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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국내여행

2017.01.14. - 소백산 겨울 산행 (사진 67장, 모바일 데이터 주의!)

     올해 겨울은 유난히도 겨울답지 않은 포근한 날들이 계속되었습니다. 야생화 동호회 사이트에 벌써 햇복수초 사진이 올라오기 시작하더니 통도사엔 홍매화가 피기 시작하였다는 소식까지 전해 오는군요. 또 어딘가엔 진달래가 활짝 피었고 나비가 날아다니는 것을 목격했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춥지 않은 겨울은 난방비 걱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서민들에겐 반가운 이야기가 되겠지만, 눈 덮힌 설산을 오랫동안 꿈꾸어 오던 사람들에겐 그리 기쁜 소식만을 아닐 것입니다. 겨울인가 했는데, 그냥 이대로 봄이 와버리는 것일까요?


     그런데 지난 주부터 '중부지방 폭설', '올 겨울 최강 한파' 등의 키워드가 포함된 조금 늦은 겨울 소식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중기 일기예보를 보니 잘 하면 소백산에서도 눈 구경을 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드는군요. 며칠간 계속 기상청 예보 사이트와 국립공원 홈페이지를 모니터링 하던 끝에, 소백산에도 잠시동안 입산 통제를 할 정도의 눈이 쌓였음을 알 수 있었지요. 결정했습니다. 이번 토요일은 소백산으로!


     문제는 주 후반부터 급강하하기 시작한 날씨입니다. 기상청은 강풍, 폭설과 함께 올들어 매우 추운 날씨가 될 것임을 예보하고 있습니다. 어차피 겨울 소백산의 아이덴티티는 몸이 날아갈 듯한 강풍과 뼛속까지 시린 추위가 아니겠습니까? 내가 어쩌면 간절히도 바라던 바이니 오히려 고마울 지경이지요. 가끔 함께 산행을 해 온 사무실 동료들에게 동행 의사를 넌저시 타진해 보니 다들 선약으로 몸을 빼기 힘들겠다는군요. 그래서 이번 산행도 어쩔 수 없이 솔로입니다. 코스는 작년과 마찬가지로 죽령휴게소를 들머리로 잡고 연화봉과 비로봉을 거쳐 어의곡으로 하산하는 루트로 정했습니다.

 

     금요일 퇴근하여 귀가하자마자 바로 짐을 꾸리기 시작합니다. 사실 평소 당일 산행 준비와 특별히 다른 것은 없고, 취사 장비와 몇 종류의 방한구 등을 추가하는 정도입니다. 장롱 뒤져 장갑, 양말, 안면보호대, 등산복 등을 찾아 고르느라 부산을 떨고 있는데, TV 일기예보를 지켜 보고 난 마눌님이 극구 말립니다. 이 추운 날씨에 혼자 산에 가서 행여 무슨 일이나 생기면 어쩔거냐면서요. 말리는 것이 당연하죠. 근데 난 떠나는게 또 당연합니다. 직장에 몸 매인 상황에서, 토요일 설산을 맞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쳐서야 말이 안되지요. 물론 자만해서는면 안되겠지만, 내 나름대로는 제법 오랜 기간 동안 산행을 해 오며 가야 할 때와 아닌 때는 구분을 하는 편인데, 이번에야말로 떠나야 할 때인 것입니다. 


    [ 모든 사진은 클릭하면 커집니다. ]



     마눌님의 걱정 섞인 배웅을 뒤로 하고, 인근 역을 향해 현관 문을 나섭니다. 일기예보 대로 과연 차디찬 공기와 함께 스쳐 부는 바람이 꽤 쌀쌀하군요. 다 바라던 바입니다. 걱정이 있다면, 날씨가 쓸 데 없이 포근해져 모처럼 내린 눈이 행여 죄다 녹아버리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플랫폼에 나가 보니 등산 행장을 한 사람이 나 말고 서너 명 정도 더 보이는군요. 이들도 다 소백산으로 가는 것일까요?  


