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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해외여행

서안(西安) 역사기행 #2 - 삼장법사의 흔적이 서린 소안탑과 대안탑

 

 

서안(西安) 역사기행 #2 - 삼장법사의 흔적이 서린 소안탑과 대안탑

 

 

       어제 늦은 시간에 도착한 탓으로 오늘 일정은 좀 여유있게 잡혀 있다. 일어나 호텔 아침 식사 마치고 출발 준비를 다 해도 시간이 좀 남는다. 객실에서 커튼을 걷고 창 밖을 내다보니 서안 궁성과 그 너머 시가지 중심부의 실루엣이 뿌연 공기 사이에 아스라이 보인다. 창문을 열자 후텁지근한 공기가 훅 들어온다. 비는 오지 않고, 구름만 잔뜩, 탁하고 답답한 공기에 덥고 팍팍한 날씨다. 옛날, 주나라의 문왕이 중국 역사상 전설적 폭군인 상나라 말 주(紂)왕에게 잡혀 유배되었다던 서쪽 유리(羑里)가 바로 이런 환경 아니었을까?

 

       문왕이 유리옥에 유폐되어 있던 그 당시 하늘도 잔뜩 구름만 끼고 비는 오랫동안 오지 않아 땅이 메말라 민심이 피폐해졌다. 주왕의 폭정에 지친 백성들도 문왕에게 내심 희망을 걸고 있었지만, 문왕은 서쪽 유리에 잡혀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신세. 문왕은 감옥 속에서도 백성들에게 길흉을 스스로 판단하여 현명한 행동을 할 수 있도록 6효(爻)를 조합하여 64괘(卦)를 만들고 각각의 괘사(卦辭)를 지어 역경(易經, 주역)을 완성한다. 구름만 모이고 비는 안내려 땅이 타 들어가는 괘사는 "풍천소축(豊天小畜)"에 해당하는데, 이는 문왕 자신이 서쪽에 갖혀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유리옥에서의 암울한 상황, 그리고 이런 상태에서의 타개책을 모색하는 과정이 주역을 완성하게 되는 모티브라고 말한다.

 

 

 

 

 

 

 

 

 

 

       첫 관람지는 소안탑(小雁塔)이다. 이 탑은 서기 684년 당 중종이 건립한 천복사(薦福寺) 경내에 있는데, 서기 707년에 지은 15층 벽돌탑이다. 인근 대자은사 경내에 있는 대안탑(大雁塔)과 마주보고 있고, 크기가 대안탑보다 약간 작아 소안탑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소안탑 입구

 

소안탑 입구

 

 

 

 

 

 

       건립 당시 15층 높이였으나 1556년 섬서성 대지진때 훼손되어 현재 높아는 13층 43.3m 다. 당나라 승려 의정대사가 인도에 가서 경전을 얻어 귀국한 후에 이곳에서 번역하여 대량의 불경을 탑에 보존하였다고 한다.

 

 

 

 

 

 

 

       벽돌로 쌓은 전탑이다. 벽돌과 벽돌 사이를 접합하는, 모르타르에 해당하는 접착제는 밥풀이 주 성분이었다고 하니 의외고 또 놀랍다. 어떻게 밥풀이 1300여년을 견디며 벽돌과과 벽돌을 굳건히 붙잡아 두고 있는 것일까? 

 

 

 

 

 

 경내 대웅전을 겸한 기념품 가게에는 참배객들에게 즉석에서 휘호를 써서 판매하고 있고

 

 

 

 

 

중국인 관람객 부부가 돌 말을 탄 어린 자식을 보고 흐믓해 하고 있다.

 

 

 

 

 

동자승일까? 관람객의 아이일까? 

 

 

 

 

 

 

굳은 사랑의 언약도 세월이 가면 저렇게 퇴색하는 것일지.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옥구슬도 팔고 있고,

 

 

 

 

 

탑 꼭대기엔 지진에 무너져 내린 부분이 선명히 보인다.

 

 

 

 

 

 

비문을 지키는 해골 오형제

 

 

 

 

 

 

기단부에서 올려 보다.

 

 

 

 

 

돌사자인가, 해태인가?

 

 

 

 

 

 

 

화단엔 메꽃이 한장이다.

 

 

 

 

 

 

문화재들

 

 

 

 

 

 

 

 

 

 

 

 

 

 

 

 

 

 

 

 

 

노는 아이들

 

 

 

 

 

 

 

 

 

 

 

 

 

 

       다음 일정은 대안탑(大雁塔) 코스다. 대안탑은 서안 시내에서 4km 떨어진 대자은사(大慈恩寺) 내에 있다. 대자은사는 서기 648년 당대 황제인 고종이 어렸을 때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하여 만든 절이며, 현재 모습은 청나라때 재건축한 것이다. 대안탑은 중국의 유명한 불탑 중 하나로, 625년에 당나라 현장스님이 인도에서 가져 온 불경과 불상을 보존하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총 7층 높이의 누각식 전탑으로 높이는 64m, 기단부 둘레는 25m이다. 외부는 벽돌로 지어졌지만 내부엔 나선형 계단이 있어서 걸어 올라 갈 수 있다. 각 층의 사방에는 각각 하나의 아치형 창이 있어 먼 곳까지 내려다 볼 수 있다.

