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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해외여행

서안(西安) 역사기행 #8 - 비단길, 그리고 回族거리

 

 

 

서안(西安) 역사기행 #8 - 비단길, 그리고 회족(回族)거리

 

 

 

       마지막날이다. 이번 일정에 예정되었던 굵직한 곳은 다 돌아보았고 오늘의 여정은 일종의 보너스로 쳐도 된다. 먼저 비단길의 시작점을 향했다. 서안 시내의 서쪽 한켠에 비단길이 시작되는 지점을 선정, 공원으로 조성하여  조형물을 세우고 이를 기념하고 있는데 1992년에 세웠으니 최신 시설이다. 입장료는 없다. 중국 당국에서 서안의 이미지 홍보와 관광객 유치를 위한 전략으로서 개발한 장소이겠지만, 실크로드가 동서 문화 교류史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볼 때, 이 곳은 대단히 의미있는 장소가 아닐 수 없다. 모든 여행의 일정이 기대와 설레임의 연속이었지만, 실크로드로 향하는 버스에서 느끼는 조용한 흥분은 그만큼 각별했다! 이 곳은 서구 관광객들에게 매우 인기가 있어 늘 붐빈다고 하는에 이른 시각에 도착한 탓인지 우리 일행 외엔 거의 사람들이 눈에 띄지 않더라.  

 

 

 

 

 

실크로드 시작점 입구

 

 

 

 

       인류의 역사는 교역의 역사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물건을 서로 맞바꾸는 행위로 시작된 교역 행위는 처음에는 마을 공동체 내에서, 이어 마을의 경계를 넘어서, 마침내 험준한 설산을 넘고, 모래 바람 휘몰아치는 사막을 건너서 한 대륙과 다른 대륙의 만남으로 이어졌다.  

 

       중국 최초로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이 죽고나서 멍청한 아들, 손자가 선황을 이어 2세황, 3세황에 오르긴 하지만, 이미 국운은 급격히 쇠하여 전국 각지에서 발생한 봉기와 부활한 6국과의 끊임없는 전쟁, 통치권 실종으로 인한 내부 혼란을 감당하지 못하고 진은 멸망한다. 그 틈을 타서 항우와 유방이 헤게모니 쟁탈전을 벌이지만 결국 유방이 평정하여 漢(前漢)나라를 세우는 과정은 초한지(楚漢志)에 잘 나와 있는 바다. 전한의 7대 황제인 무제(武帝)는 진시황 못지 않는 야심가였다. 무제는 황제권을 강화하여 내치의 기반을 단단히 다진 후 활발한 정벌 사업을 펼쳐 진시황 이후 중국 역사상 가장 광대한 영토를 확보함으로써 전한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당시 조공을 거부하던 고조선(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한반도에 한사군을 설치한 것도 이 때이다.

 

 

 

 

 

 

 

 

 

 

 

       한무제가 즉위 후 가장 먼저 착수한 전략 사업은 서역과 통하는 교역로의 건설이었다. 당시 실크로드 일대를 장악하고 있던 흉노족이 교역로 건설과 관리의 걸림돌이었는데 장건을 시켜 흉노족을 몰아내고 서쪽으로 진출, 파미르 고원의 대완국(大宛國)까지 쳐서 마침내 중앙아시아로 통하는 교역로를 확보하였다. 독일의 지리학자 리히트호펜(Ferdinand von Richthofen)이 20세기 초 중국 본토 및 티벳지방의 지질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중국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통하던 비단의 교역로가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처음으로 "실크로드(Seidensrtassen; 비단길)"라는 말을 썼는데 이것이 그대로 굳었다.

 

       실크로드를 통하여 교역된 것은 비단에 국한되지 않았다. 실크로드 개척 이후 각 왕조에서는 사신을 서역 각국으로 파견하였고 교역이 늘어나면서 민간인의 왕래도 활발해졌다. 인도로부터 밀교, 불교가 들어왔고 이어 회교, 조로아스터, 천주교 등 중동이나 서양 종교까지 수입되었다. 당의 현장이나 신라의 혜초 등 많은 구법승들이 경전을 구하기 위하여 비단길을 활발하게 왕래하였고  종이, 주철, 잠사 등 당시의 최첨단 기술이 서역을 통해 유럽으로 전파된 것도 실크로드를 통해서였다.

      

 

 

 

 

 

 

       서양사의 주요 이벤트 중의 하나인 게르만족의 대이동도 결국 실크로드상의 지역을 장악하고 있던 흉노족(서양에서는 훈족hunt 으로 표현)의 이동으로 촉발된 것이었다. 흉노의 침입은 강성했던 로마 제국을 東로마, 西로마로 분열시켜 놓았고, 서로마는 흉노에게 쫓겨 온 게르만의 명장 오도아케르에게 멸망당한다. 이어 오스만 투르크의 발흥과 이에 대항한 서유럽 기독교 세력과의 투쟁, 여기에 따른 십자군 전쟁의 발발, 십자군 전쟁의 후유증으로 발생한 중세 유럽의 르네상스 운동 등등 유럽사를 관통하는 거대한 역사의 흐름은 실크로드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실크로드는 단순한 물품의 교역로가 아닌 세계사를 바꾸어 놓은 하나의 문화적 수퍼하이웨이였던 것이다.

