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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은 언제나 그리움이다"



"고향은 언제나 그리움이다"

아주 오래 전, 시집인지 소설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느 신문의 하단에서 본 책 광고문이다.
세월이 꽤 흘렀는데도 고향 하면 지금도 어김없이 떠오르는 한 마디가 바로 저 한 줄 광고 카피다.

내게도 역시 고향은 그리움이다.

북에다 고향을 두고, 먹고 살 길 찾아 남하한 탈북자도 아니고,
이역만리 타국으로 기약없이 떠난 이민자도 아닌데 
웬 그리움 타령인가?
 
수몰지구 주민이기 때문이다.

지리산에서큰 비가 내릴 때마다 극심한 물난리를 겪는 남강 유역의 보호와 더불어
수력발전으로 전기를 생산하여 당시 심각했던 전력난에 대처하고자
경호강과 덕천강이 합수하는 진주 서부지역에 다목적댐 건설이 추진되었고,
이윽고 남강댐이 완공되어 담수가 시작되면서 우리 고향마을은 수면 하에 잠기게 되었다.

청동기시대부터 우리의 조상들이 삶의 터전으로 대대손손 살아 왔던 내 고향마을은
그렇게 속절없이 물 속에 잠기고 말았다. 

탈북자나 이민자는 그나마 좋은 날이 오면 환향할 수 있다는 희망이라도 있지만 
내 고향은 이제 결코 돌아갈 수 없는, 그리움 속에서만 존재하는
먼 과거의 공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2011. 8. 28.
Kodak Professional DCS 760 



잠긴 고향마을 근처에 세워진 청동기역사박물관.


 


저 구조물은 도대체 무슨 의미로 세웠을까?
청동기인이 살았던 움막?
 




솟대의 오리 세 마리가 곤두박질하고 있다
하늘로부터 무슨 메시지라도 물고 온 것인지? 




하늘과 인간 사이, 현재와 과거, 혹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며
메신저가 되어주던 저 솟대위의 새들에게
그 옛날 내 고향의 이야기를 청해 들어볼 수 있을까.




Bronze age를 가장한 Contemporary만 존재하는 공간
 








 플라스틱 청동기人 모형이 키치스런 분위기에 일조하고 있다.


 


남매일까, 연인일까? 
실없는 의문만 생기더라.

 


플라스틱 청동기人 가족.
역시 키치스러움의 끝판이라 할 수 있는...


 


마을이 물에 잠기고, 인적이 끊어진 다음에야 전기가 들어오고 근사한 다리가 놓이는
이 기막힌 모순이여. 





중딩시절, 소 먹이러 가던 길목에 잠시 휴식하던 "못골" 입구.
시원한 그늘과 바람을 제공해 주던 아름드리 느티나무는  
언제 베어져 나갔는지 흔적조차 없다.

그리운 그 나무그늘이여!
(Ombra mai fu, di vegitable ...) 





다리 위에서 본 "듬"
왼족의 저 아득한 절벽을 우린"듬"이라 불렀다.

줄을 당기는 나룻배로 저 강을 건너야 마을에 도달할 수 있었던,
일종의 관문이다. 





하얗게 드러난 저 땅 뒤 조그만 섬 앞에
내가 태어나 자란 집이 있었지. 

저 물 밑에는
내 유년의 꿈과 기억들이
물고기되어 퍼득거리며 헤엄치고 있을까?

 



신작로에서 옛 마을로 진입하는 길은
녹슨 쇠사슬이 발길을 가로막고,
출입을 엄금한다는 경고장아래엔 
제멋대로 자란 풀들만 무성하다.
 



어릴 적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면서 저 깊은 강바닥을 내려다 보고 있노라면 
끝모를 시퍼런 심연 안으로 빨려드는듯 했고,
이 강에 산다는 물귀신 이야기를 우리는 사실로 받아들였으며 
그래서 늘 물에 대한 본연적 공포를 안고 살았던거다. 

이 강을 헤엄쳐 건너야 비로소 우리는 남자 취급을 받았고,
우린 부모님들의 감시를 피해 
기어코 저 강을 맨손 수영으로 횡단하는
위험한 통과의례를 치르고야 말았지. 
 




 
"물가에 집을 짓게나, 웃는 날이 많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