 

 

 

 

       대자은사 입구 광장에서 현장(玄奘: 602~664)스님이 우릴 반긴다. 서유기에 더 익숙한 우리는 현장이라는 법명보다 보통 "삼장법사"라고 많이 부르는데, 이는 현장이 경장(經藏) · 율장(律藏) · 논장(論藏)의 삼장(三藏) 능했다고 해서 그러한 별칭을 얻은 것이다. 천축국(인도)에서 태생한 불경은 그 원전이 팔리어와 산스크리트어로 씌어 있는데, 당시의 번역본인 한문 경전에 워낙 오역이 많아 현장이 직접 원전에 의거해 연구하기 위하여 627년에 천축국으로 들어 갔고, 만 19년만에 귀국하였다. 귀국 후 입적할 때까지 자신이 구하여 들여 온 경전의 한문 번역에 매진하였는데, 그의 번역은 원문에 충실하며 당시까지의 번역법이나 번역어에 있어서 커다란 개혁을 가져왔다. 이 때문에 종래의 번역을 구역(舊譯)이라 부르고, 현장 이후의 번역을 신역(新譯)이라고 부른다. 현장은 중국 불교의 법상종(法相宗) · 구사종(俱舍宗)의 개조(開祖)이다. 
       또 그는 자신의 천축 여행의 견문기를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에 통합 정리하여 태종에게 진상하였다. 이 책은 당시의 인도나 중앙아시아(서역)를 알기 위한 제1급의 사료이다. 또한 문학적으로는 현장의 천축 여행을 모티브로 하여 명나라(1368~1644) 시대에 《서유기》라는 소설이 생겨났다. [이상 위키피디아에서 자료 참조함]

       그런데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은 여름 휴가를 보내신걸까? ㅎㅎ

 

 

 

 

 

 

 

대자은사 입구. 일주문, 불이문, 천왕문 등은 없다.

 

 

 

 

       대자은사 대웅보전. 정면에서 자세히 보면 탑 전체가 왼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다. 이는 지하수의 무리한 개발로 지반이 침하되어 생긴 현상이라는데 피사의 사탑처럼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옛날, 삼장법사 현장께서 천축국을 다녀오실 때 사막에서 길을 잃고 헤메었는데, 그 때 기러기떼가 홀연히 나타나 길을 안내해 주었다고, 이를 기리기 위해 "기러기 안(雁)"자를 넣어 대안탑(大雁塔)이라 이름지었다.

 

 

 

 

 

 

"일주심향"

 

 

 

 

대웅전 부처의 형상과 배치는 우리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이 곳의 불교를 직수입했던 탓이다.

 

 

 

 

 

오뉴월 더위에 졸음을 못이긴 젊은 스님이 고개를 흔들 흔들 춘풍양류관(春風楊柳觀)을 수행 중이다.

 

 

 

 

 

기와 불사도 우리와 다를 바 없구나.

 

 

 

 

 

 

매미 허물 벗듯 가사만 벗어 걸어놓고 스님은 나무 높이 올라가셨나? 

 

 

 

 

 

 

       탑 뒷편엔 매표소가 있어서 50위안의 입장료를 내고 티켓을 끊으면 저 탑의 위부분까지 걸어 올라 갈 수 있다. 당대 중엽에는 과거시험의 진사시에 급제하면 먼저 곡강(曲江), 행원(杏圓)에서 잔치를 한 후에 대안탑에 올라와서 탑 벽면에 친필을 남기는 것을 대단한 명예로 여겼다. 당대 유명시인이자 장한가를 지은 백거이(白居易) 역시 진사 시험에 합격한 후 "자은탑에 친필을 새긴 17명 중 가장 어린 사람이다(慈恩塔下題名處, 十七人中最少年)"이라는 글을 남겼다는데, 이것을 보고싶어 입장표를 사고 싶은 마음 굴뚝이었지만, 시간 관계상 그럴 수 없었던 것이 아직도 아쉬운 대목이다.

 

 

 

 

 

 

 

 

 

 

 

 

 

대웅보전에서 예불이 진행중이어서 조심스레 입장을 시도하였으나 정중히 거절하더라. 

 

 

 

 

 

 

 

 

단청이 푸른색 계통으로 청나라풍이다. 서까래 끝의 눈동자 문양이 독특해 보인다.

 

 

 

 

 

 

 

       대자은사 후문 밖에는 넓은 분수 광장이 조성되어 하루에 몇 번씩 정기적으로 분수 쇼가 펼쳐진다. 약 20~30분간 오케스트라의 음악에 맞춰 장대한 쇼가 전개되는데, 이는 서안 개발권을 가진 엄청난 부동산 재벌인 곡강(曲江)그룹에서 조성하여 서안 시민들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볼거리 중의 하나이다. 곡강그룹은 서안지역의 대부분의 개발권을 독점하여 현재 초대규모의 재개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곳도 개발이 한창인데, "당(唐)"을 테마로 하여 이 지역 전체를 당나라 당시의 문물거리로 조성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분수쇼 자체는 매우 스케일이 컸으나, 명실공히 세계 최고의 분수쇼라 할 수 있는 라스베이거스 벨라지오 호텔의 분수쇼에 비해선 많이 부족하였다. 거대하고 무수한 물줄기가 음악에 맞춰 상하로 높낮이만 조절되며 분출될 뿐, 물줄기 하나 하나가 형형색색으로 살아서 춤추는 스펙터클한 아름다움은  없다. 그래도 구경꾼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는 모습들이었다.

 

 

 

 

 

분수광장 너머로 대안탑이 보인다.

 

 

 

 

 

관람을 마치고 빠져나오니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긍덕기 치킨이 우릴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