 거의 없다.

아마도 유럽 역사의 변방에 위치하여 듣보잡으로 살아올 수밖에 없었던 

그 미약한 존재감 탓이리라.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여 주류 서구의 관심을 오랫동안 받지 못하던

우리네 역사와도 좀 닮아 있는 것같다.







[천문시계탑에 올라서 본 프라하 시내의 일부]






 오늘의 일정은 


舊 시가지와 舊시청사 일대 - 카를橋 근처 - 바츨라프 광장을 구경한 다음

2시간 30분 정도 버스로 이동하여 체스키크룸로프를 둘러보고

체스키부데요비체의 숙소로 가는 여정이다.

물론 여행사에서 미리 정한 일정이며, 

우린 그저 가이드를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다.







신시가에서 버스를 내려 도보로 잠시 걷다 보면 어제 보았던 화약탑을 다시 만난다.

오른쪽 화려한 건물은 과거 역대 왕들의 궁정이 있던 곳인데

왕정이 무너지고 공화국 체제로 바뀌면서

1911년부터 시민회관이 되었다.


매년 "프라하의 봄 음악축전(5월 음악축전)"이 열리는

스메타나 홀이 있는 건물이기도 하다.  


프라하의 봄 음악축전은 1948년, 스메타나의 기일(忌日)인 5월 12일

처음 개최된 후 매년 5월 13일부터 6월 8일까지 3주간 열리며

1968년 소련/바르샤바 연합군의 프라하 침공때도 개최되었다.


음악축전은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 연주로 개막하며 

베토벤의 9번 교향곡 "합창"으로 폐막한다.


공산 정권을 피해 서방으로 망명하여

보스턴 심포니를 지휘하고 있던 라파엘 쿠벨릭은 

1980년대에 은퇴하였지만 조국이 민주화된 후 열린 첫 음악제에 참가하여

체코 필하모닉을 지휘, "나의 조국(Ma Vlast)"을 연주함으로써

큰 감동을 남겼다고 한다. 








화약탑의 관문을 통과하면 구시가지가 시작된다.

프라하의 인구가 늘면서 구시가지로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당시 황제였던 카를 4세의 명으로 신도시가 조성되었다.










과거 국왕의 야간 행차길을 밝히기 위해서 설치된 구 시가의 와사등(瓦斯燈).

지금은 물론 가스가 아닌 전기로 불을 밝힌다.









다시 구시청 광장에 도착.

왼쪽의 탑이 천문시계가 있는 舊市廳舍 건물이다.










뒤를 돌아 보면 틴(Tyn) 성당도 보인다.










광장 복판에는 체코인의 존경을 받는 성직자이자 종교개혁자인

얀 후스의 동상이 있다. 

얀 후스는 당시 로마 카톨릭 교회 지도자들의 부패를 정면 비판하고 

교회의 개혁을 주장하다가 교황 요한23세에 의해 파문당했으며

1415년 콘스탄츠 공의회 결정에 의해 화형당하지만,

그의 주장은 100년 후 마르틴 루터 등 후대의 종교개혁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게 된다.










[시계탑이 있는 구 청사]


통행료를 지불하고(패키지 경비에 포함) 탑 내부로 입장하여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시내 경관을 조망하다. 


아래 사진은 탑에서 내려다 본 프라하 시내의 일부.















































































































[광장]



발 디딜 틈 없이 빼곡한 사람들의 틈을 비집고 탑을 한바퀴 돌며

사진을 찍고는 서둘러 탑을 내려 와야 했다.


매시 정각에 시작한다는 시계 쑈를 구경하기 위해서다.










살갗이 따가울 정도의 뙤약볕에도 불구하고 

시계탑 앞엔 시계 쑈를 구경하려는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이

구름처럼 몰려 서 있다.


















이 기회를 놓칠세라 잡상인들도 대목이다.









이 시계는 천문학자이며 프라하대학 교수였던 얀 쉰델이 설계하고

시계 장인이었던 하누시가 1490년 완성하였다고 하는데 

상하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윗부분의 시계를 보면 자판과 눈금과 바늘 등이 복합적이고 입체적으로 어우러져

한눈에 봐도 상당히 정교하게 설계된 것임을 알 수 있는데

천동설의 원리에 의해 해와 달, 천체의 운행을 한 눈에 보여주는 동시에

연, 월, 일, 시 뿐만 아니라 분 단위까지도 알려주는

그야말로 최첨단(?) 천문시계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저 시계를 제대로 읽어내려면 상당한 시간을 들여 공부해야 할 듯하다.




하단의 시계는 우리나라의 책력과 비슷한 계절시계인데

12개의 원 안에 계절별로 영위해야 할 농경 활동의 그림이 그려져 있어

시계를 볼 줄 모르는 문맹의 일반 백성들이 

그림을 보고 계절을 알 수 있도록, 혹은 시계를 보고

해야 할 농사 활동을 준비할 수 있게 배려했다고 한다.









