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해진 마음을 추스르고
새벽 현관을 나서다.
집 나서기 전 냉장고에서 오이 2개, 참외 하나 꺼내 챙기고,
동네 김밥천국에서 깁밥 2줄 사서 배낭에 던져넣고.
석남사에서 하차, 현지 식당에서 산채비빔밥으로 아침 해결한 후
빈 페트병에 물 채우고
산자락을 가득 감싸고 있는 자욱한 안개 속으로 파고든다.
대학시절 누군가로부터 헤르만 헤세의 이 시를 알게되고는
암송하는것도 모자라
알지도 못하는 독일어 원문까지 구해서 달달 외운 적이 있었다.
안개속 등산로에서 문득 헤세가 생각 나
옛 기억을 되살리려 치열하게 머리속을 짜 보았으나
결국 전문을 모두 기억해 내진 못하겠더라. 아, 세월이여.
그러나 헤세의 그 시적 감성이 지금 나의 기분과 다르지 않을것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인터넷에서 검색하여 시 全文을 위에 기재했음)
아직 피어 있을가? 솔나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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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7. 31.
Kodak Professional DCS Pro 660
with
Nikon Micro-NIKKOR AF 55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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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무가 저 바윗돌을 볼 수 없는 농무속을 걷고 또 걷기를 30여분,
먼저 묘하게 생긴 버섯이 안개 속에서도 내 눈길을 붙잡는다.
그것 참 거시기하네?
저 적절히 구부러진 자태와 불끈불끈 튀어나온 핏줄 좀 봐~~
비아그라버섯인가?
씨알리스버섯일까?
아니면 면사포를 쓰기 전의 망태버섯일까?
저 버섯땜에 하산코스를 변경했다.
원래는 석남사-밀양재-가지산-쌀바위-귀바위-석남사로 이어지는 부채꼴 산행을 하려 계획했으나
네댓시간 후 저 버섯이 어떻게 변신할지 궁금하여
결국 이 길로 도로 내려오기로 한 것이다.
그 주변에는 느타리로 추정되는 버섯이 지천으로 깔려 있었는데
하나 따서 냄새를 맡아보니 느타리향이 아주 진하고 좋더라.
그러나 100% 확신할 수 없어 그냥 구경만 하고 지나치기로 했다.
밀양재 능선에 도달.
이 코스를 택할때는 늘 쉬어가는 곳이다.
축축한 바위에 걸터앉아 오이 하나 꺼내 씹으면서 갈증을 달래는데
엉덩이에 빗물이 슬금슬금 배어들고 있었다.
8부 능선쯤에서 만난 연두색 여로.
역시 기대를 져버리지 않았다.
맨 처음 만난 솔나리.
좀 삭았지만 고운 자태는 그대로다.
수많은 나리 종류 중 우아하기로는 단연 으뜸인 솔나리!
형언키 힘들 정도로 소박하면서도 우아한 저 연분홍 색감.
잎이 솔잎처럼 가늘다고 솔나리라는 이름을 얻었다.
2주일 정도만 일찍 왔어도
진한 황토색 수술의 제대로 된 솔나리를 감상할 수 있었을텐데,
좀 늦었다.
내 님같은 솔나리를 완상하다 보니 어느 새 해발 1,240미터 가지산 정상.
헉...저건 또 뭐냐?
정상의 매점에서 기르는 누렁이다.
저 요염한 눈빛 좀 보시게!!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유명세를 타는 바람에
전국구로 이름을 날리고 계시는 연예견이란 말이다.
TV에 한 번도 못나간 나보다 훨씬 유명한 분이다.
눈썹 화장이 예술.
어이 황구선생, 사인하나 쬐매 해 주면 안될까?
힘들게 운반해 간 참외를 슥슥 깎아 한 입 와작~
으으...달다, 달아 ~!!!!
맥주 마시는 곳 옆을 자세히 보니 물레나물이 피었네?
좀 삭았지만, 캡쳐했다
안개는 좀처럼 능선을 넘지 못하고 있다.
거의 다 져 가는 솔나리를 한 송이 더 담다.
하산하면서 아까 그 거시기버섯을 재확인하였는데
처음에 본 꼿꼿한 모습 그대로였다. --;
망태버섯이 아니면 무슨버섯일지?
검색해 봐야겠다.
석남사 도착 19:30,
집에 도착하니 밤 아홉시가 넘어
마눌님에게 한 소리 들었지만,
어여쁜 솔나리를 한 아름 담아와서 기분 최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