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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화

좀끈끈이주걱(미기록종), 끈끈이귀개, 쥐꼬리풀

     좀끈끈이주걱 Drosera rotundifolia 의 존재를 알게된지 이틀만에 직접 대면까지 하는 행운을 누린 것은 어느 귀인의 도움 덕분이었습니다. 

 

     원래 한 키 하는 끈끈이주걱 집안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것을 과시라도 하듯, 전초의 모습에 비해 키가 무척 큽니다. 저 길다랗고 가녀린 꽃대가 그 꼭대기에 매달린 꽃을 어찌 감당하는지 그저 신기할 따름이죠. 때문에 알 듯 모를 듯 살랑이는 미풍에도 어찌나 꽃이 증폭되어 흔들리는지 증명사진을 담는데 무척 애를 먹어야 했습니다. 또 체형의 밸런스가 저렇다 보니 전초 담기가 난감함은 덤입니다.

 

     붉은 계열의 꽃 색감이 저렇게 오묘한 것음 처음 봅니다. 크림슨에 바이올렛 레드를 섞어 밝은 조명을 역광으로 투사한 색? 투명하면서 진득한 저 붉은 색의 유혹에 무심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기나 할까요?

 

     위 전초 샷에서 보듯 꽃의 크기도 매우 작습니다. 아래 사진은 1:1 접사가 되는 니콘의 55밀리 매크로렌즈를 더 이상 들이대기 힘들 정도로 한껏 근접시켜 찍은 것입니다. 조리개를 바짝 조여 심도를 더 깊였다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삼각대를 지참하지 않아 손으로 들고 찍느라 셔터 속도를 확보하기 어려웠으니 나름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래도 다한 셈입니다. 설령 삼각대를 가져 갔더라도 바람 때문에 거의 무용지물이었겠지만...

 

     좀끈끈이주걱은 아직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 사이트에 등재되지 않은 미기록종입니다. 2010년 발견되어 식물분류학회지 42권1호(2012)에 발표됨으로써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관련 논문의 초록(抄錄)을 인용해 봅니다.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에서 우리나라 끈끈이귀개과의 미기록 분류군인 좀끈끈이주걱(Drosera spathulata Labill.)이 발견되었다. 이 분류군은 동부 오스트레일리아에서부터 동남아시아, 일본, 중국, 대만에 주로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근연 분류군인 끈끈이주걱(D. rotundifolia)과 비교하여 잎의 크기가 작고 (10-20 mm long, 2.5-4.5 mm wide), 화서에 조밀한 선모가 있으며, 분홍색 꽃이 피는 점에서 뚜렷이 구분된다. 국명은 전체가 근연 분류군보다 왜소한 특징을 고려하여 ``좀끈끈이주걱``으로 신칭하였다. 주요 형질에 대한 도해와, 기재, 서식지 식물사진, 검색표를 제시하였다.』

 

     논문의 본문엔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이 없어 상세한 내용은 추후에 알아봐야겠지만, 흔히 보는 끈끈이주걱 Drosera spatulata 과는 외관상 차이가 눈에 띕니다. 끈끈이주걱은 7월경에 흰색 꽃을 피우고 여러 겹으로 난 잎이 직립하듯 서는데 비하여 좀끈끈이주걱은 자홍색 꽃을 5~6월에 피우는데다가 잎을 방석처럼 펼쳐서 땅바닥에 밀착해 놓고 있습니다. 까막눈인 제가 봐서 그렇다는겁니다. 허허~ 

 

 

     꽃은 아침나절에 열기 시작하여 10시 반을 정점으로 만개했다가 이후엔 금세 닫아버린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 꽃을 만나러 가려는 분을은 최소 9시 반경에는 현장에 도착하여야 여유있게 사진으로 담을 수 있을 것입니다.

 

     꽃마리처럼 도르르 말린 꽃은 총상꽃차례를 이루며, 아래에서 위로 순차적으로 핍니다.  위 사진을 보면 맨 아래 장남과 차남 두 녀석은 이미 졌고, 오늘은 3남 차례인가 봅니다. 하루에 한 송이씩 차례로 피는 걸까요? 꽃봉오리들이 일시에 핀다면 저 낭창낭창 가늘고 연약한 꽃대가 꽃의 무게를 감당하기도 어렵겠죠? 여러 마리의 벌이 일제히 날아와 꽃을 하나씩 꿰차고 앉기라도 한다면? 그 뿐인가요? 여러 꽃에 스치는 바람을 받아내는 것도 힘에 부칠 것입니다. 필경엔 부러질 수도 있겠죠? 이 또한 똑똑한 좀끈끈이주걱의 고도의 전략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줄기를 엿가락처럼 길다랗게 주욱 빼어 꽃을 높이 달고 있는걸까요? 제가 추리한 바로는 다음과 같습니다. 꽃가루받이를 하러 온 손님(곤충)에 대한 배려라는 것입니다. 끈끈이주걱은 잎에 난 수없이 많은 돌기 끝에 끈끈한 점액을 분비하여 지나가는 곤충들을 붙여 잡아 먹고 사는데, 꽃과 끈끈이잎의 거리가 짧으면 수분을 도우러(사실은 꿀을 취하러) 찾아왔던 곤충들이 자칫 끈끈이에 들러붙을 수 있겠지요. 수분을 도운 중신애비에게 그 은혜를 원수로 갚을 순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따라서 꽃을 끈끈이잎과 되도록이면 멀리 떼어 놓아 매개 곤충들이 비명횡사하는 것을 막아 보려는 의지에서 비롯되었다고 믿고 싶습니다. 참으로 예의를 갖출 줄 알고 도리를 지키는 기특한 식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책없는 땡볕에 땀을 팥죽처럼 줄줄줄 흘리며 사진을 찍고 있는데, 방문객 2분이 출현합니다. 환경부 소속 공무원인데, 생태 모니터링을 나왔다는군요. 발견 초기만 하더라도 이 조그만 습지에 빽빽할 정도로 많은 개체군이 서식했는데, 이제 겨우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밖엔 남지 않았다고 탄식을 하십니다. 누군가가 흙째로 퍼 가버렸다는군요. 과연 주변엔 삽질의 흔적이 아직 상처 딱지처럼 남아 있습니다. 필시 야생화 농장의 장삿꾼 짓이거나 우리같은 꽃사진가의 나쁜 손의 소행일 것입니다. 누가 보쌈을 해 갔더라도 죽이지 않고 부디 잘 키워 주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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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은 또 다른 모델이 될 좀끈끈이주걱을 찾아 근처 습지를 헤매다가 뜻하지않게 우연히 발견한 끈끈이귀개 Drosera peltata var. nipponica (Masam.) Ohwi 쥐꼬리풀 Aletris spicata (Thunb.) Franch. 입니다. 이런 횡재가!!! 개화 시기가 조금 지났지만, 실물로는 처음 대면했던 녀석들이어서 함께 올려봅니다. 

 

끈끈이귀개

 

끈끈이귀개

 

끈끈이귀개

 

끈끈이귀개

 

끈끈이귀개

 

끈끈이귀개

 

끈끈이귀개

 

끈끈이귀개

 

쥐꼬리풀(아직 개화 전)

 

쥐꼬리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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