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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화

얼레지

     아마도 얼레지는 우리나라 야생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큰 꽃 중의 하나가 아닌가 합니다. 꽃 크기만을 봤을 때, 얼레지보다 큰 꽃은 내 기억으로는 연령초밖에 없는 것 같군요. 또한 항상 무리져서 피니 멀리서도 쉽게 눈에 띄고 특히 봄볕을 한껏 받아 분홍으로 빛나는 얼레지 군락은 산자락을 환하게 밝히는 등불처럼 보입니다.

     "얼레지"라는 이름이 어디에서 왔는지 궁금하여 여기저기 자료를 검색해 보니, 얼룩덜룩한 잎의 얼룩무늬에서 왔다는 설(어루러기->어우러기->어우러지->얼레지), 분홍색으로 한껏 제켜진 꽃잎 혹은 씨방이 발기한 수캐의 생식기를 연상시키는데, 개의 생식기를 "엘레지"라고 부르던 데서 왔다는 설(실제 국어사전에는 '엘레지'를, '개의 음경을 한방에서 이르는 말'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등 몇 가지가 제시되어 있는데, 선뜻 이해되지는 않는군요.

     유래야 어쨌건, 얼레지라는 이름에서 느끼는 어떤 기운(?)이 봄의 정서와 묘하게 잘 어우러져 참으로 잘 지은 이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학명에서 얼레지屬으로 제시된 '에리트로니움Erythronium'은 '붉은' 혹은 '붉은 꽃이 피는'이라는 의미의 고대 그리스어 '에루트로스 ἐρυθρός (eruthrós)'에서 왔습니다. 종소명은 '일본'을 뜻하는 '야포니쿰(japonicum)'을 쓰고 있어서 뒷맛이 썩 개운치는 않군요.  

     이 꽃도 개화 조건이 은근히 까다로와서 시기를 잘 맞추어야 합니다. 꽃잎이 한껏 뒤로 제쳐져 활찍 핀 모습을 보려면 우선 햇살이 내리쬐는 맑은 날씨여야 하고 온도도 최소한 20도 이상은 넘어 포근해야합니다. 맑은 날도 오전 11시경은 되어야 꽃잎을 여는데다가 햇살이 엷어지거나 오후 네 시경이 넘어가서 온도가 떨어지면 가차없이 입을 닫아버립니다. 게다가 개화 기간이 그리 길지 않으니 의외로 쉽지만은 않은 꽃이죠. 날씨의 협조가 없다면 입 꾹 다물고 고개 푹 숙인 모습만 대하게 될 뿐입니다.

     올해도 역시 꽃시계가 다소 예년과 다른 패턴으로 작동하는 바람에 원래 의도했던 포인트의 얼레지는 이미 다 져버린 후였고, 대신 뜻밖의 장소에서 싱싱한 군락을 만난 덕분으로 최소한 낭패는 면할 수 있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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