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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화

2016.08.02~03 - 설악산(서북릉-공룡릉) 여름 야생화 트레킹 (2/2)

     잠깐 다시 눈을 붙였다가 4시경 다시 일어났습니다. 혹 대청봉 일출을 맞이할 수 있을 것도 같아 대피소 바깥으로 나와 보니 사위는 또 다시 자욱한 운무로 가득합니다. 별들이 총총 빛나던 그 맑은 밤하늘은 그 새 온데간데 없어졌고, 보이느니 휙휙 날아다니는 하얀 안개 뿐이군요. 덕분에 대청봉을 다시 오를 필요가 없어졌으니 오히려 마음은 편안해집니다.

     짐을 챙겨 소청 방면으로 오늘의 일정을 재개합니다. 소청 대피소 갈림길 부근에 다다르니 안개가 개였다 끼었다를 반복합니다. 이미 일출은 시작된 듯, 동녁 하늘이 오렌지색으로 물들고 있군요. 


     오른편 실루엣의 봉우리가 대청봉입니다. 산 아래로는 끝없이 운해가 깔리고, 하늘이 붉은 색으로 밝아오고 있네요.


     북쪽 공룡능선 방면엔 구름이 넘실대고 있습니다. 아마도 저 구름 아랜 비가 내리고 있을 것입니다.


     중청봉 하늘 위로 아침 노을이 선연합니다. 


     짙은 안개 속에 해가 잠깐 모습을 드러내고 있네요. 


     동해의 운해 위로 둥실 떠오른 해가 금빛 찬연한 햇살을 구름 위로 내리붓고 있습니다. 


▲쉬땅나무
무성한 쉬땅나무 군락이 막 떠오른 아침 햇살을 받고 있군요.




     운해 위로 드러난 저 봉우리는 아마 화채봉(1320m)일것입니다.




     천불동 계곡 방면을 내려다 봅니다.


     신선대 암봉도 구름에 싸여 있군요.


     희운각대피소에 도착하여 아침 식사를 합니다. 메뉴는 차가운 햇반에 즉석 카레 소스, 이 역시 과히 나쁘지 않습니다. 커피로 입가심하고 다시 공룡릉을 향해서 출발합니다.


     신선대 뒤로부터 하늘이 완전히 열리기 시작합니다.


     대청, 중청 정상에 한 조각 구름이 걸려있군요. 아마도 지금 저기 있는 사람들은 온 세상이 다 구름으로 뒤덮혀 있다고 생각하고 있겠죠? 금방 스쳐 지나 갈 뜬구름인것을. 


     희운각대피소에서 무너미고개 까지는 평탄한 길이라 금세 도달합니다. 오른편 나무 계단으로 내려가면 양폭대피소, 천불동 계곡을 거쳐 비선대로 연결되는 길이죠. 당연 위 공룡능선길을 택합니다. 여기서부턴 공룡능을 공룡능답게 하는, 꽤나 힘든 루트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60대 중반쯤 돼 보이는 누님(혹은 이모님) 두 분이 뒤따라 와서 이 곳이 천불동, 공룡능선 갈림길이 맞는 묻더군요. 그렇다고 대답해 드리니 천불동으로 빠질 줄 알았던 두 분이 보무도 당당히 공룡능선쪽으로 진입하시는군요. 내심 깜짝 놀랐습니다. 보행 속도야 제가 빠르니 먼저 가다가 꽃을 만나 사진을 찍는 사이 저를 따라잡는 것을 반복했는데 결국 비선대엔 저보다 먼저 도착하셨습니다. 그 나이에 공룡릉이라니, 참으로 대단하신 분이 아닐 수 없군요.


     상당히 길고 가파른 고갯길을 헉헉대고 올라오면 남으로 대청봉, 북으로 천화대를 조망할 수 있는 멋진 곳이 선물처럼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진 찍은 위치 바로 뒤의 바위 꼭대기가 신선대인데, 이번 산행에도 신선대는 패스합니다.


    사진 촬영 포인트에 한 사진가가 간밤에 비박을 한 모양입니다. 내려가 보니 카메라 두 대를 삼각대에 올려놓고, 천화대 방향을 겨누고 타임랩스(Time lapse) 촬영을 하고 있더군요. 어제 밤 일기도 고르지 않았는데, 정말 대단한 열정입니다.


     과연 천화대의 기암괴석이 운무를 만나니 그림같은 풍경이 펼쳐집니다.


     선경(仙境)이라는게 있다면 이런걸까요?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구름에 가렸다가 나타나기를 반복하는 천화대의 황홀함은 선경 그 이상이었습니다. 한동안 넋을 놓고 셔터 누르는 것도 잊은 채 멍 하니 구경하다가 몇 샷 날려 본 후 아쉬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하늘을 찌를 듯 날카롭게 서 있는 저 바위는 돛을 닮았다는 범봉(帆峰)이겠지요?


