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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해외여행

서안(西安) 역사기행 #9 - 에필로그, 그리고 낙수(落穗)

     서안(西安) 역사기행 #9 - 에필로그, 그리고 낙수(落穗)

       귀국 비행기편이 새벽 2시 20분이기 때문에 느긋하게 점심 식사를 마쳐도 시간이 꽤 남는다. 지금 이후의 일정은 출국 시간을 맞추기 위한 타임킬링용에 가깝다. 그래서 심도 있는(다른 일정도 심도가 그리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탐방은 아니고 그저 "가 본 곳 목록"에 올리는 정도의 의미쯤으로 다들 받아들이는 것 같다. 가이드의 설명도 건성이고, 귀담아 듣는 사람도 나 말곤 없어 보인다.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으니 이왕 둘러 보는 것, 몸은 좀 피곤하더라도 제대로 둘러보자는 각오를 다시 다진다.

        먼저 들른 곳은 와룡사인데, 이 절은 섬서성 최초의 불교사원이다. 한나라 건녕제 원년인 서기 168년에 창건되었으니 꽤 오래된 고찰이다. 원래는 관음사였으나 송대에 유과(維果)라는 큰스님이 있었는데 늘 누워서 수행하는지라 그를 臥龍이라 불렀고, 절 이름까지 와룡사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 이후로 서안의 대표 사찰로서 부침을 거듭해 오다가 淸代에 와서 의화단 사건으로 피신한 자희태후(서태후)가 이 절에 머무르는 인연을 맺었는데, 자희태후의 시주로 이 절은 대대적인 중건을 단행하여 큰 규모를 갖추게 되었다. 중건 후 섬서성 선방 총림의 위치를 차지하였고 수많은 지식인들이 모여들었다.  이 때문에 마오쩌둥 집권 후 문화혁명기에 홍위병들의 집중 표적이 되었으며 그들에 의해 절이 파괴되고 수도하던 스님이나 기거하던 식객들이 모진 고문을 당하여 죽거나 다치는 등 많은 수난을 겪었다. 

저 향로와 촛대는 중국 절집의 공통 포맷인 것같다.

 

대웅보전에서 예불이 한창이었는데, 방해될까봐 되도록이면 가까이 접근하지 않으려 거리를 유지했다.

중국에 전래된 초기의 불교가 오리지날인 인도불교가 아니라 서역불교여서 그런지 절집에 모셔진 부처의 상호가 서역인에 더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더라.

 

목어와 운판이 절 한쪽 구석에서 푸대접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절집의 운치를 살려주는 주인공들인데, 우째 걸레와 빗자루와 소화기와 함께 노는 신세가 됐는지 ...

 

 

예불을 마친 스님들이 공양간을 향해 일렬로 이동하고 있다.

 

와룡선림

       다음 코스는 흥경궁(興慶宮)이다. 당 초기에 건립된 건립된 별궁인데 현종이 어린 시절을 이 곳에서 보냈다. 황제 즉위 후 대대적인 증축을 해서 양귀비와 거주하였으며 국빈 접대 및 공식 집무도 이 곳에서 이루어지곤 하였다. 이백도 자주 놀러 와 술 마시고 시를 지으며 어울렸다고 한다. 모란을 좋아했던 양귀비를 위하여 화원을 크게 꾸몄는데, 지금도 모란과 작약을 많이 심어 모란 정원(부용원)을 재현해 놓았다. 근래에 서안 당국에서 이 곳 전체를 공원으로 재개발하여 인민들에게 무료로 개방하고 있다. 따라서 입장료는 없다. 