천문시계 양 편을 자세히 살펴보면,

거울을 보는 인형, 술병과 지팡이를 든 인형, 모래시계를 든 해골인형, 기타를 든 인형 등

4개의 인형이 있는데, 각각 허영, 탐욕, 죽음, 쾌락을 의미한다고 한다.










정각이 되면 저 해골맨이 줄을 당겨 종을 울림으로서 

인간에게 죽음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동시에








시계 좌우 거울맨, 술병맨, 해골맨, 기타맨이 고개를 까닥까닥 움직여 

코 앞으로 다가 온 죽음 앞에 허둥지둥하는 모습을 연출한다.









이어서

윗부분 천사 좌우의 두 창이 열리면서 예수의 열 두 제자를 형상화한 

12개의 마리오네뜨 인형이 나타나 아래의 인간을 비웃듯 내려다보고,

가장 윗부분의 황금 수탉이 울면서 쑈가 끝나는데,


이 모든 과정이 불과 십 몇초에 걸쳐 순식간에 흘러가버리기 때문에

눈 부릅뜨고 집중하지 않으면 그냥 놓치기 십상이다.


인생이란 순식간에 지나가는 짧은 것이니 

허영, 탐욕, 쾌락에 빠져 허우적대지 말고

살아 있을 때 열심히 일하고 충성을 바치라는 의미일까? 










일설에 의하면, 이 시계가 완성되자 큰 호평을 받아 

단숨에 프라하의 명물이 되었고

소문을 들은 유럽의 권력자들이 앞다투어 시계공을 데려 가 

비슷한 것을 만들려 하는 움직임이 있자,

이를 용납할 수 없었던 프라하의 권력자는 결국 이 시계공 집에 사람을 은밀히 보내어

불에 달군 쇠꼬챙이로 그의 눈을 찔러버렸다고 하는데... 믿거나 말거나.






[구 시가 광장의 결혼식 커플]









구 시청 건물 옆에 웨딩홀이 있어 시계탑 앞에서 

결혼 스냅 사진을 찍는 모습이 일상화 되어 있다.









먼 곳에서 온 이방인과도 흔쾌히 사진을 함께 찍어 준다.

관광객들의 카메라 세례에 전혀 거부감이 없다.

아니, 오히려 즐기는 것같다.















행복해 보이는 커플









전 세계인의 관심과 축북을 받을 수 있는 이 곳 광장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결혼식 장소임이 분명하다.









[관광객들이 땡볕을 피해 구 시청사 그늘에 몰려 서 있다]


시계탑을 왼쪽으로 끼고 나오면 구 시청사 측면 광장이 나오는데

 "2차 프라하 창문 투척사건(보헤미아 창문 투척 사건)"을 일으켜, 

후일 합스부르크 왕가에 의해 처형당했던 27명의 프로테스탄트를 기리는

 27개의 십자가 표지가 처형된 날짜(1621년 6월 21일)와

 함께 광장 바닥에 새겨져 있다.


 




광장 근처의 식당에서 간단히 점심 식사를 해결하고

여기와 지척거리인 카를루프橋(Karluv most)로 이동한다.







카를루프 다리는 프라하를 가로질러 흐르는 블타바강(독일어:몰다우강)에 건설된

가장 오래된 다리로서 프라하의 상징과 다름없다.


1357년 카를 4세의 명으로 처음 목조로 건축되었는데 홍수로 유실된 후

석재로 재건축되어 오늘에 이르렀는데

돌과 돌을 접합하기 위한 모르타르로 계란을 이용하였다고 한다.

구 시가지 광장과 함께 프라하를 대표하는 명소이며, 

늘 관광객들로 붐비는 장소이다. 









강 건너엔 현재 대통령 관저로 이용되는 프라하 성과 성 비투스 성당이 있다.


원래 프라하 城 관광도 일정에 있었으나 

시간관계로 생략하고, 강 건너에서 바라만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스메나타의 교향시 "나의 조국" 2악장에 묘사된

블타바 강이 카렐교 아래로 유장하게 흐른다.

이 교향시 1악장에 나오는 "비셰흐라드 城"도 저 너머로 아스라히 

보일락 말락.









다리 위 거리의 악사

















[성 요한 네포묵의 동상]


카를루프 다리를 언급할 때, 빠져서는 안되는 인물이 있다.


네포무크의 성 요한(Sanctus Ioannes Nepomucenus) 또는  성 요한 네포무크.


 그는 체코의 국민적인 성인이다. 

당시 프라하는 보헤미아 국왕이자 로마 왕이었던 벤체슬라우스가 통치하였는데

성 요한은 왕비의 고해신부로서, 어느 날 왕비가 그를 찾아 와 자신이 근위병과

부정을 저질렀음을 고백했는데, 근처에 있던 병사가 이를 엿듣고

국왕에게 고해 바친다.


국왕은 성 요한을 불러 왕비의 고해 내용을 밝힐것을 다그치지만 

성 요한은 이를 일언지하에 거부한다.

