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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화

2016.09.19. - 간월-신불-영축 트레킹 (데이터 주의! 사진 50매)

신불 - 간월 -영축 라인 트레킹
복합웰컴센터 - 간월공룡릉 - 간월산 -간월재 - 신불산 - 신불재 - 영축산 - 함박재 - 백운암 - 통도사
2016. 09.19. (월)

 

    추석 연휴 마지막 날, 달력보다 덤으로 하루를 더 얻은 휴무는 신불산의 야생화와 함께 하기로 하였습니다.

     요즘 시점이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간절기의 한 가운데 서 있어, 여름꽃은 늦고 가을꽃은 이른 다소 애매한 계절입니다. 야생화를 만나기엔 그리 적합한 시기는 아니지요. 그래서 이번 나들이는 그냥 간월산에서 영축산까지의 능선길을 편안하고 여유있게 걸으면서 초가을의 산들바람 맛을 한껏 마시며 느껴 보는 것으로 컨셉을 정합니다. 

     기상하자마자 창을 열고 날씨부터 확인합니다. 바깥 세상엔 으르릉대는 바람소리가 사뭇 거칠군요. 어젯밤까지 내리던 비는 그쳤는지 다행히 땅은 말라 있고, 구름이 잔뜩 끼어 별빛은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일기 예보대로입니다.

      간단히 행장 재정리하고, 5시 5분에 출발하는 KTX울산역행 리무진 버스를 타러 집을 나섭니다. 바람에 실려 휙휙 지나가는 구름 사이로 이지러지기 시작한 달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그림이 제법 장관이군요. 마치 홍운탁월(烘雲托月)법으로 그린 수묵화를 동영상으로 보는 듯합니다. 그냥 지나치기 아까운 광경이어서 사진으로 담아 두려고 카메라 꺼내고 있는데 버스가 도착하는 바람에 아쉽게도 사진으로 남기지는 못했군요.

     KTX 울산역에 하차하여 교통 상황판을 보니 복합웰컴센터(구 간월산장)행 304번 버스가 8분 후에 도착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오늘도 환승편 시간이 딱딱 맞아떨어집니다. 역사(驛舍) 안으로 들어가 자판기 커피 한 잔을 뽑아 마시고 있으니 304번 버스가 도착하는군요


 

지금 시각 6시 8분, 곧 도착할 304번은 복합웰컴센터행 2번째 버스편입니다.


 

작천정을 거쳐 복합웰컴센터로 향합니다. 다른 승객이 아무도 없어 버스 전체를 나 혼자 온전히 전세 내는 호사도 누려봅니다.


 

     종점인 복합웰컴센터입니다. 이 곳은 곧 열릴 울주세계산악영화제(UMFF)를 앞두고 손님맞이 단장이 한창이군요. 영화제에서 상영할 산악영화 포스터가 줄을 지어 도열해 있습니다. 올해는 산악계의 살아있는 전설, 라인홀트 메쓰너(Reinhold Messner)까지 초청한다니 울주군에서 얼마나 이 행사에 신경을 쓰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클라이밍센터 위쪽 푹 꺼진 능선이 간월재(907m), 왼편은 신불산(1159m), 오른편은 간월산(1070m)입니다. 오른쪽 상단 능선에서 보이는 바위가 간월공룡릉의 일부이고, 저길 거쳐서 간월산으로 올라 갈 예정입니다.


          최근 며칠 간 줄창 내린 비로 계곡엔 수량이 철철 흘러넘치고 있습니다. 저 폭포를 건너면 간월공룡릉으로 진입하는 등로가 나옵니다.


     이 루트가 제법 험로여서 초행자는 다른 길로 가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빙기, 적설기를 제외한 계절엔 위험한 요소는 그다지 많지 않을 것 같고, 바위 능선길을 네 다리로 기어 오르면서 건너편에 펼쳐진 신불산 능선을 조망하는 상쾌한 재미가 있습니다. 차마고도가 연상될 정도로 구불구불 굽이치는 간월재 임도길을 구경하는 맛 또한 특별하지요.



     대팻집나무 열매가 빨갛게 익어갑니다. 목질이 치밀하고 단단해서 대팻날을 끼우는 대팻집으로 쓰였다는군요.


     떠러지를 끝에 조금 위태롭게 서서 오금을 지리며 저 절벽 아래를 내려다 보는 것도 상당히 스릴있는 일인데, 오늘은 가득한 운무로 시계(視界)가 꽝이어서 그다지 재미는 없군요.



