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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원사 입구에서 촌두부에 홀리다.




민생고나 해결하자고 생각없이 들른 식당에서 뜻하지 않았던 '맛'을 발견하는 수가 있다.
식도락의 관점에서 보면 아마도 가장 짜릿한 기쁨을 맛보는 순간 중의 하나일것이다. 

2011. 9. 24.

경남 양산시 하북면 용연리 - 내원사 입구
Kodak Professional DCS 560 


 


하산주는 등산꾼으로서 끊기 어려운 치명적 유혹이다.
땀 흘린 후 산을 내려 와 막걸리 한 사발 없이 휑 하니 바로 집으로 직행하는 날이면 
밥을 먹고 숭늉을 마시지 않은것처럼 뭔가 쉽게 거둘 수 없는 아쉬움이 남게된다.
 
또한 하산주에 너무 빠져 약간 오버하는 날이면
고칼로리 안주와 과다 알콜로 체중만 불리는 꼴이니
땀흘려 오르내리면서 어렵사리 얻은 운동 효과가 말짱 도루묵이 되고 마는것이다.  

그래도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 간단히 동동주 한 잔으로 마무리하기로 한다.

내원사 입구엔 직접 만든 손두부로 저마다의 솜씨를 자랑하는 두부 식당이 즐비한데, 
그 중 예전에 한 번 와 본적이 있는 식당을 택하였다. 
  




간단하게 입가심만 할 요량으로 막걸리 한 되를 주문했고, 
안주는 간단한 것으로 아무거나 알아서 준비해 달라고 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소박한 상이 차려졌다.

소반 중앙엔 생두부가 메인으로 자리했고,
그 주위엔 배추김치, 된장, 배추잎, 쪽파 양념장, 젓갈을 위성처럼 배치하였다.
그런데 사이드로 나온 통멸치젓이 심상치 않다. 





거제도의 한 섬을 고향으로 둔, 자칭 물고기 전문가인 K부장이
멸치젓 맛을 보더니 갑자기 닭똥같은 감동의 눈물을 뚝뚝 떨구기 시작한다. 
(실제 눈물을 보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 )
배추잎에 두부 한 조각, 그 위에 쪽파 버무린 양념장과 신 김치 한 조각,
마지막으로 통멸치젓 한 조각을 떼어 토핑하면! 음...




 



두부쌈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가 어설퍼 보였는지 
주인장 아주머니께서 팔을 걷어부치고 "두부쌈의 바람직한 예"를 직접 시범으로 보여 주신다.
 




저 쉐프의 왼손에 놓인 "모범 샘플"은 촬영 직후 내 입으로 들어왔다.
적당히 짠 맛과 단 맛, 신 맛. 게다가 두부의 부드러운, 
배추잎의 아삭한 식감이 한데 어우러져 입 속의 오감을 다 뒤흔들어 깨어 놓는다. 





보기에도 맛깔스런 양념장.
두부를 여기에만 찍어 먹어도 꽤 괞찮다.




국산 콩으로 이 집에서 직접 만든 손두부다.
부드럽지만 무르지 않고 적당하게 탄력이 살아서
씹는 촉감도 좋을뿐더러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살아났다. 
 




주연보다도 더 빛나는 조연을 연출한 멸치젓.
생멸치젓이 갖추어야 할 모든 것을 지녔다고 말할 수 있다.

1. 젓갈답게 짜긴 짜되 소태 수준은 전혀 아니다. 
2. 두터운 육질은 무르지 않고 탄탄한 감촉이 살아있다.
3. 비린맛이 잘 절제되어있다.
4. 쿰쿰한 맛이 전혀 없이 상쾌하다.

이상은 젓갈/생선 전문가인 K부장의 시식 평이다.
생선에 관한 한 K부장의 의견은 늘 신뢰할 수 있다. 

 



저건 시장에서 팔려 와 냉장고에서 오래 시달려 풀이 죽은 그런 채소가 아니다.
신선함이 칼날처럼 시퍼렇게 살아 있었으며
아삭아삭 씹히는 감촉에서 펄펄 살아있는 생명력을 느낀다.

 



단체 샷
우리의 가련한 막걸리는 오늘만큼은 아웃 오브 안중이다...ㅠㅠ;
막걸리, 지못미... 




또 하나의 별미인 간장게장.
검증차원에서 두 마리만 주문했다.

작년 봄, 여수에서 맛보았던 "두꺼비간장게장식당"의 간장게장/양념게장이 
우주 최강인 줄로만 알았는데,
오호라, 숨은 고수는 역시 세상 어디에도 있구나!

배는 고프지 않았지만 이 놈 때문에 밥 두 공기를 청했다.
(저 게장은 주문하면 전용 밀폐용기에 테이크아웃 포장해서 준다. 2마리 5천원) 

 


 


아니, 이 밥도둑놈 좀 보시게 !!!
막걸리 한 잔 마시는 사이에 내 밥 다 훔쳐 먹는다 !!! 



 



후덕한 인심의 주인 아주머니는 손맛 못지않게 강호동 찜쪄먹으실 입담까지 완비하셨다.
TV 맛기행 프로그램같은데 나온다면
대박 인기몰이를 할 수 있을 가능성 99퍼센트다.

두부 제조공정의 부산물인 콩비지는 서비스 아이템으로 무한제공된다.
물론 공짜다.

봉지 가득 비지를 퍼 주시면서(사실 내가 직접 퍼담았다)
별미로 비지 부침개 레서피를 친절히 전수해 주셨다.

"비지 70%, 부침가루 30%로 혼합해 걸쭉하게 반죽하여
다진 김치 넣고, 갖은 버섯 썰어 투입하고,
냉장고에 널브러져 다니는 고기나 캔 참치 같은 것 다져넣고
빈대떡처럼 전을 부쳐 잡숴 봐봐~~ 맛이 쥑이지"

모델 화보 촬영차 밖으로 나와 식당 외관을 바라보니 한숨이 나온다.
 간판은 낡아서 글자가 대부분 떨어져 나가고 "촌두부"만 남았구나.

"○○ 촌두부 식당" ?
"원조산천촌두부" ?
뭐가 오리지날이냐, 도대체?

(나중에 알아본 바에 의하며
공식 상호는 "산천촌두부"이며
전화번호는 
055-375-6173 인 것으로 확인됐다)


허름한 외관쯤은 상관없다. 모름지기 식당이란 맛있는게 장땡이다.

내원사 근처에 갈 일이 있다면
이 식당 잠깐 들러 두부요리  한 번 맛보라. 후회는 없을거다.

메뉴는 바로 위 사진의 창문에 붙은 차림표을 참조하시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