       이 백의 시 중에 <청평조사淸平調詞>란 작품이 있는데, 이는 현종이 이 백에게 양귀비의 아름다움을 노래할 것을 명하여 지은 시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이 시를 지을 당시 이백은 술에 대취하여 고주망태 상태였는데, 명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즉석에서 시를 지어 바쳐 현종을 놀라게 하였다고 한다. 이 술자리가 흥경궁에서 있었을 것이라 추정하고 있다. 현종은 이 시가 흡족했는지 당시의 명창 이 구년(李龜年)을 시켜 노래하도록 했고, 황제 본인이 직접 옥피리를 불어 반주를 하였다. 총 3수로 이루어진 칠언절구(七言絶句) 연작시인데 제 1수만 소개해 본다. 


청평조사(淸平調詞) - 第1首

雲想衣裳花想容(운상의상화상용) : 구름 보면 그녀 옷 생각나고 꽃을 보면  얼굴 떠오르네
春風拂檻露華濃(춘풍불함노화농) : 봄바람은 난간에 감돌고 모란꽃 적시는 이슬은 빛나도다
若非군玉山頭見(약비군옥산두견) : 만약 이런 미인을 군옥산에서 만나지 못한다면
會向瑤臺月下逢(회향요대월하봉) : 모름지기 요대의 달빛 아래에서 만나게 되리라

 

       중국 신화에 나오는 아름다운 女神 서왕모(西王母)가 사는 곳이 군옥산이며, 요대 역시 신선이 사는 아름다운 누대다. 요컨대 군옥산, 요대는 도가에서의 중국적 유토피아인 셈이다. 양귀비야말로 서왕모나 신선이 사는 천상에서나 만날 수 있는 미인이라고 한껏 치켜 세워주니 어찌 현종의 기분이 좋아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지은 지 2000년이 넘은 인공호수에서 서안 시민들이 보트를 즐기고 있다. 모란꽃 활짝 핀 어느 봄 날, 현종과 양귀비와 이 백 일행도 저들처럼 배를 띄워 호수를 주유하면서 술 마시고 흥에 취하여 시를 짓고, 거기에 가락을 붙여 옥피리 불고 노래 불렀을 것이다.

현종과 양귀비와의 침소 겸 외국 사진 접견을 위한 영빈관.


       서원문(書院門)을 통과하면 서울 종로의 인사동과 비슷한 풍물거리가 펼쳐지는데, 이 곳은 북경의 유리창(琉璃廠) 등과 더불어 중국의 4대 문필 거리로 꼽힌다. 고서, 지필묵 등 문필가들에게 필요한 일체의 용품들을 파는 시장이면서 갖은 종류의 탁본과 그림, 족자 등을 저렴하게 살 수 있는 곳이다. 중국 현대 명필(?)들이 진을 치고 앉아서 즉석 서예 작품을 일필휘지로 휘갈겨서 관광객들에게 팔기도 한다. 아래의 사진과 같은 이동식 가게들이 긴 골목길을 따라서 끝이 안보이도록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살아 있는 고색창연함을 느끼기 딱 좋은 장소. 먼 옛날 당나라에 출장 왔던 우리나라의 사신들이 명품 종이와 벼루와 붓을 구하기 위하여, 혹은 명필들의 금석문 탁본이나 당송팔대가의 문장을 구하기 위하여 반드시 한 번은 들렀던 곳이리라.

 

 

 

즉석 서예작품을 완성하여 낙관(落款)하고 있는 길거리 명필. 


       이제 거의 다 왔다.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서안성장(西安城墻)이다.이 곳은 황성은 아니고 백성들이 사는 도성이었다. 중국 제1의 도성답게 규모가 대단하다. 지금의 모습을 한 성곽은 명나라 초기에 건설된 것인데, 당시 존재해던 황성의 기초위에 지었고 둘레가 13.7km에 이르는 꽤 큰 규모의 성이다. 우리나라의 성은 화강암같은 자연석을 그대로 쓰거나 바위를 쪼아 축조하는데 비해 장안성은 모든 것이 구운 벽돌로 이루어져 있다. 저 많은 벽돌을 구워내려면 어마어마한 규모의 벽돌공장과 노동자가 필요할 것인데, 역시 인해전술로 승부하는 중국답게 그것을 해 내었다!

