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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해외여행

미국 서부 자동차여행 2일차 (2014.02.04) - 샌프란시스코 및 요세미티 외곽

제2일 2014.02.04. (화요일) 맑음. 가끔 구름.

 

      오늘의 일정:


      ① 샌프란시스코 시내 투어    

      ② 요세미티 국립공원 西門 근처로 이동

 

     스마트폰 4대에서 동시에 울려퍼지는 요란한 알람소리에 눈이 번쩍 떠진다. 아침 6시. 식구들을 보니 일어나기 싫은 기색이 역력하다. 즉시 기상하여 샤워를 마치라고 일러 두고 큰 짐을 대충 정리한 다음 "공짜" 조식을 추진하러 프런트로 나가 보았다. 비좁은 리셉션엔 커피 머쉰과 오렌지주스, 비닐 봉지에 포장된 차가운 케익이 모텔에서 제공한다는 "free breakfast"의 전부였다. 빵 몇 개와 음료 두 잔을 대충 챙겨 객실로 돌아와 아침으로 때운다. 빵 맛이 영 아니었고, 어차피 입 속이 까끌하니 식욕이 전혀 당기지도 않았다. 대신 어젯밤 사 왔던 클램차우더를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어보니 과연 썩 괜찮은 맛이다. 이럴 줄 알았다면 두 개를 사 오는건데...




피셔맨즈 와프 광장 주차장에서



 

     짐 챙겨 첵 아웃 후 10분 정도의 지척지간인 피셔맨즈 와프로 다시 나가서 적절한 장소에 주차하고 피어39까지 일대를 산책하였다. 지금 우리가 미국에 와 있다는 이국적인 느낌만 제외하면 자갈치 시장과 그리 다를 바 없는, 관광지를 겸한 여느 漁港의 풍경의 전형적인 아침 분위기다. 아침 햇살을 받고 있는 피셔맨즈 와프 광장은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한산한 가운데 길고양이와 다투며 쓰레기통을 뒤지는 노숙자들과 그 위를 어지러이 날아다니는 갈매기와 비둘기, 그리고 부댕(Boudin)에서 풍겨나오는 향긋한 빵 굽는 냄새 등등이 어우러져 나름대로 묘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었다.

 

 




피셔맨즈 와프의 "맛집"들





부댕(부딘; Boudin)에서 열심히 재료를 주무르고 빵을 굽는 제빵匠.

통유리로 개방되어 길거리 행인들이 지나다니며 구경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Boudin 의 내부



 

     유명한 Boudin Bakery & Cafe에 들렀지만 그다지 입맛이 당기지 않아 구경만 하고는 그냥 나왔다. Boudin 외 가까운 곳에 Fishermen's Grotto, Alitos 등 맛집 리스트에 단골로 등장하는 식당들이 즐비하였지만, 모든 것이 타이밍이라, 모텔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나온 탓에 식욕이 동하지 않아 그냥 지나친다. 피셔맨즈 와프를 떠나 언덕길로 유명한 롬바르드 거리, 차이나타운, 유니언스퀘어, 다운타운 등 명소들을 주마간산으로 주욱 훑어보고 다시 트윈픽스에 올랐다.




저 꼬불꼬불한 길을 올라오면 트윈픽스에 도착한다. 

사진 왼쪽 멀리 금문교가, 오른쪽엔 다운타운이 보인다.



 

     트윈픽스는 두 개의 봉우리로 된 해발 291m의 야산 언덕인데 전망이 확 트여 있어 샌프란을 한 눈에 내려다 보기 좋은데다가 접근성도 양호하여 방문객들에게 꽤 인기가 있는 포인트다. 언덕길로 유명한 거리를 통과하여 꼬불꼬불 오르막을 달리다 보면 금세 전망대에 도착한다. 주차는 무료였고 우리가 도착한 시간에는 주차 공간도 널널하였다. 날씨가 청명하여 동서남북 어디나 막힘 없이 조망할 수 있어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동쪽으로는 다운타운과 베이브리지, 오클랜드 방향, 서쪽으로는 태평양 일대, 남쪽으로는 북쪽으로는 금문교 등의 명소를 한 눈에 다 볼 수 있다.





