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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화

망태말뚝버섯 (a.k.a. 흰망태버섯)

     해마다 장마철이면 무덥고 축축하고 컴컴하고 모기떼 득실대는 대숲에 등불을 밝히듯 요정처럼 나타나는 진객이 있습니다. 바로 망태말뚝버섯입니다. 올해도 다녀왔습니다.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고 할까요, 장마철이라고 항상 이들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서너 번 방문해서 몇 번 실패한 끝에 겨우 몇 송이 모셔왔지요. 

     그런데 해마다 이들을 사진으로 담으면서도 정명(正名)이 '흰망태버섯'이 아니라는 것은 전혀 생각지 못하였습니다. 사진 정리 후, 제가 자주 가는 야생화 게시판에 올리기 직전 습관처럼 국가표준버섯목록 사이트에 접속하여 검색해 보니 뜻밖에도 검색이 되지 않습니다. 검색어를 '망태'로 바꾸어 입력하니 비로소 4가지의 버섯 種이 나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껏 '흰망태버섯'으로 잘못 알고 있었던 이녀석의 정명은 '망태말뚝버섯'이었던 것입니다. 남들이 지금껏 '흰망태버섯'이라 불렀으니 아무 의심 없이 그게 제대로 된 이름인 줄 알고 있었어요.

     망태말뚝버섯(Phallus indusiatus Vent.)은 현행 분류학상 말뚝버섯科(Phallaceae) 말뚝버섯屬(Phallus)에 들어갑니다. 야생화 사이트를 검색하면 이 버섯은 대부분 '흰망태버섯'이라는 이름으로 올라와 있고, '망태말뚝버섯'이라는 정명은 극히 최근부터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정명이 근자에 바뀐 모양입니다. 사실 정명이 바뀐 이면에는 이 버섯의 속(屬)을 망태버섯속(Dictyophora)에서 말뚝버섯속(Phallus)으로 정정하면서 발생한 일로 추정됩니다. 한 가지 의아한 것은 노랑망태버섯<Phallus luteus (Liou & L. Hwang) T. Kasuya>은 같은 말뚝버섯屬인데도 국명을 그대로 두어 망태버섯屬으로 오해할 소지를 남겨둔 것입니다. 더구나 국가버섯표준목록엔 이명(異名)에 대한 정보도 제공하지 않아 저같은 어린 백성들은 상당히 혼란스럽군요.

     영문 위키피디아를 검색(<=클릭)해 보니 의문이 조금 해소되는 것 같습니다. 이 사이트에 따르면, 이 버섯을 처음 보고한 사람은 프랑스의 박물학자 방뜨나(Etienne P. Ventenat)였고, 이후 망태버섯屬(Dictyophora)이라는 새로운 속명을 만들어 여기에 넣었습니다.  그 이후 유사종, 근연종이 잇따라 발견되어 분류상의 혼란을 겪으면서 학명이 몇 번 바뀐 끝에 2008년에 와서야 비로소 말뚝버섯속(Phallus)으로 공식 정리된 모양입니다. 국가표준버섯목록상 정명의 변경도 이를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확실치 않은 제 의견일 뿐입니다)

     속명 Phallus 는 후기 라틴어 'phallus'에서 왔고 이는 고대 그리스어 'φαλλ?? ?(phallos?)'에서 유래하였는데, 남성의 성기, 특히 발기한 남근을 의미합니다. (A penis, especially when erect.) 실제로 대나무 낙엽을 뚫고 돋아나는 이 버섯대를 보았다면 바로 이해가 될겁니다.

     종소명(種小名)으로 쓰인 라틴어 형용사 indūsǐātus는 '속옷을 입은 ~'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는 망사로 된 여성의 흰 속치마를 연상해서겠죠. 조선 성리학의 오랜 영향(?)을 받아 외국 학자들에 비해 훨씬 점잖은 우리 학자들은 남근이니 고쟁이니 하는 그런 상스럽고 민망한 이름보다도 말뚝과 망태라는 무난한 이름을 각각 붙였을겁니다.

     이 버섯 주위로 접근하면 다소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찌릅니다. 이 악취는 버섯 머리(갓)의 녹갈색 점액질에서 풍기는 것인데, 이는 포자를 먹으러 날아드는 곤충들을 내쫓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일부 블로그에 보면 고약한 냄새를 풍겨 곤충을 유인하여 포자를 퍼뜨리는 매개로 삼는다고 하는데 이는 잘못된 견해로 보입니다. 공중에 포자(홀씨)를 퍼뜨려 번식을 하는 버섯이 매개곤충을 불러들일 이유가 없지요. 

     이 버섯은 식용이 가능한 모양인데, 통째로 채취하여 갓에 붙은 점액질을 제거한 후 말려 쓴다는군요. 중국에는 최고급 닭고기탕 요리에, 태국에선 '똠 위어 파이'라는 죽순 수프(ต้มเยื่อไผ่, Tom Yuea Phai)에 들어가는 귀한 식재료라고 합니다. 무슨 맛일지 심히 궁금하지만, 저걸 채취해서 말려 볼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생눈으로 보는 것만도 아까울 지경이거든요.

말린 망태말뚝버섯(출처:영문 위키피디아)

망태말뚝버섯으로 요리한 태국의 죽순수프 똠 위어 파이
(출처:영문 위키피디아)

     이 아이들을 만나려면 장마비가 많이 온 후 이틀 뒤가 좋고, 이른 아침에 가야 가능성이 커진다다는군요. 서두에서 언급했듯 저도 서너 번의 시도 끝에 겨우 성한 아이들 몇 송이를 간신히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것도 그 넓고 축축하고 퀴퀴하고 후텁지근 무더운 대숲을 땀 범벅이 되도록 찾아 헤맨 끝에 말이지요. 무엇보다도 가장 큰 어려움은 엄청난 모기떼와의 일전을 단단히 치러햐 한다는 것입니다. 사진을 찍겠답시고 카메라를 꺼내 버섯 앞에 조아리고 폼을 잡으면 어느샌가 모기떼들이 새카맣게 몰려와 굴러온 성찬을 즐기려 합니다. 모기 기피제를 뿌려봐도, 장갑을 껴 봐도 어느 새 벌집이 돼 있는 살갗을 발견하게 되지요. 제법 두터운 리바이스 청바지를 꿰뚫고 허벅지에 빨대를 끝끝내 꽃아박는 그 집요한 전투력엔 두 손 두 발 다 들 지경입니다.

     극성스런 모기 군단을 피해 대숲을 벗어날 즈음이면 가려움이 전신을 엄습하여 저마다 온 몸을 벅벅 긁어대느라 한동안 부산을 떨어야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아이들을 맞으러 대나무 숲 전투장으로 다시 들어갈 가치는 충분합니다. 그 숲 속의 주인인 모기들에 그까짓 헌혈쯤이야 기꺼이 조공한들 대수겠습니까?    













아래 2장은 함께 살고 있던 버섯(종명 미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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