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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화

尋花行 2013 6.15 - 설악산 (1/2)

몇 달 전부터 계획해 온 설악산 심화행의 날이 마침내 왔다.

 

이번 遠行에도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한다. 시간 절약을 위해서는 심야 버스편보다 더 나은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사무실의 K부장과 또 다른 K부장이 동행하다.


부산 노포동 동부터미널에서 21시 10분에 출발, 포항, 강릉, 동해, 양양을 거쳐 속초로 가는 심야버스편을 포항에서 타기로 하고 K 부장의 지인에게 부탁하여 포항-속초간 버스표는 미리 예매해 둔 터였다.


시간의 촉박으로 사무실 칼퇴근하여 바로 집으로 와서 미리 꾸려 놓은 행장을 최종 검검하고 저녁밥도 먹는둥 마는둥 급히 현관문을 나선다. 집 근처 울산 호계 시외버스 임시 정류소에서 경주 경유 포항행 버스를 20:30에 타서 포항 터미널에 도착하니 22:00,약 40분의 시간이 남는다. 저녁 식사를 못한 두 K부장이 터미널 식당에서 늦은 저녁을 먹는 동안 나는 근처의 대형 마트로 가서 소주 1병을  확보하였다.


이번 심화 여정은 설악동에서 출발하여 비선대-마등령-공룡능-희운각-소청을 거쳐 소청대피소에서 1박한 후 다음 날 중청-대청에서 일출을 보고, 다시 중청으로 내려 와 서북릉을 반주(半走)한 후 한계령으로 하산하는 것이다. 특히 공룡능, 대청봉, 서북릉 일대의 아고산대(亞高山帶) 야생화와의 조우가 유일한 목적이다.


22:40에 포항을 출발한 버스는 밤새 달려 02:40에 속초 터미널에 당도하였다. 6시간을 예상했는데, 운전기사 아저씨가 밤새 심하게 쏜 탓인지 무려 2시간이나 이른 시간에 도달한 것이다. 우리로선 나쁠 것이 없다. 그만큼 시간을 번 것이므로.


택시 잡아타고, 기사 양반에게 심야 영업 해장국집 가 줄것을 청하였다.


시내 한 음식점에 도착하여 추어탕을 주문하였다. 내가 지금껏 맛보았던 추어탕 중 최악의 맛이었지만 명실 공히 한수 이남 최고의 험로 산행을 앞두고 있는지라 일단 배를 든든히 해 두는게 급선무였으므로 그냥 꾸역꾸역 삼켜 넘긴다.


2013. 6. 15~16, 설악산.





추어탕의 "ㅊ"도 모르는 것인지 재피가루(초피나무의 열매를 간 것)도 함께 나오지 않아 종업원을 불러 청하니 그제서야 주방에서 한참 찾아서 갖다 준다. 메뉴판엔 명색이 "남원추어탕"인데, 이게 뭘 봐서 남원식 추어탕이랑 말이냐? 미꾸라지 맛은 고사하고, 하다못해 피래미 비린내조차 나지 않는, 개에게 줘도 먹지 않을 이 형편없는 음식을 무려 7천원씩이나 받아 먹다니... (해장국집에서 추어탕을 주문한 내 잘못이 더 크겠지 뭐...)


산행 마수걸이에, 행여 부정이라도 타면 안되겠기에 계산 마치고 나오면서 "잘 먹었습니다" 라고 인사까지 상큼하게 남겨 드렸다. ㅎㅎ  

허나, 조양동 "x주 속풀이해장국", 결코 잊지 않겠다.




설악동 입구에 도착하니 3시 좀 넘은 시각, 놀랍게도 그 시각에도 매표소 직원은 눈 부릅뜨고 앉아 열심히 근무를 하고 있더라. 국립공원 입장료 징수가 없어진지가 언제적인데 웬 뜬금없는 입장료인가 했더니 문화재 관람료라고 하네?  이 칠흑같이 캄캄한 야밤에 문화재 관람이라 ... 허허... 두당 3,500, 도합 10,500원을 조공하고 랜턴 불빛에 의존하여 "문화재"인 신흥사는 패스, 비선대를 향해 터벅터벅 걷는다.




비선대 산장엔 암벽꾼들이 아직 단잠에 취해있다.







비선대를 지나 금강굴을 오르는 가파른 돌길을 헉헉대며 오르는 사이 새벽이 밝아 온다. 안개 자욱한 설악동 계곡은 무더위와 습기가 가득하여 초입에서부터 온 몸은 땀 범벅이다.