금문교가 있는 북쪽을 더 당겨 찍어보았다.





서쪽은 다운타운 방향. 첫 날, 두 번이나 잘못 진입했던 베이브리지가 보인다.





남동쪽으로 본 풍경. 멀리 샌프란시스코 만(San Francisco Bay) 가 보이고 그 너머 땅은 미국 본토다.




 

     이제 금문교(Golden Gate Bridge)를 구경할 차례다. 트윈픽스를 내려오는 길에 코스트코를 들러 현지 보급을 추진하였다. 저렴한 전기밥솥, 오렌지, 포도, 사과 등 과일과 쌀, 과자, 반찬통, 수저 등을 구입하여 트렁크를 채우니 마치 추수를 끝고 나락 가마니를 곳간에 가득 쌓아 놓은 농부처럼 마음이 든든하였다. 코스트코에 들른 김에 스넥코너에서 피자와 샌드위치로 점심까지 해결한다.

 

     금문교 남쪽 전망대(South Vista Point)에 도착하여 주차 후 금문교가 잘 보이는 포인트로 나가보니 과연 웅장한 자태를 자랑하는 금문교가 눈앞에 딱 펼쳐지고 있었다. 실물을 생눈으로 접해 보니 지금껏 영상으로 보면서 상상했던 것보다 압도적으로 스케일이 커 보인다. 지금은 현수교나 사장교 공법이 상당히 진보하여 현재 금문교를 능가하는 규모의 다리가 세계 곳곳에 세워졌지만 (지금 건설중인 울산 대교만 해도 두 기둥간 거리가 1,150m로서, 1,280m인 금문교에 거의 필적하는 규모임) 금문교가 가지는 상징성, 역사성 등을 생각하면 아마도 세계 현수교 역사의 불멸의 전설로서 앞으로도 계속 남아 있지 않을까? 그 시대에 이런 공법을 연구해 내고 이를 실행하여 현실로 에 옮긴 선각자들의 혜안이 새삼 놀랍다. 다리가 잘 보이는 지점에 금문교를 건설한 사람과 내력을 간략히 새긴 동판이 있는데 그 내용을 글을 읽어보니 괜히 콧날이 시큰해진다. 인공 구조물에서 이런 감동을 느껴 보는것도 그리 흔한 일은 아닐 것이다.




South Vista Point에서 본 금문교





금문교의 주 경간을 연결하는 매인 스팬 와이어.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찾게 되는 금문교는 명실 공히 샌프란시스코의 랜드마크다. 관광 코스로서도 가장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지만, 스스로 목숨을 버리려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아오는 자살의 세계적인 명소이기도 하다. 보도에 의하면, 1937년 이 다리가 완공된 이후 작년(2013년)까지 여기서 투신한 사람을 약 1600명으로 추산한다고 한다. 작년 한해에만 46명의 사람들이 여기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니 일주일에 한 건 정도는 자살이 이루어지는 셈인데 자살 방지를 위해 골머리를 않고 있는 당국은 올해 무려 7,600만 달러를 들여 자살 방지용 철제 그물을 설치하는 공사를 시작한다고 한다. 

 

     30분간의 기본 주차 시간 내에 전망대 이 곳 저 곳을 섭렵한 후 다시 차를 몰아 금문교를 건너서 북쪽 전망대로 향하였다. 금문교는 샌프란을 벗어나는 방향으로는 무료지만 샌프란으로 진입하는 방향은 통행료를 징수한다. 통행료 납부 방법은 다양하지만 https://www.bayareafastreak.org 에 접속하여 통과 예정 일자, 차량 번호, 결제할 신용카드 정보 등을 등록해 두면 편리하다. 사전 등록 없이 무단으로 통과하면 나중 과태료가 붙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돈을 물어야 한다. 우린 어젯밤 취침 전 미리 통행 등록을 해 둔 터였다. 주차비가 없는 북쪽 전망대는 그리 뷰가 좋지 않아 잠시만 머물렀다. 더 멀리서, 더 높은 곳에서 금문교 일대를 조망하기 위하여 컨젤먼 로드(Conzelman Rd)를 타고 남으로 태평양이 시원스럽게 펼쳐진 언덕으로 진행하였다. 