     구름이 언뜻 걷히면 벼랑 저 편으로 신불산의 북동 사면과 그 위로 난 구절양장(九折羊腸) 간월 임도가 보입니다.


     비교적 난이도가 높지 않은 로프길입니다. 이런 로프길은 능선을 만날 때까지 심심찮게 마주치게 됩니다.



     홍류폭포가 보이는 벼랑 위에 한 산악인의 추모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저 비석 주인의 동료였던 사람들이 여기까지 와 추석 추모제라도 지낸 것일까요? 비석 옆에 덩그렇게 놓인 숟가락 하나가 많을 것을 생각나게 합니다. 


      구름이 살짝 걷히면 간월 공룡능선과 저 아래 궁근정 마을이 살짝 모습을 드러냅니다. 제법 운치가 나는군요.


     이와 비슷한 로프 코스를 심심찮게 거쳐야하지만 그리 위태롭진 않습니다.

 

     가장 경사가 급하고 길었던 로프길입니다. 올라와서 아래를 내려다 보니 오금이 좀 저릴 만도 하군요.


        간월산 능선에 도착했습니다. 바람이 너무도 세차게 불어 몸을 가누기 힘들 지경입니다. 게다가 보슬비까지 강풍에 실려 얼굴을 강타하는군요. 자욱한 개스로 조망은 전혀 없습니다. 그야말로 동서남북과 하늘, 오방(五方)은 완벽한 오리무중입니다.


 

     어쨌거나 간월산 정상으로 발길을 옮겨 인증샷을 찍고 다시 간월재 방면으로 내려갑니다.

 


      갓 피어난 개쑥부쟁이가 함초롬이 빗물을 머금고 있는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바람이 아주 잠깐 자는 순간을 잡아 재빨리 셔터를 눌렀습니다.

 


     간월재로 내려오는 도중 빗줄기가 굵어지는군요. 구름만 낄 것이라는 일기예보를 믿고 우비를 챙겨오지 않았던 덕분에 레인커버를 씌운 배낭 외엔 모든 것이 비에 무방비로 노출됩니다. 부득불 간이 휴게소에 잠깐 머물며 늦은 아침 식사 겸 날씨의 변화를 관찰해 보기로 했습니다.

     휴게소 매점에서 구운 계란, 햄버거를 사서 아침 식사를 대신합니다. 쇼케이스 속의 아이스크림이 훅 땡겨 날씨가 쌀쌀한데도 불구하고 부라보콘을 하나 사 먹어 봅니다. 평소 아이스크림 종류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 일부러 사 먹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누구 말마따나 당이 부족했던 탓이었을까요?

  

     식사 마치고 자판기 커피 한 잔 뽑아 마시며 비기 그치기를 기다렸는데, 나아질 조짐이 보이지 않아 그냥 출발하기로 합니다. 다행히 굵은 빗줄기는 아니어서 속옷까지 완전 흠뻑 젖진 않습니다. 카메라와 렌즈는 스펙 상 방적방수(防適防水) 가 지원된다니 니콘의 기술력만 믿고 별다른 우비를 씌우지 않은 채 그냥 어깨에 걸고 나갑니다.

 

     일단 식수를 보충하러 위 사진에 보이는 시멘트 임도 끝 위치에 있는 샘터로 향합니다.

 

     샘터 가는 길 양편엔 정영엉겅퀴가 대규모 군락으로 피고 있습니다.

 

     샘터를 떠나 나무 덱(Deck) 계단을 올라가면 간월재에서 신불산으로 오르는 등로의 시작점입니다. 아직 억새는 개화 준비 중이고, 약 열흘 내지 2주 정도는 지나야 제대로 패기 시작할 것 같습니다.

 

     나무 덱 구석에 수줍게 숨어 핀 꿩의비름을 찾아 담아봅니다.

 

     노린재나무의 열매가 비를 맞아 청보라색으로 보석같이 빛나고 있군요.

 

      신불산을 넘어 신불재로 향합니다.

 

   ▲ 미역취

 

     신불-영축평전의 등로에 깔린 디딤목입니다. 간격이 어중간하게 놓여 있어 한 칸씩 딛기엔 너무 가깝고 두 칸씩 건너뛰기엔 너무 멀어 스텝의 리듬이 깨져버리니 참 당황스럽습니다. 이 길을 걸을 때마다 은근히 부아가 치미는데, 알고 보니 나만 그리 느낀게 아니더군요.