중국 어딘가에 있는 공중 사원을 연상케 하는 금강굴. 아득한 수직 벼랑 중간의 암혈에 자리한 금강굴에 이르는 길은 허공에 매달리듯 위태롭게 설치된 가파른 쇠사다리를 이용해야 한다.  


금강굴 안에서 본 화채봉, 집선봉 방면.




금강굴 내부의 샘물. 그야말로 石間水다. 바위 표면을 타고 흐르는 물이 고일 수 있도록 표주박 형태로 벽을 쪼아 내고 물을 받기 쉽도록 비닐을 받춰두고 있다. 한 잔 받아 마셔보니 꽤 시원하다. 빈 물통에 이 석간수를 가득 채워 금강굴을 나왔다. 지갑이 든 배낭을 저 아래 두고 온 관계로 시주도 하지 못했다!




깍아지른 금강굴 벼랑 외벽에 매화말발도리 바위말발도리가 수평으로 피어 있다. 


 


오버행(Overhang) 바위엔 돌양지꽃도 자리를 잡고 꽃을 피웠다. 참으로 강인한 녀석이다.




마등령 오르는 도증 쉼터에서 생수로 목을 축이며 앞의 암봉을 바라보다. 




전망 좋은 곳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옆 팀에서 막걸리 한 잔을 권한다. 안주는 무려 돼지 족발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양한다는 것은 산행인의 道에 크게 어긋나는 일이라 들었기에 염치 불구하고 한 컵을 받아들고 완샷해버렸다. 아마 내가 지금껏 마신 막걸리 맛 중 탑 5에 들어갈 듯. 오돌뼈 족발은 또 왜 이리도 단 것인지!




마등령 1km 전방의 샘터에서 또 빈 병을 채우다.




함박꽃이 함박웃음으로 우리를 반긴다!!!




설악의 위용이 서서히 나타난다




꽃이 하늘을 향해 피는 꽃개회나무가 지천이었다. 이틀간의 산행 내내 이 털개회나무와 꽃개회나무의 향기가  설악의 구석구석까지 스며들어 짙은 향기를 풍기고 있었고, 우린 줄창 그 향기에 취한 채 산행을 계속하였다.




부게나무꽃도 한창이다. 근데 이 동네 꽃들은 왜 모두 수직으로 곧추 서 있는걸까? 한반도 최고 바위산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한 양기 탓일까?




수수꽃다리, 라일락의 원조뻘인 털개회나무의 향기도 대단하였다. 꽃개회나무나 털개회나무가 예전엔 정향(丁香)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것 같은데, "x개회나무" 종으로 통일된 모양이다. 이름이야 달라졌을지언정,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그 짙은 향기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마등령 삼거리엔 갓 피어 난 산꿩의다리가 자기만의 세계를 마악 펼쳐보이고 있다.




피기 시작한 눈개승마를 지나면 지금부터 본격적인 공룡능이 시작된다.

  

얼마만의 공룡능인가? 어림으로 셈해보니 약 25년은 더 된 것같다. 결혼 후에도 설악산행은 몇 번 있었지만, 공룡능은 아니었다.

지금이야 탐방로가 많이 정비되고 험로엔 철계단과 튼튼한 밧줄이 설치되었을 뿐 아니라  개인 등산 장비가 가볍고 좋아져서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는 초심자들조차 산행을 다반사로 하는 "일반적인" 탐방로가 되었지만, 과거엔 산 좀 탄다는 사람들에게 그야말로 꿈의 코스였다고나 할까,

 

끝이 보이지 않는 기나긴 오르막과 내리막을, 그것도 경사가 매우 심한 암릉길을, 양쪽이 천단만애(千斷萬崖)의 벼랑길이어서 백척간두에서 한 발을 내딛듯 아슬아슬하게 진행해야 했던 이런 "익스트림"한 곳이야말로 모험을 즐기는 산꾼들의 로망이었다. 해마다 실족 등으로 인한 인명 사고가 끊이지 않았던, 악명높은 산길이었던 거다. 괜히 "공룡능선"이란 이름을 얻었겠나?

 

과거에 비해 많은 위험 요소가 줄어들었다손 치더라도, 지금도 반드시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큰 무리가 없는 산행이 가능한 길이다.