컨젤먼 로드 언덕에서 본 금문교와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



 

      컨젤먼 로드의 언덕배기에서 내려다 보는 금문교와 샌프란 일대의 풍광도 숨 막히게 멋있다. 관광객들도 거의 눈에 띄지 않아 샌프란시스코 베이가 잘 내려다보이는 벤치에 앉아 커피와 간식 타임을 갖는 여유도 부려 볼 수 있었다. 저 다리가 "골든게이트 브리지"라는 이름을 얻은 것은 해 질 무렵 황금빛 석양과 오렌지색 의 다리가 어우러져 자아내는 황홀한 자태 때문이라는데, 지금 시간이 해질녁이 아닌것이 조금 아쉬울 따름이다.





컨젤먼 로드 언덕의 한산한 벤치에서 샌프란 베이를 내려다보다.




 

     조금 더 가면 포인트 보니타(Point Bonita) 등대가 나오는데, 거기까지 가 보기로 했다. 등대로 가는 길은 매우 한적한 일방 통행로였고, 주위엔 과거 군사 요새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등대 근처엔 미사일 기지(SF-88)가 있는데, 과거 냉전시절 소련의 폭격기의 공습에 대응하기 위한 나이키 허큘리스 미사일 발사 시설이었지만 지금은 나이키 미사일 박물관으로 변모했다. 왼편으로 저 아래로 샌프란과 금문교, 태평양이 펼쳐진 호젓한 언덕길을 드라이브하는 그 기분이라니!  등대 입구에 도착하니 제법많은 탐방객들의 차가 주차되어 있고, 등대까진 차량 통행이 제한되어 2km 정도를 도보로 왕복해야 한단다. 아직 몸이 덜 풀렸는지 걷기를 극히 꺼려하는 가족들의 뜻을 수용, 등대까진 가지 않고 잠시 주변을 산책한 후 다음 목적지인 요세미티 웨스트게이트 랏지(Yosemite Westgate Lodge)의 좌표를 내비에 입력하고 약 180마일 정도의 짧지 않은 장도에 올랐다.

 



옛 요새의 흔적, 아마도 포대(砲臺)가 있었던 자리인 듯.





* 미국에서의 내비는 한국과 달리 상호명으로 검색이 안되는 경우가 많다. 그 광활한 미 대륙의 무수히 많은 상호를 불과 몇 기가바이트밖에 안되는 메모리에 어떻게 다 구겨 넣겠는가? 정확한 주소나 좌표를 입력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우린 첫날 피셔맨즈 와프 해프닝 이후 모든 목적지를 구글맵에서 좌표를 따서 내비에 입력하여 이동했다. 




여행 내내 우리의 발이 되어 준 닛산 패쓰파인더. (아마 미국 내에서 생산된 듯하다)




 

    오늘도 역시나 약간의 삽질은 빠지지 않는다. 컨젤먼 로드 언덕에서 바로 차를 돌려야 했는데, 욕심을 부려 등대까지 오는 바람에 길은 일방 통행로로 바뀌어버렸고, 내비는 한참이나 북쪽을 우회하여 리치몬드-샌 라파엘 대교(Richmond-San Rafael Br.)을 통과하여 요세미티 방향으로 안내하는 경로를 잡아두고 우리를 안내하였다. 금문교로 되건너 샌프란시스코 시내로 재진입 후 베이브리지를 타고 요세미티로 가려던 계획도 그 바람에 무산되어버린 것이다. 금문교 통행 등록까지 해 두었는데 말이다. 역시 구글맵이나 종이 지도를 보면서 큰 동선을 머리 속에 그려 놓고 그 감각을 살리되, 내비는 보조 수단으로 삼아야한다는 교훈을 뼈저리게 느낀다. 이후부터는 내비의 목적지를 설정할 때 중간 경로를 군데군데 삽입해 둠으로써 이런 실수의 재발을 방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실수" 또한 여행의 컨셉이 아니던가? 실수에서도 배울 것은 있으니까 말이다.