감옥에 갇혀 모진 고문에 지친 그는 죽기 전 딱 한사람에게만 자기가 들은 것을

말하겠다고 한다. 이 말을 들은 국왕은 자신의 애완견을 데리고 

감옥으로 행차하지만, 그는 왕의 애완견에게

귀속말로 몇 마디 말하고는 끝내 입을 닫아버린다.

화가 난 국왕은 그의 혀를 자르고 카를교 아래로 집어던져 죽인다.

1393년 3월의 일이다.


(위 사진 동판 오른쪽 반질반질한 부분에 

다리 아래로 던져지는 성 요한 네포묵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후 그 자리에 네포무크의 온전한 모습의 시신이 떠오르자

사람들은 그가 하늘로 승천했다고 믿게 되고, 후일 성인으로 시성된다.


그리하여 네포무크의 요한은 고해성사의 비밀을 준수하기 위하여 

목숨까지 버린 최초의 순교자이자 

다른 사람으로부터 비방을 받은 사람들의 수호성인이 되었으며, 

또한 강물에 빠져 익사하였기 때문에 홍수 피해자들의 수호성인이 되었다.


청동상 아랫부분에 위 전설의 내용을 부조해 놓았는데,

고해 중인 조세핀 왕비와 왕의 애완견 등의 형상이 보인다.


이 청동 부조를 왼손으로 만지며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속설로

청동면이 녹이 낄 새 없이 반질반질 닳아 늘 광채를 발한다.  








다리 아래 수장된 네포묵크 성인의 청동 부조도 역시 

사람들의 손길로 밴질밴질.










누가 봐 주든 말든 즐겁게 연주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바츨라프 광장]


과게엔 말을 거래하던 馬市場이었는데 이 곳은 체코 현대사의

가장 중요한 사건이 일어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체코는 2차대전 이후 소비에트 연방의 위성국으로서, 

소련의 절대적인 영향 하에 있었으나

개혁 성향의 알렉산데르 두브체크가 집권하면서 소련의 간섭을 탈피하여

"인간의 얼굴을 가진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다당제 도입, 일부 자본주의적인 요소 허용 등 과감한 정책을 펼쳤 나가면서

대다수 체코슬로바키아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다.


이에 위기를 느낀 소련이 바르샤바 조약 동맹군을 소집, 장갑차와 탱크를 앞세워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1968)하자 이에 시민들이 죽음으로 맞섰던

바로 그 현장인 것이다.


프라하의 봄은 금세 무력에 의해 좌절되었지만, 후일 소비에트 연방 해체 후

동유럽 민주화 혁명의 가장 중요한 사건인 벨벳혁명(1989)을 이끌어 냄으로써

결국 공산당 정권을 무너뜨리는 씨앗이 되었다.


 






[여름 꽃 만발한 혁명의 현장]





이로서 프라하 여정을 마치고, 다시 버스를 타고 체스키크룸로프로 향한다.





고속도로로 진입하여









보헤미아의 울창한 숲과









넓은 초원을 가로질러 2시간 30분여를 달리면










중세의 정취를 그대로 간직한 '체스키크룸로프'에 당도한다.



이 곳은 옛 중세 건축물과 문화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체코 남보헤미아 주의 작은 도시이다. 


《크룸로프 성》을 포함한 뛰어난 건축물과 역사 문화재로 유명하며, 

체스키크룸로프는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체스키"는 체코어로 〈보헤미아의 것〉을 의미하며, 

"크룸로프"는 〈강의 만곡부의 습지〉를 의미한다고 한다. 


블타바 강 상류의 물이 굽어 돌아 나가니

보헤미아의 하회마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마을 입구 높은 성벽에서 보는 이 작은 중세 도시는

완전히 시간이 정지해버린 만화속의 한 장소 같기만 하다.
















블타바 강이 도시를 감고 돌아 흐른다.

























슈바마 산맥에서 발원한 발원한 수원이 강을 이루고

체스키크룸로프, 체스키부데요비체, 프라하를 거쳐 

독일의 엘베강으로 합류하여 북해로 흘러 든다.

우리나라의 낙동강과 같은 위치로 보면 될 것이다.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에서 보듯이, 이 강은

보헤미아인의 민족 정서와는 뗄래야 뗄 수가 없는 강이다.







이 곳을 통치하던 왕자가 평민 처녀와의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에 실패하고

몸을 던져 죽음을 택했다는 전설의 탑.









골목 한 켠엔 내가 좋아하는 샤우덱의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지만

시간이 늦어 아쉽게도 문을 닫았더라.










골목길 1









골목길 2









낡은 건물 앞에서









골목길 3











골목길 4









골목길 5









골목길 6








체스키크룸로프를 빠져나가는 출구


오늘 일정은 여기가 마지막이다.

다시 버스를 타고 체스키부데요비체의 호텔로 향한다.











엄청난 규모의 양귀비 밭. 아마도 원예용?









숙소로 향하는 시골길









오늘 묵을 숙소에 당도하다.










<< 이상 2일차 일정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