 

나한봉 근처에서 만난 털개회나무

  

오늘의 산행을 위하여 준비 과정에서 우리가 먼저 했던 것은 짐의 무게를 줄이는 일이었다. 프랑스의 전설적 산악인이었던 가스통 레뷔파(Gaston Rébuffat)는 "무게가 적(敵)이라"라고 선언했다. 이는 등산 중에 고생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동의할 것이다. 천릿길을 갈 때는 눈썹도 떼 놓고 간다잖는가?

 

무게를 줄이기 위해, 아니 공룡릉을 만나는 자유를 얻기 위해, 우린 많은 것을 포기했다. 평소 4~5개씩 가지고 다니던 렌즈를 2개로 줄이고, 화력 좋은 휘발유 버너 대신 초소형 개스버너 하나만 챙기고, 개스는 대피소에서 사서 쓰기로 했다.

 

대부분의 음식은 조리 시간을 줄일 수 있거나 조리 과정이 아예 필요 없는 인스턴트로 준비했으며, 중식과 간식은 열량이 많은 행동식을 장만했다. 소주는 당초 계획에 없었으나, 아무래도 25년만에 별빛 찬란한 설악산 산정에서의 밤을 맞는데 이마저 없으면 너무도 서글플 것 같아, 고민 끝에 포항 터미널 대기 시간에 사서 챙겨 넣은 것이다. 

 

 

 

넘어야 할 공룡능의 험준한 암릉이 첩첩이 대기해 있다.

 

힘든 고난의 여정이 될 것임은 이미 각오했던 바다. 이제 심장이 터질 듯한 고통의 달콤함만 맛보면 된다. 등산화 끈을 다시 한 번 조여매고, 지팡이 길이를 조절하여 고정 나사를 단단히 체결한 다음 배낭 끈을 바짝 당겨 최대한 등에 밀착시킨 후, 저 험한 칼능선을 향하여 발걸음을 내딛는다.


이번 심화행(尋花行)의 주된 테마는 3가지다.  산솜다리꽃, 금강봄맞이, 그리고 참기생꽃.


위 3종 야생화 외에도 내 사는 곳 주변에서는 만날 수 없는 수많은 야생화와의 조우를 기대하니 저절로 힘이 솟는것 같다. 




 산솜다리 (#1)


공룡능 산행 시작한지 오래지 않아 산솜다리를 만났다. 철이 약간 지난탓에 행여 시든 꽃대만 구경하는게 아닐까 은근한 걱정이 있었으나 저 위 바위틈에서 아주 싱싱한 모습으로 우릴 반긴다!




산솜다리 (#2)


산솜다리를 비롯한 솜다리종류(한국에서는 왜솜다리, 솜다리, 한라솜다리)는 "에델바이스"로 알려져 있다. 1000미터 이상의 고산 바위틈에서만 자라는 탓에 산악인의 상징이 되고 있고, 지금도 등산 장비나 등산복 등에 이 솜다리를 형상화한 문양이 많이 들어간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 삽입된 "에델바이스"라는 노래가 대중들에게 크게 사랑받으면서 알프스를 대표하는 꽃이 되기도 하였다.


공룡능, 아니 설악산을 대표하는 꽃으로 정하여도 아무도 반대하지 않으리라. 


 


산솜다리 (#3)


과거, 설악산에 유람 간 사람들이 구입하는 필수 기념품엔 이 산솜다리를 압착한 작은 액자가 있었다. 특히 중고등학교 수학여행 등 단체객들에게 날개돋친 듯 팔려 나갔기에 장삿꾼들이 마구잡이로 파 간 탓에 개체가 대폭 줄었다고 한다. 


 


 산솜다리 (#4)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국생종)"에 검색해 보니 한국 특산식물이며 멸종 위기종으로 나와 있다. 내가 지금껏 생각했던 바와는 달리, 개화 시기가 8월이다. 그렇다면 위 사진의 상태는 개화가 덜 된 모습이라 보면 될 것같다. 난 꽃이 지고난 후의 씨방일거라 생각했는데

 

학명으로 "Leontopodium leiolepis Nakai"을 쓰고 있고, 라틴어 Leon은 사자를 의미하며, Poduim은 "단(壇), 대(臺)" 등의 의미를 갖고 있으니 "바위 臺 위에 우뚝 선 사자"라는 의미일까? (올림픽 등 경기에서의 시상대를 의미하는 "포디엄"을 연상해 보라)

 

 


 산솜다리 (#5)


이 꽃이 사자와 인연(?)을 맺게 된 건 아마도 꽃술과 이를 받치고 있는 10장 내외의 잔털 두터운 꽃잎의 전체적 형상에서 갈기를 달고 있는 위엄있는 숫사자의 모습이 연상되어서가 아닐까?

