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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화

게재 시기를 놓쳐버린 올해의 봄 꽃 시리즈 #1 - 변산바람꽃

 "옛날 옛적, 이야기를 듣기만 하고 남에게 들려주지 않는 한 도령이 살았다. 이야기를 듣는 족족 모두 염낭(허리춤에 차는 주머니) 속에 차곡차곡 넣어두고 입구를 졸라매서 시렁에 걸어 두었다. 염낭 속에 갇혀 있던 이야기들이 견디다 못해 마침내 반란을 일으키기로 작당하고, 도령이 장가드는 날 샘물이나 딸기, 배, 지네, 뱀 등으로 변신해 있다가 도령을 해치기로 했다. 마침 이야기들의 모의를 우연히 엿들은 하인은 자청해서 신랑의 말고삐를 잡고 혼인 행렬에 참여했다. 혼인길 곳곳과 신혼방에 잠적해서 도령을 공격하려던 이야기 귀신의 정체를 알아챈 하인은 그때마다 나서서 도령을 구해냈다. 처음에는 하인의 무례한 행동에 화를 내던 도령은 뒤늦게 그러한 사정을 알고 하인에게 한 살림 내주었을 뿐 아니라, 마침내 이야기 주머니를 풀고 그 동안 들은 이야기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시절, 고전읽기 책에 "신유복전, 박씨전" 등과 함께 나오던 전래동화의 한 토막입니다. 당시 이야기듣기를 좋아하던 나는 저 내용이 좀 충격적이었던지 들은 옛날 이야기를 남에게 해 주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고, 밤마실 등에서 또래 동무들과 모이면 옛날 이야기를 해 달라는 요청에 시달리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간 찍었던 사진이 자꾸만 쌓여갑니다. 작년 말까지만 하더라도 찍어 온 사진은 허접하나마 나름대로 선별해서 블로그에 게시하여 세상 구경을 시키곤 했는데, 근년에 들어서 무슨 게으름 귀신이 씌였는지 블로그 작업이 조금씩 귀찮아지기 시작하더니 요새는 사진을 찍는 족족 하드디스크에 쏟아부어만 두고 더 이상 손을 대지 않고 있는, 귀차니즘의 노예가 돼버린 듯한 나를 발견합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채 열 명도 안될 내 블로그 애독자(?) 몇 분께서 최근 직/간접 경로를 통해 걱정을 살짝 내비치십니다. 혹시 저 인간이 중병에 걸려버린건가? 어디 먼 곳으로 떠나버렸나? 등등. 심지어는 생활고로 사진기를 다 팔아먹은게 아닐까 하는 황당한 농담도 하시는 분도 있어요. 이렇게 농 반이지만 진심으로 걱정해 주실 지경이 되니 정신이 좀 들긴 듭니다. 혹 하드디스크에 봉인된 채 빛 볼 날만을 하염없이 기다리던 수많은 사진들이 염낭 속의 이야기들처럼 견디다 못해 마침내 반란이라도 일으키지 않을까 하고요. 더 나아 가 "동천 사망설"이 유포되기 전에 꽁꽁 졸라 맨 저 사진 염낭을 열어 몇 장이라도 세간에 좀 내 보내야겠다고 작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게재 시기를 놓쳐버린 봄 꽃 시리즈"라는 다소 거창한 제목은 변명성이라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첫 꼭지는 변산바람꽃입니다. 미나리아재빗과의 변산바람꽃은 변산반도에서 첫 채집되어 학계에 보고됨으로써 저런 이름을 얻었지만 이후 전국 각지에서 서식지가 발견되어 전국구가 된 이른 봄꽃입니다. 그 중에서도 우리집과 가까운 산자락의 변산바람꽃은 전국에서 개화 시기가 가장 빠른편이어서(1월 말) 겨우내 꽃에 굶주렸던 전국의 수많은 화객들을 불러모으는 대단한 힘을 지녔습니다. 올해 울산 근교(경주, 포항권 포함)에서 만났던 변산바람꽃을 몇 장 올려봅니다.


    * 피씨에서는 사진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모바일에서는 그게 안되는군요.


  






















































(변산바람꽃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