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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화

2016.07.23. - 남덕유산 여름 야생화 트레킹

    

     오늘도 알람이 울리기 전에 잠을 깼습니다. 새벽 일찍 떠나는 날은 항상 알람보다도 먼저 잠이 깹니다. 자면서도 긴장을 계속 유지했는 탓인지 모르겠습니다. 미리 꾸려 놓은 배낭에 냉동실에서 꺼낸 얼린 맥주 2캔과 커피 병을 보냉팩(포장용 뽁뽁이)에 싸서 배낭에 쑤셔넣으니 행장이 완성됩니다. 으랏차차 어깨에 짊어지니 유난히 묵직하게 어깨를 짓누르는군요. 체중계로 무게를 재 보니 16.8kg입니다. 카메라 본체 한 대에 렌즈 5개, 물 2리터, 별도 700mi짜리 물 1통, 500ml 맥주 2캔, 1리터 커피 1병, 햇반 2개, 기타 간식 및 잡동사니 ... 욕심이 좀 과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고생문이 훤히 열렸군요.

    

     오늘도 편도 200km가 넘는 여정을 다녀와야 하기 때문에 새벽 일찍 집을 나섰습니다. 포항에서 출발한 K兄을 경주 IC 휴게소에서 만나 출발 한 것이 6시 정각, 도중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아침 식사를 때우고 영각사 입구에 도착하니 8시 30분이 약간 넘는군요. 바로 산행을 시작합니다.


     박무가 낀 매우 후텁지근한 날씨입니다. 습도도 높아서 공원지킴터 입구까지 걸어오는 동안 온 몸이 벌써 땀 범벅이 됩니다. 아직 직원들 출근 시간 전인지 지킴터의 문은 닫혀있고, 등로도 한산합니다. 곤돌라가 있어 쉽게 정상부를 오를 수 있는 북덕유 방면을 선호하는 탓으로 남덕유에는 산객이 그리 많이 붐비지 않아 좋습니다.

 

     맨 처음 만난 꽃은 지킴터 계단 아래 핀 영아자입니다.  작년엔 못 보고 지나쳤는데, 꽃이 활짝 핀 탓인지 이번엔 눈에 바로 띄어 한 컷 하였습니다.

 

     산짚신나물과 도둑놈의갈고리가 곳곳에 피어 있습니다. 흐린 날씨로 숲 속이 어두워 찍을 엄두를 못내고 눈으로만 감상하며 걷다가 잠시 햇빛이 비친 틈을 타서 셔터를 눌러 봅니다.

    

     작년에 왔을 땐 거의 끝물이었던 은꿩의다리가 이번엔 아주 싱싱합니다.

 

     말나리도 지천이었으나 대부분 끝물이었고, 개중 아직 싱싱한 모델을 섭외하였습니다. 숲이 너무 어두워 계속 기다리고 있다가 빛을 기다려 담아 봅니다.

 

     첫 계단을 만납니다. 저 계단의 끝이 영각재입니다. 제법 길고 가파른 길이어서 영각재에 숨을 헐떡이며 다 올라 온 산객들이 모두들 혀를 내두릅니다. 그러나 그 악명높은 남덕유의 계단길은 정작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죠. 본격 악마의 계단을 오르기 전 잠시 맛보는 샘플러라고나 할까요?  

 

     흰여로가 지천입니다. 흔히 보는 자주색 여로와 파란여로는 눈을 부릅뜨고 주위를 살펴도 종내 눈에 띄지 않는군요.


     알며느리밥풀꽃으로 보입니다. 바야흐로 한창 세력을 떨칠 기세군요.


     드디어 거의 직벽같은 철계단 루트가 시작됩니다. 폭이 좁고 경사가 상당히 급하여 체력 소모가 꽤 심합니다. 얼마나 더 남았는지 자꾸만 위를 쳐다보는 조급증일랑 버리고, 오로지 무념무상 멍때린 상태에서 한 발 두 발 진행하는 것이 여기를 오르는 가장 좋은 보행법일겁니다.  

 

     흰송이풀도 가끔 보입니다.


     북쪽으로 삿갓봉과 그 뒤로 향적봉이 아스라히 보입니다.

 

 

앞에 보이는 계단의 꼭대기가 중봉입니다. 거의 직각으로 선 철계단이야말로 남덕유의 상징이자 매력 아닐까요? 힘들긴 하지만, 참 재미있기도 한 특별한 등로입니다.

 

     이제부터 솔나리가 눈에 띄기 시작합니다. 나중 서봉 부근에 가면 지천으로 깔린게 솔나리여서, 이 곳에서 굳이 욕심부릴 필요가 없는데 자꾸만 만나는 솔나리마다 뷰파인더에 집어넣고 셔터를 눌러댑니다.

 

     곰취도 한창입니다.

 

     중봉을 백댄서로 거느린 돌양지꽃도 한 컷 담습니다.


     중봉으로 이어지는 재미있는 철계단코스입니다.

 

     무더기로 핀 참취꽃도 만납니다.

 

     중봉 오르는 계단 아래 잘 살펴보면 이런 등대시호도 만날 수 있습니다. 벌써 수분을 끝내고 씨방을 맺았군요.


     큰까치수염이 도열한 오솔길을 걷는 기분이란!

 

     중봉에서 김밥으로 허기 좀 달래고, 커피 마시고 주위 잠시 둘러보며 꽃 발견해서 찍다가 또 설렁설렁 걷다보면 금세 남덕유산 정상에 도달합니다. 지난 주 가지산을 다녀오면서 면역이 좀 된 탓인지 그리 힘들게 느껴지진 않습니다마는, 이 곳이 자력으로 걸어서 올라 와 본 생애 최고의 해발고도라는 K兄은 매우 힘들어 하시는군요.

