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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화

참나리

참나리
백합科(Liliaceae) 나리屬(Lilium)
Lilium lancifolium Thunb.

   살랑살랑 바람따라 낭창낭창 흔들리는 훤칠한 키, 시원시원 큼직한 꽃, 검은 구슬을 달고 있는 무성한 잎, 저 먼 곳에서도 눈에 확 띄는, 화려한 주황색 얼굴, 대 놓고 드러낸 짙은 꽃밥 ... 참나리는 천상 나리 집안의 종갓집 맏며느리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위엄을 갖추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오죽했으면 외국사람들이 이 아이들을 호랑백합(타이거 릴리)이라 불렀을까요?
   

   

     참나리는 한/중/일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 일대를 원산지로 하고 있는 꽃이지만, 특유의 강렬한 아름다움으로 일찌기 서양으로 퍼져 나간 모양입니다. "Tiger Lily"를 검색어로 구글링하면 참나리를 다루는 외국의 상업 원예 사이트가 수두룩하게 뜹니다. 짙은 주황 바탕에 굵직한 검은 반점이 다닥다닥 붙은 모습에서 호랑이가 연상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겠지요. 

    "피터 팬"에는 네버랜드에 사는 인디언 추장 딸의 이름으로 나오지요. 추장 딸 참나리(타이거 릴리)는 악당 후크 선장에게 납치되어 닻에 묶이고 맙니다. 피터 팬이 있는 곳을 불지 않으면 점점 차 오르는 밀물에 빠뜨려 익사시키겠다는 후크 일당들의 협박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 끝까지 피터 팬을 지키는 그녀의 캐릭터는 용기의 화신으로 묘사됩니다. 

닻에 묶인 타이거 릴리(디즈니 애니메이션). 저 당돌한 표정에서 참나리가 연상되나요?

 

    또한 참나리는 루이스 캐럴의 작품 "이상한나라의 앨리스"의 속편격인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도 등장합니다. 제2장 "말하는 꽃들의 정원(The garden of live flowers)" 편에서, 참나리는 까칠하고 성미 급하며 다른 꽃들을 압도하지 않고서는 못견디는 드센 캐릭터로 묘사됩니다. 잠시 일부 구절을 인용해 볼까요? 

“Silence, every one of you!” cried the Tiger Lily, waving  itself passionately from side to side, and trembling with excitement.
"모두들 조용히 해!" 참나리는 흥분으로 부들부들 떨며 몸을 좌우로 격렬하게 흔들었습니다. 

“They know I can’t get at them!” it panted, bending its quivering head towards Alice, “or they wouldn’t dare to do it!”  
숨을 헐떡거리며 파들거리는 머리를 앨리스에게 구부려며 말합니다. "쟤들은 내가 달려들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어. 그렇지 않다면 감히 내게 저럴 순 없단 말야" 

    자기를 무시하고 떠들어대는 장미, 데이지, 제비꽃등 등에 자존심이 상한 참나리의 반응입니다. 

"말하는 꽃들의 정원" 초판본에 실린 앨리스와 참나리. 이 그림은 원작자와 함께 작업했던 삽화가 존 텐니얼卿(Sir John Tenniel)의 목판화에 채색한 것입니다.

   
    이처럼 참나리에 대한 서양인들의 느낌은 당당함과 도도함인 것 같습니다. 수많은 나리(백햡류 포함) 중에 영광스럽게도 "참"이라는 접두사를 붙여 부르는 우리 정서와 위에서 본 서양의 참나리에 대한 이미지는 서로 일맥 상통하는 것으로 봐도 될 듯하지요?  

   종소명 란키폴리움lancifolium을 보면 "접시"를 뜻하는 라틴어 lanx와 "잎"이라는 의미의 folium이 결합한 것으로 보이는데, 활짝 피어서 뒤로 말린 꽃 전체가 큰 접시처럼 보이는데서 기인한다고 추측해봅니다. 아님 말고요.(이런 무책임함이라니... ㅎ) 

     부산 근교의 한 바닷에서 무리져 활짝 피어있는 참나리 혹은 타이거 릴리와 즐겁게 노느라 땡볓에 살갗 타는 줄도 몰랐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