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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동사니

소박한 파워앰프를 들이다

 

 

 

"진공관 파워앰프, 빛바랜 흑백 사진같은 포근함."

 

 

가끔 야생화 탐방을 함께하고 있는, 근래에 알게 된 이웃의 지인께서

최근 손수 제작한 진공관 앰프를 한번 써 보겠느냐는 말씀에,

불감청(不敢請)이언정 고소원(固所願)이라,

염치 불구하고 냉큼 업어 왔다.

 

 

 


 

 

 

자작파들에겐 섀시 가공이 참으로 어려운 문제인데, 원래 용도가 달랐던 기기의 케이스를 재활용한 것인데도

주인의 성품을 닮은듯, 만듦새가 군더더기 하나 없이 너무도 깔끔하다.

역시 숨은 고수는 어디에나 있구나!

 

 


 

 

 

 

초단관은 12AX7을 이용했고, 출력단으로는 6BQ5를 쓴 간결한 구성이다.

출력도 불과 몇 와트정도에 불과하지만 회로가 심플하니 

그만큼 재생 특성도 또한 충실하리란 기대를 갖게 한다.

 

 

 

 

 

 

 


 

이 녀석을 옮겨오자마자 청음을 위해서 내 방의 장비와 연결하였다. 

컴퓨터의 광출력 -> MSB사의 DAC -> 진공관 프리앰프 -> 오늘의 주인공인 6BQ5 앰프의 순이다.

설레임과 함께 파워를 넣은 후 빨간색으로 서서히 달아오르는 진공관의 필라멘트,

12AX7과 6BQ5가 달궈지면서 서서히 발산되는 묘한 진공관 열 냄새.

 

컴퓨터에서 Foobar2000 재생 프로그램을 띄운 후,

 바흐의 바이올린협주곡 E 장조 (BWV1042) FLAC 화일을 Playlist에 걸고

가벼운 흥분과 함께 재생 버튼을 클릭하였다.

하 . 지 . 만 . . . . . .

스피커가 잠잠하다. 이게 무슨 일?


일순 당황하여 앰프계통을 살펴보니 DAC에 파워를 공급하는 전원부의 LED가 꺼져있네?

전원 스위치를 껐다 켰다를 반복해도 LED 램프가 점등하지 않는다.

자세히 점검해 보니 퓨즈가 끊어졌다.

스페어로 갈아끼고 전원을 투입하는 순간 교체한 퓨즈가 시퍼런 섬광과 함께 퍽 하고 또 나가버린다.

 

"에잇 열받아, 하필 이 때에!"

라 투덜거리며 전원장치를 분해하였다. 필시 어딘가에서 단락된 모양이다.

1시간여를 씨름한 끝에, 변압기(전원트랜스)의 1차측 권선이 내부 쇼트된 것을 밝혀내었다. 

겉보긴 멀쩡한데,  220V 1차 권선의 직류 저항이 0.03Ω이니 분명 쇼트다. 

변압기를 뜯어 볼 순 없는 일이고, 교체품을 구입하기 전에는 당장 수리가 불가능하니

DAC나 프리앰프 사용은 포기하고, 컴퓨터에서 아날로그 신호를 뽑아 바로 연결하기로 했다.

 

근데 이넘의 PC 오디오는 라인아웃을 지원하지 않는다.

궁여지책으로 PC의 헤드폰 출력단을 앰프에 바로 공급하기로 한다.

임피던스가 맞질 않을테니 음질은 기대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소리만 확인하려는 것 뿐,

 

이제서야 스피커를 통하여 음악이 흘러나온다. 다행이다. 작동은 잘 되는군.

어, 그런데 이건 장난이 아니다. 임피던스 미스매치로 당연 열화될 줄로만 알았던 음향엔

퍼득이는 생명력이랄까, 살아있는 소리의 싱싱힘이 녹아있음을 느낀다.

 

힐러리 한(Hilary Hahn)의 바이올린 선율은 명징했으며,

소편성 오케스트라이긴 하지만, 각 악기별 분리도(?)도 꽤 괜찮았다.

맑은 가을날 오후의 햇살같은 투명함과 면도날같은 예리함 보다는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오래된 흑백 사진처럼, 따스하고 부드러움으로 가슴에 스며드는 그런 느낌의 소리다.

아무리 들어도 물리지 않고 부담없이 편안한 소리.


추정 2와트 정도의 소출력이지만, 책상위에 설치된 BOSE 201 Series IV 북셀프형 스피커를 구동하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다.


빨리 DAC 전원을 살려 제대로 된 소리를 들어야겠다. 

 



 

 

 


자작파들에겐 본인이 만든 작품은 본인의 분신이나 마찬가지다.

타인에게 작품을 보내는 것은 다 키운 자식을 출가시키는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땀과 정성과 적잖은 시간이 투자된, 이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 소중한 작품을 넘겨주신

KMB님께 다시한 번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