     멋진 소나무가 있어 범봉을 넣고 다시 한 번 찍어봅니다.


▲산오이풀

      멋진 곳에 자리잡고 사는 산오이풀입니다.


    천불동 계곡 방향으로 첩첩이 들어 선 암릉이 참으로 멋들어집니다. 과연 설악의 진면목 중의 하나라고나 할까요?


▲병조희풀/기름나물(?추정)/산오이풀/산꿩의다리(좌상 부터 시계방향)

     이 루트를 걷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자연스럽게 천봉만학(千峰萬壑)의 산악미에 빠져들어 꽃이 살짝 뒷전으로 밀려나게 되지만 그렇다고 꽃을 소흘히 대할 순 없습니다. 논에 들어오는 대로 프레임에 담아봅니다. 산 전체가 온통 바위 투성이라 상대적으로 흙땅이 많은 한계령 삼거리에서 대청 구간만큼 꽃이 많지는 않으나, 그래도 있을건 다 있습니다. 병조희풀의 대규모 군락도 만나고 기름나물로 추정되는 산형과 식물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등대시호 

     등대시호도 군락은 아니지만 척박한 바위 틈에 용케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웠습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악산(岳山, 嶽山)답게 설악은 기암괴석으로 표현되는 웅장한 바위가 남성성을 한껏 더해 줍니다. 부드러운 육산(肉山)이어서 마치 어머니의 품과 같은 편안한 느낌을 주는 지리산과는 또 다른 매력이지요.


     바위가 멋진 등로를 모아 봅니다.


      이 곳의 이슬과 안개를 먹고 자란, 고운 얼굴의 솔나리가 아직 싱싱한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이 바위의 품에 안겨 잠시 낮잠이라도 자고 싶어지는군요.


     대청봉만큼의 대규모 군락은 아니지만, 바람꽃도 군데군데 피었습니다. 잠시 배낭을 내려 놓고 이들을 완상하며 피곤한 몸을 쉬어 가는 여유도 부려 봅니다.


     공룡능선 루트에서 만나는 바람꽃 모음입니다.

      공룡능선의 묘미이자 도전은 내, 외설악을 조망하면서 만나는 호쾌하고 빼어난 산악미 뿐 아니라 4.5km이르는 그리 길지 않는 구간 곳곳에 숨어 있는, 상당히 가파르고 험준한 오르막과 내리막입니다. 겨우 한두 사람만 통과할 수 있는 우뚝 선 직벽을 철삭(鐵索)에 의지하여 한 걸음 한 걸음 오르내리려면 체력의 극한까지 밀어붙여야 할지도 모릅니다. 땀에 절은 숨을 헐떡이며 내 다시는 여기를 오나 봐라라고 다짐을 하지만, 하산 후 며칠도 지나지 않아 다음 차 산행 일정을 잡아 보게 되는 중독성이 있습니다. '산뽕을 맞았다'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더군요. 



     이번 산행의 3대 테마 중 마지막인 솔체꽃을 만납니다. 예전 노르웨이에서 본 적은 있지만 그건 외산(?)이라 논외로 치고, 토종으로선 난생 처음 대면하는 꽃입니다. 솔체를 만나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은 줄기 아래의 근생엽(근출엽)을 살펴보는 일이었습니다. 과연 구름체와는 달리, 이 녀석들에겐 근생엽이 거의 없군요. 아예 없는 것은 아니고 '거의' 없는 정도입니다. 지난 달, 덕유산에서 만난 구름체꽃엔 근생엽이 무성하였지요. 그것도 싱싱하게.


     내 어두운 눈으로는 꽃만 가지고는 솔체와 구름체를 구분해 내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어쨌든 보고픈 솔체를 만나고 나니 이 시각후부터의 산행은 완전히 덤이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한결 더 편해집니다. 


     솔체꽃을 찍자마자 또다시 하늘엔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하더니 이내 천둥을 동반한 소나기를 냅다 내리 퍼붓습니다. 황급히 배낭 레인커버 씌우고 판초 우의를 뒤집어 씁니다. 참으로 변화 무쌍한 날씨로군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푸른 하늘의 땡볕이 종일 갈 줄로만 알았는데. 약 30~40분간 굵은 소나기를 맞으며 걷다 보니 다행하게도 다시 비가 점점 잦아듭니다.


▲ 참싸리/참싸리/산솜다리/모시대 (시계방향)

     아직 지지않고 있는 산솜다리도 만납니다.


     이제 마등령 갈림길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마등령 갈림길에 와 보니 과연 오세암 방면으로 가는 탐방로가 폐쇄되었군요. 올 7월 초 집중호우 때 산사태로 길이 유실되었다고 합니다.


     설악골 방면으로 동자꽃과 쉬땅나무 군락이 왕성합니다.