    

     소백산행 때마다 단골로 사용하는 열차가 거의 정확한 시각에 도착합니다. 22:42에 부산의 부전역을 출발하여 05:30 청량리에 도착하는 무궁화호 1624편입니다. 23시 59분에 호계 역을 떠나 내일 새벽 3시 5분에 풍기역에 내려 줄 것입니다. 내가 울산에 정착 한 후 30년 넘게 이용해 온 교통편이죠. 과거 비둘기호 시절부터 치악산과 소백산행은 늘 이 열차를 타고 떠났습니다.  

 

     정시에 풍기역에 하차하였습니다. 대합실에서 잠시 스패츠를 착용하고 있는데, 부부로 보이는 젊은 산꾼을 만납니다. 소백산을 가느냐고 물으며 먼저 말을 거는군요. 부산에서 왔고 소백산은 처음인데 희방사에서 시작할 생각이랍니다. 희방사 코스는 제가 말렸습니다. 계곡이어서 야간산행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고, 눈이 내린 뒤라 러셀이 되어있지 않다면 초심자로서 어둠속에서 길 잃기가 십상이거든요. 나를 따라 죽령으로 가자고 권하니 그들도 매우 고마와하며 흔쾌하게 동의합니다. 역사를 빠져나오니 울산보다 더한 찬바람이 휑 불어오는군요. 마침 대기 중인 택시를 잡아타고 죽령으로 향합니다. 차비는 25,000원. 그 팀과 분담하니 택시비 부담도 조금 줄어들었습니다. 하하. 


     죽령으로 올라가는 옛 도로는 제설작업이 돼 있었지만 바람에 날려 온 눈이 살짝 쌓여 조심하여 운전하는 모습이 역력하였습니다. 죽령 고개마루 탐방로 입구에 도착하니 하늘에는 총총한 별과 함께 보름을 이틀 넘긴 둥근 달이 중천에 떠 온 누리를 환하게 밝혀주고 있군요. 03시 45분에 죽령탐방지원센터를 통과합니다. 여기서부터 중간 기착지(?)인 제2연화봉 대피소까진 4km 정도의 임도입니다.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넓은 길이어서 걷기는 수월해 보이지만 완만하고 긴 오르막이라 생각보다 은근히 힘듭니다. 달이 밝아 헤드램프를 켤 필요도 전혀 없습니다. 교교히 내리는 달빛 아래 뽀드득 뽀드득 상쾌하게 밟히는 눈길을 따라 걷는 호사는 흔히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일기예보와는 달리 매우 춥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습니다. 바람소리도 저 멀리서 들려오기만 할 뿐, 매우 잠잠해서 걷기가 참으로 쾌적합니다. 한 가지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가 등산 스틱(블랙다이아몬드 울트라마운틴 FL-Z 카본)에서 발생합니다. 스틱을 조립한 후 길을 걸으면서 체중을 싣자니 왼쪽이 약간 휘청거리는 느낌이 들더니 채 1km도 진행하지 않았는데 힘없이 꺾여버리는군요. 램프를 켜고 자세히 살펴보니 영구적으로 고정이 되어 있어야 할, 스틱의 마디를 연결해 주는 안쪽 지지대가 이탈하여 따로 놀고있네요. 난감한 상황이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손 쓸 방도가 없어 그냥 스틱 없이 진행합니다.



     제2연화봉 대피소에 당도해 취사장으로 직행해 보니 부지런한 탐방객들이 벌써 아침 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배낭을 풀어 스토브를 조립하고 라면을 끓였습니다. 함께 준비해 간 어묵을 투하하여 푹 삶으니 맛난 어묵라면이 완성됩니다. 다른 반찬 없어도 당연 꿀맛이죠. 국물까지 싹 비우고 커피물을 받으러 급수대에 가 보니 아뿔싸, 물이 안나옵니다. 가져 온 물이 550ml짜리 한 통 뿐이고 라면에 다 쏟아부었으니... 옆 팀에게 물어보니 자기네들도 물이 모자라 화장실 세면대 물을 받아와서 끓여 썼다는군요. 매점 오픈 시간도 많이 남았고, 하는 수 없이 세면기 물을 받아와서 팔팔 끓였습니다. 세면기 물이라도 커피맛은 각별하네요. 남은 물은 빈 물통에 다시 채웠습니다.