 

     영축산 정상부가 잠깐 걷힌 구름 뒤로 나타납니다.

 

     키 큰 진퍼리새를 어렵게 뚫고 물매화가 고개를 내밀고 있습니다.

 

 ▲ 물매화

 

 ▲ 물매화

 

 ▲ 송이풀

 

 ▲ 숫잔대

 

 ▲ 쓴풀

 

     영축산에 당도할 무렵, 분분히 뿌리던 빗방울이 멎고 구름이 조금씩 걷히기 시작합니다. 대신 거친 바람은 전혀 잠잠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군요. 억새를 찍고자 했는데 바람만 가득 담겼습니다.

 

     갓 핀 꽃향유에 살짝 햇살이 내려앉았습니다.

 

     ▲ 산오이풀

 

▲ 구절초

 

     평일인데다가 궂은 날씨 탓인지 영축산 정상부에도 산객들이 아무도 없습니다.

 

     가야 할 함박등, 채이등, 죽바우등, 시살등 방향입니다. 여기서 부터 저 루트까지는 거의 25년만에 밟아보는 것이라 감회가 새롭습니다. 계속 걸으면 양산의 오룡산을 거쳐 부산의 금정산으로 연결됩니다.

 

     촉촉한 바위 위에 붙어서 자라는 바위떡풀의 꽃이 아직도 싱싱하군요.

 

     거쳐 온 영축산 정상이 이제 저먼치 멀어졌습니다. 오른쪽으로는 남암산과 문수산이 까마득한 거리로 보이는군요.

     함박등에서 바라본 영남알프스 남부 능선입니다. 능선의 돌출된 바위가 죽바우등(1055m)의 투구바위인 것 같군요. 저기까진 가지 않고 함박재에서 백운암을 거쳐 하산할 예정입니다.

    

     영축의 직벽 너머 통도사 사하촌과 양신군이 보입니다.

 

     산새들의 먹이가 될 팥배나무 열매가 풍성하게 달렸군요.

 

     함박재에서 백운암 방향으로 탈출로를 잡았습니다. 애초 계획은 시살등까지 진행하여 하산할 계획이었지만 시간이 조금 지체되어 더 욕심을 부리지 않기로 한겁니다. 언젠가는 시간을 내어 오룡산 거쳐 금정산까지 거침없이 내달리고싶군요.

 

     가파른 내리막을 걷다 보면 금세 백운암에 도착합니다. 그런제 저 일주문 현액(懸額) 범상치 않은 서체가 눈길을 확 잡아는군요. 짐짓 아주 진지한 듯하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장난끼가 가득 서린 듯하기도 한데... 플로렌스 젠킨스 부인이 부른 "밤의 여왕" 아리아가 문득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요? 불경스럽게도 말이죠. 하하  (젠킨스 부인 참조 사이트 => 여기를 클릭)

 

     극락암으로 향하는 백운암 진입로를 걸어 내려가면, 백운암의 주지께서 내 건 것으로 보이는 연등과 그 사이사이에 스님의 친필로 보이는 다양한 격문들이 걸려 있습니다.
격문 하나가 뒤통수를 꽝 하고 칩니다.

     "갈팡질팡 정신 못차리고 언제 정신 차려 사람되나" 

     마치 묵직한 돌직구에 정통으로 맞은 기분입니다.  참고로 다른 격문도 몇 개 옮겨 보면,

     "정신차려라, 어떻게 가는 것이 참된 인생인가를"

     "心磨, 너, 누구냐"

     "영축은 설함 없이 설법하고 덕진은 듣지 않는 듯 다 듣고 있네"

     "사람이 꼬리 달린 짐승처럼 살면 더럽고 부끄러운 줄 모르네"

     "자기행동 개차반인데 어찌 다른 사람에게 공경받겠나"

     스님의 깊고 오묘한 정신세계를 나같은 일개 범부가 어찌 짐작이라도 할 수 있겠습니까마는, 결코 예사롭지는 않아 보이는군요. 저 말 하나하나를 곱씹어 보며, 통도사에 이르는 머나먼 포장길을 터벅터벅 걸어 내려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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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돌아보니 병풍처럼 들어 선 영축산의 라인과, 영축이 품고 있는 산자락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트레킹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