 

     도중 월마트에 들러 맥주 등 생필품 몇 가지를 추가로 구입하였는데, 스노우 체인도 함께 구입했다. 시에라 네바다 산악지대는 날씨 변덕이 심하여 언제 폭설이 내리고 결빙될지 예측이 힘들기 때문에, 이 시기에 이 곳을 출입하는 차량은 스노우 체인을 갖추도록 법으로 강제하고 있다. 체인 컨트롤이 발령되었는데 체인 없이 운행하면 출입이 거부될 뿐더러 벌금을 물어야 할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자신과 가족의 안전을 위해서 체인을 반드시 준비해야 한다. 이 곳 뿐만 아니라 앞으로 가게 될 유타주의 국립공원도 고산지대여서 강설, 결빙이 잦아 체인을 준비하는 것을 강력 권고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여행을 마칠 때까지 단 하루를 제외하곤 날씨가 양호하여 체인을 쓸 일이 한번도 없었지만 체인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예측 불가한 날씨에 대하여 심리적인 안정감을 얻을 수 있다.

 

     도시를 벗어나 요세미티로 이어지는 120번 도로를 탈 무렵 밤이 되었다. 고도가 점점 높아지면서 마치 한계령 같은 산악 도로가 시작되었고, 급경사와 급커브가 결합되어 스릴 있는 운전을 만끽한다. 다니는 차량이 거의 없는데다가 바깥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 도로의 결빙이 걱정되고, 가끔 야생 동물의 느닷없는 출현에 신경이 쓰였지만, 때로 과속까지 해 가면서 목적지인 글로벌런드의 "Yosemite Westgate Lodge"에 도착하니 아홉시가 다 돼간다다. 차에서 내려 주위를 둘러 보니 온통 고요한 숲 뿐, 민가가 있는 마을로 나가려면 30~40분은 걸리는 한적한 곳이었다. 비수기인지라 방이 남아 돌아갈 시즌이어서 예약은 하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프런트에 들어가 서너번을 소리쳐 주인을 부르니 인도계로 보이는 젊은이가 나와서 손님을 맞는다. 퀸 사이즈 더블베드룸 세금 포함 94.35불. 요즘같은 한가한 시절에 너무 비싸니 좀 깍자고 슬쩍 찔러본 말은 씨알도 안먹힌다. 

 

     이 모텔을 숙소로 결정한 것은 요세미티 국립공원(西門)과 가장 가깝다는 이유 하나 뿐이었다. 가격도 그리 높지 않아 금상첨화. 국립공원 내 숙소는 비수기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비싼 편이어서 고려 대상 밖이었고, 결과적으로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랏지(Lodge)형 모텔이어서 후진 주차하여 차를 객실 문 앞에 바짝 대고 트렁크를 여니 짐 운반 거리가 짧아 무척 편리하였고, 내부 시설도 깔끔, 가격 대비 꽤 훌륭한 편이었다. 단점이라면 공짜 아침식사가 제공되지 않는 것인데, 어차피 우린 밥을 지어 먹을거니 단점이 되지 않았다. 대강 짐을 정리한 후 밥솥의 포장을 뜯고 쌀을 앉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더운 밥을 푸고 한국에서 가져 온 반찬도 꺼내 펼치고 여기에 미국 맥주를 곁들이니 남부럽지 않은 만찬 상이 차려졌다. 미국 쌀밥도 찰기가 충분하여 우리 입맛에 잘 맞는다.




늦은 만찬


 

     꿀맛 같은 식사를 마치고 가족들이 차례로 샤워를 하는 동안 바깥에 나와 보니, 침엽수림 사이로 트인 차가운 하늘로부터 무수한 별빛이 쏟아내리고 있었다.  (제2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