 

     문제가 된 왼쪽 스틱도 어찌어찌 수리했습니다. 행장을 정비하고 다시 새벽 어둠 속으로 발길을 내딛습니다. 여기서부턴 추위가 확 느껴집니다. 능선이어서인지 쌩쌩 부는 바람도 차가와 몸이 절로 움츠러드는군요.


 

     서편 하늘에 지고 있는 달이 눈 덮힌 산마루를 파르라니 비춰주고 있습니다.

     저 멀리 연화봉 산정 부근에 소백산천문대가 보이고 그 너머 동편으로부터 여명이 밝아오고 있군요. 수리가 잘 된줄 알았던 왼쪽 스틱에 또 동일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일단 스틱 하나는 포기하고 걷기로 햇습니다. 때문에 체중 분산에 차질이 생겨 제1연화봉을 오를 때쯤부터 무릎에 통증이 서서히 발생하기 시작합더니 이후 조금씩 가중되는 통증에 시달리다가 어의곡 삼거리 하산 지점에서부터는 많이 심해져서 이를 악물고 내려가야 하는 처지가 되어버렸습니다.


     월백설백천지백이어야 하는데 ... 공포영화 분위기처럼 푸르딩딩하게 나왔군요. 주위에 공동묘지가 없어 다행입니다.


     일출이 시작되었나 봅니다. 동편 사면이 아침 햇살을 받아 붉게 물들었습니다.



     눈꽃으로 뒤덮힌 산자락이 일시에 오렌지 빛깔로 변신합니다.


 










     뒤돌아 보니 떠나 온 제2연화봉 대피소와 기상관측소에도 아침 햇살이 내려앉았습니다.


 

     소백산천문대에서 기상관측소를 바라보는 방향


 




     북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면 가야 할 능선이 누워 있습니다. 제1연화봉과 비로봉은 구름에 가려있군요.



     연화봉 정상부근에서 바라본 남쪽 뷰입니다.


 

     정상부를 향하여 능선에 올라서니 드디어 소백산다운 매서운 찬바람이 나를 반겨줍니다. 카메라를 조작하느라 잠깐 장갑에서 손가락을 꺼내면 바로 아린 통증이 몰려오는군요. 한 번 식은 손가락은 체온이 원상복귀될 때까지 깨질 듯한 아픔이 지속됩니다.


 

     연화봉 정상에도 오직 나 혼자 뿐, 아무도 없습니다.


 

     역시 설경엔 파란 하늘이 제격입니다.



     동쪽 하늘은 어느 정도 열렸는데, 북서편에서 만들어진 두터운 구름이 계속 동진하고 있습니다. 빨리 저 구름이 걷히면 좋을텐데.


 

    


     여기서부턴 멋진 눈꽃 터널길이 시작됩니다. 쌓인 눈은 금방 내린 신설이어서 입자가 매우 곱고 물기 없이 포실포실합니다. 밟는 발길마다 사각사각 매우 경쾌한 소리가나서 좋긴 한데, 기름장어를 능가하는 미끄러움은 덤입니다. 사각사각 주루룩, 뽀득뽀득 꽈당을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릅니다. 귀차니즘으로 아이젠을 착용하지 않은데다가 스틱이 한 쪽밖에 없으니 더더욱 그랬습니다.

























     연화봉에서 천동삼거리 구간은 대체로 평이하지만, 이 곳 제1연화봉을 오르는 긴 계단길이 고비라면 고비입니다. 이 데크를 오르는 과정에서 무릎 통증이 서서히 가속화되기 시작합니다.


 

     이 곳 정상부에 계속 머물러 있던 구름대 속을 진입하니 사위는 완전 흑백모드로 전환합니다. 흔히 말하는 '도화지 뷰'가 이런 것인가 보군요.



    



 완전 무채색의 세계로군요. 포토샵을 쓰지 않고도 자동으로 흑백 사진이 됩니다


 

     간간이 하늘이 열릴 때마다 기회를 놓칠세라 손가락이 얼든 말든 셔터질을 해 댔습니다.