 

      워낙 외침이 잦았던 동네라 필요 이상의 고 스펙으로 축조하였다.  성벽 높이가 12미터에 이르고 벽의 두께도 25미터나 되는데다가 도성의 둘레에 깊은 해자를 파고 물을 채워 외부의 침입에 단단히 대비하였다. 식수와 식량을 넉넉히 확보한 상태에서 성문을 굳게 걸어 잠근다면 마지노 못지 않는 난공불락의 요새라 할 만하다. 고루(鼓樓)와 종루(鐘樓)를 설치하여 비상 사태 발생 시 즉각 도성 내에 경종을 울릴 수 있도록 조기 경보 시스템까지 완비하였다.

 

 

       위 사진에서 보는 공간은 성을 함락시키려 쳐들어 오는 외적을 가두고 사방의 셩벽 위에서 활이나 투석 혹은 펄펄 끓는 기름이나 물을 퍼부어 섬멸하기 위한 전략 공간이다. 이와 비슷한 컨셉의 공간은 수원 화성에서도 볼 수 있다.

 

 

80위안인가?를 지불하면 전동 트램을 타고 성을 한 바퀴 돌 수도 있다.

 

도성의 둘레는 13.8km나 되는데, 도성의 둘레를 따라 달리는 마라톤 대회도 열린다고 한다.

 

대여 자전거를 빌려 한 바퀴 도는데 약 1시간이 걸린다.

 

투석기와 전차로 쓰일법한 수레가 전시되어 있는데, 최근에 만든 모조품이다.

 

이상 서안 역사 기행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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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 서안기행낙수(落穗)

 

저가항공 <에어부산>의 내부

 

서안까진 3시간의 비행시간. 소박한 기내식도 준다.

 

저가항공이라고 무시하지 마라. 어여쁜 스튜어디스 언니도 있단 말이다!

유럽이나 미국 국내선을 타 보면 열에 아홉은 연로하신 중년 이후의 이모님 혹은 할머님들이

기내 서빙을 하고 계시는데, 이 정도의 젊은 처자라니, 참으로 과분할 지경이다.

 

식사 마치니 커피까지 제공한다.

시험삼아 캔맥주 한 병 부탁했더니 그건 유료 써비스인데 6천원을 지불하라고 하신다.

당연 사양했다. 

 

 

"자네가 한 걸음만 나아가면

문명이 큰 걸음으로 나아간다네"

서안 공항 구내 화장실 소변기 앞에 부착되어 있는 격문이다. 제발 소변기에 바짝 붙어 오줌을 갈기라는 애교섞인 캠페인인데

글로벌 중국을 지향하는 당국의 고심이 그대로 뭍어나고 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길거리를 잠시 걷다가 발견한 어떤 커피 전문점의 메뉴판이다.

"그녀의 미소"
"4월 강남에 복숭아 꽃 피듯"
"흘러 가버린 듯"
"내 가슴속에 묻어 둔"
"그러나, 이 순간"
"시내 남쪽 구석에 우두커니 홀로 앉아"
"복숭아 꽃을 피우는 비"
"그대, 내 얼굴을 만졌나요?"
.
.
.

커피의 이름 치고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작명이지만, 그래도
어떤 맛의 커피인지 종류별로 다 마셔보고 싶은 충동이 절로 들지 않는가?

"아메리카노, 카라멜 마끼아또, 무슨 프라푸치노 .... "
최소한 이런 이름보다는 훨씬 나아 보인다.

 

비슷한 문구들이 어딜 가나 화장실마다 붙어 있더라. 덕분에 4년 전에 갔을 때보다 악명높은 중국의 화장실 악취는
확실히 줄어든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북경 올림픽 개최 전후로 생긴 현상이다.

 

 

음료수를 사러 잠시 들렀던 마트에서 발견한 과자.

<한국어 맛>은 과연 어떤 맛일까?

 

서안 역사기행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