 

     지난 주 가지산에서 딱 2 송이의 동자꽃을 보고도 뛸 듯이 기뻐했었는데, 이 곳의 동자꽃 군락은 가히 현기증이 날 지경입니다. 주홍색 선연한 수많은 동자꽃 송이가 숲 속 곳곳에 점점이 박힌 장면이라니! 다만 시기가 좀 지나 대부분 시들기 시작한 것이 유일한 아쉬움이라 할까요.


     아직 지지않고 있는 늦둥이 노루오줌과 큰개현삼(추정)입니다.

 

     45도로 일제히 몸을 기울여 핀 미역줄나무입니다. 저 뒤로 향적봉의 실루엣이 희미하게 보이는군요.

 

     미역취도 있고요,


     서덜취와 모시대도 한창 피기 시작합니다.


     참취와 박쥐나물도 꽃봉오리를 터뜨릴 준비를 하고 있네요.


     약간 산만한 느낌으로 가지를 많이 치는 모시대와는 달리, 가지를 치지 않는 도라지모시대입니다. 

 

     산꿩의다리가 열매를 맺은 것 같군요. 분홍색이 하도 예뻐 담아보았습니다.


     발그레 분홍빛으로 물든 산수국 헛꽃의 색이 참 환상적이지 않나요?

 

     이녀석은 바로 위의 산수국과는 달리 헛꽃에 톱니모양 결각이 있습니다. 이런 산수국을 "꽃산수국"이라 하더군요.

 

     수리취(위)와 은분취(아래)는 아직 이릅니다. 곧 피겠지요.


     돌양지꽃과 난장이바위솔입니다. 난장이바위솔도 아직 개화하긴 이른 시기인가 봅니다.

 

     이렇게 벼랑에 핀 솔나리가 가장 예뻐보이더군요.

 

     산오이풀의 순수한 분홍색은 늘 마음을 셀레게 합니다.

     긴산꼬리풀도 지천입니다.

 

     서봉 정상 표지판입니다. 남덕유산에서 여기까지도 만만치 않는 길이군요. 동행하신 K兄은 거의 그로기 상태로...


     서봉에서 남쪽 육십령 방향입니다. 사진 좌중간 희게 보이는 지점이 나중에 하산 할 덕유교육원입니다.


     고개를 북쪽으로 돌리면 지나 왔던 남덕유산 정상이 보입니다.

 

     아껴 왔던 술과 안주를 꺼냅니다. 수많은 야생화와의 친견을 허락하신 덕유산 산신령께 감사를 표하고, 고수레 한 다음 음복을 하였습니다. 적당히 녹아 슬러쉬가 된 상태의 칭따오 맥주는 가히 천상의 맛이라고 해도 과하지 않을 듯하네요. 

 

     수리떡을 해 먹는다는 수리취가 이 곳에도 매우 흔합니다.

 

    발에 차이는 것이 일월비비추와,


     (각시)원추리입니다.


     원추리가 엄청난 군락으로 피어나던 이 사면은 이제 대단한 기세의 일월비비추가 점령하고 있군요.

 

     정말 원 없이 만나 본 일월비비추입니다.


     솔나리는 이제 정점을 지나 시들고 있는 모습이어서 좀 아쉬웠습니다.


     드디어 오늘의 주인공, 구름체꽃을 만났습니다. 혹 너무 일러 활짝 핀 아이들을 만나지 못할까 노심초사하였으나 완전히 기우였을이 밝혀졌네요. 솔체꽃과 구분이 참 힘든데, 솔체꽃은 꽃이 필 무렵 근생엽(根生葉 : 뿌리에서 난 잎)이 모두 시들어 없어지는 반면, 구름체꽃의 근생엽은 꽃이 핀 이후에도 싱싱하게 살아있다는 것이 눈에 쉽게 뜨이는 큰 차이라고 합니다. 또 구름체꽃은 낮은 곳에서도 피는 솔체꽃과는 달리 해발 1,400m의 고산에서만 핀다는군요.

 

     보랏빛 저 오묘한 때깔은 봄의 청보라색 노루귀만큼이나 내 가슴을 뛰게합니다!

    

     완전히 흰 색깔의 "흰일월비비추"를 만난것은 뜻밖의 수확이었습니다.

 

     내 스스로 선정한 "오늘의 베스트 샷"

 

     유유자적 꽃과 노닐다 보니 어느 덧 시간이 많이 늦었습니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고, 어느 새 하산하기로 한 시간이 훌쩍 넘어버리더군요. 급히 서둘러 하산을 시작하였습니다. 잰 걸음으로 많이 서둔 덕분으로 다행히 날이 완전 저물기 전에 주차한 곳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생애 첫 1,500m 고지를 천신만고 끝에 무사히 완주하신 K兄께도 미안한 마음과 더불어 축하의 인사를 보내 드립니다. 꼬였던 다리는 좀 풀렸는지요? 그리고 그 날 서봉에서 "멘붕" 상태로 우연히 조우하여 함께 하산하신 임 EJ님도 무사히 귀가하셨는지요? 

    산과 꽃과 사람, 이 모든 인연에 감사드립니다.

 

함께한 장비

Kodak SLR/n
AF Fisheye Nikkor 16mm 1:2.8D
AF-S Micro Nikkor 60mm 1:2.8G ED
AF-S Micro Nikkor 105mm 1:2.8G ED
MF Laowa 15mm Macro 1:4
AF-S Nikkor 28-300mm 1:3.3-5.6D ED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