 

      실크로드의 시발점이라고 하는 저 곳에 두 다리를 디디고 선 나는 잠깐 2000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 여행에 빠져보았다. 과거 교역 전성기의 이 장소는 엄청나게 넓은 광장이었을 것이다. 한반도, 티벳, 위구르, 아프가니스탄, 인도, 페르시아, 카자흐, 키르키즈, 우즈벡 및 멀리 유럽 각지에서까지 비단과 차와 종이와 도자기와 향신료를 찾아 모여 든 모여 든 통 큰 상인들의 장마당이 끝없이 펼쳐졌으리라. 뿐만 아니라 돈 많은 큰손들 틈에서 한 몫 잡아 보려는 거간꾼, 사기꾼, 폭력배, 몸 파는 여인내들도 부나방처럼 모여들어 화려한 무대를 연출했겠지. 그 역사의 현장에 지금 내가 서 있는 것이다!

 

       위 사진의 조형물은 장안에서 물품을 가득 싣고 막 출발하려는 대상(隊商)의 무리를 조각한 것이다. 조각상의 면면을 살펴보면 모두 서역인의 얼굴을 하고 있는데, 실제 교역이 활성화되면서 페르시아인 등 수많은 서역인들이 장안에 집단을 이루어 거주했다고 한다. 그들의 후손들이 아직도 남아서 서역인 타운을 형성하여 소수민족으로서 그들의 문화를 고수하며 살고 있는데, 이 곳이 바로 회족(回族)거리다. 서안에 온 이상 이 곳을 가 보지 않을 수 없다.

 

 

 

 

 

      

    

       사실 회족거리는 어제 저녁에 방문하였다. 위 사진에 회족거리의 입구를 알리는 게이트가 보이고, 광장에는 영업용 트라이시클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푼돈 좀 아껴보겠답시고 택시를 마다하고 무허가 트라이시클을 탔다간 바가지 요금을 뒤집어쓰기 십상이다. 요금이 택시보다 비싸다나? 때는 저녁무렵이어서 회족거리를 밝히는 나무위의 장식등이 켜지고, 엄청난 인파가 붐비는 가운데 거리 양퍈의 각종 가게가 화려한 조명으로 휘황히 밝아지니 아라비안 나이트 시절 페르시아의 어떤 시장통에 와 있는 기분이 들었다.

 

 

 

 

 

 

 

        위 사진의 가게 간판을 보면 '청진(淸眞)'이라는 표기가 양쪽으로 들어 있는걸 볼 수 있다. 이슬람 율법에 의하면 세상의 모든 음식은 3가지로 나뉜다. 신이 허락한 음식 <할랄>, 신이 금지한 음식 <하람>, 특별히 허락하거나 금지한 음식 리스트에 들지 않는 <마크루>가 그것이다. 할랄의 대표격인 음식이 바로 돼지고기다. 마크루도 일반적으로 금기음식에 포함된다. '청진'이라는 표기는 할랄 음식만을 취급하는 점포의 표시다. 무슬림들에겐 안심하고 섭취할 수 있는 음식의 보증수표인 셈이다.

 

 

 

 

 

 

 

        이슬람식 수프를 파는 식당이다. 히잡을 두른 여인과 그 뒤엔 서역인의 외모를 갖춘 남자 요리사가 열심히 음식을 준비하고 있다.

 

 

 

 

 

 

 

 

 

       건조한 기후 탓에 곶감, 대추, 말린 살구, 키위, 망고, 포도, 자두 등 건조식품들이 발달하여 가게마다 넘쳐나고 있다. 가격도 상당히 저렴한 편이다.

 

 

 

 

 

 

 

 

 

 

 

 

 

 

 

각종 야채와 고기를 볶아 소스를 뿌려서 둥글고 얇은 밀빵 안에 싸서 먹는 전병 가게.

 

 

 

 

 

 

 

       양고기와 쇠고기를 재료로 한 꼬치와 튀김종류를 <난>과 함께 파는 식당이다. 되도록이면 많은 종류의 길거리 음식을 맛보고 싶었지만 저녁 식사 직후여서 일단 배가 고프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말이 통하지 않아 많이 먹어보지 못했다. 나는 그들의 중국어를 못알아듣고, 그들에겐 내가 씨부리는 한국어나 영어가 쇠 귀에 반야심경 들리듯 할 터이니... 겨우 필담으로 몇 마디 주고받아 꼬치 몇 개와 난 몇 장을 사 먹는데 성공하였다. 기름기가 다소 많아 느끼한 감이 없진 않았지만 먹을 만 하였다. 양고기 꼬치는 걱정만큼 누린내가 심하지 않았고 난도 다른 첨가물이 없이 매우 무미 담백하여 전혀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꼬치 가격을 알아보는 우리 일행 젊은 처자들.

 

 

 

 

 

 

 

       여행 갔다 온 후 다른 사람들의 여행기를 읽어보고서야 "회족거리에서 반드시 맛보아야 할 음식" 리스트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중 홍시로 만든 호떡("홍시삥"이라 한다는데 ...)의 존재를 뒤늦게 알아차린게 가장 원통한 대목이다. ㅠㅠ

 

 

 

(이상 비단길과 회족거리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