 

어찌됐건, 저 작고 가녀린 몸으로 이 험준한 고산의 바위틈에 뿌리 내려 온갖 풍상을 다 감내하고 끝내 꽃을 피워내는 강인함이야말로

알피니스트의 표상으로 불리는 이유일 것이다.



금강봄맞이 (#1)

 

공룡능의 또 다른 주인공, 금강봄맞이를 만났다.

 

금강봄맞이 역시 험준한 고산 바위틈에서 안개와 바람을 먹고 자란다. 산솜다리보다 훨씬 가녀린 모습인데, 특이한 것은 모든 잎이 뿌리에서 직접 난다는 것이다. 아마도 꽃대에서 잎이 났다면 늘상 맞이하는 세찬 바람을 견뎌 내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금강봄맞이 (#2)


앵초와는 6촌뻘쯤 되는 꽃이니, 꽃의 모양이 앵초를 많이 닮았다.

 

  


금강봄맞이 (#3)

 

"국생종"에는 강원도 속초, 양양 지역에서 서식하고, 특산종, 보호종으로 등재돼 있다. 학명은 "Androsace cortusaefolia Nakai", 여기에도 그리 반갑지 않은 이름, "나까이"가 등장한다.

 


 

금강봄맞이 (#4)

 

고등학교 시절, 생물시간에 분류학을 배우던 때가 있었다. 그 당시, 우리 나라 식물 학명의 끝에 "Nakai"라는 이름이 유난히 많이 붙고 있는 이유를 생물선생님으로부터 들은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데, 이는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 조선의 생물자원을 수탈할 목적으로 조선 전역의 자연 생태 조사를 실시하였는데, 이 때 본토로부터 초빙한 식물학자가 나까이였다는 것이다.

 

나까이는 조사 사업을 총 지휘하면서 전국에서 채집되어 온 식물을 분류하고, 아직 국제 식물학계에 등재되지 않은 신종(新種)에 대해서는 본인 이름을 버젓이 붙여 등록을 하였으니, 창씨개명은 조선반도의 사람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던 셈이다.

 

어쨌든, 식물의 이름에도 식민지의 잔재가 주홍 글씨처럼 지울 수 없는 상흔으로 각인되어 두고두고 씁쓸한 뒷맛을 안겨준다.

 

 

 

난장이붓꽃 (#1)

 

기대하지 않았던 난장이붓꽃까지 만나는 호사라니!!!

 

 

 

 

난장이붓꽃 (#2)


산솜다리를 찍으러 탐방로를 살짝 벗어난 바위를 타다가 우연히 만났다. 국생종에 멸종위기종으로 등재돼 있다. 5월에 개화하고 6월에 결실하는 것으로 돼 있는데, 아직 꽃이 싱싱한 개체를 만났으니 이런게 바로 횡재다. ㅎㅎ

 

척박한 환경과 세찬 비바람에 적응하여 꽃대나 잎을 짧게 유지하는 방식으로 진화해 왔나 보다. 주위를 더 둘러보면 또다른 꽃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욕심을 억누르고 다시 발길을 재촉한다.

 



난장이 붓꽃을 만난 이후의 여정은 말 그대로 기나긴 고난의 길이었다. 마등령을 출발한 지 거의 3시간째인데, 진행한 거리는 겨우 1.7km에 불과하다. 희운각까지의 거리는 3.4km, 산술적 계산으로도 6시간이나 남았다는 이야기다.


산행 도중, 일반 산꾼들처럼 앞만 보고 무소처럼 뚜벅뚜벅 걷는 것이 아니라,  행여 무심코 지나칠지도 모를 야생화를 찾느라 늘 두 눈 부릅뜨고 좌고우면하면서 걸을 수밖에 없고, 일단 꽃을 발견하면 그 앞에 철푸덕 지체없이 엎어져 머리를 조아리고, 마음에 드는 앵글이 나올때까지 이리저리 구도를 바꿔가며 셔터를 눌러야 하는 것이 이 화류계(?) 인사들의 습성이고 보면, 남들에겐 1시간이면 충분한 거리인데도 3시간도 모자라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런데, 꽃을 만나는 기쁨과는 별도로, 너무도 힘든 길이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더니, 25년만에 찾은 공룡릉은 너무도 변해 있었다. 올라야 할 암봉은 더 높아졌고, 아득히 내려가야 할 내리막길은 더더욱 깊어졌다. 무엇보다도 희운각까지의 거리가 두 배, 세 배로 멀어진것이 가장 큰 변화이다. 