 


































     천동삼거리에 도달하였습니다. 천동방면에서 올라온 산객들은 탁 트인 설산의 장쾌한 풍경에 한 번 놀라고, 살아있는 생물체를 그대로 얼음땡시켜버릴 소백산의 매섭게 차가운 삭풍의 기세에 다시 한 번 놀랍니다. 

 

     어의곡에서 1:50분에 출발하는 단양행 버스를 놓쳐서는 안되기때문에 쉴 틈도 없이 비로봉 방향으로 진행합니다. 무릎 통증으로 하산에 시간이 얼마나 지체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어서 더욱 그래야만 했지요.


     여기서부터 드디어 진정한 겨울 소백의 진면목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마치 블리자드같은 폭풍설의 맛을 제대로 볼 수 있지요. 지금껏 경험해 온 찬바람의 매서웠던 기억은 다 잊어야할 것입니다. "무엇을 상상하건 그 이상의 것을 보게 될 것이다(You will see more than whatever you imagine.)"라고만 말하고 싶네요.


     비로봉 가는 오르막 완편엔 작은 통나무 오두막이 보입니다. 원래 멸종 위기의 주목을 보호/관리하기 위한 초소인데, 산객들이 여름엔 비를, 겨울엔 추위를 잠시 피하는 쉘터같은 곳으로도 쓰고 있지요. 저기 들러 간식이라도 좀 취하고 가면 좋겠지만, 시간도 모자라는데다 북적이는 사람 틈에서 비좁게 부대끼는게 싫어 그냥 통과했습니다.


     잘 자라고 있는 주목 군락이 모두 눈 옷을 입고 크리스마스 트리가 되었습니다.



     미칠듯이 불어제치는 강풍을 온 몸으로 받아 버티며 저 위로 보이는 비로봉 정상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깁니다. 바람이 얼마나 센지 직진 보행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모두들 휘청휘청 등산 스틱에, 말뚝에, 밧줄에, 혹은 옆 동료 몸에 의지하며 뒤뚱거리며 걸을 수밖에 없습니다.


     비로봉 정상에 도달하였지만 후다닥 인증샷만 남기고선 서둘러 어의곡-국망봉 삼거리 방향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여기에서 저 앞에 보이는 언덕의 돌무덤까지야말로 소백 겨울바람의 진수를 제대로 맛볼 수 있는 구간입니다. 아마도 한수 이남에서 극한의 겨울바람 체험이 가능한 몇 안되는 곳일 것입니다. 말로 표현하자면 호들갑처럼 들릴 것이니 직접 와서 겪어봐야 합니다.


     뒤돌아보면 비로봉과 천동삼거리를 오고가는 산객들의 모습이 깨알만하게 보이는데, 모두들 잔뜩 움츠린 모습임을 쉽게 알아볼 수 있지요. 저마다 빨갛게 얼어버린 얼굴에, 눈썹과 수염과 콧구멍 아래 주렁주렁 고드름을 매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 후기를 적는 지금도 이 사진을 보면 다시금 진저리가 납니다. 입고 있는 바지는 2년 전 바우데의 "눈물의 재고떨이 대란"때 거의 공짜로 줏어 온 동계용 키머(기모) 제품입니다. 태그상의 할인 전 가격은 꽤 비싼 것이었고, 소재는 뭘 썼는지 모르겠으나 제법 두터워 몇 번의 심설 산행에서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는데 이번엔 그야말로 식겁을 하였습니다. 어찌나 바람이 숭숭 잘 통하는지 꼭 삼베 잠방이를 입고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하체 추위는 별로 느끼지 못하는 체질을 믿고 속옷 외 언더레이어를 하나도 걸치치 않고 왔으니 바지를 뚫고 들어온 찬바람엔 속수무책이었지요. 허벅지, 엉덩이, 사타구니를 사정없이 훑고 통과하는 얼음장 바람에 맨살갗이 시리다 못해 쓰라린 통증으로 변해 무수한 바늘로 찔러대듯 하니 참을성 많은 내 입에서 절로 비명이 나옵니다. 