     비선대 하산길이 시작되는 계단 직전에서 그간 아껴왔던 맥주를 꺼내 홀로 조촐한 자축 파티를 하였습니다. 


     이제 하산입니다. 자욱한 안개 속으로 난 아득한 계단길을 뚜벅뚜벅 걸으니 공룡릉 산행을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과 성취감이 몰려옵니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은 멀고도 험합니다.
 

     마등령에서 비선대에 이르는 이 등로는 아무리 걸어도 좀체 거리가 줄어들지 않는 희안한 마법의 길입니다. 다 왔다고 방심하면 큰 코 다칩니다.


     건너편 천불동 계곡의 이런 비경이 고단한 발길을 조금이지만 가볍게 해 줍니다.


     비선대 통제 포스트를 지나니 비로소 험한 길이 이젠 끝났다는 해방감이 듭니다.


     비선대 다리 위에서 천불동 방향을 보며 한 장 찍어 보았습니다. 저 푸른 물에 풍덩 뛰어들고싶군요. 과거 금강산 옥류동 계곡을 보고 잘 보존된 깨끗함이 크게 부러웠는데(바위마다 크고 깊게 새긴 김일성/김정일 부자 찬양 문구의 흉물스러움은 차치하고라도) 우리도 늦게나마 국립공원을 엄격하게 잘 관리한 덕분에 이런 청정함을 되찾았으니 참으로 다행스런 일입니다.  

 

 

     이제 귀갓길 교통편을 걱정해야 할 차례입니다. 하산하여 시내버스 편으로 바로 속초 터미널에 와 보니 울산 직행버스편은 끊긴지 오래이고, 아무래도 가장 빠른 시간에 귀가하는 길은 서울을 경유하여 다시 울산으로 가는 수밖엔 없습니다. 고속버스 터미널에 가 보니 그나마 가까운 시간은 다 매진이고, 40분 후 동서울터미널 표가 몇 장 남았다는군요. 일단 표를 끊고 나니 허기가 미칠듯 몰려옵니다. 산행 동안 식사가 많이 부실했던건 사실이죠. 땀을 엄청나게 흘린터라 목까지 마르니 시원한 막국수가 땡겨 터미널 주위의 막국수집을 찾아 보았으나 눈에 띄이지 않습니다. 남은 시간도 어중간하여 난감하던 차에 '아바이냉면마을' 간판이 보여 그리도 들어갔습니다.


     곱배기를 주문합니다. 북한식 회냉면 맛이 꽤 휼륭합니다. 가늘고 쫄깃한 면빨이 일품이에요. 간간히 씹히는 회무침도 좋았고요. 하긴 심히 배고픈 길손에게 뭔들 맛있지 않겠습니까마는. 

     막걸리 생각이 간절하였으나 나중 버스 속에서 혹 생길지도 모르는 생리적 문제를 생각해서 심히 아쉽지만 꾹 참아야했네요.
 

     후딱 식사 마치고 터미널에 돌아오니 '포켓몬 고'가 가능한 지역임을 알았습니다. 사냥에 함 나서 보고 싶었으나 버스 출발시각이 임박하여 접었군요. 근데 이틀 동안 소나기 맞고 땀에 절은 몸에서 폴폴 풍기는 쉰 냄새가 극심합니다. 옷을 갈아 입었는데도 배낭에서 옮겨 배어 든 냄새라 어쩔 수가 없군요. 옆에 앉았던 아주머니 승객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슬그머니 자리를 피해 다른 빈 좌석으로 옮깁니다. 덕분에 자리가 널널해져 좋았긴 했는데 미안한 마음에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동서울 터미널에 도착해 보니 마지막 울산행 버스는 이미 떠난 후입니다. 도중 교통체증만 없었다면 막차를 탈 수 있는 여유가 충분했지만 때가 휴가철이라 약 1시간 가량 연착하는 바람에 생긴 일이니 어쩔 수 없죠. 다음 차는 심야버스인데 2시간 여를 기다려야 해서 서울역으로 가 KTX를 이용하기로 합니다. 다행히 KTX는 좌석 여유가 있습니다.

    착석해 보니 또 옆좌석 손님이 젊은 처자입니다. 하필이면 왜 몸에서 쉰내나는 최악의 상황에서만 어여쁜 아가씨와 동석하게 된다는 말입니까? 이번엔 선빵을 날렸습니다.

 "아가씨, 사실 설악산에서 이틀 동안 비를 맞다보니 내 몸에 그리 좋지 않는 향기가 날텐데, 이거 미안해서 어쩌지요?"

 "아, 아닙니다. 전 아무렇지도 않으니 편히 여행하시지요." 

   천사가 따로 없군요. 사람을 피해 통로쯤에 서서 갈까도 생각해 봤는데, 그러기엔 너무 지쳐 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 가면 배낭부터 확실히 세척해 둬야겠습니다.

    (2016.08.03. 설악산 야생화 트레킹 끝)