 

과거 이 길을 걸었을 땐 지금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무거운 배낭에, 밑창을 고정하는 못이 솟아 올라 발바닥을 자꾸 찌르는 열악한 등산화를 신고, 경량 스틱도 없이 두 다리의 힘에만 의존하여 산행을 했는데도 이렇게 힘들진 않았던 것 같은데,

  


 

 내딛는 한 발짝 한 발짝 마다 천근 만근의 무게를 느끼며, 도저히 오르지 못할것만 같은 기나긴 깔딱고개를 기어코 기어 올라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앞으로 가야 할 능선을 눈으로 먼저 따라가 보노라면, 오늘의 목적지 부근인 중청, 대청은 저 멀리 박무(薄霧) 너머로 까마득하여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저 피안(彼岸)의 세계처럼 아련하기만 하구나.




돛의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하여 이름붙은 범봉(帆峰)




(금마타리 #1)


심신이 지치니 집중력이 저하되어 귀한 꽃을 만나도 이렇게 성의없는 샷을 날린다.




(금마타리 #2)


위의 모델을 다른 각도에서 찍어보았다. 작년 여름에 왔을 때는 타이밍을 놓쳐 꽃이 다 져버린 이후의 모습만 대면했건만, 올핸 제대로 만났다. 금마타리는 한국 특산식물이다. 




희운각 대피소에 도착했다. 너무 힘들어 여기에서 40분 이상을 퍼질고 앉아 쉬었다. 간밤에 잠을 거의 자지 못한 탓에 엉덩이만 땅에 닿으면 바로 잠이 쏟아진다.


몸을 추슬러 빈 병에 물도 채우고, 준비했던 간식을 꺼내어 허기도 좀 달래었다. 오늘의 마지막 고비가 남았다. 여기에서 소청봉까진 2.5km, 내리막이라고는 없는 순전한 비탈길에다가 경사가 심하여 최후의 힘을 끌어 모아서 쏟아부어야 한다.




생열귀나무 (#1)


생열귀나무를 만났다. 강원 북부 이북에서만 서식하기에 남쪽에선 볼 수 없는 꽃이다. 언뜻 보면 장미나 해당화와 매우 흡사하다. 꽃받침이 매우 길고 씨방이 길쭉한 타원형이면 인가목일텐테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으니 아마도 생열귀가 맞을 것이다.  




생열귀나무 (#2)




세잎종덩굴


소청봉 도착할 무렵 세잎종덩굴도 만났다. 내겐 All time new one이다! 자색 꽃 색깔이 환상이다.




그야말로 천신만고 끝에 해발 1,550미터 소청봉에 도달하였다. 너무도 힘든 과정이었지만, 상세한 기록은 생략한다. 여기서 20분 정도 더 내려가야 오늘의 목적지인 소청대피소가 나온다.




소청대피소 방향, 용아장성릉 위로 해거름 햇살이 쏟아지고 있다.




이녀석은 생열귀일까? 안가목일까?




씨방과 꽃받침의 형상을 좀 더 자세히 관찰했어야 했는데 몸이 녹초가 되니 거기까지 생각이 못미쳤다.




고산 추위에 진달래가 아직 건재하다!




멸종 위기의 만주송이풀이 여긴 지천이다.




세잎종덩굴과 이웃하여 어우러져 산다.




"고난의 행군" 끝에 마침내 소청대피소에 당도하였다.


너무도 허기가 진 상태여서, 도착 즉시 짐 풀고 물을 끓여서 햇반과 즉석카레 등을 데워 대충 비벼서 저녁으로 때운다. 힘들게 들고 간 소주를 깠으나 목구멍으로 도저히 넘길 수가 없어 두어 모금 억지로 삼켜 보고는 그만 마시기로 했다. 결국 저 소주는 무게를 줄이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소청봉 풀밭에 죄다 쏟아버려지는 가련한 신세가 되고 만다.


그리고


소청 밤하늘 별은 찬란하였으나 

그저 낭만을 좇기엔 우리의 심신은 너무 지쳐 있었다.



(제1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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