 

     엊그제부터 최강추위를 선동해 대는 구라청 예보가 허언이 아님을 몸으로 느꼈습니다. 체감 온도가 35도 아래로 떨어진다기에 피식 코웃음을 쳤는데, 된통 당하고 난 후 귀가하여 자료를 찾아 보니 체감 온도가 저렇게 계산된다는군요. 위 공식에서 제시된 네 가지 상수(常水)가 어떤 근거에서 비롯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기상청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계산기에 온도 섭씨 -18도, 풍속 17m/sec를 대입해 보니 체감온도가 진짜 영하 35도로 나오는군요. 충분히 수긍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추위야말로 많은 산객들이 겨울 소백을 찾게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칼바람이 없었다면 굳이 여길 찾으려 하지도 않았을겁니다. 시간이 흐르고 나면 삭풍의 쓰라린 고통이야말로 가장 달콤한 기억으로 각인되고 이 곳을 다시 찾지 않을 수 없도록 하는 강력한 유혹으로 변하는 것 같습니다. 

     북동쪽으로는 국망봉과 늦은맥이재, 신선봉, 민봉으로 이어지는 소백 북부능선이 눈 속에 잠들어 있습니다.



     바람능선을 벗어나니 거짓말처럼 포근하고 아늑한 산의 느낌으로 바뀝니다.



     하늘의 대부분을 점령하고 있던 구름도 이젠 거의 다 걷혀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한 상고대의 아름다움이 극명하게 살아납니다.






     저런 산길을 한 번이라도 걸어 본 자, 어찌 또 이 곳을 찾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산을 시작할 무렵부터 어의곡 방면으로부터 올라오는 엄청난 등객의 행렬이 줄을 이었습니다. 전국의 산악회에서 모집한 초심자 단체객들이 비로봉에 접근하기에 가장 가깝고 만만한 이 루트를 선호한 탓일겁니다. 좁은 등로에서 길을 비켜주느라 하산이 자꾸만 늦어지는군요.  



     잣나무 군락을 통과하고 나니 그 많던 상고대는 더 이상 볼 수 없었습니다.



     무릎과 고관절의 통증을 참아가며 부지런히 서둔 덕분에 버스 시각을 30여분 남기고 조금 여유있게 날머리인 어의곡탐방지원센터를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사진을 찍진 않았지만, 이 곳 탐방지원센터를 지키는 국립공원 여성 직원의 인상이 참으로 좋습니다. 지난 가을에도, 이번에도 하산하는 나에게(물론 다른 등객들에게도) 잘 다녀오셨느냐고 상냥한 웃음으로 먼저 인사해 주니 잠간이라도 피로가 덜어지는 느낌이랄까요?


     현수막에 쓰인 하산주의 유혹은 잠시 접어두고 곧장 버스 정류소로 갑니다. 스패츠 벗고 아이젠 탈거하여 대강 정리하고 나니 시간 적절하게도  단양행 버스가 도착하는군요. 새벽과 오전 날씨가 대체로 흐려 창창(蒼蒼)히 푸른 하늘에서의 설경을 많이 누리지 못한 것이 자그마한 아쉬움이라 할까요? 그것도11시 이후엔 구름이 거의 걷혀 좋았고, 무엇보다도 그립던 칼바람을 실컷 맞았는데도 더 이상 바랄게 남았다면 과욕이겠지요. 다만 솔로 산행이라 내 주위의 좋은 사람들과 이 멋진 순간들을 함께하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쳐도 되겠습니다. 



     볼일이 있어 잠간 들른 안동에서 늦은 점심식사 겸 하산주로 셀프 자축 파티를 합니다. 뼈해장국과 함께, 처음 보는 경주법주 쌀막걸리를 청해 보았는데 달착지근하고 새콤한 청포도 맛이 제법 상큼하니 색다릅다. 자주는 아니고, 가끔은 마실만 하군요. 집에 몇 병 사 가고 싶었으나 저 멀리 보이는 마트까지 아픈 무릎으로 걸어가기가 힘들어 마음을 접습니다.


     안동역 17:36발 부전행 무궁화호에 몸을 실음으로서 산행을 마무리합니다. 스틱 수리하여 동료들과 함께 올 겨울이 가기 전에 한 번 더 와야겠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